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범사에 감사하라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1:41
조회
910
(2월 19일 주현절 일곱째 주일)

제목: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본문: 디모데전서 6장 6절-10절
찬송: 473, 484
교독: 43 (마태복음 6장)

<본문 주해> 본문의 말씀은 돈을 갈망하고 물질적 조건을 추구하는 것을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6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라”(8절)
기독교는 가난을 예찬하지 않는다. 가난은 덕 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다. 조석을 걱정하는 것이 행복할 것도 없다. 단지 자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족은 물질에 노예가 되는 것을 막으며 사랑과 우의와 친교를 우선으로 하게 한다. 로마의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재물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 수록 갈증이 난다” 재물 욕에는 만족이란 없는 것이다. 자족하지 못한 자는 “미혹함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리도다.”(10절 후반절) 자족하지 못한 자는 근심으로 자기 영혼과 육신을 패망하게 한다. 자족할 줄 몰라 미혹함에 빠져 근심 걱정으로 육신과 영혼을 상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1
<예문> 지금 행복을 말한다면 비난받기 십상이다.
요사이 신문들과 T.V.들의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좌절과 분노와 절망으로 분통을 터트리고 기죽게 되고 만다.
빈부의 양극화, 노동자의 60%를 넘는 비정규직문제, 버려진 아이들의 문제, 소년소녀가장문제, 방학이면 밥을 굶는 어린 아이들, 성매매문제, 독거노인문제, 불안한 경제상황,
황우석교수 조작 사건, 정경유착의 X파일 문제, WTO와 농민문제, FTA와 스크린 쿼터제, 세대간의 갈동과 지역갈등, 사학법과 북한 인권을 둘러싼 국론 분열,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나 예의도 없이 갈등의식과 비난과 상대방에게 상처내기를 즐기는 것 같은 정치인들.
이런 모든 쟁점들을 건전한 논쟁과 차분한 대화를 통한 건설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여론을 이끌어 나가기보다는 악의적인 비난과 과대 포장식 폭로와 매도를 통하여 국론분열을 조장하여 국민들에게 불안과 위기의식을 불어넣고 급기야는 좌절과 절망에서 헤어날 수 없게 만들기를 업으로 삼는 것 같은 언론들. 우리 백성은 참으로 불행하다.

2
우리는 세계12위의 수출국. 국내총생산 세계 11위, 세계최대의 조선소가 있고 학력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의 백성들이다.
1962년 이후 60년 동안 대한민국 인구는 2.5배 증가한 4천 829만명이지만 이해 비해 국민소득은 40년만인 2004년에 무려 180배인 1만 6천불(1967년 87불)이다.
수출액은 지난 60년간 물경 2만 6천 8십배가 증가한 2천 5백38억불. 은행예금 5만5천300배 증가한 553조원. 자동차수는 지난 60년 동안 무려 1만 5천배가 증가한 1500만대다.
전화 가입자수 720배 증가한 2천5백 80만대(휴대폰 3천3백 59만대는 별도). 의사수 10배 증가한 1인당 588명. 문화수준을 말하는 연간 영화제작수 16배 증가(연 82편), 정기간행물 28배(6,938권) 일간지 3배(168개지 인터넷신문 272 별도), 국립도서관 17배(487개소), 도서 40배(3천8백만권) 에 이른다.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3
<행복의 추구>라는 책을 쓴 미국의 데이비드 미어스 박사는 돈을 벌면 벌수록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크기는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미어스 박사가 선진 산업국가들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극빈층 지역에 사는 사람들 72%가 삶이 만족스럽다고 대답한 데 비해 부유층 지역의 사람들은 겨우 14%만 같은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국제 사회학자 단체가 실시하고 영국의 <뉴 사이언티스트>에 처음 발표된 65개국 국민들에 대한 ‘세계 가치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나이지리아인들이었다. 이 행복도 조사에서 2~5위는 멕시코, 베네수엘라, 엘살바도르, 푸에르토리코 국민들이었다. 소득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나라들이다.
그러나 세계 11-12위의 부자 나라가 된 우리나라의 만족도는 세계 50위라고 한다.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생활만족도는 20.3%였다. 10명 중 2명만이 생활에 만족한다는 얘기다. 또한2006년 1월 1일자 모 신문은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구조 조사에 의하면 51%만이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실제 소득을 기초로 한 중산층 비율은 1997년 68.5%에서 2004년에는 63.9%로 조금 낮아졌을 뿐인데도 그렇다. 우리보다도 빈부격차가 크다는 미국과 중국이 우리와는 반대로 자기 소득과는 달리 중산층에 속한다는 응답자가 많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 처지가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보다 그네들의 것이 더 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질적 결여 보다 희망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4
우리들의 좌절이 우리 스스로의 탓은 아닌지 모르겠다.
1997년에 우리는 대망의 국민소득 1만불 고지에 올랐다. 그러자 우리는 집 사치, 옷 사치, 명품 사치, 차 사치, 해외여행사치 등등 너나 할 것 없이 사치로 들뜬 분위기 속에 헤어나지 못했고 너무 빨리 삼페인을 터트린 것은 아닌가하는 눈총을 밖으로부터 먼저 받았다. 그 결과 밀어닥친 외환위기의 결과와 겹치어 1998년에는 경제성장률 -5.8%, 국민소득 6,742불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합심하여 허리끈을 거머쥐고 금모이기 저축 등으로 그 위기를 무사히 넘기었다. 그 후 4년 만인 2002년에 1만 불을 다시 회복하고, 지난해는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6천 4백 불,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 5%, 그리고 2007년에는 예상 내년에는 2만불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국민의 대다수(70.9%)는 올해의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계는 올해의 우리 경제는 5% 성장이 가능하다고 하며 한국은행도 올해의 우리 경제를 낙관하고 콜금리를 인상하기로 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정부는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믿겠다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다.
그 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도 영혼도 육체도 망가지고 있다.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언 15장 13절 후반절)
근심이 우리의 심령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과 국경너머 힘든 삶에 시달리는 먼 이웃들도 생각하면서 위안을 가져 보자. 전 세계 노동자의 50%인 13억 8천만 명이 하루 2달라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북한 인권법, 개혁 사학법 등으로 혹은 세대 간의 갈등, 진보·보수의 갈등으로 국론 분열이 걱정이 될 때, 다양한 의견의 분출은 분열이 아니라 민주화된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의 결과라고 받아들여 감사하게 받아들여 보자. 나와 다른 의견을 갈등과 대결과 적대감의 빌미로 삼지 말고 ,그 의견을 존중하여 귀 기울려 들어보고 민주적인 토론으로 설득과 타협과 승복의 미덕을 지킨다면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행복을 맛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의 행복은 그 사람의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비가 오면 짚신 장사하는 딸네 집 걱정, 날이 맑으면 우산장사하는 딸네 집 걱정을 하던 불행한 어머니가 마음을 바꾸어, 비가 오면 우산장사하는 딸네 장사가 잘 되어 감사, 날이 맑으면 짚신 장사하는 딸네가 잘되어 감사, ‘범사의 감사하는’(예베소서 5장 20절) 행복하게 된 어머니처럼...

사랑을 나누면 희망이 자란다고 한다.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가난한 이웃들”(마태복음 26장 11절)에게 사랑을 나누자. 사탄이 비관을 선전하며 절망을 주입시키려 할지라도 낙관으로 옷 입고 사랑을 나눌 이웃을 찾아 희망을 키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