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화해

'평화번영정책'과 '부시 독트린'의 수렴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3-06-13 00:35
조회
1330
'평화번영정책'과 '부시 독트린'의 수렴

한미 정상 공동 성명과 노무현 방미 결과를 비판한다

사회진보연대(PSSP)


지난 5월 11일부터 17일까지 노무현의 방미를 놓고 정치권은 극도로 치닫는 정신분열양상을 보여주었는데, 또다시 여야가 자리를 바꿔 앉아 야당이 대통령을 옹호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평소 노무현의 대미 인식에 대해 의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던 한나라당은 이번에는 "노 대통령이 방미외교에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전략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줏대 있는 대북포용정책과 전통적인 한미동맹 복원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상찬한 반면, 민주당은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는 하지만 씁쓸한 얼굴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재야출신 의원들은 "남북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던 대북 포용정책에 상당한 후퇴를 가져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지난 3월 14일, 이라크 파병결정 이후 노무현 행정부의 대미정책은 당선 직전 많은 사람들이 바랐던 상징 즉, 미래지향적인-동등한 대미관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이에 의혹의 눈초리를 던지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서는 동네 부랑아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한신을 들먹여가면서까지 '외교란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에도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를 않았고, 대미굴욕외교를 비판하는 이들의 노여움은 끝내 5·18 망월동 묘역 참배를 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을 후문으로 돌아가게끔 하였다. 한 술 더 떠 광주지방법원은 이런 대학생들의 '망발'을 응징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마저 법적으로 기각하였다. 정말로 대통령 못 할 짓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상황이다.

노무현의 극단적인 지지자들은 이를 두고 두개로 나뉘기 시작한 듯한데, 노무현이 수구보수언론의 압력에 못 이겨 굴복하기 시작한 듯하다며 우려섞인(그러나 동정어린) 시선을 던지는가 하면,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의 입지를 이해해야 한다며 이럴 때 우리가 올바로 서야 노무현 대통령이 제대로 선다는 상황론을 전개하기도 한다. 이 둘의 차이는 그리 큰 것도 아닌데다 뜻밖의 상황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무현의 이 같은 행동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노무현 행정부의 한반도위기 인식이 대단히 불명료하고, '평화번영정책'에서 엿보이듯 이에 대한 해법이 지극히 낙관적인데다, 더 나아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보증해 줄 수 있는 명확한 정치세력까지 (아직까지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정치 전망이라는 딜레마에 휩싸인 노무현이 지극히 위험스러운 방향으로 나갈 것임은 이미 경고한 바 있지 않은가?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강화한 한미 정상 공동 성명
: 한미 정상 공동 성명의 모호한 수사(修辭)?

이미 출국에 앞서 '성숙하고 완전한 동맹관계의 형성,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미 경제협력 강화가 포함될 것'이라며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었던 것인 만큼, 한미 정상 공동 성명에서 드러난 두 정상 간의 인식의 합치점을 정확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동등한' 한미관계가 '성숙하고 완전한' 한미관계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탈바꿈과 함께 오늘날 '성숙하고 완전한' 한미관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두 정상은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군을 변혁하고 새로이 대두하는 위협에 대한 대처능력을 드높임으로써 한-미 동맹을 현대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곧, '동맹 현대화 맥락에서 주한미국을 핵심 축으로 통합하는 계획'을 마련하기로 하고, 이른 시일 내에 용산 기지를 재배치하기로 하였다는 말로 뒷받침된다. 즉 '성숙하고 완전한' 한미관계란 사실 주한미군을 정점으로 하는 군사동맹의 강화를 의미하고, 그 인식의 저변에는 '새로이 대두하는 위협에 맞서기 위한 대처능력의 향상'이 깔려 있다.

공동 성명의 두 번째 내용은 북한 핵개발에 대한 입장이다. 두 정상은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며, 검증가능 한 그리고 비가역적인 제거를 위해 노력해 나간다는 강력한 의지를 다시금 천명'하였는데, 이는 최근 북한이 베이징 회담에서 제시한 대담한 해법에 대해 '비가역적인 제거(irreversible elimination)'라는 표현을 빌림으로써 우회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즉, 핵 프로그램의 중단 주체가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구나 '평화적인 수단을 통한다'는 말과 달리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할 것임을 명시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군사적 수단의 사용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이 같은 이중수사는 남북협력에 대한 언급에서도 드러나는데, 한편으로는 두 정상이 '인도적 지원이 정치적 상황 전개와 무관하게 이루어 질 것'임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은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이 북핵문제의 전개상황에 따라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명시함으로써 '연계정책'에 따라 남북교류협력 방향의 변화가능성을 시사하였다. 물론, 북핵문제에 있어 중국의 역할을 환영하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여러 국가들 사이의 다자간 협상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인데, (협상) 비용의 분담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편,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의 개요에 대해, 부시행정부는 남북화해과정을 지지한다면서 '남한의 남북화해과정은 북핵 문제 해결 촉구에 사용되어야 함'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공동 성명의 세 번째 내용은 경제관계다. 양 정상은 '한국 경제 기초 여건이 견실하다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한국의 무역, 투자, 성장의 지속적인 증가 전망에 대해 강하게 확신'하고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지속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환영하고 지지'함으로써, 미국에 집중되어 있는 투자자본에게 한국의 투자 전망도 괜찮다는 부시의 전언을 전달하였다. 동시에 여기에는 양국간 경제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음도 확인해두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내용은 노무현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완전한 동반자 관계 형성에 대한 천명이다. '당선이후 빈번한 전화통화를 통해 양 정상은 상호 신뢰와 존경의 기반을 형성하였으며, 한·미간 공조가 강화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그리하여 부시행정부가 제기한 여러 우려가 해소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동시적이며 미묘하게 언급하고 있어 수사(修辭)로만 보면 모호할지 모르지만 정치적 의미는 명백하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핵심으로 하는 한·미 동맹의 강화며, 북핵문제의 해결은 모든 수단(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는)을 사용해서라도 이루어야 하는 완전히 '제거'가 최종 목표며, 동시에 평화번영정책 즉, 남북화해협력은 이 모든 과정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동북아 중심 국가 모델의 핵심은 바로, 현 단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핵심 목표 즉, 무역개방, 투자, 투명성 제고에 있으며 이것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수사의 모호함, 애매한 표현이라는 말로 가득하다고 평가하면서 이번 한미 공동 성명의 예외성을 부각시키고 한미정상 공동성명의 정치적 의미를 가리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평화주의자' 노무현의 한반도 위기에 대한 해법이, 그 정치적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좀 더 분명히 드러난 것이 아니겠는가?


부시독트린으로 수렴중인 평화번영정책, 그 자기 모순

누차 강조해왔듯 1990년대 미국의 대북 정책 초점은 핵, 미사일로 상징하는 대량 살상 무기의 '완전한 제거'에 있다. 이를 위해 (페리보고서에서 확인되듯) 북에 대한 포괄적 접근(engagement)을 시도하는데, 바로 '협상'과 '군사력의 증강'이라는 두개의 경로에 대한 동시적 추진이다. 과거 DJ 정부의 햇볕 정책은 (노벨상으로 빛나는 그 화려한 말잔치와 달리) 이것의 축소판 혹은 하위 파트너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남북관계는 늘 북미관계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문제는 또 다른 점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데, '협상'이 '군사력 증강'과 별개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 증강'을 전제하거나 그것에 종속되어 전개된다는 점이다. DJ 정부의 햇볕 정책은 물론이거니와 그 지지자들도 이점을 정확히 비판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결국 미국의 한반도 전쟁위협에 대해 대단히 무기력한 대응을 낳고 만다.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 역시 이점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는데, 평화번영정책의 전제가 '북핵 해결'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 점과 '북한을 위시한 불특정 위협 및 비군사적 위협 동시대비전력 우선 보강'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이 같은 모순과 긴장은 미국의 군사적 수단 사용에 대해 부시 앞에서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하는, 되레 그것을 승인하는 공동성명의 채택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구나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바탕'으로 동북아의 물류, 관광, 무역, 산업의 중심 및 해양과 대륙을 잇는 '경제의 관문'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이를 뒤집어 놓고 본다면 동북아 허브 중심 국가 구상을 방해하는 것이 평화롭지 못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은 한국에 대한 초국적 자본의 투자가 어려운 핵심요인으로서 '북핵' 더 나아가 '북한체제'라는 상징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 평화의 위협요인이 '북핵'으로 뒤바뀌게 되는 상황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지배세력에게 한반도 평화란 초국적 자본의 투자의 안정성 확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북을 압박해야 평화로운 상황이 가능하다는 인식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번영정책에서 평화란 전쟁위험의 항구적인 제거라기보다는, (전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경제의 불안, 투자의 불안 요인의 제거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방미는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과 '부시 독트린'이 자연스레 수렴하는 계기였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다고 해서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

결국 노무현 행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그 화려한 수사와 달리 내재적인 두 가지 모순, 즉 가시적인 적의 완전한 제거를 목표로 하는 전쟁-군사력의 현대화를 전제하고 그것의 우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또 전쟁의 내부화를 통한 자본주의 수탈체제의 재구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민중의 위기, 한반도 위기를 가속화하는 반민중적 정책일 뿐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지금의 상황에 안도하기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상황이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초민족적 자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이름으로 노동자, 농민, 여성을 상대로 착취의 전쟁을 벌이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에서 군사력의 완전한 우위를 통해,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한 제거라는 이름을 빌어 북한 체제의 완전한 전복을 꾀하려 드는 항상적인 전쟁 위기상황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북아 중심국가의 구상'과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그리고 '미 제국주의의 한반도 전쟁위협'에 대한 비판으로 드러나야 한다.

이러한 반세계화 투쟁과 반미반전 투쟁, 즉 제한 없는 민주주의를 향한 대중들의 운동만이 진정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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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사회진보연대의 월간지인 <사회와 노동> 제18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