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지금, 새로 시작할 때이다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1:31
조회
797
(10월 30일-종교개혁 주일)

제목: 지금, 새로 시작할 때이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4장 16장-21절
찬송:369, 265
교독문: 6 (시편 15편)

<본문 주해>
본문 4장 18절의 말씀은 예수님이 스스로 공표하신 당신의 ‘복음의 핵심’이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광야에 나아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고,(3장 21절-22절)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광야에서 40일 간 마귀의 시험을 받아 이기셨으며(4장 1절-13절) 성령의 권능이 인도하심에 따라 갈릴리로 돌아가 공생활을 시작하셨다.
공생활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받으신 것이다. 그분의 소문은 근방에 널리 퍼졌고 ant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4장 14절- 15절)
그러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누가 복음은 예수님이 그분의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그분 스스로가 만방에 복음의 내용과 소명을 선포하시는 것으로 극적인 배치를 해 놓았다.
나사렛은 예수님의 고향이라는 의미만을 갖는 곳은 아니었다.
나사렛은 예수님 당시 이미 인구가 2만에 가까운 소도시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개된 뜻 깊은 곳이었다.
드보라와 바락이 싸운 곳이고, 기드온이 승리를 하고, 사울이 패하고, 요시아가 전사한 곳이며, 예레미야가 바알 선지들과 싸운 갈멜산이 있는 곳이었다.
이스라엘 역사뿐만 아니라 멀리 서편에 지중해가 보이는 세계 3대 대상로가 그 앞을 지나갔다. 예루살렘을 거쳐 오는 길, 애굽에서 다메섹으로 올라오는 길, 아라비아로 통하는 길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는 고대 문명의 요충지로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 세계로 전파하는 상징적인 중심지로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복음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18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이사야 61장 1절 2절) 메시야가 출현하여 세상에 구원 복음이 전파되는 ‘주님의 은혜의 해’, 바로 그 축복의 날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와 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선포하신 것이다.(4장 21절)

<예화 1>누가복음 4장 18절의 말씀은 60년대 70년대 교회가 독재에 반대하고 사회적 책임을 하게 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이 말씀은 가난한 자 , 약한 자, 억눌린 자, 갇힌 자, 눈먼 자, 들의 쪽에 서게 하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이었다.
한국교회는 독재의 폭압에 대한 두려움, 모든 유혹, 모든 비방, 멸시 등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이 말씀에 의지하여, 오늘 이 땅에 도래하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대망하였던 것이다.

<예화 2>오늘은 종교개혁주일이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는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을 ‘95개 반박문’에 작성하여 비텐베르크 교회 벽에 게시하여 종교개혁을 외쳤다. 오늘은 그날로부터 하루가 부족한 488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종교개혁의 완료형이 아니다. (기독신문 2005년 10월 23일)

<예화 3> 1997년부터 2004년까지 개신교를 이탈한 신도가 7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갤럽이 2004년에 조사한 내용으로 출판한 ‘한국인의 종교의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종교인 중 16.2%(420만 명)는 과거에 다른 종교를 가졌던 경험이 있는 있었는데 그 중 45.5%(191만 명)가 개신교를 믿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비종교인 중 과거 종교를 가졌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42.8%(960만 명)인데 이 중에 개신교를 믿었던 적이 있는 사람은 58.6%(560만 명)으로 결국 개신교를 믿다가 타종교로 옮겼거나 종교를 포기한 사람은 750만 명에 이른다는 것이다.(천주교-190만, 불교-400만)
개신교는 신앙심이나 종교생활에 있어 만족도(60.8%, 천주교-38.8%, 불교-31.3%)나 성직자에 대한 만족도는 타종교보다 높다(76.1%, 천주교-67.45, 불교 58.0%)
반면 비종교인 가운데 호감을 가진 종교가 무엇이냐 할 때 개신교가 가장 낮다(13. 3%, 천주교-17.0% 불교-37.4%, 없다-33.0%)
특정 종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예비적 신도라 가정 한다면 그 숫자는 불교 840만, 천주교 380만, 개신교 280만 명이다.
이상으로 보면 불교와 개신교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개신교인은 타종교보다 신앙심이 가장 깊고(스스로 신앙심이 깊다: 개신교-50.4%, 천주교-26.8% 불교-19.8%) 신앙생활도 가장 활발하며(종교가 생활에서 중요하다: 개신교 89.9%, 천주교 82.1% 불교 68.2%) 소속 교회에 대한 만족도도 가장 높다(60.8%. 천주교-38.9% 불교 31.3%), 그리고 성직자에 대한 만족도도 가장 높다(76.1% 천주교-67.4%, 불교-58.0%)
결국 개신교는 신앙은 좋지만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의 따가운 시선은 의식하지 못한 채 자아도취적 우리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TIME MAGAZINE 2005년 7월호 )

<예화4> 1960년 4.19혁명 당시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여 피흘리고 쓰러진 젊은이들을 보며, 한국교회의 지도자였던 한경직 목사와 김재준 목사는 한국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한국교회는 반성하여야 한다고 외쳤다. 그 외침에 따라 한국교회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사회적 약자와 빈자, 억눌린 자들을 위한 선교를 시작하였고, 그 결과 독재자 이승만이 개신교인이라 하여 그의 편에 섰기 때문에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던 한국교회는 백성들과 사회로부터 신망을 얻어 교회 성장의 축복도 받았다. 1960년 당시 인구 비율 4.5% 100만 명에 불과한 기독교가 40년 만에 인구 20% 1,300만 신도라는 세계에 유래가 없는 성장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기사연 주최 ‘2005 아시아 민주학교’ 취지문에서)

<결론>위기에 선 한국 개신교는 근본적인 자기 성찰과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상기 ‘한국갤럽’에서 한국국민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우리 개신교에 건의하고 있다..
첫째, 사회봉사 및 이웃사랑, 둘째, 지나친 전도 활동금지, 셋째, 헌금 강요 말기, 넷째, 타종교 비방 말기, 다섯째, 사리 사욕과 물질에 치우치지 말 것, 여섯째, 종파간 화합 등이다.
한국교회의 치부를 우리 국민들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누가 복음 4장 18절)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소명에 따라 아멘하고 나섰던 60년대 70년대처럼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종교개혁을 새로 시작할 때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