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우리는 왜 ‘칸쿤투쟁’에 참여하는가 -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 WTO의 5차 각료회의에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3-09-01 00:31
조회
1409
** 이글은 사회진보연대가 발행하는 <사회화와 노동> 제 196 호 - 2003.08.28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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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칸쿤투쟁’에 참여하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 WTO의 5차 각료회의에 부쳐



오는 9월 10일부터 14일까지,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멕시코의 호화 휴양지 칸쿤에서 WTO의 5차 각료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성과로 95년 출범된 WTO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영역을 확장하며 민중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5차 각료회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WTO는 다양한 자태변화를 통해, 민중들의 삶과 직결된 필수적인 요소들을 자유무역 안으로 포괄하고 이를 초국적 자본의 이윤놀음으로 대상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이번 WTO 5차 각료회의는 ‘자유무역’이라는 미명 하에 전세계 민중의 제반 권리를 박탈하고 미국과 초국적 자본의 금융적 팽창과 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계획의 완성판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있다.

특히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2001년도에 시작된 도하개발 의제(DDA)라는 새로운 무역제체를 출범시키기 위한 막바지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다자간 투자자유화협정을 핵심목표로 추진하고자 한 밀레니엄 라운드의 실패 이후, 미국중심의 자유무역질서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그런 만큼 이번 각료회의 준비작업도 치밀하게 진행되어 왔다. 우선 밀레니엄 라운드 실패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개도국의 불만을 무마하고 끊임없는 ‘자유뮤역’의 환상을 작동시키기 위해 몇 차례의 비공식 각료회의, G8 정상회담의 조율 등을 시도했다. 또 이번 WTO 5차 각료회의가 911테러 2주년을 맞는 시점에 진행되는 탓에 미국정부는 테러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칸쿤으로 향하는 교통편을 차단하고 단속을 엄격히 하는 등 시애틀 투쟁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전세계 민중들의 투쟁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노력 또한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초국적 자본의 완전자유화를 위한 민중의 권리 박탈협정, 도하개발의제(DDA)

WTO는 각 국간의 무역장벽을 없애고 무역 자유화의 틀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을 비롯한 WTO 협상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상품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관세를 낮추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수 공공서비스를 완전히 시장화하여 초국적 자본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한편, 해외 투자와 국내 투자를 차별하는 요소를 없애고 손실의 여지가 없도록 하는 등 투자 자유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조처들을 국제적인 규범으로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서 IMF와 세계 은행이 주변?반주변 국가들이 처한 외채?외환위기를 매개로 하여 차관을 지급하고 그 대가로 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 탈규제화, 민영화, 긴축재정 등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했다면, WTO 도하개발의제는 이러한 정책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틀을 갖추고 ‘분쟁해결메커니즘’을 두어 이를 강요하는 셈이다.

이번 각료회의의 핵심 쟁점인 도하개발의제에서는 농업협정, 서비스협정을 통하여 민중들의 삶과 직결된 필수적인 요소들을 자유무역의 영역 안으로 포괄하고 이를 초국적 자본의 이윤놀음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또한 실패한 시도로 끝났던 다자간 투자자유화 협정을 WTO 내에서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국 ‘자유무역’을 완성한다는 WTO가 민중의 삶 곳곳을 초국적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만들며 삶의 기반을 파괴하고 불평등한 빈곤을 확산시키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첫째, 농업협정(AoA)은 시장접근의 실질적 개선/수출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 한 감축/국내보조의 실질적 감축 등 3대 협상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초민족적 식량 기업과 농산물 수출국으로 하여금 과잉 생산된 식량을 생산비 이하의 가격으로 덤핑하여 주변?반주변국의 농촌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식량 생산을 붕괴시키고 전세계 식량 소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둘째, 교육, 보건의료, 에너지 공급, 상수도 공급, 통신, 금융서비스, 시청각서비스, 법률서비스, 건설, 유통, 환경 등 모든 형태의 서비스를 협상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협정(GATS)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상업화하고 외국인 지분소유한도를 철폐하도록 하여 초국적 자본이 침투하여 활동할 수 있는 영역으로 탈바꿈시킨다. 실제로 유럽연합이 한국정부에 제출한 양허안 요청서에 따르면 각종 공공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요청하고 특히, 한국통신을 직접 지목하면서 해외 개인 투자자의 소유제한을 완전히 철폐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처럼 이 협정이 다룰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는 제한이 없고,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것 역시 언제든 가능하다. 때문에 이 협정은 개별 회원국이 특정 회원국을 대상으로 개방 요청을 하고 그 요청에 근거해서 개방의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한다. 게다가 ‘자발적 자유화 조치’에 대해 특혜를 부여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셋째,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은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지적재산권 협정을 총망라하여 초민족적 자본이 영토의 한계를 넘어 무제한적인 독점적 권리를 향유하도록 보장한다. 특허에 의해 보장되는 배타적/독점적 권리를 강화하고 20년간 연장할 수 있게 하며, 미생물과 식품, 의약품에도 적용할 수 있게 해, 농민들의 종자에 대한 접근권, 가난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 전통적인 지식에 대한 접근권 모두를 박탈하고자 한다.

그런데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의 진정한 문제점은 세계적인 무역질서 내에서 각 민족국가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거나, 중심부국가 및 초민족적 자본의 상품 판로를 확장하기 위한 것에 있다기보다는 초민족적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위한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자본 이동의 완전한 자유화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일례로 싱가포르 이슈(싱가포르에서의 2차 각료회의를 통해 제기)를 통해 미국, 일본 등은 OECD 내에서 추진하려다 실패한 “MAI(다자간 투자협정)" 수준의 투자자유화 협정을 WTO 내에서 체결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제한 없는 경쟁을 보장하고 국내?외 자본간의 차별을 삭제하며 완전히 자유화된 투자와 금융거래의 틀을 확립하겠다는 의도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WTO 체제와 남한 사회의 위기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전략은 기존의 중화학·수출중심 발전 국가에서 '자본유치형' 국가로 변모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진행된 구조조정은 기업들의 부실을 처리하여 남한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부실확대를 막고, 공적자금 조성을 통해 위기에 빠진 재벌, 금융사들을 구제함으로써 경제위기가 폭발하는 것을 막았으며, 금융부문의 규제를 없애고, 금융시장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초민족 자본을 다시 유인하는 것이 김대중 정권이 이야기했던 경제위기 극복이고, 경제성장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권에게 남겨진 과제는 분명한데, 계속해서 외국인 투자자본을 유치함으로써 '자본유치형'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이 계속해서 ‘신흥시장’으로서의 매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저금리, 연기금 주식투자 등의 증시부양 정책과 금융 및 서비스 분야의 개방, 자유화 조치 등이 연달아 추진되는 것이다. 금융부문에 있어서의 자본의 진입 및 이탈에 대한 규제는 이미 상당 수준 자유화되어있는 상황이며, 양자간 투자 및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행의무부과금지’ 와 ‘내국민대우’조항 등의 초가조치와 경제자유구역법의 실시 등이 이루어져왔다.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이러한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의 연장선에서 초민족 기업의 활동영역을 더욱 확대시켜주는 조처의 일환으로 적극 추진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교육, 에너지, 의료 분야를 추가적으로 개방하는 한편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이미 개방된 금융, 통신, 건설, 유통, 환경, 해운 등의 분야를 서비스 협정 양허안에 반영하여 지난 3월 31일 서둘러 제출해 다른 회원국들의 개방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남한 자본주의의 이러한 전략은 기존 산업의 파괴―특히 농업의 포기―를 동반한다. 대신 IT, BT 등 외국자본 유치에 매력적이고, 주식시장 부양책과 연관되어 있는 산업들이 적극 육성된다. 합리화의 명분으로 공공분야의 비효율성, 소비자만족도의 저하를 내세우며 적극적인 시장자유화조치를 취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시장자유화조치는 효율성과 만족도, 경쟁력을 높인다는 담론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이러한 외자유치를 위한 조처들이 초국적 자본에게는 최적의 투자 환경을 만드는 반면 노동권, 환경권, 교육권, 건강권 등 민중의 제반 권리를 해체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존의 위기와 민중들의 권리의 박탈 앞에서 전사회적인 기생성과 투기성을 증가시키고 막대한 부를 해외 기관투자자가와 재벌에게 집중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선 투쟁이 조직되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그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자

WTO 출범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관철시키기 위한 중심부 국가와 자본의 노력은 끈질기게 민중들의 삶을 파괴해왔다. 그러나 WTO의 영역의 확장만큼 민중들의 투쟁 역시 성장하고 있다. 1999년 시애틀의 WTO 3차 각료회의에서 기획되었던 새로운 자본의 세기를 위한 뉴라운드의 출범은, 시애틀 거리를 완전히 점거하고 WTO 각료회의장을 포위하면서 강력하게 투쟁을 전개했던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의해 저지되었다. 시애틀 투쟁의 성과를 이어 세계사회포럼 구성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대안세계화를 위한 국제행동의 논의가 불붙고 있으며, 지난 2월 15일 전세계적인 반전시위의 기획과도 같은 전지구적 행동 또한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다.

WTO 5차 각료회의가 진행되는 칸쿤에서도, 농업, 무역과 전쟁, 서비스 사유화, 환경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한 “WTO 대안 마련을 위한 민중포럼“과 부문별포럼, 911과 군사주의 희생자 추모대회, 대규모 시위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AIDS와 각종 질병이 창궐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비극과, 죽지 않을 정도의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초과착취지대의 여성의 비참함, 생계인 농업을 포기해야 하는 소규모 농민들의 비애, 수도산업 민영화 이후 전국민의 1%도 안되는 사람만이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는 상황 등이 단지 남반구 혹은 주변국?반주변국 일부에서만 일어날 문제가 아니며 전세계 민중들 모두에게 곧 닥쳐올 미래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현재 남한에서도 FTA?WTO 반대 국민행동(KoPA)와 전국민중연대에 소속된 200여명의 활동가들이 칸쿤 현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9월 1일 WTO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투쟁선포식과 기자회견을 비롯, 릴레이 선전전과 9월 6일 WTO 각료회의 저지 범국민대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WTO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계사회운동들의 논의와 행동이 언론과 자본에 의해 ‘반세계화’, ‘자유무역 반대’로 표상되면서 그 스스로를 민족국가간?계층간 보호주의와 ‘거울유희’하는 오류도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 예컨대 농민들의 농산물 개방 반대 투쟁이 자유무역론자들의 ‘비교우위론’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공부문의 해외매각?사유화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 교육?보건의료 시장 개방에 맞선 투쟁이 ‘자유무역 반대’라는 퇴행적?국수적인 이미지로 매도되는 것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놓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WTO 협상의 본질과 목표가 자유무역을 강화하여 상호보완적인 지구촌 경제체제를 수립하려는 방향이 결코 아니라, 전세계의 단일시장화와 그것을 지배하는 금융의 주도권의 무한확장이라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이것이 경제위기와 무한전쟁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질서를 유지?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향후 세계사회운동의 핵심과제가 미국과 초민족적 자본의 금융-군사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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