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연리포트14호) 차별금지법, 무엇을 하려고 하는 법인가?
차별금지법, 무엇을 하려고 하는 법인가?
– 차별금지법의 쟁점과 과제
홍 성 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 들어가며: 차별금지법의 역사
차별금지법이 연일 화제다.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고 각계각층의 찬반 논란도 뜨겁다. 사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1998년 인권을 주요 국정이념으로 내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2000년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통과되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인권’이 주요한 국가적 이념과 과제로 자리 잡았다. 국가보안법과 양심적 병역거부 등 몇 가지 해묵은 과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한국은 어느덧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의제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실제로 고문, 자의적 구금, 수용자 인권 등의 의지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차별’ 문제다. 차별은 사인 간에서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 기준과 판단, 그리고 구제가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 일례로 고문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구제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문의 개념과 기준을 정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며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고문행위자를 엄벌에 처하면 된다. 정부당국의 의지가 문제일 뿐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반면, 차별은 일단 무엇이 차별인지 기준을 정하기가 조차 쉬운 일이 아니고, 사적 개인이 하는 차별행위에 대해 어디까지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도 까다로운 일이다. 고문처럼 엄벌에 처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러한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법제를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위해 차별의 개념과 구제방법이 정해져 있고 그 주관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 차별을 구제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취임 후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섰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한국이 인권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조건 중 마지막 퍼즐이나 다름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섰지만 많은 암초에 부딪혀야 했다. 일부 개신교계의 반대도 있었지만, 경영계의 반발도 있었고, 법무부 관료들의 저항도 있었다. 2006년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을 내지만, 2007년 법무부가 이보다 한참 후퇴한 내용의 차별금지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차별금지법 입법은 실패로 돌아간다. 다행히 그 이후에도 명맥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2008년 정동영 후보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약속했었고, 17, 18, 19대 국회에서 여섯 차례나 의원입법으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다. 2012년 문재인 대선 후보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제출했다. 하지만 2013년경부터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사실상 후퇴 국면에 돌입한다.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두 개의 법안이 보수개신교 등의 반발에 못 이겨 철회되는 비극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 때부터 인권이나 차별에 관련된 법안들은 줄줄이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핵심은 차별금지사유에 성적 지향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인권이나 차별금지가 들어간 법안들의 입법이 같은 이유에서 줄줄이 반대에 부딪힌다.
한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이 추진되었다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법무부 산하에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가 설치되었고, 동등대우법안이라는 이름의 차별금지법안이 성안되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이 국정 과제로 채택되어 법무부에 차별금지법TF가 설치되고 동등대우법안이 성안되었다. 물론 이들 보수정부에서 진지하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된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형식적으로나마 차별금지법 추진이 명맥을 유지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차별금지법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적인 법제라는 점을 방증한다.
그리고 2020년 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예시법안이 제출되었다. 전례 없이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고 나섰다. 2000년대 중반 이후 15년 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특히 개신교의 여러 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인 것에 주목할 만하다. 총 1,384개 개인/단체/교회가 연명하여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위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지지합니다”를 필두로 해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성명서를 낸 것이다. 여러 개신교계 단체들이 차별금지법 강연이나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신교 내에서는 여전히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강하다. 특히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이나 단체들이 차별금지법에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아래에서는 차별금지법의 기본적인 취지와 내용을 다루면서 특히 차별금지법이 종교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검토해보려고 한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일단 차별금지법과 기존의 차별 관련 법률, 그리고 입법 논의가 되고 있는 법안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기존의 차별 관련법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양성평등기본법’, ‘남녀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폐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기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등을 들 수 있으며, 논의가 진행 중인 법안으로는 정보소외계층차별금지법안, 성차별·성희롱금지법안, 학력차별금지법안, 지역차별금지법안 등이 있다. 이외에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근로기준법, 고용정책기본법, 아동복지법, 방송법, 교육기본법,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 장애인복지법 등에도 차별금지조항들이 있다. 이러한 차별 관련 법제들은 개별적인 사유와 개별적인 영역에서의 차별을 규율한다는 점에서 ‘개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모든 사유와 영역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이다. 일각에서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있는데 굳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첫째, 개별적 차별금지법들은 차별이 금지되는 특정한 사유(차별금지사유) 또는 특정 영역(차별금지영역)에서의 차별금지를 규율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고,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영역에서의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차별금지사유와 차별금지영역마다 하나하나 법률을 만드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차별금지사유가 대략 20개 정도 되고, 차별금지영역이 4개인데, 80개의 법률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둘째, 차별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차별의 피해자는 소수자와 약자일 수밖에 없는데, 복합적 사유로 차별을 받고 있는 소수자/약자의 경우에는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여성이자, 장애인이면서, 소수종교를 믿고 있고, 인종적 소수자인 경우라면 차별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사람이 어떤 사유로 차별받았는지는 불분명한 경우가 적지 않다. 차별을 받은 것은 분명한데, 여성이어서인지, 장애인이어서인지는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여러 사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사유를 콕 집어서 특정한 법률에 근거해서만 구제를 받을 수 있다면 구제를 받기도 어렵고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요 국가에서는 여러 차별금지사유를 이유로 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두고, 차별시정 등 구제절차 역시 단일한 차별시정기구에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사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의 대부분은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로 포함하는 것에 대한 반대나 다름이 없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분들에게 그렇다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고용영역에서의 차별금지법’을 제정은 어떠하냐고 묻고 싶다. 그것도 반대할 것이다. 에둘러 가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진다. 차라리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로 포함하는 법에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얘기해야 논점이 분명해진다.
- 차별금지사유: 차별이 금지되는 이유들
이제 본격적으로 차별금지법의 내용에 대해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따라서 차별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차별금지법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차별금지법이 정의하는 차별은 다음과 같다 (장혜영 의원 대표발의 차별금지법안).
이 법에서 차별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 또는 경우를 말한다.
-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이하 “성별등”이라 한다)을 이유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가. 고용(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승급, 임금 및 임금 외의 금품 지급, 자금의 융자, 정년, 퇴직, 해고 등을 포함한다)
나. 재화·용역·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
다. 교육기관 및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훈련이나 이용
라. 행정서비스 등의 제공이나 이용
여기서 ‘성별 등’으로 제시되어 있는 목록을 보통 ‘차별금지사유’ 또는 ‘금지되는 차별사유’라고 부른다. 차별이 될 수 있는 이유나 근거 또는 특성을 말한다. 즉, 성별 등을 이유로 해서 누군가를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가 차별인 것이다. 차별금지사유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근거로 차별금지사유가 정해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일단 차별금지사유에는 타고 난 것이며 어떤 개인의 일부인 것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인종, 장애, 나이 등이 대표적이다. 타고난 것을 가지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명제에 많은 설명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장애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고 등에 의해서 갖게 되는 경우도 있고, 사회적 신분에는 가문, 혈통 등 타고난 신분뿐만 아니라, 직업이나 지위 등 나중에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갖게 된 것도 포함된다. 종교는 아예 출생 이후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즉 차별금지사유는 타고난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며 쉽게 바꿀 수 없고, 타인이 바꾸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들을 포함한다.
일부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사유로 포함되는 것에 반대하면서, 성적 지향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며 심지어 치료받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까지 한다. 하지만 동성애나 트랜스젠더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는 논쟁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식이면 종교도 개인의 선택에 따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차별금지사유에서 제외되어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개신교도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차별을 받았을 때 우리는 그에게 “종교를 바꾸지 그러세요”라고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차별을 받았을 때, “이성애를 하시면 안 되나요?”라고 충고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동성애나 트랜스젠더가 어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지, 자유의지에 따라 쉽게 벗어날 수 있는 문제인지, 타인이 그 정체성을 포기하라고 강제할 수 있는지 이다. 타인이 함부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고유의 정체성에 해당한다면 그것을 이유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는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누군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인정될 수 있다면 그것을 근거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차별금지사유에는 주요 국가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성별, 장애, 나이, 인종, 성적 지향, 종교 등의 사유가 있고, 고용형태, 병력, 언어 등과 같이 국가별로 차별금지사유로 두기도 하고 두지 않기도 하는 사유도 있다. 유엔의 공식 문서에서도 성적 지향은 차별금지법에 포함되어 있다. 국제인권규범 중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조 제2항에 차별금지원칙이 명시되어 있는데, 1966년 채택된 이 문서에는 차별금지사유를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로 규정하고 있다. “기타의 신분”이라고 해서 여지를 남겨둔 것인데, 2009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위원회가 “일반논평20: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서의 차별금지”(E/C.12/GC/20)에서 기타의 신분에 속하는 차별금지사유가 무엇인지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장애, 나이, 국적, 혼인과 가족상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건강상태, 거주장소, 경제적, 사회적 상황” 등이 차별금지사유에 포함된다. 이외에도 <자유권위원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구들 역시 공식 문서를 통해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사유에 포함된다는 점을 일관되게 확인한 바 있다. 특히 최근에는 아예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원칙을 특정한 결의문과 보고서가 연달아 채택된 바도 있다. 국제사회에서 성적 지향이 보편적인 차별금지사유로 자리 잡았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한국은 이미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법을 통해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사유로 규정하여 이미 20년 가까이 운용해 왔고, 이를 근거로 수많은 법령들이 운용되어 왔는데, 이제 와서 차별금지사유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숫자가 적다며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이 사소한 것인 듯 치부하는 입장도 있지만, 이것은 차별 문제의 특성을 무시하는 얘기다. 직접 보고 들은 차별 사례가 없을 수는 있지만, 그건 차별이 실제로 없어서가 아니라 본인이 차별을 인지할 만 상황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사람한테 누가 동성애로 인한 차별을 호소하겠는가? 그런 사람한테 어떤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여 친구로서 동료로서 교류하고자 하겠는가? 현실은 전혀 다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양성애자 응답자 중 14.1%가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해고나 권고사직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본인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진정 건수는 차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장애 차별 진정 건수는 대폭 증가했다. 그렇다면 2008년 이전에는 장애인 차별이 없었고, 그 후에는 장애인 차별이 늘어난 것일 리는 없다. 그동안 차별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당사자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됨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비로소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진정 사례가 많지 않은 것은 성소수자들이 권리투쟁에 나서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걸 보고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수자 차별의 현실을 무시한 너무나도 무지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 차별이 금지되는 영역: 종교는 차별금지영역이 아니다.
위의 차별 개념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차별금지영역이다. 즉 차별금지법상 금지되는 차별은 1) 고용, 2) 재화·용역·시설, 3) 교육, 4) 행정서비스, 이렇게 네 영역에 한정된다. 즉, 이 영역 이외에서 벌어지는 차별도 차별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은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제외되어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종교 영역이다. 따라서 종교 영역에서의 차별은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에서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지만,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은 아니다. 개신교의 어떤 교단에서 동성애자의 목사 안수를 금지했다고 해서 불법은 아니다. 물론 필자는 개인적으로 가톨릭의 여성차별이나 개신교의 동성애 차별에 매우 비판적이다.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법으로 금지해서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별금지법의 제안자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종교영역에서의 차별도 차별금지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단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다. 차별금지법은 의도적으로 종교영역을 관할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그런 면에서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명백한 오해이다.
다만 종교가 세속사회와 접속할 때는 차별금지법의 규율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교단에서 성직자를 뽑을 때 차별금지사유로 차별을 하는 것은 법이 금지하지 않지만,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사람을 채용하거나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할 때는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이것도 종교의 자유에 속한다고 주장하며 거부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 종교가 자신의 교리를 사회에서 관철시키려고 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신교계에서 만든 대학에서는 개신교 신자만 교직원이 될 수 있고, 불교계에서 만든 사회복지시설에서는 불교 신자만 수혜 대상이 되며, 가톨릭계에서 운영하는 회사에서는 가톨릭 신자만 채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일이 허용된다면 종교에 중립적인 세속 국가의 토대가 무너지게 된다. 종교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다양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한 국가 공동체에서 종교와 무관하게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이를 위한 최소한의 공존의 조건을 마련하는 법이다.
또한 종교가 사회에 접속하여 사람을 채용하고 학생을 모집하는 순간 사회로부터의 수많은 혜택을 공유하게 된다. 예를 들어,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는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과정과 시스템 내에서 운용되는 것이며 교육부가 인증한 학위를 준다. 심지어 직접적인 재정 지원도 받는다. 국가와 사회가 제공하는 유익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인 고용이나 교육을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종립학교나 종립사회복지시설들도 국가 공동체의 기본적인 규칙을 따를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게 싫다면, 완전히 독립적인 기관을 만들면 된다. 실제로 차별금지법에서 말하는 ‘교육기관’은 “교육부장관의 평가인정을 받은 학습과정을 운영하는 교육훈련기관” 등에 한정되어 있다. 완전히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교육기관에서의 교육은 차별금지법의 규율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제공하는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국가 공동체의 최소한의 규칙은 따라야 한다. 즉, 차별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종교가 사회로 나온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인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가 사회와 절연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차별금지영역에서도 종교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편적인 사랑의 정신으로 승화시키고, 부처님의 자비도 보편적인 자비의 이념으로 재해석하여 그것을 고용이나 교육에 반영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즉 종교의 정신으로 설립된 회사에서 채용지원자들에게 ‘신앙 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사훈인 (세속화된 의미의) ‘서로 사랑하자‘에 동의하는지 묻는다면 문제될게 전혀 없다. 대표적인 미션스쿨인 연세대학교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진리와 자유의 정신에 따라 사회에 이바지할 지도자를 기르는 배움터”임을 표방하고 있다. 종립 학교에서 교직원이나 학생을 뽑을 때, 이러한 건학이념에 동의할 것은 묻는 것은 문제될게 없다. 채플 수업도 특정 종교 제례가 아니라, 세속화된 건학이념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차별에 해당할 여지가 없다.
다른 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종교가 국가를 부정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거나 여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법의 통제 대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종교가 학교를 세우고, 사회복지재단을 만들고 회사를 설립할 때에 그러한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을 허용할 수 있을까? 그것을 불허한다고 해서 종교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교가 분리된 국가의 당연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특정 종교가 사회에 나가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겠다는 것도 당연히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 차별을 구제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검토해볼 문제는 차별금지법의 구제 방법이다. 흔히 차별금지법이 엄청난 강제수단을 가지고 세상을 쥐락펴락 하는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이 차별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차별인지 아닌지가 무 자르듯이 딱 나뉘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맥락도 고려되어야 한다. 명백하고 비난가능성 높은 차별도 차별이지만, 해악이 크지 않은 낮은 수위의 차별도 차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를 법으로 규율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금지되는 차별행위를 최대한 좁히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차별금지사유나 차별금지영역을 줄임으로써 차별의 범위를 아주 좁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의 다양한 차별 문제들을 규율하려는 차별금지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현실적으로도 어떤 사유와 영역을 제외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그렇다면 차별의 범위를 그대로 두고 규제방법을 유연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차별의 개념을 넓게 잡은 만큼 제재수단을 유연하고 다양하게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차별금지법은 대체로 이런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최근의 한 사건을 생각해보자. 한 정치인이 “정치권에는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것은 ‘차별’일까? 일종의 차별이라고 할 수 있고, 최소한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정치인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적절한 일일까?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수사하고, 세 번의 재판을 통해 판결하는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일까? 지난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차별행위 중단과 재발 방지책 마련 등의 조치를 권고했다. 구제방법도 처벌이 아닌 행위 중단과 대책 마련이고 그나마도 강제력이 없는 권고에 불과했다.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에 제정되면 차별시정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사정기관이 될 것처럼 불안감을 조성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차별금지법상 차별시정은 ‘시정권고’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차별행위를 한 사람에게 차별의 중지나 구제 또는 재발방지 조치 등을 ‘권고’하는 방법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즉, 차별금지법의 구제 조치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강제로 단번에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시정권고의 효력을 보충하기 위해 몇 가지 보완적 구제수단을 두고 있다.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시정명령제도을 두고 있다. 시정권고에 불복하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식인데, 당사자가 이에 불복하면 법원의 판단에 맡겨지게 된다. 결국 법원이 차별이라고 판단해야 차별이 되는 것이다. 인권위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기간제법 등에 시정명령제도가 있지만, 오히려 시정명령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인권위의 평등법 예시법안에는 시정명령제도를 두고 있지 않다. 시정명령제도의 남용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시정명령제를 제외하면 되는 것이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
또한 차별금지법에는 소송지원, 법원의 임시-적극 조치 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증명책임 전환 등 차별 관련 소송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들을 규정한다. 시정권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 호소할 수 있게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에서 판단되는 차별은 해악이 명백한 일부 차별행위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차별 구제를 위해 법원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일각의 우려처럼 법원의 차별시정 조치가 남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나아가며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의 여러 쟁점들을 살펴봤다. 많은 분들이 차별금지법의 남용을 우려하지만 실제로 차별금지법은 제한된 일부 영역에서의 차별만을 관할하며 그나마도 강제보다는 설득과 협력에 의존하는 유연한 방식으로 차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봐도 이미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법제로 자리 잡은 내용일 뿐이다. 종교의 자유와의 충돌을 우려하지만 실은 정교가 분리된 국가에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종교를 믿건, 어느 지역 출신이건, 장애가 있건 없건, 성적 지향이 무엇이든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인권과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