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왜냐면] 자활사업을 보는 삐딱한 시선 (한겨레, 4/18)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46
조회
1204
**[왜냐면] 자활사업을 보는 삐딱한 시선 (한겨레, 4/18)

사회적 차원에서 보호가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되는 자활사업 일자리를 경제적 성과 지표만으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행위일까?
최근 몇몇 수구신문이 자활사업을 집중조명한 바 있다. 이런 관심이 애정 어린 관심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이었겠지만 그 시선은 오히려 삐딱한 것이었다. 자활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2000년 이래 5년여 동안 너무나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터이라 역설적으로 그런 식의 부정적인 관심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형편이었다. 자활사업 참여 주민들을 ‘공짜로 나랏돈 타먹는 사람’들로, 자활사업을 ‘나눠주기 복지’로 표현하는 등 무수히 쏟아졌던 부정적인 관심에 일일이 답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수 있을 만큼 자활사업 현장이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하고서라도 너무나 속이 상해서 언급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자활사업을 정부의 혈세를 낭비하는 요소로 낙인찍은 뒤 그 근거로 ‘탈빈곤율’과 ‘자활공동체 폐업률’ 등 경제적 성과 중심의 여러 지표들이 낮다는 것을 제시했고, 여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딱 그 정도를 해명하는 데 그쳤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자활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활사업을 ‘밀가루 반죽’과 ‘팥소’를 넣어서 찍어내는 붕어빵 틀로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부 예산을 투입하여 자활사업을 지원하였으니 얼마 기간이 지나면 빈곤 탈출이라는 붕어빵이 생산될 것으로 말이다. 이렇게 경제적 성과만을 중심에 두고 이러저러하게 판단해 온 결과, 자활사업에 몸담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을 마치 성과를 위한 도구처럼 취급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자활사업 참여 주민들의 상당수는 ‘저학력’ ‘미숙련’ ‘높은 여성 비율’ ‘중·고령’ ‘지병이 있는 주민의 수가 다수’인 특성을 가진, 사회적 차원에서 보호가 필요한 분들이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사회적 보호로서의 자활사업 일자리를 경제적 성과 지표만으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행위일까?

이처럼 보호가 필요한 분들이 나서 와병중인 홀몸노인에게 간병과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저소득 계층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며, 장애아동의 통합교육을 돕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많은 부문에서 활약함으로써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무관심’과 ‘법·제도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도 경제적 자립에까지 이르고 있다면 이 얼마나 빛나는 업적인가? 이런 측면에서 이들 주민이 하고 있는 자활사업 현장의 노동가치는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하고 제대로 대접받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동안의 부정적 평가에 멍든 가슴을 추스르고 다시 일할 의욕을 북돋우고 있는 수많은 자활사업 참여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언론이든 정부든, 앞으로는 자활사업에 어떤 분들이 참여하고, 이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들의 자립·자활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들이 활동함으로써 제공되는 사회적인 서비스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자활사업의 성과를 논하고 평가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