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 생각하며 아픔 이겨낸 다산
서울에서 8백리가 넘는 경상도 포항 곁의 장기에서 귀양 살 때의 다산의 시가 우리의 마음까지 아프게 합니다. 유배살이의 초기인데다 낯설고 길들지 않은 생활이어서 참으로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그 참기 힘든 고통을 끝내 이겨내는 지혜를 찾았습니다. 자신처럼 억울한 유배살이를 넉넉히 이겨낸 옛 어진이들의 삶을 본받아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아사고인행(我思古人行)」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한(漢)나라 때의 소무(蘇武)라는 사람이 흉노(匈奴)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그들에게 억류되어 19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했지만 끝까지 절개를 굽히지 않고 버텼으며 마침내 허연 백발의 노인으로 한나라로 돌아왔습니다. 다산은 그분을 본받아 자신의 고통도 이겨내겠다는 시를 읊었습니다. “지금부터 힘써서 하늘의 화기를 보전하고 그 옛 분을 생각해 번뇌를 없애야겠네.”
이어서 마지막 장에서는 자신보다 더 먼 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당나라 대문호 한유와 그가 겪은 어려움을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옛날 분 한유(韓愈)를 생각하네
불교를 공격했던 죄로 남쪽으로 귀양 갔네.
한유가 귀양 간 곳은 8천여 리의 먼 곳인데
거기 천리가 나는 백리니 고금의 다름이네.
이제는 떠돌이 신세 슬픔일랑 말하지 말고
옛 분을 생각하며 사람 그릇 키우려네.
我思古人思韓愈 坐攻佛法謫南土
韓愈八千餘里謫 彼千我百殊今古
自今勿言萍梗悲 我思古人恢器宇
19년의 유수(幽囚)생활을 끝까지 이겨낸 소무를 본받고, 8백리보다 10배나 더 먼 8천리 밖에서 귀양살이하는 어려움을 극복한 한유를 본받아 자신의 억울한 귀양살이를 이겨내겠노라는 의지를 다짐한 시가 바로 「아사고인행(我思古人行)」이라는 시였습니다. 고통일랑 슬픔일랑 번뇔랑 다 버리고, 마음껏 연구하고 공부해서 오히려 대학자가 되겠다는 뜻이 담긴 글입니다. 이런 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다산은 귀양살이를 하지 않은 정승이나 판서 등 어느 누구도 남기지 못한 업적과 명예를 세상에 전하게 되었습니다.
비애와 절망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는 자제력을 지닌 사람만이 역사적 인물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다산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다산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