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외칼럼] 아시아 민주주의와 패러독스 (경향, 4/21)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49
조회
1258
**[해외칼럼] 아시아 민주주의와 패러독스 (경향, 4/21)

〈사티야브라타 초우두리/ 印 그랜츠커미션대 명예교수〉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아시아 민주주의는 국가가 강건할수록 더 제기능을 못한다는 패러독스를 보여준 또 하나의 본보기였다. 지난해 남한 야당들이 얄팍한 빌미로 강행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천수이볜 대만 총통이 야당인 국민당이 장악한 의회의 반대로 법안통과를 못하는 상황,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첫 임기 동안 진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과 이후에도 쿠데타설이 반복되는 것은 모두 아시아 민주주의의 마비상태를 증언한다.

많은 아시아 민주주의들은 불신임과 잠재적인 폭력사태, 경제적 쇠락의 위협과 함께 상습적인 교착상태에 직면해 있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정체상태에 빠진 선례는 많다. 파키스탄은 1947년 건국 이후 당파적인 분열 탓에 어떤 민선 정부도 임기를 다하지 못했다. 결국 파키스탄인들은 군부통치가 자신들의 냉혹한 운명인 양 받아들이게 됐다.

아시아에서의 문제는 종종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에서 비롯된다. 코아비타시옹은 민선 대통령이 한개 또는 여러개의 야당에 의해 지배되는 의회와 공존해야 하는 엉거주춤한 상황을 말한다. 미국과 유럽의 성숙한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원칙 아래 제기능을 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종종 끔찍한 문제를 야기한다.

문제는 통상 의회의 교착상태에서 시작된다. 능력 없는 지도자들은 실패 탓을 의회에 돌리고,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을 비난한다. 서로 손가락질하며 “네 탓이오”라고 외치면서 책임은 실종된다. (염증을 느끼게 된)국민들은 정치적 분열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아쉬워하게 된다. 지난 70년대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가 한때 ‘비상통치’를 한 것도 부분적으로 국가기관들이 제기능을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분열은 분리주의자들에게 어부지리를 제공한다. 스리랑카 평화협상이 중대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야당 출신 라이벌인 위크레메싱헤 총리에 분노한 나머지 각료 3명을 해임하고 거의 4년이나 앞당겨 조기총선을 치렀다. 결국 분열 속에서 이득을 본 것은 타밀 타이거 반군들뿐이다. 네팔에서도 그랬다. 마오주의 반군들은 국왕과 의회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국토의 상당부분을 장악했다.

이 때문인지 아시아 민주주의들은 아무리 불안정하더라도 독재를 선호하게 됐다. 파키스탄이나 미얀마처럼 군정이 됐건, 중국과 베트남처럼 공산주의자가 됐건 말이다. 좌절한 대통령과 총리들은 국민의 직접투표로 선출됐다는 생각에서 헌법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탁신 총리가 사임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자신의 개인적인 통치를 위해 태국의 민주적 전통을 약하게 했다는 점이다.

아시아 정치인들은 선거 승리가 실질 권력으로 연결되는 (내각제)시스템을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회정치 시스템이 완벽하지도 못하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는 집권당이 장기간 의회다수당이지만 대만이나 남한과 같은 건강한 정치문화가 없다.

일본이나 인도에서는 선출된 지도자가 소속 정당이나 정당연합이 의회 과반수를 잃게 되는 날까지 국정을 맡는다. 정부는 의회를 제압하는 능력이 아니라 정책의 품질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추악한 반목을 낳는 불행한 코아비타시옹보다는 이같은 시스템이 아시아에서는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