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하느님의 선교사는 어떤 꿈을 가지나? - 선교학자 클라우스 쉐퍼(Klaus Schaefer)와의 대담(2005, 5, 16, WCC Dokument)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6 01:38
조회
969
하느님의 선교사는 어떤 꿈을 가지나? - 선교학자 클라우스 쉐퍼(Klaus Schaefer)와의 대담(2005, 5, 16, WCC Dokument) - 프리드리히 다겐하르트

클라우스 쉐퍼목사는 선교학자로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세계교회협의회에 수많은 대회에 참석했고 많은 봉사를 했다. 1988년에서 1993년까지 그는 인도에 히데라바드(Hyderabad)에 위치한 안드라(Andhra) 기독 신학대학에서 강사로서 일했다. 1993년 이후로 쉐퍼목사는 독일 개신교선교단체에서 일하면서 신학기초 문제 책임자로 일했다. 2005년 7월 1일부터 그는 함부르크 주에 북 엘베(Elbe)지역에 선교센터의 새로운 소장 직을 맡는다.

>나에게 선교란. . .

선교란 나의 믿음을 세상에서 말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선교란 또한 내가 입증한 그 무엇을 빛내는 것이다. 선교의 우선순위는 아주 당연하다. 선교란 우선 다른 나라에 파송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오히려 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자기 나라의 주변으로 전파하며, 더불어 사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선교란 총체적이다. 중요한 사실은 증인과 정의와 타자를 위한 선교의 배치이다.

나는 선교라는 개념사용을 지지한다. 선교라는 개념은 다음을 상기시킨다. 교회가 인간을 위하여 현존한다는 것.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어떤 근본주의자들이 선교개념을 남용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선교개념은 비판적으로 숙고된 다음 사용되어야 한다.

>독일에서도 선교가 필요한가?

독일에서도 선교할 곳이 있긴 하다. 전통의 가치가 페기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회공동체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도 과제가 있다. 그 과제는 믿음과 사회적 참여를 위한 대화이다. 독일에는 망명자나 노인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있다. 교회가 사회에 강하게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많은 공동체 신도들이 믿음에 관해 말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세계선교대회는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마련되었다.

>독일교회에서도 슬픔과 해체가 발생하는가?

모든 교회들은 커다란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일반적이고 문제의식을 주지 않는 기초양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에 대한 비탄은 아직 강하지 않다. 필수적인 개인육성에 대한 결정이 매우 심각하다. 새로운 우선성에 대한 경종이 울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파멸 대신 해제의 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도약을 위해서 방향을 바꾸기를 나는 바란다. 세계선교대회는 이것을 위한 희망의 표현일 것이다.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교회가 자라나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독일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복음이 놀랍게도 삶을 강화하게 하는 힘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치유와 화해는 독일사회 어디에 필요한가?

치유는 오늘날 종교적으로 확고한 주제이다. 그런 주제로는 심원한 탐구, 총체적인 탐구, 의미의 탐구, 긴장완화와 만족 등이다. 주제들은 종종 치유와 관련한다. 치유는 은폐를 강하게 탐구하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먼저 개별적인 필요성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회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주제는 사회에서 더 강하게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기도, 정화 그리고 축복으로 치유의 밥상공동체(예배)를 나눌 수 있다. 과거에는 치유가 교회 안에서 종종 양육적인 것으로만 고찰되었다.

공개적인 강력한 충돌들이 있기 하지만, 화해는 원래 독일식의 주제이다. 화해는 독일의 전쟁역사와 민중학살사건과 깊이 관련한다. 화해란 세대들 간에 우리 이웃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교회 공동체들 안에서 그리고 교회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화해는 차이 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 삶을 위한 비전이다. 독일 사회에 아랍인들과 이주민들과의 상생도 화해에 속한다. 화해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함께 잘 사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그 밖에도 선교사역의 과제는 상화 충돌의 영역을 밝히고 조정하는 것이다. 인도와 콩고의 북 엘베선교단체(NMZ)가 그렇게 하고 있다. 어떻게 우리 동역자들에게 화해를 위해 투신하도록 할 수 있을까?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공동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까?

세계선교대회에서 협력공동체들에 관해 다뤘다. 협력공동체들은 외국 이주자들이 사는 도시 일부의 교회공동체로 형성된다. 교회공동체들은 서로 교환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장애우들에게 우호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방문한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맞선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치유가 곧 바로 밥상공동체(예배)로 베풀어지면서 더 많은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복을 빌어 주고 대화를 하는 치유의 밥상공동체가 필요하다. 특히 사회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도 선택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의 사명을 대화의 차원으로 이끄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일들을 수행할 수 있기에 나는 긍정적이다. 이러한 세계선교대회의 주제가 애도로 시작된다. 그래서 성령이 공동체로 하여금 치유하고 화해케 한다. 나는 희망한다. 성령이 우리 공동체들을 갱신함으로써 공동체 식구들을 초대하고 방문하고 돕는다는 것을. 나는 이웃과의 만남을 만드는 교회에 동참하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 일하시는지. 하느님은 이웃을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교사인 하느님은 우리 공동체와 도시를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계신지.

>이번 아테네 대회의 어떤 결과를 다음 함부르크 대회로 가져갈 수 있을까?

이번 세계선교대회는 많은 도전들을 제기했다. 그렇기에 특정한 지배적인 양상을 고취시키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첫 번째 소식은 교회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선포한다. 우리는 치유하는 협력공동체가 될 것이다.

공동체봉사를 위해서 나는 많은 자극들을 받았다. 긍정적이고, 운동적이고 그리고 영감을 주는 것이 그것들이다. 세계의 완전한 끝에. 오순절 교회 참여자들에게도 시작될.

안타까움도 있다. 우리는 긴장과 충돌 속에 싸인 교회를 경험한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이다. 아테네에서도 발견되지 못했다. 공동으로 저녁 애찬식도 개최할 수 있다. 손님으로만 참석하는 교파적인 예배의 실천은 서로 함께 축하되지 못하면 에큐메니칼 운동의 퇴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희망의 기호가 보인다. 그리스사회에서 서로의 긴장과 논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정교회가 우리 개신교 교회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여기의 많은 젊은이들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큰 어려움이 적어 보이고, 선교라는 주제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있다.



>지구 남쪽(후진국)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면 독일에서 무슨 일이 초래될 까?

그리스도교신앙이 우리에게 소외되고 있다. 그것은 더 다원주의화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꺼이 보와 왔던 믿음이 가장 표준적인 것이다. 오늘의 다양성들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종종 그것은 너무 혼합주의적이거나 너무 감정적으로 보였다.

독일 신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아카데믹한 신학이 좋은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념에 사로잡히기보다 이야기하려 한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교회공동체에 이주민들을 통해서 이러한 오순절적이고 열광적인 믿음의 형태가 독일로도 전달되었다. 이 형태들은 순수하게 선교를 위한 의지로 전래되었다.

>당신은 새로운 직분을 위해서 어떤 자극을 받고 싶은가? 독일에서의 교회 일치운동이 복음교회와 오순절교회보다 더 한가?

오버시(Oversee)에 있는 우리의 파트너교회는 루터교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함부르크나 킬(Kiel)에서 곧 바로 복음주의와 오순절교회의 이주노동자공동체가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들과의 우리의 파트너쉽은 공고히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대화를 모색하고 건물을 짓도록 하고 공동체들 간에 서로 교제를 나눌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점에서는 더 카리스마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과도한 감정유발도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그러한 공동체들에게 우정과 기쁨으로 마음을 여는 것이다. 독일교회도 물론 기쁨마음으로 이웃 공동체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www.wcc-coe.org/pressreleasege.nsf/index)(옮긴이; 이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