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2006년, 인도의 오리사(Orissa)와 한국의 판교, 한양주택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51
조회
1403
<2006년, 인도의 오리사(Orissa)와 한국의 판교, 한양주택>

인도 서부 오리사 지역에는 지금 인도에서 세 번째로 큰 산업단지가 조성 중에 있다. 공사현장의 불도저의 굉음은 장차 인도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희망의 신호탄이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인 인도는 이제 경제성장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면서 온 사회가 들떠 있다. 그런데 이 칼링아나가(Kalinganagar)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정부 측과 인도 재벌이 토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과 충돌이 발생했다. 칼, 활 등으로 무장한 주민들이 경찰 저지선을 넘자 경찰이 이들에게 발포하여 12명 이상의 주민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우리는 죽으면 죽었지 이 땅에서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외치면서 이 사태에 대한 주정부 당국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런데 이 산업단지에는 한국의 포스코(Posco)가 10억 불 규모를 투자하여 제철소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디바시스(adivasis)부족이 살고 있는 이 오리사 지역은 인도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었는데, 산업단지 조성과 한국의 포스코 자본의 유치로 지금 상당히 고무되어 있다고 한다. 문제는 바로 그 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하고,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금을 지불하는 일이다. 일부 주민들은 상당한 액수의 보상금을 받기도 했다고 하는데, 문제는 한국의 재개발이나 산업단지 조성 시 언제나 문제가 되듯이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다. 이곳의 농토에서 나는 산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극빈층들은 이곳에서 나가면 살길이 막막해 진다. 이들 중에는 살던 땅에서 쫓겨나는 대가로 보상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땅은 생명 그 자체다.  

   단지 조성으로 살던 땅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인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지난 30년 동안 서울에서 벌어진 재개발 현장이 연상된다. 더구나 이번에 이들 처참한 빈곤 상황에 있는 인도의 지역 주민을 쫓아낸 다음에는 이미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의 제철회사 포스코가 들어간다는 점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사실 말이 한국기업이지 포스코는 주식의 반 이상이 이미 외국 투자자들의 손에 넘어 간 다국적 기업이라고 우리가 항변해도 그것은 이들에게는 별로 관심거리가 아닐 것이다. 만약 이후 개발과 성장의 과실이 자신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혹시 이들 살아남은 주민들은 한국인들에게 원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그런데 산업단지 조성 현장에서 발생한 유혈 참극은 과연 후진국 인도의 이야기인가? 지금 한국의 판교, 은평 뉴타운 지역의 한양주택 등지에서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저항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정부가 강남 집값 잡겠다고 판교 신도시 건설을 발표했을 때, 판교에 살고 있던 주민들, 특히 투기와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던 세입자들의 목소리는 별로 들려오지 않았다. 온 미디어는 판교를 로또라고 선전하고 투기꾼들이 군침을 흘리고 개발이익이 무려 3조원이 넘어설 것이라는 선전으로 시끌벅적했지만 그곳을 생활 터전으로 하던 주민들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장차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주목하는 언론 보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한편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8년 낡은 가옥을 철거하고 조성된 아름다운 전원주택 마을 한양주택 주민들은 ‘뉴 타운’ 조성 사업으로 30년 가꾸어온 마을이 또 다시 수용된다는 사실에 대해 망연자실해 있다. 이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얻을 경제적 이득보다는 현재의 주민들 사이에 형성된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은 몇 푼의 보상금과 바꿀 수 없을 뿐더러, 보상금이라고 주는 돈으로는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인도의 오리사는 물론 판교나 은평 뉴타운 지역에도 개발로 얻은 경제적 이득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토지보상비를 주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보상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저항을 하고 있을까?  
주민과 경찰의 유혈 충돌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인도 오리사의 살아남은 주민들도 “우리는 여기서 죽겠다”고 말하고 있다. 판교에 남은 사람들도 똑 같이 이야기 한다. “하월곡 등 전전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죽지 뭐.”  

    공동체는 파괴되고, 개발이익은 업자와 투기꾼 손에

삶의 터전인 주거지, 그곳은 비록 유복하지는 않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근거이자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곳이다. 인간은 어쩌면 동물이 아니라 식물에 가까운 존재일지 모른다. 이웃과 더불어 살고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때 더불어 사는 소중한 가치를 맛보게 되고, 그것은 결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살아야 할 참 이유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재개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원주민 철거 정책은 이 소중한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것을 통해 얻어진 막대한 개발이익을 건설업자 그리고 투기꾼의 손에 안겨주었으며, 그 중 극히 일부만을 떼어서 뿌리 뽑히고 살길 막막한 주민들의 입을 막아왔다. 그래서 아파트 숲으로 뒤덮인 이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는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신음 위에 쌓은 돈의 바벨탑이다.  

힘없는 원주민이라고 해서 그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총탄 세례를 퍼부은 다음 산업단지 조성을 강행하는 오늘의 ‘후진국’ 인도에 비해 한국은 과연 어느 정도로 선진국일까? 한쪽에서는 개발의 이름으로 인도 원주민들이 죽어나가는데 우리는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실적이 늘었다고 축배를 들어야 하는가? 도시를 아름답게 정비하고 중산층의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힘없는 현지 주민의 의사는 묵살될 수 있으며, 또 일부 주민들의 항의는 돈으로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재고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글쓴이 /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및 NGO 학과 교수
·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및 황해문화 편집자문위원
· 서울대 사범대와 동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음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2000-2001)
· 참여사회연구소장(2002)
· 저서:


출처:<다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