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파견 근로계약서는 불법 ‘노예계약서’ (한겨레, 4/18)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44
조회
1394
**파견 근로계약서는 불법 ‘노예계약서’ (한겨레, 4/18)

할인점에서 일하는 인력 파견업체 직원들은 정당한 법적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이들이 파견업체와 작성하는 근로계약서는 갖가지 현행 법 위반 사항으로 가득 차 있어 현대판 노예계약서나 다름이 없다.
10일 <한겨레>가 입수한 ㄷ 파견업체의 근로계약서에는 “근무지에서 영업을 볼모로 쟁의·태업을 선동하는 등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을 때”(형사, 형법 조치 사항) 해고가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과 법률로 보장된 노동삼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노조 활동을 하면 사법처리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정체불명의 문구를 넣어 직원들을 ‘협박’하고 있다.

ㅎ 파견업체의 근로계약서는 “해고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징계절차 없이 즉시 계약해지 할 수 있다”, “1주 16시간의 연장근무를 할 수 있다” 등의 문구가 명시돼 있다. 해고 때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항변조차 못하게 막고 있으며, 12시간 이상 초과 근무 때는 근로자 대표와 협의하도록 돼 있는데,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그럼에도 “식대는 주 40시간 범위 내에서 지급한다”고 돼 있다. 밤 늦게까지 10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해도 식대를 추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파견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추후 민-형사(노동법)상 어떠한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근로계약서 맨 위에 명시하거나 “월 급여의 10%는 퇴직금”이라고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시켜 버리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파견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드는 해고 사유다. 아무리 계약직이라 할지라도 해고 때는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근로자로서 근무가 불량하거나 근무에 부적당하다고 판단될 때” 등 관리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수시로 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런 부당한 계약의 뒤편에는 할인점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할인점 쪽에서는 “근로조건 등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하지만 파견업체 관계자들은 “할인점의 무리한 요구에 맞추려면 불법적인 고용을 그만두기 어렵다”고 말한다.

제조업체 판촉사원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제조회사와 계약을 맺은 인력 파견업체로부터 급여를 받고 할인점에서 자사 제품 판촉활동을 한다. 따라서 할인점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이들 역시 할인점으로부터 관리·감독을 받는다. 심하면 본래의 자기 일과 상관없는 과외 일을 맡아야 한다. ‘1시간 동안 우리 물건(PB 상품) 판촉하라’, ‘연장근무 해라’, ‘다른 물건 정리해라’ 등의 요구다.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용역업체로 교체해 달라는 요구가 들어간다. 이는 곧 ‘해고’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과외 업무를 많이 시키는 매장은 판촉사원들 사이에서 ‘아오지매장’으로 불린다. 부정기적인 행사직원인 경우 벌금제도 있다. 한 행사 계약서에는 일당 6만원에 1시간 늦으면 벌금 1만원, 2회 반복하면 무단결근 처리, 무단결근 때는 해고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공인노무사 김세희씨는 “이들 계약서는 사회적 합리성을 벗어난 불평등 계약으로, 사용자의 권리남용, 근로자의 강제근로가 가능하다”며 “사실상 노예계약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불법 계약에 멍드는 이들 중 상당수는 20대다. 본격적인 사회 진출에 앞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거나 학비를 벌자고 하는 경우다. 인천의 한 할인점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25)씨 역시 상처를 입었다.

“일은 할수록 계속 업무량과 책임은 늘어만 가는데, 정규직과의 차별은 여전하다. 사회가 원래 이렇게 마음대로 부려먹는 곳인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준비 중인 기사 자격증을 따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