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연리포트11호) 연구실 이야기 – 기사연 40주년, 변화의 작은 몸짓을 시작하며
기사연 40주년, 변화의 작은 몸짓을 시작하며
김 상 덕 (기사연 연구실장)
올해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한국의 근현대사는 격동적 사회변화를 감안하면 결코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어떠한 사회의 담론과 집단의식이라는 것이 형성될 여유조차 주지 못했던 한국사회는 이제 ‘이후의’ 사회의 도전 앞에 놓여 있습니다. 국가제도나 시스템도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겨워 보이는 가운데, 다양한 사회집단 간의 인식차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세대 간의 차이 역시 한국사회를 갈라놓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환기적 사회 갈등의 현상 가운데 한국교회는 과연 ‘이후의’ 사회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 속에서 기독교가 감당해야 할 공적 역할에 대한 필요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입니다. 특별히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공론장’(public sphere)의 양상은 선동적인 구호와 ‘가짜뉴스’로 점철된 정쟁(政爭)의 장으로 퇴색되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대화와 상생의 길을 추구하기보다는 나와 다른 대상을 ‘타자화’(他者化)하여 혐오와 불신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높아져만 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사연은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세 가지 공론장으로서의 공간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세 가지 공론장: 광장, 도시, 그리고 미디어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공간은 공론장(public sphere)으로서의 ‘광장’(plaza)입니다. 특별히 한국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광화문은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1987년 이후 30년이 지난 2017년 광화문 광장에서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이는 ‘독재타도’를 외치는 민주화운동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싸워야 할 분명한 대상이 있었던 시절 87년형 민주화운동 속에서 기독교는 민중과 함께였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2017년 광화문에서는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것처럼 기독교도 나뉘어진 듯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바로 ‘하나의 기독교적 정치사회운동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입니다. 따라서 ‘광화문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교회는 ‘민주화운동 이후의 기독교 사회운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두 번째 장소는 도시(city/urban space)입니다. 도시는 이른바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시장경제, 그리고 개인화된 삶의 방식의 집약체입니다. 한국의 대부분은 도시화 되었다고 할 때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제적 이익과 공동체적 가치 중 어느 것이 더 우선적인가?’입니다. 찰스 테일러가 바르게 지적하듯 현대인의 불안과 염려는 도시의 자기-중심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기적이고 경쟁적으로 살아가도록 부추기며 타자에겐 무관심하고 스스로는 고립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자본과 공동체, 이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의 조합은 도시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매일의 일상으로부터 거대한 체제에 이르기까지 상호 긴장 가운데 갈등하며 부딪힙니다. 과연 대다수의 교회가 도시에 기반을 둔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우리는 도시의 경제학을 넘어 공동체로서의 삶의 방식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우리의 관심은 도시에 대한 신학적 담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공동체를 지향하자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고민하고자 하는 공간은 바로 미디어(the media)입니다. 언론과 미디어, 특별히 뉴미디어 사회 속 가상의 세계(cyber space)와 소셜 미디어(social media) 등의 미디어 공간의 등장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공간입니다. 이는 개인 및 집단의 의식체계와 삶의 패턴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 부풀려진 현상에 대한 차분한 분석과 성찰은 부족해 보입니다.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각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있어도, 이 공간을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나 원칙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는 미디어의 역기능을 줄이면서도 소통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이상 세 공간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공론장으로서 그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향후 기사연의 연구 분야와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사연은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사회문제들 가운데서 1) 사회갈등(social conflict), 2) 도시정의(urban justice), 그리고 3) 미디어문화(media culture) 등을 주요 연구과제로 정하고 이와 관련한 연구 및 강연, 그리고 소통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기사연 40주년, 작은 변화의 몸짓들
올해로 기사연은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축하보다는 반성과 성찰의 필요를 통감합니다. 누구도 한국교회의 공공성 상실의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기사연은 작지만 의미 있는 몸짓으로 몇 가지 변화를 시도하고자 합니다. 먼저, <기사연 리포트>를 재창간합니다. 과거 <기사연 리포트>는 기독교적 사회운동의 담론 형성을 가능케 하던 소통의 창구였습니다.[1] 이제 새롭게 태어나는 <기사연 리포트>를 통하여 국내외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대한 한국 교회의 관심을 종용하고, 소모적인 논쟁 보다는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공론장 형성과 숙의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기초자료로서의 연구보고서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이번 <기사연 리포트> 재창간호에서는 최근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 조치로 경색된 한일 관계와 관련하여 일본 교과서 속 역사인식의 문제를 분석한 “일본의 역사·사회 교과서 속에 그려진 한국”(홍이표)이라는 글과 실제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인식의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한 “일본 기독교인들의 한국 역사 이해”(유시경)의 글을 준비하였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기사연 리포트>를 통하여 한일 관계에 대한 논의가 감정적인 논쟁에서 좀 더 깊은 논의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기사연의 두 번째 변화는 기독교 및 시민단체를 위한 공론장 형성과 공적 역할에 대한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 변화입니다. 현재 기사연은 <2019년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 연구>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이 연구는 개신교인 1,000명, 비개신교인 1,000명의 사회인식을 비교분석하는 연구로, 개신교인의 신앙 및 정치, 경제, 사회, 통일, 환경 등의 분야에 관한 광범위한 사회조사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한국의 개신교인은 누구이며,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소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변화의 몸짓은 대중과의 소통을 늘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번 가을부터 시작되는 <기사연 포럼>과 <기사연 아카데미>을 통하여 한국 사회 속 기독교의 공적 역할에 대한 대화와 배움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2] 먼저, 오는 9월 <기사연포럼>에서는 이병성 박사(연세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소)를 초청하여 “민주화 이후의 기독교와 민주주의: 민중인가, 시민인가?”라는 주제로 기독교 사회운동의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논의할 것입니다. 11월 <기사연포럼>의 주제는 “미디어와 도시: 기독교적 성찰”입니다. 뉴미디어의 발달이 가져온 도시와 공동체에 대하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김용찬 교수가 발제를 하고,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박진규 교수의 논찬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10월에는 <도시공동체연구소>와 함께 “한국교회의 공공성 상실을 논(論)하다”라는 주제로 공동포럼을 가집니다.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공공신학”에 대한 관심 속에서 공공신학의 흐름과 한국적 적용의 의미를 논하는 한편, 한국교회의 공공성 상실의 원인과 그 해법에 대하여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특별히, 기조강연을 맡은 김창환 교수(풀러신학교)는 지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국제공공신학저널>(IJPT)의 초대편집장을 역임하였고, 주요 저서로는 A Theology in the Public Sphere (SCM Press 2011), A Companion to Public Theology (Brill 2017)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사연 아카데미>는 두 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배움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이병성 박사(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가 이끄는 “현대 정치철학 세미나: 광장과 기독교” 주제로 현대의 중요한 서구 사상가 중 네 학자(하버마스, 왈쩌, 샌델, 테일러)의 글을 읽고, 한국 시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배우는 강좌입니다. 두 번째 강좌는 김승환 박사와 함께 하는 “공공신학 세미나: 도시와 신학”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강좌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인 도시를 신학적으로 성찰하는 동시에, 도시의 공공선 증진을 위해 교회가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기사연의 변화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기사연의 작은 변화의 몸짓들에 주목해주십시오. 기사연은 앞으로 국내외 주요 사회문제들에 대한 전문적이고 성실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겠습니다. 또한 합리적인 기독교 담론 형성을 위한 <기사연 리포트>를 발간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사연 포럼>과 <기사연 아카데미>를 통하여 대중과 소통하겠습니다. 한국 사회를 읽어내고 분석하며 교회의 공적 역할이 무엇인지 제안하고자 합니다. 기사연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에 동참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기사연포럼 “민주화 이후의 기독교와 민주주의: 민중인가, 시민인가?”
– 일 시: 2019. 9. 26 (목) 오후 7시
– 장 소: 기사연 이제홀
– 발 제: 이병성 박사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 논 찬: 이상철 박사 (크리스찬아카데미)
- 공동포럼 “한국교회의 공공성 상실을 논(論)하다”
– 공동주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x 도시공동체연구소
– 일 시: 2019. 10. 17 (목) 오후 4시-6시
– 장 소: 기독교회관 조에홀
– 강 연: 김창환 교수 (Fuller Theological Seminary)
– 패 널: 성석환 교수 (장신대학교), 김근주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 기사연포럼 “미디어와 도시: 기독교적 성찰”
– 일 시: 2019. 11. 14 (목) 저녁 7시
– 장 소: 기사연 이제홀
– 발 제: 김용찬 교수 (연세대학교)
– 논 찬: 박진규 교수 (서울여자대학교)
- 기사연 아카데미 1 – “현대 정치철학 세미나: 광장과 기독교”
– 일 시: 10월 4 ~ 25일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 장 소: 기사연 이제홀
– 대 상: 목회자 및 신학생, 관심자 누구나
– 수강료: 전체 3만원 (부분 수강 가능. 1주에 1만원)
– 강 사: 이병성 박사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 세부일정
강의 주제 | 참고서적 | |
1주 | 하버마스 Jürgen Habermas:
“포스트 세속”과 기독교 |
위르겐 하버마스, 요제프 라칭거 공저, 윤종석 옮김, 『대화: 하버마스 대 라칭거 추기경』 (새물결출판사, 2009) |
2주 | 마이클 왈쩌 Michael Walzer:
하나님의 정치공동체 |
마이클 왈쩌, 이국운 옮김,『출애굽과 혁명』 (대장간, 2017) |
3주 |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
공화주의와 기독교 |
마이클 샌델, 안규남 옮김, 『민주주의의 불만: 무엇이 민주주의를 뒤흔들고 있는가』 (동녘, 2012) |
4주 | 찰스 테일러 Charles Taylor:
“세속시대”와 기독교 |
찰스 테일러, 김선욱 외 옮김, 『세속화와 현대문명』 (철학과현실사, 2003) |
- 기사연 아카데미 2 – “공공신학 세미나: 도시와 신학”
– 일 시: 10월 14일 ~ 11월 4일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 장 소: 기사연 이제홀
– 대 상: 목회자 및 신학생, 관심자 누구나
– 수강료: 전체 3만원 (부분 수강 가능. 1주에 1만원)
– 강 사: 김승환 박사 (장신대학교)
– 세부일정
강의 주제 | 참고서적 | |
1주 | 세속화와 근현대도시 | 에드워드 소자, 「공간과 비판사회이론」 (시각과 언어, 1997) |
2주 | 도시, 공공성, 그리고 교회 | 일라인 그래함, What makes a Good City, Darton. Longman and Todd Ltd, 2009. |
3주 | 도시의 영적 형성 | 제임스 K.A. 스미스 「급진 정통주의 신학」 7장 (CLC, 2011) |
4주 | 하나님의 도시를 향하여 | 필립 셀드레이크 「도시의 영성」 (IVP, 2018) |
[1] 과거 <기사연 리포트>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서는 본호 이민형 연구원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 자세한 행사 개요는 이 글 마지막에 첨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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