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잃어버린 10년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06-18 22:53
조회
3147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10년, 그 그림자는 짙고, 그 뿌리는 깊다!”는 것은 지금까지 이대통령의 상황인식이었던 것 같다.
본뜻은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지난 10년을 한탄을 하는 사람들은 이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40년 가까이 열망해 오던 민주화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도래를 했다는 가슴 벅찬 감격이 지난 10년 동안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한탄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인 것이다.
1987년 민주대항쟁 21주년을 마지 하는 이 때,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우리도 그랬었다.

1960년대 5.16정권의 경제 개발 정책으로 농촌의 인구가 산업사회로 편입되자, 기독교는 이들의 복음화를 위해 산업 전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 일요일도 없는 작업, 생존권을 위협할 정도의 저 임금으로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복음이 들어갈 여지가 없음을 곧 깨달게 되었다.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먼저 씨가 자랄 밭을 새로 일구어야 했다.
4.19 혁명의 때에, 젊은이들이 피 흘려 죽어가는 것을 보며,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 하는 자신을 반성했던 한 기독교 지도자의 고백이 기억나는 때였다.
생존권 등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와 인간다운 작업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가 헌법에 정하여져 있음을 노동자들에게 알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 스스로가 그것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복음 전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산업 선교였다.
그러나 헌법상의 권리마저 향유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장애가 있었으니 그것이 정치 환경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독교의 성직자들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적 정치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감옥에 갔고, 기독교는 이제 그들을 위해 인권을 말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도 드높아 갔다.
하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핍박을 당하였다. 민족 분단이 만들어 낸 현실인 것이었다.
그때 기독교는 분단 극복을 위한 십자가도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차올라 온 국민들의 열망이 무르익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사건이 1987년 민주 대항쟁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이 억압과 굴종의 쇠사슬을 끊고 참다운 자유와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민족화해의 새로운 미래를 연, 우리 현대사의 획을 긋는 사건임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면면이 궁금하다.

잃어버린 십년이란 국민의 정부 5년과 참여정부의 5년을 말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두 정부는 국민들의 이런 열망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다고 아니 할 수는 없으리라.
인권보장과 투명사회 구현, 민족화해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과거사 청산 등에 국가가 앞장 서 솔선수범한 나라는 그 예가 많지 않다. 국가 원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팽개쳐버린 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언론은 그들의 덕을 가장 많이 보고 있지 않는가?
IMF를 극복하고, 그 더럽고 끈질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 국민이 피땀 흘려 쌓은 경제를 세계 11위, 12위로 격상시킨 것도 그들의 공이 아닌가?
이런 그들에게 붙여진, 무능한 정부라는 낙인과 그들의 십년을 상실의 세월이었다, 라는 비웃음은 그들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 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본다면 그들은 한 시름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엊그제 보도된 “10년간 세상변화 몰랐다.”는 반성이 이대통령의 이제까지의 상황인식이 바뀐 결과라면 참으로 다행이겠다. ( 국민일보 2008.6.5 자 “지혜의 아침” ,김경남 원장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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