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워싱턴에서] 견제없는 권력의 타락 (경향, 5/1)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2 23:30
조회
541
**[워싱턴에서] 견제없는 권력의 타락 (경향, 5/1)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행운아다. 2000년 대선에서 득표에서 지고도 대법원 판결로 가까스로 당선됐을 때만 해도 그가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공화당 내에서도 많았다. 그러나 취임하자마자 터진 뜻밖의 ‘9·11테러’가 그의 정치인생을 바꿔놓았다.

국민들의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 심리와 보수화 경향에 편승, 국내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냄은 물론 세계의 대통령으로 올라섰다. 그 덕분에 그는 불가능할 것 같던 재선을 거뜬히 해냈고, 공화당은 이후의 두차례 연방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전과를 올렸다. 그는 특히 재선 후엔 종신제인 연방 대법관 9명 중 2명을 보수인사로 교체함으로써 사법부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미국의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집권기간 동안 양원을 집권당이 장악하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미국은 삼권이 분립된 대통령제 국가지만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력이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 야당이 양원 가운데 한곳이라도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대통령이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하기란 매우 힘들게 돼 있다. 44명의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양원을 지배하고 사법부의 지원까지 받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런 정치적 행운을 바탕으로 최소한 집권 5년동안 두차례의 전쟁을 일으키는 등 거칠 것 없는 정치를 해왔다. 그러나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금언은 부시 정권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집권당 실세들을 뇌물로 엮어놓고 온갖 사기와 부패 행각을 일삼아온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 사건, 국가의 비밀을 언론에 흘려 정치적 반대자를 궁지에 몰아넣은 리크게이트, 국민들의 전화를 비밀리에 맘대로 도청해온 일, 테러 방지라는 명분으로 초법적 수용소 운용과 인권유린 등은 견제를 의식하는 정권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부시 정권의 오만은 인사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현재 부시 행정부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지지도가 50%를 넘는 사람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뿐이다. 그외 대통령 자신을 비롯해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 등은 거의 혐오 수준의 지지를 받고 있다. 국가를 위해 인적 쇄신을 해야 한다는 비판이 집권당 내에서도 쏟아지고 있으나 부시 대통령은 일소에 부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반체제적 정신’이라고도 하지만 의회가 야당 지배하에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부시 대통령의 측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양원 중 최소 한곳의 다수당을 민주당에 넘겨주는 일이다. 야당이 의회를 장악하게 되면 부시 행정부의 각종 의혹과 비리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시 정권이 이번 선거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의회 장악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민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부시 정권의 5년은 견제없는 권력이 어떻게 오만해지며, 오만한 권력은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