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필진] 고려대는 더이상 학교가 아니다 (한겨레. 4/21)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2 23:22
조회
438
**[필진] 고려대는 더이상 학교가 아니다 (한겨레. 4/21)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다니는 학교의 실제 상황이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자습실에서 나갔다와도 봐주지만 못하는 애들은 그러다 걸리면 주먹으로 무차별적으로 얼굴을 쥐어박힌다. 교장은 학생들 자치 활동하는 써클도 공부에 방해된다고 아예 없애겠다고 엄포를 놓는가하면, 아예 장기집권에 나서겠다고 자율학교로 만드려는 속셈만 노리고 있다.

심지어 성추행하는 교사들이 버젓이 있는데도 고발하면 너만 손해라는 말로 협박하여 결국 무마하고, 공부를 비관해 자살한 친구의 마지막 졸업식도 명문학교의 이름에 누가 될까 영정도 내걸지 못하게 조용히 치르라고 돈2억으로 무마했다하니 이쯤 되면 이건 고등학교가 아니라 공부만을 위한 광신도 집단의 정신병원이며 그 속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전적으로 교장과 재단의 횡포에 자신을 내맡기고 책만 들여다보는 비참한 신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학교의 횡포와 권위에 도전하는 그 어떤 말과 행동도 용납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까지 제자와 스승의 관계, 학생과 학교의 관계란 바로 그런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도 그냥 참고 견디는 수 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나의 청소년 시절은 이렇게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가진 지금의 상식으로 다시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교를 다닌다면 난 아마 책상을 뒤집어엎던가 하여 학교에서 몇 번씩이나 퇴학당했을 것이 뻔하다.

그나마 학생들의 자율과 권리가 조금이라도 보장되고 지켜지는 교육기관은 그래도 대학이 유일했다. 하지만 오늘 고려대생들에 대한 학교측의 출교 조처를 보니 이제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구나하는 탄식이 나오게 된다. 학생들이 감금을 하였는지 아니면 화장실도 못가게 했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학생들의 권익옹호에는 관심도 없는 교수라 하더라도 어른인 것을 좀더 점잖게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았겠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1년에도 몇 번씩 학교를 점거하고 데모로 학교 시설이 아수라장이 되고, 교수님들에게 숱한 쌍소리를 해가면서 지내온 지난 수 십년 동안에도 없었던 출교 조처가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 그 시끄럽던 시절에도 없었던 출교조처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오늘날 내려진 것일까.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동안의 폭력적인 방식을 인고의 의지로 참아온 마지막 조처일까. 신입생들의 전통적인 환영자리인 오리엔테이션 조차도 눈에 가시처럼 여겨 명단을 보여주지 않았다던 옹졸한 학교측의 태도를 보면 그 원인은 따로 있음이 짐작된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생회 활동에 대해 학교쪽의 짓뭉개기가 시작일 게다. 대학내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원천봉쇄하기위한 조처에 돌입한 것이다.

하기야 그동안 학교에서는 얼마나 참아왔겠는가. 때만 되면 등록금 내리라고 건물 점거하는 바람에 출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끝까지 버티느라 그 스트레스가 오죽했겠는가. 어디서 알아냈는지 수 천억의 이월금있다고 공개하는 바람에 해명하느라 땀흘린 걸 생각하면 학생회놈들 얼마나 눈에 가시처럼 여겼겠는가. 걸핏하면 집회와 행사 한다고 학교를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으니 수 백억으로 만들어놓은 글로벌고대 이미지 다 구겨진다고 가슴치며 탄식하지 않았겠나.

교수들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철학박사학위 하나 만들어 어렵게 모셔온 이건희 회장에게 그 같은 수모를 안겨주었으니 앞으로 삼성의 기부금 중단될까 학교의 명운을 걸고 걱정하지 않았겠나. 그래 바로 이 때다. 가뜩이나 학생운동 취약해져서 잘 안된다는데, 투표율도 높지 않아서 문제라는데 그동안 하고 싶어도 윽박지르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던 한 마디 ‘학생회를 없애자!’
학생들이 때마침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니 언론도 부르고, 감금이라 제목도 붙여주고, 이참에 정의구현고대의 정신을 오늘에 살려 폭력학생을 추방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방식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승의 권위 이야기하기전에 제자를 적으로 등록금대는 기계로 만든 것이 누구인지 먼저 생각해보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소명의 기회를 주었다는데 난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잘 안다. 고등학교때 문제 생겨서 불려간 교무실의 그런 자리. 선생님은 거만하게 의자 뒤로 젖히고 앉아있고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뭘 잘못했는지 왜 잘못했는지 보다 그저 내가 죄인이기를 고백하고 사죄할때까지 나를 붙잡아 두는 굴욕스러운 자리.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잘못했다고 사죄하라고 앞으로는 교수님 붙잡고 그런 이야기 안하겠다고 더 나아가 앞으로는 이런 데모 같은거 하지 말라고 하였을 것이다.

앞으로 선례가 세워졌으니 이제 고대에서는 출교를 비롯한 퇴학등 각종 징계 논의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 학교정책에 불만 가지는 사람, 학교 비리 끄집어 내어 알리는 사람, 교육환경 불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학생들 행사 한다고 깝죽대는 사람 내보내고 불만이 있어도 참고, 학교측에 요구하고 싶어도 눈치보느라 참고, 목소리 한 번 내려 해도 징계 때문에 노심초사 숨죽여야하는 시대, 폭력도 없고 시끄러운 데모도 없고 공부하기에 아주 좋은 평화로운 고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화로운 학교의 혜택은 모두 학교가 가져가고 그 부메랑은 언젠가 무서운 칼날이 되어 학생들 모두의 목을 죄어올 지도 모른다.

고대는 더이상 나에게 학교가 아니다.
등록금을 받고 졸업장을 쥐어준 기업일뿐.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