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한국교회에큐메니칼 운동 공청회 발제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2-2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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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CC는 최근 교단협의체로서 KNCC 성격을 비롯해 15개 프로그램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사업, 결의구조, 신학 그리고 재정 등 전반에 대해 ‘발전과 개혁’이란 시대적 목표를 갖고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에 특별위원회에서는 첫 번째 공청회를 개최하여 신학자와 목회자 두 분의 주 발제를 중심으로 하여, 교회 각 부문의 의견을 수렴하었다. KNCC는 추후 2차 공청회를 거쳐 향후 방향에 대한 전체 그림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 발표문은 감리교신학대학교 심광섭 교수의 <현대 에큐메니칼 신학의 방향과 한국교회>라는 제목의 발표문이다.-운영자


에큐메니칼 신학은 20세기 이래로 인간과 사회 및 세계의 제 문제를 분석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표방해온 신학인 만큼 전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지난 50년간 세계 에큐메니칼 신학의 특징과 이와 보조를 같이하면서도 한국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발전한 한국 에큐메니칼 신학의 특징을 일별하고 정리하면서 한국 에큐메니칼 신학의 미래에 대하여 토론을 염두에 두면서 몇 가지 제시하려고 한다.

1. 세계 에큐메니칼 신학의 특징
1910년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 이후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은 1952년 빌링겐 국제선교협의회의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가 1968년 웁살라 총회에서 만개함으로써 선교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종전의 선교가 교회가 주체가 되어 피선교지에 교회를 이식하는 선교였다면, ‘하느님의 선교’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선교의 주체이며, 교회는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역사 속으로, 곧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으로 복음을 증거하도록 파송받았다는 선교관의 변화를 말한다. 이 세상을 향한 파송은 세상과의 연대책임과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대의 징표’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요구한다. ‘하느님의 선교’ 신학은 구미의 세속화신학 및 정치신학,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해방신학, 아시아의 종교해방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과 더불어 교회가 역사 변혁, 정치의 민주화, 경제적 종속으로부터의 해방, 인권을 위해 우선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전위부대가 될 것을 요구하였다. 하느님의 선교 신학을 계속 유지하면서 1975년 나이로비는 ‘온전한 복음’, ‘온전한 세상’, ‘온전한 교회’를 정의롭고, 참여적으며, 지탱 가능한 사회(Just, Participatory, Sustainable Society)와 연결하였고, 1983년 밴쿠버(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생명)와 1990년 JPIC를 통해 기독론적이며, 성령론적인 생명신학으로 나타났다. 그 후 1998년 12월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모인 WCC 8차 총회에서는 생명신학을 구체적으로 폭력의 극복(가정, 성, 교회, 학교, 사회, 경제적 폭력등), 평화 문화운동, 생명문화의 형성 등으로 전개해 나갔으며, 2006년 2월 14-23일 브라질의 포토 알레그레에서 열리는 WCC 9차 총회의 주제는 “하느님, 당신의 은총 속에서 세상을 변혁하소서”(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란 주제 하에, “교회의 일치와 연합”, “빈곤과 경제적 불의의 극복”, “폭력 극복을 위한 10년”을 다룬다.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은, 하느님의 선교 신학을 주축으로 하여, 정치신학, 해방신학(여성, 생태, 종교...), 생명신학, 평화를 위한 이웃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 차별과 빈곤과 불의와 폭력의 극복의 신학이 특징이다.

2. 한국 에큐메니칼 신학의 특징
이론으로부터 실천이 나온 것이 아니라 운동과 실천을 반성하기 위해, 혹은 뒷받침하기 위해 나온 것이 한국 에큐메니칼 신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에큐메니칼 신학은 운동과 함께 한다. 한국 에큐메니칼 신학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나는 1970년대 이후의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을 바탕으로 한 신학이고, 또 하나는 19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통일운동이다. 3.1운동과 민족교회를 정신적으로 계승한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은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한 우리의 견해”(1965), “3선 개헌 저지 운동”, “인권선언”(1973.11.24),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앙선언”(1973.5.20), 도시산업선교. 빈민선교, 농민운동, 기독학생운동, 사회개혁운동 등으로 전개되면서, 신학적으로는 정치신학, 민중신학을 낳았고, 다른 한편 냉전의 벽 허물기와 민족 화해운동 속에서 통일신학 및 희년신학을 전개했으며, 생명운동에 대한 생명신학과 생태여성신학, 세계화/지구화에 대응하여 경제신학 등이 전개되고 있다.

3. 신학적 제안
한국 에큐메니칼 신학은 세계 에큐메니칼 신학의 흐름과 한국의 신학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몇 가지 포인트를 제안함으로써 그 유토피아적 지평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1) 인권과 평화: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이 인권운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근대의 발전 내역을 보면, 인권, 개인주의, 사생활의 담론들이 비교적 늦게 정착되고 매우 천천히 어렵게 주류화된다. 구한말의 개화파, 계몽운동 지식인들에게는, 대부분의 주변부 후발 자본주의 국가 지성인과 마찬가지로, 인권이 언제나 국권의 하위 개념이었으며,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에게는, 대부분 식민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권이 언제나 해방투쟁이나 민족 개조, 문명화의 종속개념이었다. 1970년대 민주화 투쟁의 정서적 기반은 일종의 민권적 민족주의였는데, 그 담론 속에서 인권은 역시 주변적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인권과 개인 생명의 중요성을 배울 만한 통로가 빈곤했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의 인권은 여전히 사각지대이다. 인권에 대한 거시적 조명에서 미시적이고 일상사적인 조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대적 시각과 분석으로부터 탈근대적 분석이 필요하다.

2) 통일운동과 통일신학이 남한의 냉전의식, 냉전체제를 일정 부분 허무는 데 기여했다면, 진정한 통일을 위해서 북한의 의식과 체제의 변화를 끌어낼 수 길은 없는 것인가? 국제사회에서 쿠바, 베트남, 중국과 같은 공산국가보다 훨씬 폐쇄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정치제제를 개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3) 세계화/지구화에 대응하는 신학: 오늘 시대의 징표는 근대의 제국주의에서 지구화와 더불어 탈근대적인 제국의 시대(네그리/하트)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싸워야 할 분명한 큰 적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모든 것이 복잡하고 섬세하며, 빠른 속도로 변한다. 베를린 장벽의 해체는 국가와 민족간의 담의 해체, 곧 담 없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확산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구화와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 정치 개혁의 문제, 부패 방지, 평화와 통일의 문제, 고질적인 교육 문제, 환경문제, 생명공학 문제, 서민들의 생활문제, 세제문제 등등을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 검토하고 개혁을 위한 교회의 입장을 밝혀 나가는 일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지구화 시대에 우선시되는 것은 자연과의 새로운 연합이다. 최근까지 역사는 위대한 혁명에 의해 발전해온 것 같다: 과학기술 혁명, 시민혁명, 사회주의 혁명, 첨단과학(IT, BT, NT)의 혁명. 그러나 이러한 혁명은 엄청난 인적 자연적 손실과 파괴와 희생을 그 대가로 요구했다. 오늘날 이러한 혁명이 모든 사회에 골고루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위대한 혁명보다는 작은 혁명, 작은 변화를 기대한다. 분자가 생명을 이루는 작은 부분이지만 다른 분자와 환경과의 관계와 소통을 통해 생명을 보증하듯이 혁명은 변화를 갈망하는 작은 그룹과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다. 변화를 갈망하는 자는 항상 소외된 자, 작은 자이며, 따라서 이들이 수레에 실어 나르는 새로운 꿈이 혁명의 씨앗이다. 그리스도인은 세계화된 시장이나 제국질서의 확산을 통한 세계화가 아니라 새로운 영성을 통한 세계화를 갈망한다. 경제적 세계화는 인간의 욕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욕구를 겨냥한 것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경제는 선형적이고 무제한적인 물질의 성장이 아니라 모든 인간과 모든 창조를 위한 충분한 생산을 하기 집중해야 하는 사회적 과정이다. 정치적 세계화는 참여와 평등과 차이에 대한 존경과 인간들 사이의 소통을 원활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4) 종교간 대화와 협력
선교에 있어 종교간 대화와 협력은 필수적이다. 한국 신학은 건강한 선교를 위한 토착화신학과 더 나아가 종교간 대화 및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전개했으나, 지난 90년도 초에 감리교회에서는 종교재판으로 일단락되었다. 종교재판이 진행될 때 과연 교회협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불교, 가톨릭, 개신교 중 이웃종교에 대해 가장 보수적이며 배타적인 개신교의 태도를 위해 그래도 진보적인 교회협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만물을 연결시키고(connect) 다시 연결시키는(reconnect) 것이 어원에서 본 종교의 의미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없는 ‘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사회주의는 ‘내’가 없는 ‘우리’의 문화를 만들었다. 근대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후의 문화는 ‘우리와 함께하는 나’를 가능케 하는 삶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크로아티아 출신 신학자 볼프(M.Volf)에 의하면, “포용의 의지(the Will to embrace)"가 타자에 대한 그 어떤 진리나 타자에 대한 정의를 구성하려는 그 어떤 시도보다 앞서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논리는 배제의 논리는 물론 변증법의 논리도 아닌 모든 것을 포함하는 논리, 작은 것들의 힘을 발견하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종교간 대화의 영성은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시키고, 몸과 마음을, 세계와 인간을, 여자와 남자를,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영성이다. 새로운 영성은 존재와의 새로운 만남을 통해 탄생한다. 만물의 재결합을 위한 선교(mission)는 바로 오늘의 화해의 선교이다.


5) 문화비평의 신학 혹은 예술 신학의 필요성
일찍이 나탄 죄더브롬(N.Söderblom)은, 일치의 진정한 목적은 서로 섬기는 것(serve together)이라고 말하면서, 커다란 도덕적 사회적 문제 그리고 국가간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기 위해서, 생활 속에서 봉사하고 실천하기 위해 교리적 일치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개신교내의 교파분열은 명목상 기독교 신앙의 진리 논쟁에서 기인한다. 차선책으로 윤리 혹은 사회, 역사 참여 등의 실천을 통한 교파간 연합으로 신앙의 궁색함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교회 간 통합 그리고 사회 통합이 요구된다. 진리는 논리적이고 윤리는 엄숙하다. 진리는 실재를 재고 판단하여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가르고 분리하여 차별한다. 아름다움은 사물, 사건, 사람이 서로 어울리는 통합적 사건이다. 중세의 신학자 안셀름(Anselm, 1033-1109)은 “知性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란 유명한 명제를 남겼고, 그 후 신학과 교회는 1,000년 동안 이 명제를 금과옥조로 받들어 왔다.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의 교리적 진술에 치우쳐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윤리적이 됨으로써 공동체의 감정을 소홀히 하거나 간과했다. 새 시대를 열어갈 신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pulchritudinem), “感性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sensum)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들음과 이해의 신앙에서 통전적 봄과 통합적 느낌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신학에서 인간의 미감적 상상력의 산물인 이야기, 상징, 신화, 은유 등이 강조되는 것이 이를 암시한다. 생명은 진리에 순종하여 진리를 따를 때 구현된다. 반면 죽음은 우리가 진리를 복종시킬 때 찾아온다. 진리를 구체적으로 내면화함으로써 거부할 수 없도록 하여 전 인격 안에 머물도록 만드는 것이 미감적 체험이다. 최근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에서도 사회-경제적 분석과 비평, 정치적 저항에서 지배 문화비평의 신학으로 이전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상업주의와 함께 전자 속도로 확산 보급되는[①소통수단의 전자화] 대중문화[②문화상품, 상품화된 문화]는 공기처럼 삶을 지배[③문화정치]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교회협의 신학적 입장은 무엇인가? 미학적 신학/예술신학 혹은 문화비평의 신학의 발전.

6) 에큐메니칼 신학을 교회에 확산할 필요성: 그동안 교회협이 여러 운동을 사회적으로 실현했다면, 이제 그 운동과 신학을 한국 교회에 이해시키고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목표를 정했다면, 그 목표를 실천하고 달성하기 위한 방법 또한 세워야 한다. 만약 우리의 목표가 교회로 하여금 진정한 결속과 친교의 삶, 상호 격려와 창조의 삶, 진정한 협동의 삶을 성취하도록 돕는 것이라면, 우리는 움직이고 있는 공동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기구들의 네트워크를 창출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 교회의 교회되기: WCC의 창설에 지대한 공헌을 한 올담(J.H.Oldham)에 따르면 에큐메니칼 운동의 최대 관심사는 교회를 자기중심적인 경향에서 자유롭게 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과제를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를 모으는 것이다. 혹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크리스찬의 사회운동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의 참된 과제를 재발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의 평화인지 우리 사회에서 분명히 밝혀야 하는 것은 교회의 과제이다.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과제와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