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프랑스 1968년 혁명과 2006년 학생 시위 (한겨레, 3/20)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18
조회
1040
** 프랑스 1968년 혁명과 2006년 학생 시위 (한겨레, 3/20)

요즘 프랑스에서 격화되는 학생 시위는 소르본대 점거 농성과 경찰의 강제 해산, 잇단 시위로 인해 1968년 5월 혁명에 대비되곤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외견상 유사한 점이 있다 해도 갈등의 원인과 저항의 강도에서 68년 혁명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68 혁명은 권위주의와 엘리트 체제를 개혁하려는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띤 노학(勞學) 연대 혁명이었다.

또 베트남전 반대를 포함한 당시 학생들의 주의.주장은 진보된 세상으로 바꾸려는 젊은 이상을 현실에 접목시키려는 시도였다. 이번 시위처럼 학생들의 집단 이익을 지키려는 차원이 아니었다.

한때 1천만 시위대를 동원한 68년 혁명 이듬해 샤를 드 골 대통령은 결국 물러 났다.

68년 혁명은 사상적 측면에서 탈구조주의나 해체주의 같은 흐름을 낳았고 페미니즘 운동과 환경 운동을 가속화시킨 계기가 됐다.

반면에 이번의 학생 시위는 정부의 청년실업 해소 정책인 최초고용계약(CPE)에 대한 반발이다.

사주가 26세 미만 직원을 채용한 뒤 최초 2년간은 자유롭게 해고하게 허용함으로써 노동 시장을 유연화시켜 청년 채용을 유도한다는 목적에서 도입한 정책이다.

프랑스인들은 강력한 노동조합의 보호 아래 고용 안정을 누리고 있다. 한번 채용하면 좀처럼 해고가 어렵다.

프랑스인들은 이런 시스템이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앵글로-색슨식 사회 모델 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부하는데 CPE는 자신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고용보장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고 본다.

특히 취업을 코앞에 둔 대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지 않고 자신들만 차별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이번 시위에서는 68년 혁명 때 보다 동원되는 군중 규모가 적다. 여러 차례 시위가 있었지만 전국 합계가 100만명을 넘은 적이 없다.

이번 사태는 오히려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에 타격을 준 1994년 학생 시위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시 학생들은 최저임금법에 반발해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었다.

대권을 꿈꾸던 발라뒤르는 학생 시위에 이어 다른 부정 스캔들이 겹치면서 이듬해 대선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결선에서 자크 시라크 파리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