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선교
제13회 韓日 외등법문제 국제심포지움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09-19 00:09
조회
2957
제 13회 외등법문제국제 심포지움이 6월 30일부터 7월1일까지 "동아시아 화해와 공생과 비전 -韓,日,在日 교회의 공동과제"라는 주제로 나고야 근교 이누야마시(犬山市) 국제 유스호스텔에서 개최되었다. 외등법문제의 올바른 개정운동을 통해 在日한국?조선인의 해방을 목적으로 한 본 심포지움은 1990년에 첫 회를 시작하여 "사람들이 함께 살고 서로 돕는 사회"를 실현하고자 지금까지 노력해 왔다.
이 일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 한국교회 재일동포인권선교협의회,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일본기독교협의회(NCCJ) 재일외국인 인권위원회, 외등법문제를 다루는 전국기독교연락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해 왔다.
올해는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한일 사회가 "다민족, 다문화"로 변화하는 가운데서 교회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강연과 성서연구, 사례보고, 발제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측 참가자는 NCCK에서 권오성 총무를 비롯해 유원규 위원장, 박천응 위원, 황필규 국장이, 재일동포인권선교협의회에서 이명남 회장과 김경남 목사 등 13명,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수녀 2명이 참석해 총 19명이다.
? 6/30(월)
첫날 중부국제공항 입국 심사시 G8 정상회담(홋카이도 도야코)을 이유로 외국인에 대한 삼엄한 심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우리 일행 모두는 3시간 여 동안 억류를 당해 일본 법무성 당국자에 항의했고, 심포지엄 참가자 일동 명의로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로 했다.
개회예배는 타니 타이지(谷 大二, 일본가톨릭주교회의 난민 이주민위원회 위원장) 주교가 마가복음 10장 46~52절 본문을 중심하여,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의 해로서, 선언 1조의 우리 모두는 친구이며,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같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내용과 ‘26조에서 교육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을 키우고 세계인과 평화 공존을 가능케 하는 것’임을 강조해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는 외국인의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아시아?아프리카 난민 210만 명 정도 있는데, 이들 자녀들의 교육권이 매우 열악함을 지적했다. 또한, 재일 한국인과 신1세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면서, 마가복음에서 맹인 바디메오에게 예수님이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할 때, ‘보기를 원한다’고 한 것처럼 우리 교회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조발제를 아키바 마사지(秋葉 正二, 외기협 사무국장/ 일본기독교단 기누다교회) 목사가 맡아했다. 발제에서 ‘우리들의 공동과제’로 ‘동아시아의 화해와 공생’을 목표로 한 심포지엄을 이어가고(2009년 한국개최, 2011년 일본개최), 한, 일, 재일 세 교회는 ‘일본의 역사책임, 在日 한국 조선인의 인권확립, 이주 노동자/결혼이주자/난민의 인권보장’을 선교과제로 삼고, 한국교회의 ‘재일동포고난의 현장 방문’도 지속하며, 특히 ‘다민족 다문화 공생 기독인청년’의 현장연수 프로그램 5개년 계획(2008~2012년)에 대해 언급했다.
주제 강연은 김성제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 나고야교회)가 <신자유주의 -신국가주의, 도래하는 ‘이민 감시국가’에 대항하여>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요지는 신자유주의, 내셔날리즘, 경제적 부정의(不正義) 상황에서 소수자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외국인 등록자 215만 명(2007년 말)은 군사대국화와 신국가주의 고양, 이민 감시국 지향, 지문날인제도 부활 등으로 더욱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구약성경 예레미야서의 ‘샬롬’ 사상 즉, 다민족 공생, 공존으로 우리가 돌아갈 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7/1(화)
일본측 주제 발제자 이청일 목사(재일한국기독교회관 관장)는 <한, 일, 재일교회의 공동 대처로서의 在日 문제 - 검증과 전망>에 대한 발제에서 재일대한기독교회(KCCJ)의 선교정책 전환--1968년 선교 60주년에 사회적 책임에 관한 태도 표명--과 재일 코리안의 인권획득 운동 등 두 개의 분기점을 지적했다. 1970년대에는 일본의 ‘출입국관리법안’ 반대운동과 히타치 취직차별재판투쟁,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운동 공동대처, ·80년대에는 지문제도 철폐운동, ·90년대는 외등법문제 국제심포지엄 중심으로 공동 사업을 전개했다면서, 성과로는 일본측에서는 외국인등록법에 의한 지문날인제도폐지(특별영주자 : 1993년 1월 8일, 일반외국인 : 2004년 4월 1일)이고 한국측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설치(2001년 11월), 외국인 지방선거권 제도실시(2006년 5월), 연수제도 폐지(2007년 1월), 외국인 처우에 관한 기본법 제정(2007년) 등을 예로 들었다.
이후 과제로 일본의 신입국법의 지문, 얼굴 사진 강제철폐운동, 외국인에 대한 분열정책(특별 영주자와 그외 외국인)과 감시?관리 강화에 대한 대응, 다문화 공생사회에 대한 이미지 형성, 在日 외국인과의 공생을 위한 선교과제, 한, 일, 在日 교회의 공동교육 교재 발간 등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측 발제자 박천응 목사(안산이주민센터 대표)는 ‘한국의 이주민 복지 실태와 선교적 과제’란 주제로 언급하면서, 이주민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은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한국과 일본은 저출산국으로서 절대인구가 부족하며, 2050년까지 인구의 10%가 외국인 이주자이고, 향후 매년 20%씩 유입될 것이기에, 외국인에게 각종 연금제도를 개방하고 참정권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주민 정책은 단기 보다 장기이주민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하고, 국가 정책도 통제에서 소극적 개방으로 가야 하고, 국경없는 시민권(이주권, 노동권 등) 부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이주민은 전체 인구의 2% 정도인데, 이주민 정책이 연수생제도에서 노동권(고용허가권)으로 그리고 양성평등(性 획득), 교육권 인정(미등록 어린이, 2002년), 거주권 인정(한시적 어린이 양육 목적, 2006년), 무료진료(이주노동자), 외국인전담 공무원 배치, 외국인 결혼자 지원센터 운영, 거주외국인 지원, 법무부의 다문화가족지원법(2007년), 대학교 다문화학과 신설 등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이주민 선교의 과제는 비전과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데, 나 자신부터 변화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변화의 예로 1+1=1(배타적 민족주의), 1+1= 1?(동화주의 정책), 1+1=2(다문화주의, 교회와 시민사회 입장), 1+1=3,4,5,? (공생주의, 문화 창조, 다수자 중심에서 소수자 인정)을 이야기하고, 한국에서 1년에 3만쌍이 결혼하고 이혼하는 데, 제 3의 정체성을 갖는 자녀문제가 심각해, 이들을 위해 지구적 시민권(global citizen`s rights), 다문화 사회연구, 이주가족문제, 풀뿌리 운동, 신학적 작업 등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기준점은 ‘변한다’는 사실이고, 변화는 창조행위라면서 그 씨앗은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7/2(수)
재일동포 고난의 현장 방문이 시모지마 요시스케 선생의 안내로 진행되었다. 기후 현 쿠구리 지역에 위치한 대규모 지하공장 자취를 방문했다. 이곳은 1944년 9월부터 종전까지 비행기 엔진 제작을 위해 지하에 조선인 2,000명을 모집 동원해 2교대로 지하방공을 만들었는데, 지그재그 모양의 2단 방공호를 6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제작된 비행기 엔진을 3천 미터 정상의 노리쿠라 산정까지 옮겨 엔진 실험을 계획했는데, 그곳까지의 도로도 조선인들의 노동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스카이라인으로서 스키를 즐기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안내자는 지하 굴속에서 박노해 시인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우리 일행에게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또한, 우리 일행은 야후츠에 소재한 ‘인도(人道)의 언덕공원’에 있는 치누 스기하라 기념관을 방문했다. 스기하라는 2차 세계대전시 리투아니아 영사로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美洲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본 통과 비자를 발급해 ‘일본의 쉰들러’로 불려지고 있는 인물이다. 스기하라는 전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면서, 안내자는 일본에도 좋은 사람이 있다고 말해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이어서 1944년에 건설된 98미터 높이의 마루야마(丸山) 댐을 방문했는데, 이는 연합군 포로와 강제 연행된 조선인, 중국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최근에 확장 공사로 120여 미터로 전체 높이가 올라간 상태이다. 안내인은 댐 근처 계곡에 정부가 일본 최대의 쓰레기 폐기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결정적 역할을 이 지역에 사는 재일 조선인의 참정권 투쟁이 가능케 했다고 후일담을 소개해 주었다.
이 일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 한국교회 재일동포인권선교협의회,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일본기독교협의회(NCCJ) 재일외국인 인권위원회, 외등법문제를 다루는 전국기독교연락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해 왔다.
올해는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한일 사회가 "다민족, 다문화"로 변화하는 가운데서 교회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강연과 성서연구, 사례보고, 발제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측 참가자는 NCCK에서 권오성 총무를 비롯해 유원규 위원장, 박천응 위원, 황필규 국장이, 재일동포인권선교협의회에서 이명남 회장과 김경남 목사 등 13명,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수녀 2명이 참석해 총 19명이다.
? 6/30(월)
첫날 중부국제공항 입국 심사시 G8 정상회담(홋카이도 도야코)을 이유로 외국인에 대한 삼엄한 심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우리 일행 모두는 3시간 여 동안 억류를 당해 일본 법무성 당국자에 항의했고, 심포지엄 참가자 일동 명의로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로 했다.
개회예배는 타니 타이지(谷 大二, 일본가톨릭주교회의 난민 이주민위원회 위원장) 주교가 마가복음 10장 46~52절 본문을 중심하여,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의 해로서, 선언 1조의 우리 모두는 친구이며,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같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내용과 ‘26조에서 교육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을 키우고 세계인과 평화 공존을 가능케 하는 것’임을 강조해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는 외국인의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아시아?아프리카 난민 210만 명 정도 있는데, 이들 자녀들의 교육권이 매우 열악함을 지적했다. 또한, 재일 한국인과 신1세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면서, 마가복음에서 맹인 바디메오에게 예수님이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할 때, ‘보기를 원한다’고 한 것처럼 우리 교회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조발제를 아키바 마사지(秋葉 正二, 외기협 사무국장/ 일본기독교단 기누다교회) 목사가 맡아했다. 발제에서 ‘우리들의 공동과제’로 ‘동아시아의 화해와 공생’을 목표로 한 심포지엄을 이어가고(2009년 한국개최, 2011년 일본개최), 한, 일, 재일 세 교회는 ‘일본의 역사책임, 在日 한국 조선인의 인권확립, 이주 노동자/결혼이주자/난민의 인권보장’을 선교과제로 삼고, 한국교회의 ‘재일동포고난의 현장 방문’도 지속하며, 특히 ‘다민족 다문화 공생 기독인청년’의 현장연수 프로그램 5개년 계획(2008~2012년)에 대해 언급했다.
주제 강연은 김성제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 나고야교회)가 <신자유주의 -신국가주의, 도래하는 ‘이민 감시국가’에 대항하여>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요지는 신자유주의, 내셔날리즘, 경제적 부정의(不正義) 상황에서 소수자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외국인 등록자 215만 명(2007년 말)은 군사대국화와 신국가주의 고양, 이민 감시국 지향, 지문날인제도 부활 등으로 더욱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구약성경 예레미야서의 ‘샬롬’ 사상 즉, 다민족 공생, 공존으로 우리가 돌아갈 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7/1(화)
일본측 주제 발제자 이청일 목사(재일한국기독교회관 관장)는 <한, 일, 재일교회의 공동 대처로서의 在日 문제 - 검증과 전망>에 대한 발제에서 재일대한기독교회(KCCJ)의 선교정책 전환--1968년 선교 60주년에 사회적 책임에 관한 태도 표명--과 재일 코리안의 인권획득 운동 등 두 개의 분기점을 지적했다. 1970년대에는 일본의 ‘출입국관리법안’ 반대운동과 히타치 취직차별재판투쟁,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운동 공동대처, ·80년대에는 지문제도 철폐운동, ·90년대는 외등법문제 국제심포지엄 중심으로 공동 사업을 전개했다면서, 성과로는 일본측에서는 외국인등록법에 의한 지문날인제도폐지(특별영주자 : 1993년 1월 8일, 일반외국인 : 2004년 4월 1일)이고 한국측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설치(2001년 11월), 외국인 지방선거권 제도실시(2006년 5월), 연수제도 폐지(2007년 1월), 외국인 처우에 관한 기본법 제정(2007년) 등을 예로 들었다.
이후 과제로 일본의 신입국법의 지문, 얼굴 사진 강제철폐운동, 외국인에 대한 분열정책(특별 영주자와 그외 외국인)과 감시?관리 강화에 대한 대응, 다문화 공생사회에 대한 이미지 형성, 在日 외국인과의 공생을 위한 선교과제, 한, 일, 在日 교회의 공동교육 교재 발간 등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측 발제자 박천응 목사(안산이주민센터 대표)는 ‘한국의 이주민 복지 실태와 선교적 과제’란 주제로 언급하면서, 이주민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은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한국과 일본은 저출산국으로서 절대인구가 부족하며, 2050년까지 인구의 10%가 외국인 이주자이고, 향후 매년 20%씩 유입될 것이기에, 외국인에게 각종 연금제도를 개방하고 참정권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주민 정책은 단기 보다 장기이주민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하고, 국가 정책도 통제에서 소극적 개방으로 가야 하고, 국경없는 시민권(이주권, 노동권 등) 부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이주민은 전체 인구의 2% 정도인데, 이주민 정책이 연수생제도에서 노동권(고용허가권)으로 그리고 양성평등(性 획득), 교육권 인정(미등록 어린이, 2002년), 거주권 인정(한시적 어린이 양육 목적, 2006년), 무료진료(이주노동자), 외국인전담 공무원 배치, 외국인 결혼자 지원센터 운영, 거주외국인 지원, 법무부의 다문화가족지원법(2007년), 대학교 다문화학과 신설 등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이주민 선교의 과제는 비전과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데, 나 자신부터 변화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변화의 예로 1+1=1(배타적 민족주의), 1+1= 1?(동화주의 정책), 1+1=2(다문화주의, 교회와 시민사회 입장), 1+1=3,4,5,? (공생주의, 문화 창조, 다수자 중심에서 소수자 인정)을 이야기하고, 한국에서 1년에 3만쌍이 결혼하고 이혼하는 데, 제 3의 정체성을 갖는 자녀문제가 심각해, 이들을 위해 지구적 시민권(global citizen`s rights), 다문화 사회연구, 이주가족문제, 풀뿌리 운동, 신학적 작업 등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기준점은 ‘변한다’는 사실이고, 변화는 창조행위라면서 그 씨앗은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7/2(수)
재일동포 고난의 현장 방문이 시모지마 요시스케 선생의 안내로 진행되었다. 기후 현 쿠구리 지역에 위치한 대규모 지하공장 자취를 방문했다. 이곳은 1944년 9월부터 종전까지 비행기 엔진 제작을 위해 지하에 조선인 2,000명을 모집 동원해 2교대로 지하방공을 만들었는데, 지그재그 모양의 2단 방공호를 6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제작된 비행기 엔진을 3천 미터 정상의 노리쿠라 산정까지 옮겨 엔진 실험을 계획했는데, 그곳까지의 도로도 조선인들의 노동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스카이라인으로서 스키를 즐기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안내자는 지하 굴속에서 박노해 시인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우리 일행에게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또한, 우리 일행은 야후츠에 소재한 ‘인도(人道)의 언덕공원’에 있는 치누 스기하라 기념관을 방문했다. 스기하라는 2차 세계대전시 리투아니아 영사로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美洲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본 통과 비자를 발급해 ‘일본의 쉰들러’로 불려지고 있는 인물이다. 스기하라는 전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면서, 안내자는 일본에도 좋은 사람이 있다고 말해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이어서 1944년에 건설된 98미터 높이의 마루야마(丸山) 댐을 방문했는데, 이는 연합군 포로와 강제 연행된 조선인, 중국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최근에 확장 공사로 120여 미터로 전체 높이가 올라간 상태이다. 안내인은 댐 근처 계곡에 정부가 일본 최대의 쓰레기 폐기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결정적 역할을 이 지역에 사는 재일 조선인의 참정권 투쟁이 가능케 했다고 후일담을 소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