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아시아 태평양지역 생태부채 회의-강탈은 이제그만! 그들은 우리에게 생태를 빚지고 있다.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5-01-20 21:40
조회
1209
강탈은 이제그만! 그들은 우리에게 생태를 빚지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생태부채 회의-


정지영(사회진보연대 정책부장)


휴양지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발리에 일군의 사람들이 모였다.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네팔, 대만,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브라질, 에콰도르... 얼핏 봐서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아시아-태평양 지역 생태 부채 회의(Asia-Pacific Ecological Debt Conference)'에 참가하기 위해 모였다.

'생태 부채'라는 개념이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주빌리 사우스가 제3세계 국가들이 짊어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외채의 불법성을 제기하고 외채 거부 운동을 벌이는 가운데 새롭게 제기한 개념이다. 환경과 자연에 관한 부채라고 간략히 표현할 수 있는 이 개념을 통해서 북반구 국가들이 제3세계 국가들에게 오히려 부채를 지고 있음을 밝혀낼 수 있으며, 현재의 방식을 통한 발전이 아닌 모든 민중들의 삶이 풍요로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회의는 주로 북반구의 선진국들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남반구의 풍부한 자원을 착취하고 환경과 자연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을 어떠한 의미에서 생태 부채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삼림, 공기, 유독성 폐기물, 물, 바다, 땅, 광물, 생물다양성, 약품과 지적재산권 등의 다양한 주제 속에서 생태 부채가 실제 어떻게 증가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각국의 사례들이 제시되었으며, 각각의 사례들은 현재의 북반구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발전이 환경을 파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3세계 민중들의 생활과 공동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면서 그들을 죽음과 빈곤으로 내몰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생태 부채란 무엇인가?

주빌리 사우스를 중심으로 기간 외채 거부 운동이 진행되어 왔음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주빌리 사우스는 올해 초 세계 사회 포럼에서 국제 민중법정을 개최해 모든 외채가 불법임을 밝힌 바 있다. 생태부채는 이러한 운동의 과정에서 북반구 선진국들과 그들의 제도, 초국적 자본, 그리고 이들과 동맹 관계에 있는 남반구 엘리트들이 오히려 채무자임을 밝혀낼 수 있는 유효한 개념으로 제기되었다. 생태부채 개념은 지구 자체와 민중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현재의 발전 모델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남에서 북으로 불평등하게 유출되는 에너지와 천연 자원 및 금융 자원의 흐름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외채의 불법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제기되었다.

생태부채는 북반구 선진국들이 제3세계 민중들에게 지고 있는 빚이다. 이 부채의 내역은 자원 착취, 환경 파괴, 온실가스, 유독성 폐기물 처리를 위한 공간의 무단 사용 등이다. 북반구 국가들은 지구의 환경을 남용하고, 생태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발전 모델을 추구하며, 지속 불가능한 형태의 자원 채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에 대한 생태부채를 이행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생태부채는 500년 전의 식민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몇 가지 과정을 통해 지속되고, 계속 증가해왔다.

우선 생태부채는 천연자원에 대한 착취의 과정을 통해 축적된다. 북반구의 국가들은 오래 전 식민지 시대 때부터 남반구의 풍요로운 자원을 자신들의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음대로 채취했다. 물론 과거와 현재의 채취 양태와 메커니즘은 다르겠지만, 제3세계 민중들의 삶과 생태적 환경의 파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식민지 정복 초기,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의 숫자는 7천만~1억8천만 명으로 추정되나, 현재 남아있는 숫자는 350만 명에 불과하다.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페루 등의 많은 나라의 탄광 지역은 수은 중독과 아황산가스 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으며, 착취의 방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두 번째로 생태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불공평한 무역관계 또한 생태부채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선진국 및 그들의 기업에 의해 자행되는 자원의 채취는 남반구 국가 안에서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파괴를 수반한다. 석유, 삼림, 유전학적 자원, 광물, 해양 자원 등 수많은 것들이 다량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남반구 국가들이 얻는 것은 삼림 파괴, 환경 오염 등으로 인한 삶의 터전의 황폐화이며,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늘어나는 외채이다.
식물의 종자나 식물에 대한 전통적인 지식을 대규모 농업 기업이나 현대의 생명 공학 기술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독점하는 것도 생태부채를 축적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다. 북반구의 선진국들은 남반구의 자연과 그 속에 풍부한 생물다양성과 남반구의 전통 지식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다. 그러나 남반구 국가들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WTO의 지적재산권에 관한 법률은 북반구 기업들의 특허권을 보장하여, 남반구 민중의 접근조차 통제할 형편이다.

대기오염의 문제도 제기된다. 북반구 국가들 특히 미국의 국민 1인당 화석 연료 소비량은 남반구 국가들의 국민 1인당 소비량의 12배에 달한다. 이런 소비량의 차이에 비례하여 온실 가스 등 지구 대기를 오염시키는 물질의 배출량도 북반구 국가가 절대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전인류의 공동 재산인 대기를 북반구 국가가 무단으로 점유한 채 파괴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남반구 국가에서 그리고 그 인근 해상에서 진행되는 화학무기와 핵무기 실험, 북반구가 배출하는 유독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남반구의 자연 이용 등의 과정도 생태부채를 축적시키는 과정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빌리 사우스는 이러한 생태부채를 지속시키고 가중시키는 메커니즘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국가별로 강제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꼽는다. 이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적인 제도를 통해서, 그리고 외국인 투자유치라는 명목 하에 남반구 국가에 강제된다. 그리고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남반구 민중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 자신의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며, 외채 경감을 위해 수출품만을 생산할 것을 강제한다. 결국 남반구의 자연과 자원이 오로지 외채를 갚기 위한 수출에 조달되는 것이며, 남반구 민중들이 놓여있는 피폐한 조건은 고려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메커니즘은 WTO와 같은 무역기구이다. 위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협상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생태부채 회의의 논의와 의미

아시아-태평양 지역 생태부채 회의는 생태부채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틀 속에서 각국의 사례가 제시되고 논의되었다. 10여개 국가에서 참가한 80여명의 참가자들은 공기, 삼림, 물, 에너지와 전력, 약품과 의료, 생물다양성, 토지, 농업과 식품 안전성, 탄광, 전쟁, 유독성 폐기물 등의 주제를 생태부채의 개념 하에서 조사하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각각의 문제는 결코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 나라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 발제 때마다 확인되었다.

사실 생태부채 개념이 제기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활동가들이 먼저 제기했기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중들은 아직 이 개념을 생소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생태부채의 문제를 가지고 회의가 개최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많은 한계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생태부채가 단순히 현재 남반구 국가들이 지고 있는 외채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외채를 거부하기 위해 근거로 제시되는 개념일 뿐인가. 아니면 실제 북반구 국가들이 지고 있는 생태부채를 수치화하여 배상을 받는 것이 전략인가. 지금은 외채거부 운동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개념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번 회의에서도 이를 뛰어넘는 어떠한 전략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회의 마지막 날 진행된 ‘전략과 공동행동 제안’ 순서에서 참가자들은 생태부채 문제를 이후 대중화시키고,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남반구 민중들의 연계와 연대, 자료 축적 및 실태 조사, 생태부채 채권자들(남반구 민중들)의 요구를 정식화해내는 것 등 20여 개가 넘는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외채 때문에 2중, 3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제3세계 민중들의 투쟁이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각자의 나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어 온 성과가 현재 존재하고, 앞으로 더욱 강고해질 것이라 예고하는 듯 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 흐름의 선두에 서있는 각종 국제금융제도들, 초국적 자본들, 제3세계 국가의 엘리트들에 맞선 투쟁, 외채 거부운동이 다양한 전망과 활동을 가지고 벌어질 것을 시사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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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투자협정 WTO반대 국민행동(KOPA)의 <세계화와 민중> 제15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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