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변화시키는 협력주체들(Valson Thampu)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6 01:40
조회
969
변화시키는 협력주체들(2005,6,23, Valson Thampu)
: 제 9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주제 “하느님, 당신의 은총으로 세계를 변화시키소서”에 대하여 성찰하기

제 9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2006년 2월 14일에서 23일까지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된다. 제 9차 대회의 주제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가 선사하는 흡족함과 기도로 우리를 하나로 모으도록 초청한다.


성서에서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협력심으로 긴밀하게 연합하게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기도하기란 책임을 하느님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서로 협력함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제에 충실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진실 되게 기도하기란 우리의 기도하는 처지가 하느님을 위해서 일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책임과 협력심을 무시하는 기도는 주술적인 것이지, 신실한 것이 아니다.

총회의 주제는 기도하기 위한 초대만이 아니다, 우리를 기도의 고유하고 중요한 정신적인 특성의 세계로 안내하기도 한다.

하느님에게 세상이 중요하기에(“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공동번역 요3,16)우리에게도 세상은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마16,24). 자신을 부인하는 자만이 세상의 틀을 바꾸는 하느님의 협력자가 될 수 있다. 세상의 틀 바꿈은 물론 단순한 인간의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계획은 하느님의 도움 없이 시작된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 세상을 훼손시켰다고 한다. 총회의 주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화시킨다. 우리는 혼자서 세상의 틀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의 틀 바꿈에 유의미하다는 것. 세상을 창조한 그 한 분 만이(Der Eine)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겸허함으로 우리를 초청한다. 그리하여 동역자인 인간으로 자신의 계획에 참여하게 한다.

이러한 정신적인 선교에서 동역자가 되려면, 우리는 새로운 창조물로 분절되어야 한다(“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번역 고후5,17;요3,3). 의사들이여 먼저 당신 자신부터 치유하시오!

변화시키는 자들은 축복받을 지어다. 틀 바꿈은 의외로 어려운 과제다.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틀을 바꾸는 변화에 대해 우리가 고집스럽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쾌하게 파괴적인 변화를 수용한다. 하지만 갱신하는 변화가 중요할 진대 이것은 매우 사색적으로 되고 만다.

우리가 틀 바꿈의 실천자가 되려면, 변화를 위한 준비는 필요하다. 이러한 틀 바꿈은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부자 청년처럼(마19,16-22), 우리가 변화되기를 바라나 자신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구실은 있을 수 없다! 우리 인간본성의 일부인 이러한 모순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것이야 말로 총회 주제의 핵심적인 의미와 내용이다. 정신적인 생동감은 신뢰가 변화를 기꺼이 반기면서 표현된다. 특히 변화는 인간본성의 격정과 우선성이나 편법주의를 넘어선다.

인간책임이 두드러지다. 모든 것이 세상에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무엇 때문에 병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의 수많은 고통을 탄원하고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영성은 책임 갖는 태도의 일부이다(요21,1-19). 영성이 응답에서 완성된다는 것이 거짓된 것이 진단되어 분명하게 됨을 말하지만은 않는다. 상황을 개선하는 최종적인 참여가 응답에서도 영성이 나오게 한다.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하는 것이다. 과오를 찾기란 쉽다. 그렇지만 늘 증가하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성서대로 말하자면 예수는 우리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보내셨다. 이 사실은 ‘세상에 대한 봉사’라는 의미이다. 세상에 대한 봉사는 따라서 9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주제를 이끄는 한 양태다.

세계의 변화는 하느님의 우선적인 관심사이다. 모든 변화의 효과적인 가치변환을 위해서 합의된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략의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적인 일들이 배치되어야 한다. 9차 총회대회의 주제의 시각에서 이것은 하느님의 우선적인 관심사를 수용함을 의미한다.

성서에 따르면 개인의 변화와 가족의 치유는 이러한 하느님의 우선적인 관심에 해당한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사실은 박탈(탈전유)에서 분배하기로 그리고 적대감에서 환대로 바뀌는 새로운 방향제시이다. 그러한 세로운 방향제시의 결과는 “만물을 위한 충만한 삶”이어야 하고, 정신적으로 핵심가치를 위해 열린 사랑, 자비, 진리 그리고 정의로서의 세계질서이어야 한다.

종교의 시각에서 필요한 것이 있다. 종교성이 죽음 이후의 삶을 다루는 일에서 이 세상에서 재차 우선적으로 자신의 정신적인 책임을 다하는 일에도 완전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마5,48). 종교의 개혁성이 무시된다면, 세계를 변화시키려 탄식하는 하느님은 정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종교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서 소외를 해체하고 자신을 연마하도록 해야 한다.

종교정화는 예수의 공공 사역의 우선적인 임무였다. 우리는 보고 지나치는 현실도피적인 종교성에서 이탈해야 한다(눅10,31-32). 그리고 자비한 사마리아인의 자발적인 참여의 영성을 다시 의미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바라보는 눈의 영성과 동정하는 마음은 궁핍에 처한 인간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가 자신의 선교사역 초기에 설교한 ‘회개’의 핵심이다(마4,17). 온전히 회개하는 교회만이 참되며 하느님의 영 안에서 기도할 수 있다. “하느님 당신의 은총으로 세계를 변화시키소서”.

*발손 탐푸(Valson Thampu)는 북 인도의 교회에서 목회하며 가르치는 신학자이다. 인도의 뉴델리 출신의 학자이자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소수자 교육과 통전을 위한 국제협회의 국제위원회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