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오이쿠메네 신학과 오이쿠메네 배움(채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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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연
작성일
2000-11-30 00:4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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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이란?-->헬라어로 오이쿠메네

“우리는 오이쿠메네를 그 근원적인 의미, 즉 주님께 속한 전 세계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인간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삶은 교회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류의 일치를 위하여 참여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실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계급과 인종과 성의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협력하는 것을, 그리고 민족과 인종간의 차이를 평화롭게 화해시키고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협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볼프강 후버, 진리와 평화를 위한 교회의 투쟁, 채수일 역, 한국신학연구소 1991, 25쪽)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는 하나님의 주권이 전 세상에 성취되는 것을 말합니다. 배타성과 폐쇄성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온 세상에 선포되도록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참의미입니다. 기독교인이 인격적, 사회적 신앙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애사건, 옷로비사건, 인천화재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정치권과 경제권 등 많은 부분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총기독학생회(SCA)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세계교회가 함께하는 정의, 평화, 창조보전의 운동에 같이하며 교회의 일치, 갱신 그리고 개인의 신앙적, 인격적 성숙을 추구하여 더욱 성숙된 그리스도인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오이쿠메네 신학과 오이쿠메네 배움


채 수일 교수

1. 오이쿠메네 (oikumene) 란 무엇인가?

1-1. 말 뿌리와 그 뜻.

오이쿠메네, 혹은 에큐메니칼이라는 말은 우리들의 일상 언어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의 언어로서도 익숙치 않은 단어이다. 사람들은 흔히 오이쿠메네를 “교회들의 일치- 특히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나, 개신교 교파간의 일치- 를 지향하는 교회 운동의 하나”로서 이해한다. 또 오이쿠메네는 각 나라의 교회 협의회(NCC)나 연합단체를 중심으로 제네바에 있는 “세계 기독교회 협의회”(WCC)와 관계를 가지고 전개되는 프로젝트나, 발전을 위한 협력관계, 진보적인 인권운동과 반인종주의 등 진보적인 정치적 프로그램을 연상케 한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계 교회 협의회의 총회나, 세계 선교대회 등도 오이쿠메네를 신학적 진보성과 관련시켜 이해하게 하는데 기여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오이쿠메네를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소수 전문가들이나 교단 정치꾼들의 국제적인 사교나 취미 활동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이쿠메네는 여전히 하나의 거침돌인데, 까닭은 성만찬의 공동거행을 위한 “리마 예식서”를 중심으로 전개된 논쟁이나,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치적 활동, 예컨데 반인종주의 투쟁, 나미비아 독립운동의 지원, 제 3세계의 해방운동과의 연대 등이 오이쿠메네를 갈등과 긴장속에서 거론한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이쿠메네 신학은 전통적 신학과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가? 오이쿠메네 운동이란 흔히 생각되는 것처럼 이른바 진보적인 교회만이 하는 활동의 하나에 불과한 것일까? 오이쿠메네 운동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 운동의 담지자는 누구일까? 제기되는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우리는 먼저 오이쿠메네라는 말의 뿌리와 그것의 뜻을 검토하려고 한다.

오이쿠메네는 본래 희랍어 oikeo- “살다, 거주하다”, 혹은 oikos- “집” 의 뜻- 에서 유래, 단순히 "사람이 사는 모든 땅" 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런 지리적 의미 외에 오이쿠메네는 그리이스 문명의 영향권을 나타내는 문화적, 정치적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그리이스 문명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규정 함으로써, 오이쿠메네는 인종중심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 제국시대에는 오이쿠메네가 "orbis terrarum"으로 번역되어, 로마제국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즉 정치적으로 로마 시민이 되는 것은 세계의 시민이 되는 것을 뜻하며, 비로마인을 폭력적으로 제국의 질서에 흡수하는 것을 정당화 하였다.
신약성서에서 오이쿠메네라는 단어는 15번 나온다. 70인역은 세계, 흙, 혹은 대지를 뜻하는 다양한 히브리어 단어들을 번역하는데 상당히 자주 오이쿠메네를 사용하였다. 신약성서에서 오이쿠메네는 먼저 단순히 “온 세상”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으며 어떤 특정한 문화적 혹은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 않다(사도행전 17,31; 마태 24,14). 그러나 오이쿠메네가 거대한 정치적 단위체, 즉 제국이라는 의미로서 사용되는 본문들도 니타난다(누가 2,1; 사도행전 17,6).
그러나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오이쿠메네를 신약성서는 지나가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참된 오이쿠메네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세계라는 암시를 한다(히브리서 2,5). 히브리서 2,5에 기록된 “오이쿠메네 멜루사”(oikumene mellousa), 즉 장차 오는 세상이라는 표현은 현재의 오이쿠메네의 일시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있게되는 새롭고도 변화된 오이쿠메네가 있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포함하고 있다(말린 벤엘데렌, 세계교회협의회 40년사, 이형기 역,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215-216쪽). 70인역에 따르면, 신약성서는 오이쿠메네를 선교적 말씀 선포의 공간으로(마태 24,14),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승리의 장(히브리서 2,5)으로 이해한다.

주후 2세기 경 부터는 이레네우스, 오이세비우스, 오리게네스 등의 교부들에 의해 오이쿠메네는 빈번히 교회의 활동 영역이나, 전체 교회 자체(“폴리캅의 순교” 라는 2세기경에 나타난 책에서 오이쿠메네가 처음으로 교회와 연관되어 언급되었다 )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라틴 서방 교회의 교부, 예컨데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 등도 오이쿠메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오이쿠메네가 교회의 영역을 벗어나 다시 정치적 의미를 갖게된 것은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국가 종교로 공인된 이 후 였다. 황제의 권력과 폭력에 의해 유지된 교회와 국가권력의 결합으로서의 오이쿠메네는 그 후의 단어 발전사, 즉 “오이쿠메네적 신앙고백”, “오이쿠메네적 공의회” 등이 그 성격을 보여준다. 동시에 오이쿠메네적 공의회가 교회의 최고기관이 되고 그 결정이 교회생활에 있어서 일반적 권위와 유효성을 갖게된 이후, “에큐메니칼”이라는 단어는 교회 전체에 걸쳐서 권위있고 유효하다고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381년 콘스탄틴노플 공의회가 니케아 공의회를 “에큐메니칼 대회”로 언급하면서 공식적인 교회적 용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공의회의 결정이 교황에 의해 확증될 때만이 에큐메니칼 한 것으로 확신한다. 동방정교회는 전체 교회가 공의회의 결정을 다 받아들였을 때 에큐메니칼하다고 본다. 그래서 정교회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함께 받아들인 7개의 공의회만을 에큐메니칼 공의회로 인정한다(말린 벤엘데렌, 세계교회협의회 40년사, 217쪽).
16세기에 오이쿠메네라는 단어의 사용을 중심으로 로마와 콘스탄틴노플 사이의 갈등이 야기되었다. 특히 교황 그레고리 대제가 격력하게 오이쿠메네 칭호가 콘스탄틴노플 총주교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되는 것에 반발하였다. 까닭은 그 칭호가 콘스탄틴노플 총주교가 - 그의 관구는 비잔틴 제국, 즉

오이쿠메네의 수도였다 - 그 오이쿠메네 속에서 특별한 위치와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이 붕괴되었을 때 오이쿠메네는 더이상 정치적 의미를 갖지않게 되었으며 단지 교회적 의미만이 남게되었다.(참고, Ruth Rouse and Stephen Charles Neill(ed), A history of the ecumenical movement 1517-1948, Vol, 1, WCC, Geneva 1986)
오이쿠메네가 권력에 의해 강요된 서구 문명에로의 통합의 뜻으로 이해된 역사는 제 2차 세계 대전의 종식과 함께 그리스도교 식민주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오이쿠메네가 다시 교회들의 총체, 즉 교회의 본래적인 공동의 전통에 대한 회상과 신앙의 삶과 교리의 공통성에 대한 희망 속에서 모색되는 교회들의 일치를 의미하게 된 것은 세계대전 이 후였다.(Theo Sundermeier,(Hrsg.,), Lexikon Missionstheologischer Grundbegriffe, Berlin 1987, 340쪽) 이런 개념 규정은 오이쿠메네를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교에 제한시켜 이해하며, 초대교회의 공동의 전통과 사도적 증언의 근본적인 해석을 포함한다. 이런 입장은 교회가 자신의 교리와 삶의 형식의 변화에 원칙적으로 개방적임을 전제하면서 교회의 일치는 삼위일체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오이쿠메네는 일치를 위한 노력과 희망과 확신을 표현한다.

교회사에서 발전된 오이쿠메네 개념을 보다 확대하여 말 뿌리의 뜻으로부터 해석, 주님께 속한 전 세계(시편 24,1)라는 개념으로 이해한 이는 필립 포터(Philip Potter)였다. 1979년 1월 자마이카의 킹스톤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포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오이쿠메네를 그 근원적인 의미, 즉 주님께 속한 전 세계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인간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삶은 교회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류의 일치를 위하여 참여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계급과 인종과 성의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협력하는 것을, 그리고 민족과 인종간의 차이를 평화롭게 화해시키고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협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볼프강 후버, 진리와 평화를 위한 교회의 투쟁, 채수일 역, 한국신학연구소 1991, 25쪽)

오이쿠메네가 교회의 일치를 넘어서서 인류의 일치, 실로 피조물 전체의 일치에 근거한다는 포터의 주장은 성서의 전승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오이쿠메네를 피조물의 일치에까지 확대하여 이해하는 근거에는 창조주 신앙이 놓여있다. 창조주에 대한 신앙 고백을 잊는 사람은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킬 수 있다. 오이쿠메네의 우주적 차원이 부각된 것은,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경험때문이다.
오이쿠메네는 피조물 전체의 일치와 관계되어 있다. 시편 24편 기자의 고백,”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야훼의 것,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것이 모두 야훼의 것”이라는 고백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야훼의 주권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피조물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나타낸다. 에른스트 랑에(Ernst Lange)는 그래서 “교회는 오늘 하나인 세계의 지평에서 자신을 이해할 때에만 진정으로 교회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참고, Ernst Lange, Die oekumenische Utopie oder was bewegt die oekumenische Bewegung?, Muenchen : Kaiser 1986).
특히 인류의 일치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은 교회로 하여금 보다 인간화된 인류의 일치를 위해 책임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있다. 현대의 기술과학, 교통 및 통신기술의 발전,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상호 관계는 세계를 빠른 속도로 통합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늘 일부 초강대국에의해 추구되는 세계와 인류의 일치는 정의와 자유, 평화와 평등에 기초한 참여적 일치가 아니라, 예속적 일치라는데 문제가 있다. 교회가 오늘 경험하는 인류의 예속적 일치에 직면하여, 오이쿠메네는 창조주 야훼의 우주적 주권의 빛에서 예속적 일치의 현실과 대결할 과제를 가지게 된다.

1-2. 생명의 "살림"으로서의 오이쿠메네.

오이쿠메네의 성서적 전거는 먼저 창조에서 확인된다. 삶의 영역으로서의 “오이쿠스”(동산)은 그 안에 사는 모든 것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사는 것 끼리의 관계를 가능케 한다.(J. Moltmann, Gott in der Schoepfung - Oekologische Schoepfungslehre, Muenchen : Kaiser, 155쪽) 이스라엘 공동체의 법정신이 반영된 법전은 인간적 삶을 보장하고 가능케 하는데 목적을 둔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야훼의 관심과 보호를 천명하는 법전은 다른 피조물, 특히 땅과 그 위에 사는 모든 것의 보호를 포함한다.(Konrad Raiser, Oekumene im Uebergang - Paradigmenwechsel in der oekumenischen Bewegung, Muenchen : Kasier, 140쪽) 이스라엘의 후기에 발전한 “쉐키나”(Schekina) 전통, 즉 야훼가 인격적 형태로 창조안에 거하신다는 사상은 야훼의 집안에 사는 모든 것에 생명의 능력을 부여한다.(Konrad Raiser, Oekumene im Uebergang, 141쪽)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메시야적 선포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왕국” 이나 “지배”의 표상으로만이 아니라, “아버지”, “큰 집의 손님 접대자”로서도 표현된다. 이 아버지의 집에서는 모든 이들이 함께 먹고 마신다. 모두가 함께 먹고 마시는 표상은 하나님의 나라의 보이는 상징으로 경험되고 실천된다(사도행전 2,42; 4,32) 어느 가족, 또는 공동체에도 질서는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집의 질서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집 안에서의 질서는 무엇보다 식구들의 일치다.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의 세례를 통하여 모두 아버지에게 나갈 수 있고, “하나님의 집의 식구”가 된 사람들의 집안에는 하인과 노예도 제외되지 않는다(에베소서 2,18). 하나님의 집 안에서는 모든 식구들이 평등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이다:“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에베소서 2,14) 그러므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에베소서 2,19).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의 모퉁이 돌이 되고, 이 집의 기초는 사도들과 예언자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모퉁이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나님의 집이 된다.(에베소서 2,22) 이 집안에서는 하나님 외에 누구도 주인이 아니다. 이로서 이 집안에서 모든 형태의 가부장적 지배가 있을 수 없게 된다. (Konrad Raiser, Oekumene in Uebergang, 159쪽)
하나님의 집의 두번째 질서는 연대적 나눔이다.“나뉘어진 밥은 우리를 배부르게 하고, 나뉘어진 고난은 우리를 단결시킨다.”는 격언이 있다. 성서는 모든 사람이 먹을 것을 함께 나누어 배부르게 먹는 곳에 하나님의 지배가 현재화 한다고 증언한다(마태 14,13 이하; 요한 6,1 이하). 그리스도인의 나눔의 근거에는 하나님의 인간되심, 성만찬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의 현존이 있다. 서로 남의 짐을 지는 것(갈라디아서 6,2), 기쁨과 고통의 나눔(고후 1,1-2,4), 넉넉함과 궁핍함의 나눔(고후 8,13 이하) 등은 공동체성의 성취의 표현이다. 사도행전 2, 42 이하와 4, 32 이하에 서술된 초대교회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의 이상화가 아니다. 4세기에 이르기까지 연대적 나눔은 교회 공동체의 구속력있는 규칙으로 실천되었다. 나눔의 목적은 고통의 예방이나, 물질의 정의로운 분배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적 공동체를 인류의 희망을 위한 표징으로서 건설하는데 있다.(Konrad Raiser, 위와 같은 책, 165쪽)
하나님의 집의 세번째 질서는 손님접대다.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서 있을 큰 잔치를 앞당겨 보여 주었다(마가 2,15 이하; 마태 22, 1 이하; 누가 14,16 이하). 당시 성전과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들과 의식적으로 사귐을 갖는 예수의 태도는(누가 14,21) 소위 잃은자들에 대한 구원에의 열린 초대였다. 물론 이 식탁 공동체에로의 초대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고전 5,9 이하; 마태 22,11 이하). 그러나 아브라함과 세 천사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낯선 손님 접대는 삼위일체인 하나님의 영접과 다르지 않다(창 18,1.8).
하나님의 집의 네번째 질서는 대화와 진리를 위한 논쟁이다. 집은 대화의 장소다. 하나님의 집에서의 대화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관계의 본질적인 방식이다. 아프리카의 격언은 “말하는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말한다”고 한다. 하나님의 집안에 있는 식구들 사이에 갈등과 논쟁과 분열이 없을 수 없다. 대화는 이 갈등을 해결하는 비폭력적인 길이다. 논쟁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야 하지, 자기 고집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않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째 편지에서 교회 안에서의 논쟁 때문에 세상 법정에 가지말 것을 권면한다(6장). 그 뒤를 따르는 고린도 교회 내부의 여러가지 문제에 관한 바울의 태도는 대화를 통한 갈등의 해결에 있다. 대화는 언제나 어떤 기대와 함께 전개되는데, 그 기대란 성령께서 사랑과 진리에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며, 교회의 갱신과 화해를 이루기 위한 성령의 목적을 위해 결국 그런 논쟁을 성령이 이용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의 다섯번째 질서는 겸손과 비폭력이다. 비폭력과 원수 사랑은 산상수훈에서 부터 익히 알려져 있다. 초대교회는 비폭력과 원수 사랑을 공동체 안에서 철저하게 실천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전 3, 18- 4,13 에서 자기를 기만하거나, 스스로 지혜롭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달리 사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을 경고한다(로마서 14 장과 15장).(참고, 클라우스 벵스트, 로마의 평화:주장과 현실 - 예수와 초대 그리스도교의 평화인식과 경험, 정지련 역, 한국신학연구소 1994)

2. 오이쿠메네 신학의 역사.

디이트리히 본회퍼는 50여년 전, “교회들의 우호 증진을 위한 세계연맹”의 청년회 총무로서 강연을 했는데, 그 강연에서 본회퍼는 오이쿠메네 신학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그리스도 교회는 언제나 자신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신학을 창출하였습니다. 교회의 자기 이해의 전환은 신학의 창출을 통하여 증거 됩니다. 왜냐하면 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계시 이해를 근거로 한 교회의 본질에 관한 자기 인식이기 때문이며, 이런 교회의 자기인식은 그것이 새로운 전환기에 놓일 때마다 신학의 창출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오이쿠메네 운동이 그리스도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기인한다면, 오이쿠메네 운동 역시 새로은 신학을 창출해야하고, 또 하리라고 보입니다. 오이쿠메네 신학이 형성되지 못한다면, 오이쿠메네 운동은 다만 새로운 시류에 영합하는 한낱 교회적인 목적단체에 불과할 것입니다.”(D. Bonhoeffer, Zur theologischen Begruendung der Weltbundarbeit(Vortrag), in: Gesammelte Schriften, I, 140 쪽 이하).

오이쿠메네 운동이 단순한 하나의 교회적 활동 프로그람이 아닌 신학으로서 자신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오이쿠메네 신학은 무엇일까?
모든 신학적 구상은 그 시대의 세계 역사가 가지고 있던 문제에 대답하려고 시도했다.(G. Picht/E. Rudolph,hrsg., Theologie, was ist das? Stuttgart 1977, 30-37쪽). 신학은 “그들이 처한 역사적 시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적 상황을 조명하며, 대답을 모색한다. 그리고 역사적 현실이 제시하는 다양한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서, 주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과 하나님에 대한 진술을 제시한다.”(볼프강 후버, 같은 책, 49쪽). 그러므로 어떤 신학도 그 신학을 탄생시킨 시대적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
신학이 오이쿠메네 시대에 돌입하게 된것은 로마 제국의 파멸과 때를 같이하여 일어났다. 제국의 파멸은 제국의 통치권 안에서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그리스도교의 조직적 일치를 파열시켰다. 1054년 동방교회는 서방 교회로부터 분리되었고, 비잔츠와 로마, 동방과 서방 세계는 각기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6세기의 종교개혁에 따른 교회의 분열은 그리스도교적 서구세계도 분열 시켰다. 정치적으로 신앙전쟁이 일어났고 신학적으로 “교파시대”가 대두되었다. 30년 전쟁 후, 유럽은 정치적 평화를 교파적으로 중립적인 세속적 국가와 종교적 관용의 문화의 발전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다. 이른바 “세속화 시대”는 교회와 국가의 필연적인 분리를 통하여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세계”의 해체에 기여하였다. 옛 “그리스도교 세계”(Corpus Christianum) 시대의 종언과 세속화 시대의 시작에 대한 역사적 대답은 18 - 19 세기에 일어난 대규모의 선교운동과 다양하게 분열된 그리스도교회의 공동체성, 일치, 협력을 모색하는 오이쿠메네 운동이었다. 이 두 운동은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났다. 이 두 운동을 통하여, 교회는 유럽적인 지역주의와 교파적 분권주의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민족 교회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J. Moltmann, Was ist heute Theologie?, Freiburg 1988, 47쪽 참고) 이로서 교회 신학도 소속 교파의 자기이해에 봉사하거나, 다른 교파로부터 경계를 짓기위하여 봉사할 수 없게 되었다. 옛 “교파시대”에 신학은 각 교파의 정체성을 보장하는데 기여하였다. 신학은 그래서 언제나 “논쟁 신학”이었고, 이른바 “분리 교리”를 통하여, 다른 교파와는 다른 것을 찾아내는데 관심을 기울였다.(J. Moltmann, 같은 책, 같은 쪽)

신학이 오이쿠메네 시대에 돌입한 가시적인 사건은 1927년에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세워진 것이었다. 그 이전에 일어난 선교 운동과 실천적 그리스도교 운동은 “교리는 분열 시키지만, 봉사는 일치 시킨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였다. 사랑의 실천이 신학적 교리보다도 교회간의 협력과 공동체성에 더 적합한 영역이었다. 이런 경험을 기초로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1927년에 신학 이론과 교회법에 있어서의 공동체성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이미 1925년에 조직된 “생활과 노동운동”(Life and Work Movement)과 결합,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형성하게 된다. 그후 13년 뒤인 1961년에는 “국제선교협의회”(IMC)가 여기에 기구적으로 합세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는 헌장에서 그 기능과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교회들로 하여금 하나의 신앙과 예배로 표현되는 하나의 성만찬적 친교,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가시적인 일치의 성취를 위하여 노력하도록 촉구하고, 나아가서 세상이 믿을 수 있도록 일치를 확대하도록 노력한다.
(2)인류의 긴급한 상황의 요청에 봉사 하는 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 정의와 평화를 통한 한 인류 가족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에 있어서 교회들로 하여금 공동으로 관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한다.
(3)온 세계를 통한 선교와 전도 활동을 잘 할수 있도록 교회들을 지원한다.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위한 노력은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의 탄생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오이쿠메네 회의를 통한 신학적 작업은 1937년 에딘버그에서 시도되었는데, 그 시도의 성격은 “비교 교회론적”인 것이었다. 신앙과 교회법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이 일치에 대한 희망을 더 강화하고 그에 상응하는 공식적인 합의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시작된 이 시도는 그러나 일종의 “부정적 동의”로 끝났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교리의 차이가 꼭 필연적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서로 다른 교회의 특수한 교리는 배타적이 아니라, 내포적으로 형성될 수 있으며, 다른 교회를 축출하기보다, 서로를 보충하고 더 풍요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교회 분열의 어떤 근거도 더이상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공동의 신앙을 공식화할 수는 없었다.
1952년 룬트(Lund)에서 열린 제 3차 "신앙과 직제" 대회는“비교 교회론에서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에로의 전환점을 보여주었다. 대회는 “우리가 만일 교회의 본질에 대한 여러 이해를 각 교회의 전통들과 서로 비교한다면, 우리는 교회의 일치에 아무런 실제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올 수록, 우리도 서로 더 가까이 올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분열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의 비밀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로 나아가야 한다”고 고백하였다. 이런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적 논의는 하나의 보편적 교회 안에서의 오이쿠메네적 공동체성을 발견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신앙관이나 종교적 관습의 획일적 통일이 아니라, 성만찬적 공동체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참고, Harold E. Fey(ed.,), A history of the ecumenical movement 1948-1968, WCC 1986, 147쪽 이하)

1960년대는 신앙과 직제 운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로 평가된다. 까닭은 1961년에 동방정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식 회원교회로 가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변화는 교황 요한 23세가 추진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1962년)의 결과,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일치운동에 문을 연 것이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회와 신학은 오이쿠메네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자신을 “지상에 있는 하늘”로 이해하는 승리주의와 그리스도의 진리를 홀로 소유하고 있다는 절대주의를 거부하기 시작하였다(그리스도교 절대주의의 역사적, 신학적 발전에 대해서는 Reinhold Bernhardt, Der Absolutheitsanspruch des Christentums: Von der Aufklaerung bis zur pluralistischen Religionstheologie, Guetersloh 1990 참고). 다양한 전통에서 공동의 뿌리를 찾는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이 “종말론적 교회론”으로 변화되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도정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적 “백성”으로 이해되었다. 공동의 미래를 획득하기위해 과거에 있었던 그리스도교의 분리와 분열이 지양되면서 주목을 끈 것은, 세계 종교들과의 대화, 특히 유대교와의 대화였다. 오이쿠메네 시대에의 돌입은 동시에 인류의 미래, 특히 정의와 평화, 창조, 인권이 위협받는 시대적 과제와의 대결을 부각시켰다.
결국 모든 신학적 구상은 시대의 문제와 대결하면서 대답을 모색 함으로써 형성된다. 그러므로 오이쿠메네, 즉 교회와, 인류와 피조물의 일치 문제가 오늘의 시대적 과제로 인식되는 한, 오이쿠메네 신학은 전통적인 신학적 원칙과 범주 안에 있는 하나의 부록이 아니라, 신학 그 자체 임이 분명해진다. 모든 신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오이쿠메네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오이쿠메네적 차원을 잊거나 경시하는 신학은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 자체를 거부하는 신학이다. 그런 신학은 또 그리스도교의 미래에 관한 질문도 거부하기 마련인데, 까닭은 이 미래가 바로 오이쿠메네적인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신학의 오이쿠메네적 차원을 거부하는 신학은 분파주의와 지역주의에 봉사하는 학문적 시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될 것이다.

2-1. 오이쿠메네 신학의 목표: 일치

오이쿠메네 신학은 교회의 일치를 지향한다. 그러나 교회의 일치는 획일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이쿠메네는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풍부성을 평균화 하는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또 교회의 일치는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는 어떤 결과가 아니다. 교회의 일치는 이미 현실이다. 에베소서의 권면이 이것을 증언한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한 분 이십니다.”(에베소서 4,1-6)
교회의 일치는 그 근거를 한 분이신 아버지 하나님, 한 분이신 성령안에 계신 한 분이신 주님의 현존에 두고있다. 일치를 나타내는 표징은 하나인 세례이다. 일치는 성취해야할 과제가 아니라, 보존되어야 할 이미 주어진 은혜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교회 역사는 전혀 그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감스럽게도 일치는 현실이 아니다. 믿음도 하나가 아니고, 세례도 하나가 아니고, 희망도 하나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역시 분열되어 있다. 도시 교회와 농촌 교회,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중산층 교회와 민중 교회로 나뉘어 있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에 대한 고백은 신앙 안에 있는 교회의 모습일 뿐라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의 교회와 신앙 안에 있는 교회 사이에는 그래서 언제나 긴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오이쿠메네 신학은 교회의 세계성에 의해 야기된 긴장과 갈등을 통찰할 과제를 가진다. 교회 역시 인간에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고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죄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오이쿠메네 신학은 분열된 교회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고백하도록 돕는 하나의 회개 운동이라고 할 수있다. 교회의 가시적 일치에 관한 최소한의 합의는 “공동의 신앙고백”, “성례전, 특히 성만찬과 세례에 대한 공동의 인식과 공동의 실천”, “직제의 상호인정”, “공동의 결의에 의한 교회 분리의 인정구조” 등이라고 하겠다.(Konrad Raiser, Oekumene in Uebergang, 19쪽)
그러나 교회의 일치를 위한 노력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세계를 위해 현존한다(요한복음 17,18; 20,21 비교). 칼 바르트는 교회의 세계파견을 세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첫째, 교회는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도록 인간에게 주어진 공동체다. 둘째, 교회는 세계와의 관련성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행동하도록 되어있는 인간들의 공동체이다. 까닭은 교회가 세상안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는 이 세상이 하나님께 능동적으로 봉사하게끔 하는 데에 책임이 있는 인간 공동체이다(Karl Barth, Kirchliche Dogmatik IV/ 3,2, Haelfte, 880이하 ). 세계 인식, 세계와의 연대성, 책임적 참여야 말로 세계를 위한 교회의 세가지 실존 형태라는 것이다.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함을 생각할 때 교회는 세상에 봉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부단히 스스로를 세계로부터 분리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2-2. 오이쿠메네 신학의 방법: 대화와 참여

오이쿠메네 신학은 대화를 자신의 방법론으로 삼는다. 대화는 서로 열린 비판적 만남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오이쿠메네 신학을 방해하는 것은 신학의 배타적 폐쇄성이지 당파성이 아니다. 오늘 어떤 신학도 자신의 보편적 타당성을 일방통행적으로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서구 신학”은 오랜 동안 우월감에 기초한 교사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서구 신학이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에는 희랍의 형이상학과 로마 제국의 제국주의적 질서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접촉이 놓여있다.
두번째로 유럽 신학의 보편적 타당성에 대한 요청은 근대에 이르러 신학을 과학으로 간주하려는데서 야기된 결과이기도 하다. 근대 유럽의 학문은 기술과 산업을 매개로 하여 세계를 점유하고 있는 합리화 과정의 원동력이었다.
이것을 기초로 정립된 유럽 신학의 범세계적 타당성에 대한 요구가 회의에 빠지게 된 것은 유럽의 식민지 지배의 종식과 민족 교회들의 독립, 서구의 진보개념의 위기 때문이었다(볼프강 후버, 같은 책, 75 쪽). 서구 신학의 보편적 타당성에 대한 신념을 상대화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제 3세계 신학, 특히 해방신학과 여성신학이었다. 이들은 흔히 전통 신학의 반대개념인 상황신학(Kontextuelle Theologie)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들은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하고, 국가교회적으로 통제되고, 소위 서구적 학문개념의 틀에서 판단하고,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이고, 심리적으로는 분열된, 남성적으로 만들어진 서구신학의 특수성과 지역성을 폭로하였다. 그래서 모든 오이쿠메네 신학적 대화에는 언제나 갈등이 놓여있다. 이 갈등은 신학적, 문화적 갈등만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성적 갈등도 포함한다. 또한 불의한 세계 경제 질서와 거기에서 비롯된 세계적 규모의 경제적 예속,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사이의 격차와 계급간의 불균형, 정치적 패권주의와 군비확장, 종교적 갈등, 환경 파괴, 성차별, 인종주의 등과 관련되어 있다.
오이쿠메네 신학적 대화의 해석학적 전거는 “이방인” 혹은 “낯선 사람”이다. 낯선 것과의 만남은 때로 흥분과 기쁨을 주지만 자기 정체성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위험과 두려음을 주기도 한다. 자기 정체성은 타인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확보되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낯설음은 오히려 자기의 정체성을 더 구체화 시키고, 의식시키기 때문에 타인과의 비판적 대결과 만남은 정체성 발견의 전제가 된다. 유대인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나의 나됨은 언제나 그리고 근본적으로 타인을 통해 정립된다. 타인은 나의 나됨을 정립시키지만, 그는 언제나 타인으로 남아있다. 정체의 혼돈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관계에서는 깨달음에 대한 관심도 자기인식 혹은 소유욕에의해서가 아니라, 삶의 성취, 존재의 기쁨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한다(참고, 엠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강영안 역, 문예출판사 1996; 마틴 부버, 나와 너, 표재명 역, 문예출판사 1994; Theo Sundermeier, Begegnung mit dem Fremden, in Konvivenz und Differenz, Erlangen 1995). 이것은 아프리카인들의 사고방식,“우리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삶의 이해에 상응한다. 이것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라는 데카르트 이 후의 서구적 삶의 이해와 길을 달리한다. 오이쿠메네 신학적 대화는 그러므로 “낯선 것”과의 만남과 대결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 대화와 대결의 목적은 공격을 위한 공격, 방어를 위한 방어가 아니다. 그 목적은 “함께 모두가 어울려 사는 참여적 삶의 성취”이어야 한다. 오이쿠메네 신학은 분열된 현실과 연대적 공동체 삶을 위한 명령 사이의 긴장 가운데 서있지만, 이 긴장은 대화의 한 본질이다.

3. 오이쿠메네 배움(Oekumenisches Lernen): 문제와 한계

흔히 배운다는 것은 지식의 양적 축적과 개인적 실력, 혹은 능력과 관계되어 있다. 실력지향적 배움(Das leistungsorientierte Lernen)이 경쟁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배움은 “존재”보다 “소유”에 가치를 둔다. "존재 지향적 배움" 은 산업 사회 이전으로 되돌아 가려는 퇴행적이며 시대 착오적인 태도로 조소를 당한다. 실력지향적 배움의 내용 역시 위에서부터 아래로 규정된다. 이런 배움의 관계에서는 "받아 쓰기"와“모방과 암기”가 있을 뿐,“참여”와 "창조" 는 있을 수 없다.
"오이쿠메네 배움"은 배움의 내용만이 아니라 도대체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배워야 하는지 묻는다. 이런 질문은 사람들을 분열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책임적 결단과 선택은 배움과 대화에서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오이쿠메네 배움"이 교회의 갱신과 관련하여 등장한 것은 웁살라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1978) 이 후였다. 오이쿠메네의 지평이 그리스도교의 경계를 넘어서 인류 전체, 지구로까지 확대 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지역적 지평을 깨트리고 지구적으로 사고하도록 도전받게 되었다. 특히 제 3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예속의 현실과 해방운동은 제 1세계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그들의 선교, 발전, 평화 운동, 인권 운동 등의 영역에서 의식화 교육을 강화하도록 촉구하였다.
파울로 후레이르(P. Freire)의 의식화 교육 방법론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신학자 에른스트 랑에(Ernst Lange)는 오이쿠메네 배움을 참여와 변화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이해하였다(참고, Ernst Lange, Spracheschule fuer die Freiheit - Bildung als Problem und Funktion der Kirche, Muenchen 1980). 이런 의미에서 오이쿠메네 배움은 정보의 수집에 기초한 배움이 아니라 경험에 기초한 배움이라 하겠다. 결정적인 배움의 경험은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매일의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파악할 때 생기는 갈등을 해결할 때 완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오이쿠메네 배움은 “갈등지향적 배움”(Konfliktorientiertes Lernen)이다. 이 갈등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현실 사이의 긴장 속에서, 낯선 이들과 다른 이들과의 만남에서, 자기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 구조와의 대결을 통해 더 심화된다.
오이쿠메네 배움은 “참여적 배움”(Partizipatorisches Lernen)이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교사와 학생은 서로에게 배운다. 배우는 내용도 배우는 이의 삶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변화하는 배움의 과정에 자신을 던질 준비, 자기가 지켜온 자신의 정체성이 비판적 질문에 부딪치는 것을 받아드릴 준비를 참여적 배움은 요청한다. 정체성만이 아니라, 희망과 두려움, 욕구와 선입관 등도 참여적 배움의 과정안에서 함께 질문되어야 한다.
오이쿠메네 배움은 이런 의미에서 “경계 초월적 배움”이다. 국경과 민족과 출신 신분, 성의 차별, 개인과 집단의 고유한 가능성도 초월한다. 까닭은 오이쿠메네 배움이 하나님의 말씀의 격려와 약속의 우주적 지평 위에 자신을 맡기기 때문이다. 또 오이쿠메네 배움은 “선취적 배움”(antizipatorisches Lernen)이다. 오고 있는, 믿어진 그리고 찾아진 인류의 일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해와 실천의 지평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이것의 신학적 기초는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한 신앙 안에 있다.
오이쿠메네 배움은 실천 지향적이다. 정보의 전달에 머물지 않고, 오이쿠메네 배움은 그리스도인을 구체적인 실천에로 움직이게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오이쿠메네 배움은 의식의 변화만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지향한다. 배움의 과정에서, 인식과 감성, 실용적 차원이 경시될 수 없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인식 지향적인 배움은 일방적인 행동주의(우리는 무엇이든지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
오이쿠메네 배움은 사회적 배움이다. 다른 사람들, 멀리있는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배움이다. 동시에 지구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 사이의 관련성을 파악하게 하여, 지구적으로 생각하면서, 현장에서 행동하게 한다. 또한 오이쿠메네 배움은 문화 상호간의 배움(Interkulturelles Lernen)이다. 서로 다른 문화, 전통, 삶의 형태 상호간의 만남을 강화하는 배움이다. 지구의 어느곳에 있든지 각 공동체의 다양성에 대한 시각을 확대하고, 서로의 삶의 다양성을 배우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의 풍요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EKD, Oekumenisches Lernen - Grundlagen und Impulse, Guetersloh 1985, 17쪽)

그렇다면 오이쿠메네 배움의 목적은 무엇인가? 오이쿠메네 배움의 목적은 낯선 문화와 삶의 형태와의 만남에서 제기되는 도전을 통하여 그것을 이해하고 배움으로써 두려움과 선입관을 제거하는데 있다. 또 타인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을 배움으로써, 자신을 보다 더 잘 이해하여 자기변혁을 모색하게 하는데 있다. 이런 만남을 통해 얻어진 공통성과 상이성을 각자가 처한 현실을 변혁하는데 자극으로 활용하게 한다. 오이쿠메네 배움의 또다른 목적은 민중과의 연대다. 특히 강도만난 이웃의 상황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연대의 방식을 모색하며, 눈에 보이는 변화를 개인적 삶의 방식에서만이 아니라, 체제안에서도 추구하게 하는데 있다. 오이쿠메네 배움의 마지막 목적은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위해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논쟁을 하고 씨름을 해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힘의 확보와 보장을 위한 씨름이 아니라, 진리를 위한 씨름을 통해 “생존 능력있는 세계” 가 창출될 것이다.

그러나 오이쿠메네 배움은 당위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문제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배움은 동기, 관심, 깨달음을 전제한다. 오이쿠메네 배움의 장애 요인은 부족한 정보라기 보다는, 더 복잡해진 세계의 상호 예속성의 메카니즘이 주는 불확실성과 그에 수반하는 두려움, 자기 방어적 태도와 패배주의라고 하겠다. 이런 태도는 특히 부유한 제 1세계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다. 까닭은 세계질서의 현상유지가 교회 자체의 부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이쿠메네 배움을 제자직에로의 급진적인 소명, 회개와 새로운 방향모색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소수일 수 밖에 없다. 이들이 넓은 대중적 지지와 연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오이쿠메네 배움의 과정을 통해 의식이 변화되었다고 해서, 존재가 변화된 것은 아니다. 인식과 실천, 의식과 존재의 일치는 성취하기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현실을 긍정하고, 패배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다.
연대를 지향하면서도 여전히 그 연대를 방해하는 체제안에 살 수 밖에 없다는 현실도 오이쿠메네 배움이 극복할 과제이다. 특히 불의한 체제가 문제될 경우,연대는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까닭은 체제가 개인의 변화나 개별적인 비타협주의로는 극복될 수 없는 권력구조와 적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