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버마의 국내 망명자들의 생존전략-비폭력저항운동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3:37
조회
541
버마의 국내 망명자들의 생존전략-비폭력저항 운동
난다 키와우 토 글

버마의 국내 강제 이주를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제 이주 주민들을 정치적 행위자들로 개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국내 강제 이주는 모든 국민들을 군사력으로 장악하려는 <국가 평화 발전 협의회>(SPDC)의 공공연한 정책의 일환이며,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는 강제 이주자들의 노력은 직접적으로 이 정책에 대한 도전이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자신들의 고국이 점점 더 군사화 되는 것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의 형태를 띄는 국내 망명자(IDPs)의 대항 전략을 알아야 도망다니며 사는 이 시민들의 삶을 잘 알 수 있다.
버마의 동부 소수부족들의 지역은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IDPs가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이 지역에 있는 IDP 인구는 약 5십 4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9만 2천명은 무차별 폭격지역에서 숨어 살고 있다.
이 지역이 외진 농촌 지역이기는 하지만 무장 반대 집단들과 SPDC 와 SPDC의 지원을 받는 군대사이에 주도권 싸움을 가장 격렬히 전개하는 지역이다.

SPDC는 ‘폭동진압’ 작전이라는 명목 하에 겉으로는 반군 활동에 대한 지원을 막기 위한다는 구실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이 대결 지역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을 통제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민들은 항시 불안해하며 때로는 군대가 통제하는 정착지로 강제 이주당하기도 한다. SPDC관리들은 이런 경우의 국내 강제 이주는 무장반군들과 손을 잡은 버마 내전의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완전 군사화라는 국가 정책의 일부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사실 <카렌 인권 그룹>이 “인권침해 사건들이 원래 무장 저항을 줄이기 위해 자행된 적이 없으며, 그 사건들은 주민들을 직접 군사통제 하에 두기위한 의도로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민간 주민들을 그 목표로 하여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소견을 피력하였다.
외진 전투 지역에서 시민들을 소개함으로써, SPDC는 소수민족의 영토를 더 많이 침탈해 들어갈 수 있었고, 광대한 자연자원의 착취를 할 수 있었으며, 지역 문화의 결속을 줄일 수 있었다.

정규적인 군사정찰과 광범위한 지뢰매립과 식량부족이 상존해 있지만, 강제 이주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군이 통제하는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이웃 태국 땅 어디론가 망명하기보다는 자기들이 버리고 온 마을이나 그 부근 어디에서인가 숨어서 사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약간이나마 자기들의 정든 땅에 대한 소유권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더 심해가는 군사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잠적을 택하는 이 IDP들은 군사정권의 군대와 자연환경이라는 이중의 위협을 받고 있다.
잠적해 있는 동안은 마을 사람들은 효과적으로 SPDC의 통제 밖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항시 국가의 적으로 간주되어 추격의 대상이 된다. IDP가 숨어있는 장소가 발각이 되면 타트마다우(SPDC 군대)는 모든 주거지를 부수고 잠적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재산은 무엇이든 간에 약탈한다. 이러한 공격은 매년 정기적으로 자행되어 IDP들은 늘 상 도망 다녀야 하며, 영구적인 주거지를 세우는 일이 가능할 수가 없다. 군은 농토를 못 쓰게 만들고 식량창고를 부수고 지뢰를 매설하여 마을 주민들이 돌아 올 수 없게 한다.

IDP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생활환경의 결과로, 질병이 창궐하고 영양실조가 만연해 있다. 군대의 공격, 식량위기, 질병과 상처 등등은 IPD들이 군사통제하의 주거지 밖에서 생존해 나가는데 일차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교육상의 장애들로 말미암아 후 세대의 지적성장이 억제되고 있다.

국토와 시민들에 대한 철저한 군사화라는 SPDC의 목적이 수행되는 상황에서는, 군사지배 밖에서 살고자하는 주민들의 노력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가 된다. 생존 그 자체가 저항 행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는 IDP들의 생존전략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고향의 주민멸절이나 모든 부문의 시민들의 삶에 군사적 지배의 확립을 가져 올 그 무엇을 반대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군대의 공격의 앞에서 IDP 공동체는 소유물들을 손에 들고 자기들의 임시 거처에서 피하는 길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 시민들이 되풀이 되는 군의 정찰을 피해서 숨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초기 경보 장치를 구축하는 길이다. 도망 다니는 마을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SPDC와 SPDC의 지원을 받는 군대의 행동을 주시할 수 있는 관찰 지점들을 구축한다. 정찰대가 발견되었을 시, 망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은익 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달려간다. 파수를 보는 사람들은 무장을 하고 있지 않으며 만약 SPDC 군에게 발각되면 총에 맞아 죽는 경우도 종종 있어 이런 일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IDP들의 조기 경보 제도의 보안적인 다른 수단에는 대항 정찰을 통해 알려진 군대의 움직임이나 IDP들이 다른 지역에서 전달해 주는 정보교환이 있다. 이러한 진전된 경보 제도로 인하여 IDP들은 발각되어 공격을 받는 일들을 줄일 수 있다.

IDP들의 생존 능력을 줄이려는 타트마다우의 정책은 각가지 식량 확보의 가능성을 없애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군의 거주지 이동 명령과의 관계 속에서 도망을 한다. 이런 명령은 식량 등 마을의 기반시설을 파괴하거나 마을 공터나 농토 전반에 반인륜적인 지뢰의 매설 이후에 발령이 된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의 집에서 도망나올 때 자기들이 가져 올 수 있는 만큼의 옷이나 식량을 손에 쥐고 나온다. 그것들은 많아 보았자 며칠 혹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할 양의 식량이다. 지뢰와 SPDC의 정찰이 무서워 마을 사람들은 감히 식량을 가지러 돌아가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은 군 정찰대가 언제든지 들이 닥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주이후에 가지러 돌아 올 수 있도록 밀림 속에 긴급 쌀 저장소를 마련해 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 저장소는 SPDC에 발각되어 파괴되고 반군들을 도와주었다고 기소된다. 비상 설비 말고도, 이주민들은 대추야자나 소두구(열대 생강)등 쉽게 재배할 수 있는 돈 되는 식물들을 기른다. SPDC 지배하의 마을로 잡혀가는 위험 때문에 IDP들은 자기들이 생산한 농작물들을 공개 시장에서 팔지를 못한다. IPD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과 자신들이 숨어서 살고 있는 밀림 속에서 열리는 임시 시장에서 필수적인 상거래를 한다. 때로는 그들은 먹고 남은 쌀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빌리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쌀 잡탕죽으로 끼니를 연명함으로써 식량부족을 메꾸고 있다.

국내 망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악천후를 피할 수 없는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숨어 살아야 한다. 그들은 또한 질병을 예방할 교육을 별로 받고 있지 못해 “일반 감기, 호흡기 감염, 소화불량, 설사, 이질, 피부감염, 비타민 결핍증, 현기증, 피로, 우울증” 뿐만 아니라 말라리아, HIV/AIDS, "위장병, 기침, 빈혈, 벌레, 폐 감염, 피부병“ 등의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때때로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그들은 집에서 약간의 약들을 가져 올 수는 있다. 그 양을 아주 적어, IDP들은 가끔 밀림에서 나무 껍질아라든가 뿌리 잎 등의 민간 치료제로 보충하고 있다. 그런 민간치료제는 잘 맞지 않거나 효과가 없을 수가 종종 있다. 보다 많은 의약품들의 공급은 국경너머의 시설들 밖에서 활동하는 반대 세력들이나 짐꾼 의료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팀 내의 훈련된 수련의들이 약간의 치료를 해줄 수도 있다. 물론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하지만 말이다.

교육에 대한 장애들은 이주 주민들의 현재의 삶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래 세대의 힘을 감소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숨어사는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것이로서 국내 이주에 뒤따른 장애들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녀들에게 교육기회들을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IDP들은 군대 정찰이 떠난 후 면 곧 바로 그 지역에 어떤 형태이든 신속히 가능한 가르칠 곳을 마련하는 사람들이다. 대나무 수용소는 흔히 아이들이 앉아서 배우는 임시변통의 학교로 이용되고 있다. 주민들은 대나무 조각이나 숯으로 필기도구들을 만들고, 가르치는 교사라 해보았자 기껏해야 기본 교육을 몇 년 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임시학교들은 SPDC 정찰대가 접근하면 즉시 문을 닫아야 한다. 발각이 되면 군인들은 뒤에 남겨진 골조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운다. 이런 일로 낙심하기는 하지만, 이런 수색과 파괴 행동들이 결코 그들의 교육 충동을 좌절시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IDP들은 상황이 허락만 한다면 언제든지 새로운 학교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IDP들이 비폭력적 수단으로 자기들의 사회의 군사화에 저항하는 활발한 전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전체 국내 이주자들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숨어다니는 IDP들이 이런 끔찍한 조건 속에서도 투쟁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은 SDOC가 지배하는 마을들이 실재로 얼마나 암울하게 폭거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범주를 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강제 이주 주민들을 정치적인 행위자로 개념화 하는 것은 IDP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인도주의적 단체들이나 국내 망명자에 관한 유엔 지침 원칙들에 따라 SPDC의 책임을 묻고 있는 국제기구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러한 단체들은 강제 이주의 상황을 잘 알아 무엇이 거기에서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인지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원조나 변호 등을 통하여 누구보다 국내 망명자들을 잘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