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다산의 아버지-다산 이야기에서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2 23:30
조회
526
다산의 아버지-2<288>

조선시대 신하로서 가장 높은 지위는 정승이라는 벼슬입니다.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합해 3정승이라 하고, 이들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 하여 임금 다음에는 제일 높은 분으로 여기는 것이 옛날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이름 없는 고을이라도 그 고을 출신 정승이 나오면 고을 남문(南門)에 홍문(紅門)을 세워 정승이 탄생한 고을이라는 칭송의 표시를 한다고 했습니다.

다산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인 「선인유사(先人遺事)」를 읽어보면 학식이 뛰어나고 일의 처리에 너무나 공정하고 바르기 짝이 없던 분이어서 가까이 지내던 고관들이 다산의 아버지를 정승의 자격이 있는 분으로 추앙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과거에 응시해서 합격만 하면 바로 광주부윤(廣州府尹)을 지내고 다음에는 개성유수(開城留守)를 역임하면 그냥 정승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며 응시를 권했지만 끝내 사양하고 정3품의 위계인 진주목사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경륜하고 나라의 대사를 임금과 의논하는 분이 정승입니다. 그만한 인품과 자격이 없고서는 절대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자리가 정승인데, 다산의 아버지 정재원은 그런 인품과 자격을 지녔다니 그 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나의 불초(不肖)한 자질로도 따라다니며 배워서 다소간 들은 바가 있었고, 보아서 다소간 깨달은 바도 있었으며, 물러나 이를 시험해 봄으로써 다소간 체득한 바가 있었다”(牧民心書序)라는 글에서 보이듯, 여러 곳의 군현이나 주목의 원님이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바가 있어서 『목민심서』라는 고을 원님들의 지침서를 저작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점이 다산 아버지의 현명함이자 뛰어난 관료로서의 능력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치적(治績)을 보면서 고을 다스리는 원리와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니, 다산의 아버지가 다산의 스승이자 『목민심서』라는 대저의 원본인 셈입니다. 그래서 역시 시부시자(是父是子)라 하는 것입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다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