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촌병혹치(村病或治)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13
조회
1174
촌병혹치(村病或治)

질병, 그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인류의 영원한 바람이자 희망입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이번 황모씨 파동으로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약개발이다, 줄기세포 배양이다, 게놈연구다 온갖 방법이 논의되지만, 질병에 대한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운 실정임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처럼 명예를 얻고 일확천금의 거부가 된다는 욕심도 없이, 다산은 그냥 질병으로 고통 받고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아깝게 목숨을 잃는 힘없고 약한 백성들의 운명을 애처롭게 여긴 나머지, 참으로 순수한 마음에서 질병퇴치를 위한 의학기술의 개발과 신약 제조에도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생명존중과 인간존엄성의 높은 가치 실현이라는 인도주의 정신 때문에 일반 유자들은 감히 상상도 못하던 의서(醫書)의 저작에도 게으른 적이 없었습니다.  

마마의 예방을 위해 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공동 노력으로 종두(種痘)법의 개발에 치중하여 그 성공을 거두었고, 곡산부사 시절에는 『마과회통(麻科會通)』이라는 방대한 의서를 저술하기도 하였습니다. 1801년 최초로 귀양갔던 경상도 포항 곁 ‘장기’라는 곳에서는 유배초기 생활의 어려움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불쌍한 시골 사람들이 겪는 질병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여, 『촌병혹치』라는 의서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만이 세계 최고이고 자기만이 희대의 의술을 가진 과학자라는 그런 건방떠는 짓을 전혀 하지 않고, 정말로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책을 짓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의학서적도 많이 읽었고, 학문도 깊은 분이니 의서를 저술하시오. 이곳 촌사람들은 병이 들면 무당을 불러다가 푸닥거리나 하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뱀이나 잡아먹다가, 그래도 낫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라는 마을 사람의 권유에 따라 의서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의서가 『촌병혹치』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제목인 ‘촌병혹치’란 “혹 시골 사람의 병이 치료될 수도 있으리라”라는 뜻입니다. 의학서적의 자료가 부족한 시골이라 뒷날 많은 자료를 참고할 수 있으면 ‘혹’이라는 글자는 떼어내겠다고 했습니다. 단방약의 책인데, 제목에서 보이듯 건방떠는 모습이 안보여 다산의 인품이 드러나는 책입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다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