창조보존

햇빛서 바로 보지 않으면 그 상처가 삶을 지배합니다 (한겨레, 3/15)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2:55
조회
678
**햇빛서 바로 보지 않으면 그 상처가 삶을 지배합니다 (한겨레, 3/15)

연이은 각종 성폭력 사건이 말썽이다. 어린이 성폭력 살해 사건, 교도소 여성 재소자 성추행 자살 사건, 남성 국회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등 가해자 피해자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회 각계에서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성폭력은 피해자는 물론 주변 사람에게 이겨내기 힘든 상처를 준다. 최근 성폭력 사건들을 바라보며 <한겨레>의 상담코너 ‘형경과 미라’가 입을 열었다. 소설가 김형경씨는 피해자에게,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박미라 편집위원은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건넨다.

■형경과 미라에게■

피해자에게

‘에나벨 청 스토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한 싱가포르 여성이 10시간 동안 251명의 남성들과 성행위를 하고 그것을 다큐멘터리식으로 필름에 담은 내용입니다. 건조한 낯빛, 기계적인 동작으로 남자를 한 명씩 치러내는 영화 속 주인공을 보면서 혹시 의문을 품지 않으셨는지요? 저 여성은 대체 왜 저런 행위를 하는가?

에나벨 청을 이해하는 열쇠는 그가 당한 성폭행 경험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직후 한밤의 지하철역에서 몇 명의 남성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의식의 차원에서 에나벨 청은 여성이라는 조건에 구속당하지 않는 당당한 배우로서, 성적 결정권을 본인의 손에 쥐고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그 영화를 찍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마도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에 휘둘렸던 게 아닌가 짚어봅니다. 자신의 성(性)을, 몸을, 실존 전부를 한 방에 폭파해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고요. 폭력 피해자의 심리 속에는 가해자가 자신에게 한 것과 똑같은 행위를 스스로에게 반복하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에나벨 청 역시 대부분의 성폭행 피해 여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당한 그 폭력에 잘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보면 그녀는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위로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되도록 빨리 그 일을 잊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상 속으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에나벨 청과 같은 방식으로 성폭행 경험에 대처합니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넘어가는 상처는 늘 ‘현재의 사건’으로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아주 오래 된 경험이라도, 이제는 잊었다고 믿더라도, 그까짓 것 아무렇지도 않다고 자부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경험을 편안하게 기억하거나 말하지 못하고, 내면에서 죄의식·모멸감·자기파괴 욕구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으며, 어쩐지 삶이 정체되거나 황폐해져 간다고 느끼신다면 지금이라도 예전의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그 경험을 직면하시기 바랍니다. 무작정 외면하고 잊으려 했던 그 사건을 기억의 지층에서 꺼내 햇빛 속에서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죽을 만큼 힘들고 치욕스럽더라도 그 일을 기억해내서 당신을 위로하고 지지해줄 친구나 자매에게 털어놓으세요. 말할 때 몸과 마음에 떠오르는 굴욕감·분노·비통의 느낌들을 지금이라도 세밀히 체험하세요. 그 일이 당신 탓이 아니며, 수치스럽거나 비난받을 일도 아니며, 그저 평범한 기억 중 하나로 여겨질 때까지 반복해서 그 경험을 보고 또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말처럼 실천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성폭행 경험이 아동기나 사춘기에 있는 사람들은 더 어렵습니다. 그 시기의 성폭행 경험은 형성되고 있는 정신의 예민하고 유연한 핵심에 마치 쇠막대처럼 박히게 됩니다. 무력감·우울증·자학적 성향 등이 성격의 일부로 굳어져 성인이 된 후에도 자율적이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기능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 분들께는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권해드립니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는 상처의 시기까지 퇴행하여 손상된 그 시기의 정신 영역을 보살피고 수선하는 일을 도와줍니다.

마음과 동시에 몸도 돌보시기 바랍니다. 성폭행 피해자들은 성에 대해 왜곡된 태도를 갖게 됩니다. 에나벨 청의 사례처럼 여러 남성과 방만하고 파괴적인 성관계를 맺거나, 반대로 자신의 여성성을 몰살시키고 성을 폐쇄해버립니다. 양극단 모두 궁극적으로 몸과 삶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지금이라도 몸을 소중히 여기고, 여성성을 돌보고, 애착관계를 맺은 사람과 친밀감을 나누는 방식으로서의 성을 실천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몸과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르더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을 것입니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 불가항력적인 재앙에 대해 어떤 과학이나 철학도 답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억울한 감정에 막막함까지 얹어 줄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답할 수 없는 질문 때문에 인류는 종교를 만들었고, 종교는 다시 인간에게 사랑과 용서를 가르칩니다. 힘들겠지만, 억지로라도, 가해자를 용서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믿는 신께 그를 용서해 주시라고 기도해보세요. 용서를 발음하는 순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미미하게나마 용기와 관용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 순간 당신은 가해자보다 강한 사람이 되며, 스스로를 강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불필요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여타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쉬워집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회복되었다는 의미는 “성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성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지점이라는 정의가 있습니다. 자신의 손상된 성에 대해서뿐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로서의 성, 일상성의 한 요소인 성, 친밀감을 나누는 매개로서의 성에 대해 잘 인식하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김형경/소설가

당신의 지지와 기다림이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피해자 주변 사람들에게

성폭력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여전히 이중적입니다. 성폭력 사건이 남의 일일 때는 피해자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내야 한다는 점을 상식처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 성폭력문화가 아직도 우리 내면에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여러분들이라면 그들의 커밍아웃이나 고백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어린 시절 친족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한 여성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이 사실을 부모에게 말했을 때 부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피해여성은 어릴 때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무기력한 부모를 재확인한 것 같아 씁쓸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부모의 태도는 아주 중요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있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됩니다. 그러니 성폭행을 당했을 때도 부모의 태도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가족들의 태도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이 보인다면 피해자는 수치심과 아울러 가족에게 죄의식마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가족들을 불행하게 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러니 피해자를 바라보면서 비탄과 비통에 젖기보다는 가해자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격려해 주세요. “어려운 상황을 잘 견뎌주어서 고맙고, 대견하다”고 말입니다. 지나친 연민이나 동정의 눈물도 피해자들은 껄끄러워합니다.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니까요.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친구가 피해 사실을 고백하면서 괴로워하더라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당황하거나 지나치게 동정하지는 마세요. ‘역시 나만 이런 경험을 한 거구나’ 하는 소외감을 느끼면서 다시 입을 다물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과도한 책임감으로 괴로워하지도 마세요. 그러다가 오히려 피해자 친구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보다 피해자의 말을 경청해주고 지켜보고, 예전처럼 자연스러운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사실 피해자가 가장 편안하게 발설할 수 있는 존재가 친구입니다. 비밀스러운 고통을 발설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치유는 시작되고 있는 것이니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질 필요는 없지요.

혹시 당신의 사랑하는 연인이나 아내가 성폭력 피해사실을 고백한다면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해 상대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혼전성경험을 고백하는 여성들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고통을 가장 친밀한 사람에게 위로받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전자라면 “우리 사회의 남자로서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씀해 주세요. 후자라면 그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고 따뜻하게 위로하며 무엇보다 그의 몸과 마음을 진심으로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해남성 때문에 얻게 된 남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당신을 통해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성폭력은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를 성적으로 유린하는 잔악한 범죄행위이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극복하지 못할 절망적이고 치명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어떤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더 성숙해지고 한층 강해질 수 있답니다. 무엇보다 성폭력의 고통을 극복할 주체는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피해당사자입니다. 그러니 너무 많은 간섭과 지나친 책임감일랑 접어두고 그저 용기를 주고 지지해 주고 편안하게 기다려주세요. 그 신뢰관계를 통해 그가 종국에는 성폭력의 상황을 직면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고통을 극복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그를 지켜보면서 주변 사람들도 많은 교훈을 얻고, 함께 성장해 갈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박미라/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