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09 한일 생명평화역사기행 후기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9-08-31 23:34
조회
1501
2009년 8월 23일

어떻게 써야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내가 무엇을 얼마나 느끼고 돌아왔는지를 글로 표현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많아서 항상 생각만 앞서 갔었는데 잘 쓰는 건 이제 포기하려구요.

하나하나 어디에 다녀왔는지, 어떤 느낌이 들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나열하자면 정말 길어질 것 같고 또 그만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자신이 없어 그마저도 과감히 삭제해 버렸습니다.

오늘은 달이, 하늘이 참 예뻤어요. 동생을 기숙사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하늘과 달이 보였어요. 항상 초승달을 보면서 눈썹이나 손톱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예쁘게 깎은 엄지발톱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치만 오늘은 그게 아니네요. 분명히 얇은 달의 조각인데 오늘은 그림자에 가려진 둥그렇고 환한 달이 다 보이는 것 같았어요. 왜 그럴까요. 달에게도 위로를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서울의 달은 어떤가요,
대구의 달은 어떤가요,
용인의 달은 어떤가요,
홍천의 달은 어떤가요,
무주의 달은 어떤가요,
예산의 달은, 홀로 참 따뜻하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총총 별이 참 많이도, 쏟아질 듯이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이 아름다운 것은 밤이 어둡기 때문이라고,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낸다는 말처럼, 저는 누군가를 빛내 줄 사람, 빛나는 사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되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밤인 것 같아요.

기행을 다녀온 후에, 정확히는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울컥했어요. 막연한 두려움.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뭐랄까 이제까지는 내가 내 길이라고 믿어온 길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그간 안개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다른 길들이 보여서 무엇이 진짜 내가 가야할 길인지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 두렵고 모든 안개가 걷힌다면,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길들이 내 앞에 펼쳐져 있을 것 같은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들었어요.

기행을 통해서 듣고 보고 배운 것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얻어진 그 무언가들이 '일단 휴학 없이 대학 졸업'이라는 나의 생각을 흔들어버리고 있었어요. 내가 수없이 경멸했던, 대안학교를 다니며 그것만으로도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그들과 내가 닮아있다는 느낌도 들었구요. 나는 그동안 너무 좁은 틀 안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단지 열 명의 사람을 만났을 뿐인데 이렇게 혼란스럽고 내가 믿어온 가치관들이나 삶의 방식들이 흔들리는 느낌인데 사회에 나가면 어떨까, 하구요. 우연인지 정말 주님이 제게 말씀을 하시는 건지, 호율 아저씨와 했던 아주 잠깐이지만 그 이야기와 맞물려서 그간 내가 해오던 생각들과 집에 돌아와 동생과 TV를 틀었는데 쇼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한비야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 굉장히 먹먹한 기분이 들고, 또 두려워서 울었어요. 정말 그렇게 울어본 게 얼마 만이었는지 몰라요. 누가 들을세라, 사람 많은 공동체 속에서 항상 속으로만 울었었는데.

정말,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많은데 내가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그것이 옳은 길인지. 옳은 길이 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무너져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느낌이었어요. 항상 계산해오던 나의 계산방식이 단지 일주일의 시간동안 굉장히 바뀌어 있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나도 마음속으로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항상 왜 그런 것들을 십대 때에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뿐이었어요. 대학에 입학한 이상, 내가 대학을 선택한 이상, 그 길로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거의 매일을 계산을 해가며 지친 나를 일으켜 세웠어요. 졸업하면 스물 네 살이고, 대학원과정을 마치면, 만약 유학을 간다면, 휴학은 절대 안 돼, 3학년이 되면 실습해야하니까 바쁘겠지, 그러면 그 전에 자격증 몇 개를 따 놓아야 하고…… 하지만 내게 아직 많은 시간이 있다는 걸, 전혀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어요. 첫 번째는 호율아저씨와 짧은 배식 봉사를 마치고 걸어오는 길에 한 이야기(사실,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만). 두 번째는 김동기 할아버지가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 이런 일 했을 텐데"라고 하셨던 말씀. 그리고 집에서 기행에 대해 이야기 하고, 나의 두려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엄마가 해 주신 "조급해 하지 마, 너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지원자 두 명이 있잖아." 라는 격려.

그동안의 제 삶들이 철저하게 잘못되었다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예요. 내가 알지 못하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많은 길과, 그 길에 대처하는 제 방식이 조금 수정된 것 뿐이니까요. 사실, 아직도 두려워요. 한비야씨가 나온 프로그램에서 그 분은 자신이 하는 구호 활동을 "내 가슴이 뛰고, 내 피가 끓는다. 이 일을 만난 건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다."라고 하셨어요. 제 가슴이 뛰고, 피가 끓는 일들은 무엇일까요? 두 달이 넘는 방학을 아무렇게나 보내다가 개학이 일주일 남은 이 시점에서 이런 생각을 하니 또 조급해지네요.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은 정말 시체만도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소크라테스와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들처럼 살고 싶다고 머리로는 생각해도 몸은 항상 현실과 타협하고 쉽고 재미있는 것에만 이끌려 다녔어요. 지금 이 글을 아주아주 구체적으로 쓰고 싶어요. 훗날 또 나태해지고 현실과 타협하고 있을 무렵에, "윤지원, 네가 이런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라고 보여주고 싶거든요.

한순간에 계획이 나올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일단 학교를 지금 휴학하고 어디로 떠나버리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그건 되게 도피 같은 생각도 드네요. 학교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배우면서 책도 많이 읽고, 기도도 열심히 해서 제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일지 생각도 해 보고, 또 많은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조금 더 여유 있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너무 훌륭한 분들만 만나서 나도 그렇게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유명해지지 않아도, 위대해 지지 않아도, 항상 기뻐하고, 사랑하며 살아서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같이 기쁘고 또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게 평화라는 생각도 들어요.(확신은 아니지만요)

아아-, 아직도 횡설수설, 정리되지 않아요.

주님이 제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함께 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래요.

*고등학교 도서실에 붙여있던 글귀가 기행 내내 생각이 났었어요. 말할 기회는 없었지만.
이런 글이 쓰여 있더라구요.
<평화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가 길입니다.>

아, 쓰고 보니 맞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평화가 길이래요. 그럼 저는 그 길을 찾아야겠어요.
조급해 하지 않고.

**기행인원, 처음엔 너무 적어서 망설였는데 차로 이동 할 때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 단체 할인 받을 때, 다들 한마디씩 소감 나눌 때, 아주 좋았어요. 사람이 많으면 그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겠지만 적은 것도 장점이, 것두 무지하게 큰 장점이 있었어요. 많은 것 느끼고 돌아옵니다.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