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연리포트11호) 기사연 리포트의 의미를 되새기며

<기사연 리포트>,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1]

 

이 민 형 (기사연 연구원)

 

“너희는 저녁 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고 날씨가 맑겠구나’하고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한다. 이렇게 하늘을 보고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마 16:2-3)

 

1979년 2월 21일, 한국기독교산업문제연구원과 한국기독교학술원이 통합되며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이하 기사연)이 창립되었습니다. 이후 기사연의 구성원들은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하여 교파 간의 연대를 종용하고, 세상을 향한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기본 정신으로 삼았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기사연이 실천해 온 다양한 활동들은 교파와 신앙고백의 차이를 넘어, 지구적이면서도 지역적인 일치와 화해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제반문제들을 교회의 선교적 과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함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정의, 평화, 생명의 가치를 담은 사회의 건설”이라는 구호는 기사연이 제시하는 사회적 해결방안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정신과 활동 목적을 근거로 한 기사연의 주요 활동은 한국 내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 배포하여 한국 교회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관심을 종용하는 것과 지역공동체를 향한 상생의 공동체를 만드는 방안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발표함으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다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사연의 주요 소통 통로였던 여러 출판물 중 <기사연 리포트>는 기사연의 정신과 목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연구서였습니다. 1987년 6월 11일 발행된 첫 번째 리포트의 머리말은 위에 적힌 마태복음 16장 2-3절로 시작합니다. 이는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선한 세력들이 이 시대의 징조를 바로 알고, 합심해서 악의 세력들을 이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 <기사연 리포트>의 기획의도를 잘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총 10회에 걸쳐 발간된 <기사연 리포트>는 “사회의 제반 정세동향에 관한 기초정보 및 분석 자료를 제공”함으로 한국 사회의 면면에서 일어난 문제들의 배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제적인 해결 방안을 구상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나 언론과 여론의 통제가 극심했던 1980년대의 한국 사회를 상상해 볼 때, 고통스러운 현실에 시름하는 이들의 상황을 대변하고,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분야의 다양한 흐름을 정의, 평화, 생명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제시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상황 속의 기독교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는 행동이었고, 진정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자처한, 당시에는 극소수에 불과했던 기독교계 출판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사연 리포트>의 주요 내용은 군부정권의 종식과 민주 사회로의 진일보를 위해 사회적 상황을 면밀히 조사, 보고하는 형식의 “특집” (정치 동향), 학생, 농민, 빈민, 노동자 등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담고 있는 “민족민주운동” (운동권 동향), 세계와 한국의 경제 상황과 그 여파에 대해 분석한 “경제 동향,” 그리고 급격하고도 혼잡한 변화의 상황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에 대해 신학적으로 연구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교계 동향”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나 “특집”으로 실린 글들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상황 – 정보 공유 기술의 부족, 정부의 감시와 통제, 시민들의 분산된 관심 등 – 을 고려했을 때, 기독교적 사회 책임감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꺼내기조차 힘들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이에 대한 교회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연대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기사연 리포트>를 발간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비록 <기사연 리포트>는 약 2년간 총 10권의 발간 이후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지만, 기독교적 시각에 근거하여 정치, 경제, 사회의 제반 동향을 읽어내려는 기사연의 시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이후 같은 맥락으로 출판된 <기사연 무크지>, <기사연 시사논평>, <기사연 정치논단> 등은 한국 사회, 특히나 한국 기독교계에서 기사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90년대 말부터 민주사회의 발전, 시민 역할의 강화, 비기독교 NGO 단체의 활동으로 인해 기사연을 포함한 여러 기독교 사회운동 단체의 활동이 약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라는 거대한 의제가 사라진 후, 세분화된 사회적 관심에 따라 인력과 자본은 분산되었고, 자체적인 구조와 체계가 강화된 교회는 상당수가 사회운동보다는 교회나 교단의 일에 치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과거에는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칼 진영이라는 분명한 구분선이 존재했고, 각 진영에 속한 이들이 갈등과 화해를 통해 일정한 주제에 대한 신학적 공론을 만들어냈지만, 진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활동가들 간의 연대가 어려워지면서, 기사연을 포함한 다양한 기독교 사회운동 단체들의 영향력은 상당 부분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기사연은 <기사연 리포트>의 발간을 재개합니다. 이전보다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폭 넓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여러 사안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교단과 교리에 얽매여 운동력을 잃어버린 한국 교회를 깨우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기에 <기사연 리포트>의 재창간을 시대적 사명으로 여기고자 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갈등 (social conflict),” “도시(공간)정의 (urban justice),” “미디어문화 (media culture)”를 주요 관심 분야로 정하고 이러한 주제에 따른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 합니다. 각 주제에 대한 신학적 연구와 사회적 조사, 월례 포럼과 아카데미를 통한 공개적 토론 등을 바탕으로 정리된 이야기들을 한국 교회에 전달하고, 동시에 교계의 움직임을 소개하여 다양한 기독교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적 이상의 실현에 참여하려 합니다. 이제 재창간 될 <기사연 리포트>는 이전과 같이 시대의 징조를 읽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1]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 (Voice of the Voiceless)”는 살바도로의 대주교였던 오스카 로메로에게 붙여진 명예로운 수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