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구
1980년 이후 민주화 운동 평가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7-03-21 23:21
조회
1909
1980년 이후 민주화 운동 20년 평가
황인성 (평화 협력 대사)
1. 문제제기
1) 87년 항쟁 이후 비록 점진적, 타협적이긴 하지만 역동적인 시민사회와 정치질서의 민주적 제도화를 통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민주적 이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한국민주주의가 최근 정체 또는 퇴행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위기’의 실상은 어떠하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
2)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87년 항쟁을 가능케 한 역사적 조건과 부각된 과제, 그리고 이후의 전개과정을 규정한 내외의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살펴보고,
3) 민주화운동세력의 인식과 실천을 되돌아 보면서, 이후에 제기되는 과제를 생각해봐야 할 것임.
2. ‘87년 항쟁의 동력과 항쟁의 성격, 그리고 이후의 변화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정부를 수립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기본 권리인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누리고, 건강하고 기쁘게 일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문화적 혜택을 힘껏 누릴 수 있는 생존권이 보장된 사회를 만듭시다. ~ 함께 누릴 빛나는 새 세상이 목전에 임박했습니다.” (1987년 6월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성명서 중에서).
1) 87년 항쟁의 동력은 물론 60년대 이후 끈질기게 이어져 온 민주화투쟁과 여러 항쟁의 성과의 집적을 통해 응축된 ‘민주화 열망’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 내용은 분단으로 인해 억압되어 있던 민족적 요구,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민중적 요구, 안보성장체제하에서 철저히 억압된 정치적 자유와 인간적 권리를 향한 민주주의의 요구가 총체적으로 결집된 것이었음.
이와 같은 요구를 대변하는 각종 정치적 흐름과 사회, 정치세력의 군부독재체제에 대한 도전연합의 형성과 정권교체기의 정치적 대치전선의 격화가 이와 같은 변화를 가능하게 했음.
2) 87년 항쟁은 계급과 지역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든 국민이 참여한 전국적 대중 투쟁으로 4반세기에 걸친 군부독재체제를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상태로 타격하였으나, 당시 지배 권력은 대중의 혁명적 열기를 6.29선언으로 잠재우고, 지배체제의 합리화를 통한 정치, 사회 권력의 거점보존에 성공하고, 삼권분립과 선거제도에 기반한 정치체제를 근간으로 하여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자유 시장경제를 가능케 한 초계급적 시민혁명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임.
3) 지난 20년간 세계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인한 탈냉전의 흐름과 정보화, 세계화의 물결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속에서 한국사회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실현한 것은 부정할 수 없음. 김영삼 정부의 군부정치의 청산, 김대중 정부의 탈냉전적 햇볕정책과 제도적 수준의 복지 기본틀 도입, 참여정부의 권력 문화 개선, 균형발전, 분권화, 투명사회 실현 등 탈 권위, 탈 특권문화의 보편화 등이 이에 해당함.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세력은 87년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보임. 정치적 민주화속에서 기존 경제지배질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합리화가 진전되면서 다수대중의 삶의 상대적 궁핍화, 사회정의의 퇴보, 계급사회의 심화 현상이 초래되고 있음. ‘목전에 임박했다던 함께 누릴 빛나는 새 세상’에 대한 국민다수의 체감지수 낮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현실이 이와 같은 위기를 초래하고 있음.
5) 한마디로 ‘97년 외환위기 이후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현상과 참여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정치적 불만의 팽배로 보수야당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진보.개혁진영의 혼돈과 무기력이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임.
6) 87년 항쟁의 기본목표는 “기본적 권리로서 자유권과 사회적 생존권”이었으며, 이 두 가지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함께 누릴 빛나는 세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음. 그러나 ‘민주주의’는 대통령 직선제와 최소한의 공민권을 중심으로 극히 협소하게 정의되었고,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토대에 대한 고민은 외면하거나 불철저했음. 그리고 정당체계는 이념적 협애성을 온존한 채 지역정당으로 재편됨.
7) 민주화세력은 87년 항쟁을 통해 억압적인 국가주의를 해체하기는 했지만, 인식과 실천에서 그 해체 이후의 새로운 창조에 관해서는 수동적이거나 철저하지 못했음. 6월 항쟁의 진행과정 역시 의외의 폭발성, 대중의 자발성에 의존한 측면이 운동 주체의 계획성과 주도성보다 큰 것이었으며, 군부독재이후의 개혁의 과제와 방안에 대한 계획과 인식의 공유정도도 취약했던 것이 사실이었음.
8) 이에 따라, 6?29 이후 민주화의 범위와 속도 설정, 민주화의 주요 의제 결정, ‘민주헌법’의 제정, 선거법 등 정치적 ‘게임의 규칙’ 고안을 포함하여 민주적 이행 과정 전반을 관장했던 것은 시민사회가 아니라 정치사회의 권위주의 집권당과 보수야당의 엘리트들이었음(‘때 이른 위임’-권위주의의 붕괴는 대중 주도적이었지만 민주적 이행 과정은 전적으로 정치엘리트 간의 타협의 결과. 김선혁 박사).
9) 민주화 세력이 독자적 전망을 포기하고 정치사회에 때 이른 위임을 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화 세력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전망을 갖지 못했거나 부실했기 때문.(최근에 와서야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싱크탱크 운동. 2000년대 이후 담론과 의제 설정력의 빈곤에 따른 이념과 정책에 대한 모색의 절박성 인식의 결과)
10) 민주적 공간의 확대에 따른 시민사회 각 영역의 활성화와 이에 기초한 각종 개혁요구와 추동이 전개되어 왔으나,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정치적으로 축적 및 발전시키고 제도화하는 정치조직의 역할 미흡. 사회발전을 위한 시장과 국가를 규율하는 시스템 형성에 개입하려는 대중의식의 계발, 동원, 참여구조의 취약. (정치와 경제, 국가와 시장 분리되지 않음)
11) 결국,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조응하면서 기성의 지배적 헤게모니에 대한 대안적 이념과 비젼을 제시하고, 대중의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중심으로 국가 관료기구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기반확장과 함께, 정치세력의 배양과 이들의 정치사회로의 진입을 원활하게 하는 주/객관적 조건의 형성이 민주주의의 심화와 위기극복의 중심적 과제로 부각됨.
3. 21세기 한국사회와 민주화운동세력의 과제
1) 국가와 정치사회의 민주화
- 17대 국회의 실적과 행태는 ‘정치개혁’이 여전히 ‘현재’적 과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음, 민주노동당 등 원내에 진입한 소수당의 활동은 거대 양당 구조 속에서 제약을 받고 있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가 효과적으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으며, 국회는 국민의사의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정당의 정치적 책임성도 약화되고 있음.
- 제도정치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정치 외부에서의 ‘영향력의 정치’, ‘압력의 정치’는 여전히 필요한 일이나, 이전 보다는 보다 높은 전문성과 책임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준정당적 개입수준을 넘어서는 정치적 기획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으로 보임, 이에 대한 다각적 모색이 필요.
- 정당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노력과 함께 소수정당, 신진정당의 진입장벽을 완화할 수 있는 선거제도(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확대 및 강화 등)의 개선과 아울러 국가운영의 안정성과 책임성을 보장하고, 변화된 사회의 가치와 요구에 상응하는 헌법규범의 변화도 중요한 정치적 과제임.
2) 사회경제적 민주화-민주주의의 심화.확장
- 오늘날 한국경제는 일부의 ‘민생파탄’주장이 힘을 얻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 물론 정부가 말하듯이 무역규모 3천억 달러, 2만 달러 GDP 달성 등으로 경제성장 총량이나 거시지표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움. 그러나 위기현상은 직접적인 파탄이나 붕괴가 아니라 계속되는 경기불황(특히 제조업과 소비)속에서 소득과 소비의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중산층의 붕괴, 빈곤층의 확대, 빈부격차의 양극화, (청년)실업의 문제 등 만성적 양극화의 덫에 걸려 있다는 데 있음.
- 지금까지 시민운동은 재벌의 전횡 감시 및 개혁요구, 소비자로서의 권익침해 방지 등의 소극적 역할 이상을 수행하지 못함. 민중운동의 경우도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해 왔으나 정규직 노조중심 운동의 한계, 선언과 구호중심 운동의 한계 등을 노정해 온 것이 사실임. 시민 운동과 민중운동 모두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한 시야 확보와 대안제시가 필요함. 시장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 국가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 효율과 경쟁만이 아니라 공공성과 연대의 가치와 균형을 이뤄야 할 것임.
3). 시민사회의 성숙과 시민적 덕성의 강화
- 시민사회의 민주화, 시민권의 확대와 시민적 능력의 함양 등은 여전히 운동의 중요한 과제라 할 것임. 현재와 같이 토론과 합의, 타협의 문화가 취약한 극단적 분열상황은 시민사회의 민주화를 위협하게 될 것임. 자신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동시에 소중히 여기고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이외에 ‘서로 어울려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시민적 덕성 또한 성장해야 할 것임.
-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경계 또한 확장되어야 할 것임.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이질적인 것과의 공존’에 너무나 미숙한 상태로 외국인 노동자나 탈북자의 사회통합정도는 매우 낮은 수준임. 이제 곧 현실로 다가올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이는 단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측면의 준비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통합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과정임.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문화의 함양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음.
- 이미 한국 사회는 ‘고립적 실체’로 존재하고 있지 않음. 지난 세기의 냉전적 국제질서만큼이나 강력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통일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진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음. WTO체제의 규정력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까지 크게 미치고 있음. ‘개방’과 ‘개혁’은 비단 북한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질과 강도를 달리 하며 남한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음.
- ‘미국’과 ‘세계화’에 대한 맹목적 신성시나 전면적 거부와 고립, 어느 쪽도 우리의 미래로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임. 우리는 이러한 고민과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 통일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 ‘시민사회’는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해야 할 것인가, 미국 중심의 패권적 세계화,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투기적 세계화에 대한 대응은 사회운동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음.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성찰, 나아가 그것을 ‘운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운동역량의 확보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음.
- 87년 항쟁에 나섰던 민주세력이 오늘의 시점에서 한 지붕아래 모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님. 그러나 민주항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선행했던 제반 항쟁과 운동의 성과를 한 지점에 모아서 돌파했다는 점임. 대중의 열망과 요구를 중심에 둔 진보, 개혁세력의 자기혁신과 이에 기초한 연대와 단결을 통한 정치변화 노력만이 빈사상태에 있는 진보, 개혁세력의 활성화와 민주주의의 심화를 가능케 할 것임.
- 자기혁신의 전제는 무엇보다 그간 한국 민주주의운동의 생명력과 역사적 성과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자성하되, 자학하지 않는 태도와 주요한 정치적 계기를 대중의 이익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전파하려는 적극성, 치열성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할 것임.
황인성 (평화 협력 대사)
1. 문제제기
1) 87년 항쟁 이후 비록 점진적, 타협적이긴 하지만 역동적인 시민사회와 정치질서의 민주적 제도화를 통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민주적 이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한국민주주의가 최근 정체 또는 퇴행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위기’의 실상은 어떠하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
2)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87년 항쟁을 가능케 한 역사적 조건과 부각된 과제, 그리고 이후의 전개과정을 규정한 내외의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살펴보고,
3) 민주화운동세력의 인식과 실천을 되돌아 보면서, 이후에 제기되는 과제를 생각해봐야 할 것임.
2. ‘87년 항쟁의 동력과 항쟁의 성격, 그리고 이후의 변화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정부를 수립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기본 권리인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누리고, 건강하고 기쁘게 일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문화적 혜택을 힘껏 누릴 수 있는 생존권이 보장된 사회를 만듭시다. ~ 함께 누릴 빛나는 새 세상이 목전에 임박했습니다.” (1987년 6월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성명서 중에서).
1) 87년 항쟁의 동력은 물론 60년대 이후 끈질기게 이어져 온 민주화투쟁과 여러 항쟁의 성과의 집적을 통해 응축된 ‘민주화 열망’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 내용은 분단으로 인해 억압되어 있던 민족적 요구,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민중적 요구, 안보성장체제하에서 철저히 억압된 정치적 자유와 인간적 권리를 향한 민주주의의 요구가 총체적으로 결집된 것이었음.
이와 같은 요구를 대변하는 각종 정치적 흐름과 사회, 정치세력의 군부독재체제에 대한 도전연합의 형성과 정권교체기의 정치적 대치전선의 격화가 이와 같은 변화를 가능하게 했음.
2) 87년 항쟁은 계급과 지역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든 국민이 참여한 전국적 대중 투쟁으로 4반세기에 걸친 군부독재체제를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상태로 타격하였으나, 당시 지배 권력은 대중의 혁명적 열기를 6.29선언으로 잠재우고, 지배체제의 합리화를 통한 정치, 사회 권력의 거점보존에 성공하고, 삼권분립과 선거제도에 기반한 정치체제를 근간으로 하여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자유 시장경제를 가능케 한 초계급적 시민혁명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임.
3) 지난 20년간 세계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인한 탈냉전의 흐름과 정보화, 세계화의 물결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속에서 한국사회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실현한 것은 부정할 수 없음. 김영삼 정부의 군부정치의 청산, 김대중 정부의 탈냉전적 햇볕정책과 제도적 수준의 복지 기본틀 도입, 참여정부의 권력 문화 개선, 균형발전, 분권화, 투명사회 실현 등 탈 권위, 탈 특권문화의 보편화 등이 이에 해당함.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세력은 87년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보임. 정치적 민주화속에서 기존 경제지배질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합리화가 진전되면서 다수대중의 삶의 상대적 궁핍화, 사회정의의 퇴보, 계급사회의 심화 현상이 초래되고 있음. ‘목전에 임박했다던 함께 누릴 빛나는 새 세상’에 대한 국민다수의 체감지수 낮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현실이 이와 같은 위기를 초래하고 있음.
5) 한마디로 ‘97년 외환위기 이후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현상과 참여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정치적 불만의 팽배로 보수야당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진보.개혁진영의 혼돈과 무기력이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임.
6) 87년 항쟁의 기본목표는 “기본적 권리로서 자유권과 사회적 생존권”이었으며, 이 두 가지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함께 누릴 빛나는 세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음. 그러나 ‘민주주의’는 대통령 직선제와 최소한의 공민권을 중심으로 극히 협소하게 정의되었고,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토대에 대한 고민은 외면하거나 불철저했음. 그리고 정당체계는 이념적 협애성을 온존한 채 지역정당으로 재편됨.
7) 민주화세력은 87년 항쟁을 통해 억압적인 국가주의를 해체하기는 했지만, 인식과 실천에서 그 해체 이후의 새로운 창조에 관해서는 수동적이거나 철저하지 못했음. 6월 항쟁의 진행과정 역시 의외의 폭발성, 대중의 자발성에 의존한 측면이 운동 주체의 계획성과 주도성보다 큰 것이었으며, 군부독재이후의 개혁의 과제와 방안에 대한 계획과 인식의 공유정도도 취약했던 것이 사실이었음.
8) 이에 따라, 6?29 이후 민주화의 범위와 속도 설정, 민주화의 주요 의제 결정, ‘민주헌법’의 제정, 선거법 등 정치적 ‘게임의 규칙’ 고안을 포함하여 민주적 이행 과정 전반을 관장했던 것은 시민사회가 아니라 정치사회의 권위주의 집권당과 보수야당의 엘리트들이었음(‘때 이른 위임’-권위주의의 붕괴는 대중 주도적이었지만 민주적 이행 과정은 전적으로 정치엘리트 간의 타협의 결과. 김선혁 박사).
9) 민주화 세력이 독자적 전망을 포기하고 정치사회에 때 이른 위임을 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화 세력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전망을 갖지 못했거나 부실했기 때문.(최근에 와서야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싱크탱크 운동. 2000년대 이후 담론과 의제 설정력의 빈곤에 따른 이념과 정책에 대한 모색의 절박성 인식의 결과)
10) 민주적 공간의 확대에 따른 시민사회 각 영역의 활성화와 이에 기초한 각종 개혁요구와 추동이 전개되어 왔으나,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정치적으로 축적 및 발전시키고 제도화하는 정치조직의 역할 미흡. 사회발전을 위한 시장과 국가를 규율하는 시스템 형성에 개입하려는 대중의식의 계발, 동원, 참여구조의 취약. (정치와 경제, 국가와 시장 분리되지 않음)
11) 결국,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조응하면서 기성의 지배적 헤게모니에 대한 대안적 이념과 비젼을 제시하고, 대중의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중심으로 국가 관료기구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기반확장과 함께, 정치세력의 배양과 이들의 정치사회로의 진입을 원활하게 하는 주/객관적 조건의 형성이 민주주의의 심화와 위기극복의 중심적 과제로 부각됨.
3. 21세기 한국사회와 민주화운동세력의 과제
1) 국가와 정치사회의 민주화
- 17대 국회의 실적과 행태는 ‘정치개혁’이 여전히 ‘현재’적 과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음, 민주노동당 등 원내에 진입한 소수당의 활동은 거대 양당 구조 속에서 제약을 받고 있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가 효과적으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으며, 국회는 국민의사의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정당의 정치적 책임성도 약화되고 있음.
- 제도정치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정치 외부에서의 ‘영향력의 정치’, ‘압력의 정치’는 여전히 필요한 일이나, 이전 보다는 보다 높은 전문성과 책임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준정당적 개입수준을 넘어서는 정치적 기획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으로 보임, 이에 대한 다각적 모색이 필요.
- 정당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노력과 함께 소수정당, 신진정당의 진입장벽을 완화할 수 있는 선거제도(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확대 및 강화 등)의 개선과 아울러 국가운영의 안정성과 책임성을 보장하고, 변화된 사회의 가치와 요구에 상응하는 헌법규범의 변화도 중요한 정치적 과제임.
2) 사회경제적 민주화-민주주의의 심화.확장
- 오늘날 한국경제는 일부의 ‘민생파탄’주장이 힘을 얻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 물론 정부가 말하듯이 무역규모 3천억 달러, 2만 달러 GDP 달성 등으로 경제성장 총량이나 거시지표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움. 그러나 위기현상은 직접적인 파탄이나 붕괴가 아니라 계속되는 경기불황(특히 제조업과 소비)속에서 소득과 소비의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중산층의 붕괴, 빈곤층의 확대, 빈부격차의 양극화, (청년)실업의 문제 등 만성적 양극화의 덫에 걸려 있다는 데 있음.
- 지금까지 시민운동은 재벌의 전횡 감시 및 개혁요구, 소비자로서의 권익침해 방지 등의 소극적 역할 이상을 수행하지 못함. 민중운동의 경우도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해 왔으나 정규직 노조중심 운동의 한계, 선언과 구호중심 운동의 한계 등을 노정해 온 것이 사실임. 시민 운동과 민중운동 모두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한 시야 확보와 대안제시가 필요함. 시장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 국가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 효율과 경쟁만이 아니라 공공성과 연대의 가치와 균형을 이뤄야 할 것임.
3). 시민사회의 성숙과 시민적 덕성의 강화
- 시민사회의 민주화, 시민권의 확대와 시민적 능력의 함양 등은 여전히 운동의 중요한 과제라 할 것임. 현재와 같이 토론과 합의, 타협의 문화가 취약한 극단적 분열상황은 시민사회의 민주화를 위협하게 될 것임. 자신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동시에 소중히 여기고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이외에 ‘서로 어울려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시민적 덕성 또한 성장해야 할 것임.
-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경계 또한 확장되어야 할 것임.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이질적인 것과의 공존’에 너무나 미숙한 상태로 외국인 노동자나 탈북자의 사회통합정도는 매우 낮은 수준임. 이제 곧 현실로 다가올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이는 단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측면의 준비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통합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과정임.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문화의 함양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음.
- 이미 한국 사회는 ‘고립적 실체’로 존재하고 있지 않음. 지난 세기의 냉전적 국제질서만큼이나 강력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통일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진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음. WTO체제의 규정력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까지 크게 미치고 있음. ‘개방’과 ‘개혁’은 비단 북한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질과 강도를 달리 하며 남한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음.
- ‘미국’과 ‘세계화’에 대한 맹목적 신성시나 전면적 거부와 고립, 어느 쪽도 우리의 미래로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임. 우리는 이러한 고민과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 통일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 ‘시민사회’는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해야 할 것인가, 미국 중심의 패권적 세계화,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투기적 세계화에 대한 대응은 사회운동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음.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성찰, 나아가 그것을 ‘운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운동역량의 확보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음.
- 87년 항쟁에 나섰던 민주세력이 오늘의 시점에서 한 지붕아래 모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님. 그러나 민주항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선행했던 제반 항쟁과 운동의 성과를 한 지점에 모아서 돌파했다는 점임. 대중의 열망과 요구를 중심에 둔 진보, 개혁세력의 자기혁신과 이에 기초한 연대와 단결을 통한 정치변화 노력만이 빈사상태에 있는 진보, 개혁세력의 활성화와 민주주의의 심화를 가능케 할 것임.
- 자기혁신의 전제는 무엇보다 그간 한국 민주주의운동의 생명력과 역사적 성과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자성하되, 자학하지 않는 태도와 주요한 정치적 계기를 대중의 이익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전파하려는 적극성, 치열성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