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프랑스는 배운대로 행동했다 (한겨레, 4/14)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43
조회
1178
**프랑스는 배운대로 행동했다 (한겨레, 4/14)

국내외 화제나 뉴스분석을 다뤄왔던 ‘현장속 현장’ · ‘포커스’면이 이번주부터 국제동향에 대한 심층분석 비중을 높인 ‘안과 밖’면으로 바뀝니다.

4월10일 결국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최초고용계약(CPE)’ 법안을 철회했다. 우파 집권당의 신자유주의적 법안 강행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여론마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는 이 법안을 두고 사회 벡터들이 재조정될 만큼 커다란 홍역을 치렀다. 이번 사태를 ‘68년 혁명’이 다시 왔거나 아니면 1995년 12월 사회 투쟁이 다시 온 것 같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 2월8일 파리 시내에서 본격적인 법안 반대시위를 목격한 뒤 2개월에 걸쳐 프랑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이 법안을 두고 전개되는 프랑스 사회 세력들 간의 힘겨루기를 예의 주시하면서 결국 법안 철회까지 지켜보게 되었다. 왜 프랑스는 이런 사태까지 가고 말았으며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프랑스가 최초고용계약을 법제화하려는 것은 물론 신자유주의 물결로 미국이나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는 유럽 국가들이 하나 둘씩 노동유연정책을 수용하면서 점차 부유한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는 것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는 좌·우파 정권을 막론하고 영화에서 스크린 쿼터제를 고수하고 문화 분야의 예외조항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유전자조작 콩과 미국식 환경정책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아 프랑스가 미국의 압박에 백기를 든다거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조건 도입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결국 최초고용계약제 강행은 프랑스식 사회보장제도의 실패 때문도 아니고 과도한 실업이 이유였던 것도 아니었다. 집권 우파가 내년 5월에 있을 대선에서 기업과 기득권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어 3번째 연속으로 다시 대권을 장악하려는 우파의 전략이 가장 큰 이유였다. 여기에 대한 반발이 대학생들과 청소년, 노조, 좌파 정당에서 터져 나왔던 것이다.

그 동안 국내 언론에서는 최초고용계약법을 잘못 해석해 왔다. 26살 미만의 청년들이 처음으로 직장에 갈 경우 정규채용 급료의 절반만 받고 노동조합에도 가입할 수 없고, 일종의 연수성향이 강한 2년 계약기간이 끝난 뒤 이들을 아무런 고용 보장 없이 해고시킬 수 있는 점이 이 제도의 특징이다. 우파 정부는 정규고용에 대한 부담을 들어줌으로써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순간적인 실업수치를 내려 프랑스 사회가 안정적임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속임수에 직업계 고교생들과 병역의무가 없는 대학생들, 26살 미만의 청소년들이 반발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들이 받은 교육으로 보면 정규직 고용과 노동조합에 관한 권리와 사회보장제도는 자유 평등 우애의 가치와 노예제 폐지, 선거권, 사형제 폐지와 같은 것이다. 즉 그들의 선조들이 투쟁해서 획득한 사회적 유산이자 기득권인데, 기업가들과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해준 뒤 정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화려한 수사를 동원한 우파가 한국 언론정도야 속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프랑스인들을 속일 수는 없었다.

사회 재편 ‘제2의 68혁명’

그렇다면 이제야 자신들이 지나치게 오만했고 과도하게 자신만만했다고 후회하고 있겠지만, 프랑스 우파는 왜 이처럼 무리수를 두었을까? 이는 지난 대선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2002년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 1위는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이었고, 2위는 장-마리 르펜이라는 극우파 후보였다.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후보는 창피하게도 3위를 차지하여 2차 결선투표에 나가지도 못했다. 프랑스의 전 좌파와 유럽의 전 좌파가 충격을 받았다. 물론 가장 충격이 컸던 사람은 조스팽 후보였고 그는 바로 선거가 끝난 그날 밤 자정에 정계를 떠나는 고별연설을 한다. 사회당은 그때 받은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우파는 내년선거에서 후보로 지명되기만 하면 대통령 당선은 문제없다고 보고 도미니크 빌팽 현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경합을 벌였다. 빌팽은 현 대통령의 지지를 업고 최초고용계약법을 통과시켜 기업가들과 우파인사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공산당은 이제 우파 정당의 견제 세력이기는커녕 선거에서 정당 지지율이 5% 이내로 떨어져 우파가 신경도 쓰지 않는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흔히 말하는 CGT CFDT를 비롯한 프랑스 4대 거대노조는 정치적인 발언을 줄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 100년이 넘는 노조의 역사에서 오늘날처럼 무력한 적은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공격으로 노동자들의 소중한 권리가 위축되어도 노조간부들인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위험이 오지 않는다면 움직이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정당과 지나치게 가까운 유대를 맺은 결과다. 좌파 정당들이 위축되어 있고 노조들이 무력하고 신자유주의는 대세인 것처럼 보이자 대통령 꿈이 무르익었던 우파 집권당은 내년 선거에서의 승리를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집권 여당의 최초고용계약 법안 통과는 처음 학생들과 일부의 노조 및 정당으로부터만 저항을 받았다. 당연히 정규직을 희망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던 실업계 고교생과 대학생, 26살 미만의 청년들이 정부의 의도에 반발했다. 그들은 교사노조 선생님들로부터 노동과 고용, 사회복지에 대해 듣고 배우고 토론하면서 이 법안이 안고 있는 속임수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1회용 휴지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에서 잘 나타나고 있듯이, 점차 생산과 이윤이 늘어나는 데도 고용이 불안하고 실업이 늘어나고 기득권 계층은 더욱 부자가 되어가는 신자유주의를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국언론이 아무리 ‘실패한 프랑스의 고용제도’, ‘틀을 다시 짜는 프랑스 사회보장제!’라고 추켜세우며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라’ ‘미국처럼 해보라’고 부추겨도 이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사와 전통과 기업풍토와 문화가 다른 프랑스를 미국식으로 재단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저항 뒤에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 1995년 시위 이후 강력하게 부상한 ‘연대 단합 민주노조’ 즉 쉬드(SUD)노조가 있었다.

국내 언론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은 쉬드 노조가 과거 거대노조가 하던 역할을 이번에 대신했다. 이 노조는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지닌 음모를 폭로하고 프랑스 우파 정부의 반사회적 정책을 정면에서 비판해왔다. 더구나 쉬드 노조는 노조 소속 노동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대 사회적 발언을 중시했고, 노조의 진정한 살길은 신자유주의 공격을 물리쳐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핵심전략으로 놓고 지난 몇 년간 그렇게 투쟁해 왔던 것이다. 그러자 기존의 노조원들이 쉬드 노조로 옮겨오고 최초로 노조에 가입하는 노동자들은 쉬드 노조를 선택했다. 그리고 사회당과 공산당 녹색당이 없는 빈자리를 극좌파 정당들이 채우고 있었다. 여기다 지식인들과 여론이 지지하자 좌파 정당과 거대 노조들은 아래로부터의 힘에 밀려 최초고용법안 반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고 결국 일반 여론까지 여기에 가세함으로써 우파 정부는 법안 강행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당선자를 낼 것인가는 아직 장담하기 힘들다. 우파 집권당이 여전히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국회에서 이미 통과된 최초고용계약 법률안도 철회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공세를 물리친 그 공로는 아무래도 청소년들과 새로 대두한 쉬드 노조, 노조 출신 교사들, 그리고 이들을 지지한 프랑스 국민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시민연대 노조’ 신자유주의 대항

남미의 사회주의 정권들을 제외하면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신자유주와 미국 문화, 미국 음식, 미국 영화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 정부는 이제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고 미국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승리는 프랑스 국민전체라고 하겠다. 중요한 사실은 이번 사태로 신자유주의에 직면한 프랑스 사회가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벡터들의 세력관계가 물밑에서 재조정되어 내년 선거에서 그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그 사회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