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신앙, 종교, 현대성: 비판적 요소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6 01:39
조회
1008
신앙, 종교, 현대성: 비판적 요소(2005, 6월 8일, Gilbert Friend-Jones)

제네바 호수의 침식은 에큐메니칼 운동센터인 세계교회협의회의 본부 안에서 늘어나는 긴박감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긴박감은 종교지도자, 아카데믹한 전문가 그리고 풀뿌리 활동가 단체에 의해서 폭 넓게 공유된다. 이들 단체는 실제적으로 세계의 주요한 신앙공동체에 몸담고 있다. 그들은 종교-상호 간 대화에서 “비판적인 요소”에 대한 성찰을 하려고 세계 곳곳에서 모였다.

‘소경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라는 속담처럼, 대회 참여자는 정체성을 찾는 모임을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여러 가지 전망들, 직면한 “현대-이후”에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경제와 문화의 지구화, 집단 이주와 민중의 탈주, 폭력문화의 확장, 정치적 이유로 인한 종교적 극단주의의 결합 그리고 수백만의 민중의 빈곤과 착취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세상에서 사회적인 변화와 종교적인 격변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무모한 영성의 문턱을 넘어서

역사 안에 이러한 요소는 모든 종교적 공동체에게 “비판적”이다. 신앙 지도자들 중 많은 사람이 위기의 세계에서 새로운 타당한 단계를 위한 종교-상호 간 협력의 현상을 추진하고 싶어 한다. 최근 몇 십 년 간 대화가 가능했다는 것은 “무모한 영성”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특정한 확신에 의해서 초과되었다. 그것은 종교-상호간 협력이 지금 더욱 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즉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창조적인 길로써 인간애를 위협하는 분열들을 극복하려고 한다.

사무엘 코비아 총무는 신앙-상호간 대화에 대한 세계교회협의회 30년사에 참여자들을 상기한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하나의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다양성과 차이들을 가지고 함께 살 수 있을까?” 세계교회협의회 중재자 카톨리코스 아람 1세(Catholicos Aram I)는 더 나아가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번 대회가 세계의 종교들로 하여금 상호공존을 넘어서기를 자극한다. 그래서 참다운 공동체로, 함께 일하고 살고 성찰하는 영성을 키우도록 자극한다.

“종교들은 행동해야 한다. 종교들은 함께 긴박한 심정으로 행동해야 한다. 자신의 세계와 우리의 가정에서도 변화를 일으키는 하느님의 활동에 참여하자. 새로운 세계상황은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도전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하여 신뢰할 만한 대화와, 보다 의미 있는 동지애와 종교들 간에 보다 더 가까운 협력을 요청해야 한다”, 그는 호소한다.

‘대화-이후’ 시대의 마당에서의 폭 넒은 출현

아직도 대화와 지역 실체들 간에 틈새가 두드러진 것 같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요루바(Yoruba)종교의 대 사제인 완디 아빔볼라(Wande Abimbola)박사는 많은 종교-상호간 대화에 예리한 평가를 한다. 그러한 대화는 아주 자주 성의 없는 그리고 위선적인 대화였고, 종종 세계의 원시종교들의 믿을만한 대표자들을 배척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과 이슬람인들은 토착종교의 단체들에게 회심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성전과 성상과 전통 종교의 유물을 무자비하게 파괴 한다”. 그는 한탄하며 말한다. 아빔볼라는 촉구한다. 모든 종교적 전통들이 대화의 마당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이러한 공헌이 세상에 싸인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헤바 라우프 에차트(Heba Raouf Ezzat) 박사는 이집트의 이슬람교도로 정치학자이며 “이슬람 온라인” 웹싸이트의 작가이다. 그는 탈현대의 다른 환상을 묘사했다. 그녀는 말한다. 정체성이 고갈되면서 늘어나는 많은 민중들이 믿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조직화하거나 제도적인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짜 충돌은 문명과 종교 간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애와 비인간애 사이에 있다. 그녀는 지적한다. 우리는 일반적 인간의 조건을 서로 공유한다. 종교의 규칙은 극단적인 적대의 시대에 예의를 감싸고, 격력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에차트는 강조한다. “우리는 ‘대화-이후’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여기에서 신앙 공동체는 개종의 문턱을 넘어서 변화로 나아간다. 종교는 전쟁과 같은 과도한 폭력의 폭발에만 반응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종교는 사회와 관계성을 다루는 구조적인 폭력에도 많이 관여해야 한다. 민중은 현대세계의 도전에 대답해야 하기에 공동체로 귀환하려 욕망한다.

모든 신앙은 공공의 가치를 나누고 동일한 현대의 조건 안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조건들은 전통적인 이해들을 강조하고 여기에 희망을 둔다. 종교는 세계의 자본화를 물리치기 위한 길로서 민중들에게 고통을 감내하게 해야 한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서로 응답하도록 민중들을 반드시 도와야 합니다”.

코비아는 말한다. 오늘날 “선교해야 할 자극”이 있다면 민중들에게 공공의 공동체와 그 가치를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그는 그녀의 주장에 공명을 일으켰다. “전환해야 할 것은 참다운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 되도록 하는 민중의 정신이다”. “우리의 공공의 선교임무는 참다운 인간이 되도록 세계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공공의 인간애를 되 찾는 것이다”.

대화의 새로운 형태를 위해서

대회참가자들은 종교-상호간의 새로운 형태를 강조한다. 이로써 그들은 공공의 주장을 표명했다. 대화가 종교로 하여금 우리의 공공의 인간애를 위한 공공의 가치를 검증하게 할 수 있는가? 대화는 공중의 영역에서 종교의 도덕적인 권위를 강화할 수 있는가? 대화는 말에서 행동으로, 행동에서 분배된 봉사의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가?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요 사회활동가인 스와미 아그비네쉬(Swami Agnivesh)의 말을 빌려보자. “종교-상호간 대화가 1세기 정도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대화는 정신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로 이해되지 그 자체의 끝은 아니다. 서로 함께하는 우리의 대화지평은 하느님과의 접촉점으로 방향이 정해져야 한다. 우리는 창조적인 행위로 정확한 언어를 통전시켜야 한다. 그래서 정신적 힘으로 하여금 민중을 해방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3천 년대에 최소한신앙-상호간 운동의 목표로서 이것이 가능하다.
(필자 목사/박사 길베르트 R. 프린트-요네스는 미국 게오르기아 아틀란타에 위치한 그리스도 연합중앙 교회 원로목사이다. 그는 메트로 아틀란타 신앙연맹(FAMA)과 신앙-상호간 세계 순례자 모임의 대표이며 설립회원이다)(www.wcc.-coe.org/pressrelease.nsf)(이석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