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최근버마소식(2007.9)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7-10-08 23:43
조회
1130
**최근 버마시민의 용감한 민주화 투쟁은 이미 언론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지만, 그후 계속되는 군부정권의 탄압하에 있는 버마 시민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지난 9월의 투쟁일지를 실는다. 9월 18일 이전은 <버마민주소리>의 소식을 싣고 그 이후는 한국의 신문기사를 뽑아 실었다. 민주인사들은 군사독재가 버마라는 국호를 미얀마라고 바꾼 것을 인정하지 않고 버마라는 국호를 고집하고 있어 지금까지 우리도 이를 존중하고 따르고 있지만 미얀마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는 언론의 기사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운영자


*미얀마 비밀경찰 극성…“체포자 최소 1천300명”
2007-10-01

미얀마 진압군의 무자비한 폭력 못지않게 군사정부 산하 비밀경찰이 극성을 부리면서 시위대 검거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인상으로 촉발된 가두시위가 시작된 이후 비밀경찰의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특히 진압군의 시위대 강제진압이 시작된 26일부터 밤마다 수십명씩 경찰에 체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시위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다 체포령이 내려져 태국으로 탈출한 정범래(41)씨도 "미얀마에는 50호 담당제와 100호 담당제 등으로 보안부대와 비밀경찰의 주민 감시체제가 잘 짜여있다"고 말했다.

최대 10만명이 양곤시내에 운집했던 민주화 시위가 급속히 시들해진 것도 진압군의 폭력 진압과 함께 비밀경찰의 검거 선풍이 일었기 때문으로 미얀마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얀마 경찰은 유가인상으로 촉발된 가두시위가 지난달 17일부터 벌어지자 시위를 이끌던 민주단체인 '88세대 학생' 지도자 등 반체제 민주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령을 내린 바 있다. '88세대 학생'은 1988년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학생단체다.

당시 AP통신은 이들 반체제 인사들을 검거하기 위해 비밀경찰은 물론 폭력배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홍콩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인 '아시아인권위원회'는 이날 현재 승려 700명과 시민 500명 등 최소 1천300명이 군정당국에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사라진 승려들…7백여명 연행
군, 시위주도세력 원천봉쇄
야당 등 400여명 체포
2007-09-30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가 위축된 양상을 보이는 것은 군사 정부의 ‘노련한’ 압박책이 위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위대에 대한 발포와 더불어, 이번 시위를 주도한 승려들에 대한 ‘봉쇄’가 민주 진영의 예봉을 꺾는 데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28일부터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승려들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29일 양곤 중심가의 기습 시위에서 승려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군사정권은 26일 밤부터 양곤 시내 사원들을 뒤져 시위에 적극적인 승려들을 중심으로 7백여명을 연행해 갔다.

군사정권은 에너지 가격 폭등이 도화선이 된 이번 사태의 초기인 지난달 중순에 이미 1988년 대학생 지도부 출신인 ‘88세대’ 13명을 구금하며 기민하게 대응했다. 이달 들어 사태가 확산되자, 야당인 민족민주동맹 간부 40여명을 비롯해 요시찰인물 4백여명을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속을 피한 야권 인사들은 ‘지하’로 숨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승려들의 조직력은 결정적 동력이 되어왔다. 이번 시위 과정을 지켜봐 온 한 시민은 “처음에는 스님들이 자기들끼리만 하겠다며 시민들한테 시위에 나서지 말라고 했다”며 “‘스님들이 저러는 것을 보니 눈물이 난다’는 사람들이 합류해서 시위가 커졌다”고 전했다.

현지의 한 소식통은 “확산되던 시위가 한풀 꺾이고 산발적인 형태로 된 데에는 요주의 인물들을 꽁꽁 묶는 방식이 효과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군부 집권 장기화로 감시와 통제 기법이 발전한 것도 이런 대응을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군사정권은 외부와의 주요 연결수단인 인터넷을 차단하며 세계의 관심으로부터 나라를 고립시키고 있다. 군사정권은 과거 국제전화를 끊는 극단적 방법을 쓰기도 했다.



*미얀마 민주운동가 “한국 민주화 사례가 큰 힘”
2007-09-30

미얀마 군사정권에 대한 반정부 민주화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국내로 망명한 미얀마 민주화운동가들은 한국의 과거 민주화 경험이 미얀마 민중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조모아(Zaw Moe Aung)씨는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민주화 사례에 대해 버마 국민들도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버마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조모아씨는 "한국도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 당시 국제사회의 도움을 많이 받지 않았느냐"며 "이제 버마 사태에도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길 바란다"며 한국인들의 관심과 후원을 호소했다.

1988년 버마 민중항쟁에 참여했던 조모아씨는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1994년 한국에 망명, NLD 집행위원 등을 맡아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각종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조모아씨는 "한국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있다"며 정부 역할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민주화 경험이 있는 한국 정부가 아시아 평화의 일환으로 버마 민주화를 위해 미얀마 군부에 정치범 석방을 요청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전날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 후보와 면담을 한 조모아씨는 앞으로도 국회의원과 대선 후보 등 정치권 인사들과 접촉해 미얀마 현지 실태를 알리고 도움을 호소할 계획이다.

현지 민주화 시위에 대해 미얀마 정부는 사망자 9명이라는 공식 발표를 내놓고 있지만 조모아씨는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사망자만 100여명이다. 부상자들도 200여명이나 돼 모두 300여명의 사상자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미얀마 출신 해외 망명자와 노동자들은 가족과 친지들의 피해 여부를 걱정하고 있지만 전화가 없는 집이 많아 직접 연락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 조모아씨의 전언이다.


한국만 해도 미얀마에서 온 이주 노동자와 정치적 망명자가 모두 3천여명이나 된다는 것.

이들 중 200여명은 한국 내 인권운동가 100여명과 함께 이날 서울 한남동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에 모여 현지 정부의 민중 학살 중단과 군사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부평역 앞으로 이동해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회견문을 통해 "우리가 머나먼 땅 한국까지 와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국민들의 삶보다 잇속 채우기에만 급급한 군부 독재정권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고 밝혔다.



*미국소재 반정부단체 “미얀마 사태 희생자 200명선”
2007-09-30

미얀마 관영언론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일본인 사진기자 1명을 포함, 모두 9명이 숨졌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실제 사망자 수는 200명 선에 이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워싱턴 소재 반(反) 군사정부 단체인 '버마를 위한 미국 운동'은 지난 사흘간의 유혈 진압으로 시위 참가자 약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30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전했다.

이러한 주장은 사망자 수가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미얀마 주재 호주 대사관 등 외교 소식통과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발언과 일맥상토하는 것이지만 '버마를 위한 미국 운동' 역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신문은 또 전화로 인터뷰한 미얀마의 한 언론인을 인용해 군과 경찰이 달아나는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으며 최소한 4명의 젊은이가 등에 총격을 받아 즉사했다고 전했다.

한편 프랑스 파리 소재 미얀마 망명정부의 지도자 세인 윈은 29일 에펠탑 인근에서 미얀마 군사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해 "군은 (보호해야 할) 국민에 대해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는 "서방세계는 군사정부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미국과 유럽 각국의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승려들 잡혀가자 시민·학생 전면에
정부, 온·오프 시위진압 강경…사찰 폐쇄에 인터넷도 봉쇄
2007-09-28

대규모 시위 11일째

“군부가 학살을 감추려 주검을 은닉하고 있다.” “드디어 어린 학생들도 거리로 쏟아지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계속된 29일 미얀마 정부는 29일 시내 사찰 5곳을 폐쇄하며 강경 일변도의 진압을 이어갔다. 정부는 시위 소식 확산의 주 통로인 인터넷을 차단하는 등 ‘온 오프 시위진압’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위대는 더욱 어린 학생들과 평범한 시민들이 가담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타이에서 운영되는 인터넷 신문 〈이라와디〉는 정부가 술레탑 근처 대로변에 철조망을 치고, 양곤 시청 근처에 장갑차 10대를 배치하는 등 시내 곳곳에 무장력 배치를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날 정오 정권을 뺏긴 민족민주동맹(NLD)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평화 행진을 벌였다며 “어린 학생들도 중간 고사를 거부하고 거리로 쏟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가디언〉 인터넷판은 정부가 승려 체포가 시위 확산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사태 초기 불경을 외우며 평화롭게 행진하는 승려들을 보며 눈물짓지 않는 이가 없었다”며 “이제 승려들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대신 시민들이 사찰을 막아선 군인들에게 ‘승려들을 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영국 〈비비시〉(BBC)의 게시판에는 정부의 유혈 진압과 사망자 은폐 기도에 대한 증언이 잇따랐다. 와이라는 시민은 “군부가 총격을 가해 많은 시민들을 죽인 뒤 이런 비인간적 행위를 감추기 위해 주검을 치우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도 총을 맞고 쓰러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철저한 통제로 ‘철권통치’ 16년째 유지
‘유혈 진압’ 군사정권, 탄 슈웨는 누구
74살 고령에 건강도 나빠져
정국혼란 틈타 권력암투설
2007-09-29

미얀마 군사정권의 핵심은 16년째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탄 슈웨(74) 장군이다.

탄 슈웨는 1962년 미얀마에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세 번째로 등장한 최고지도자다. 92년 병력 40만명을 지휘하는 군 최고통수권자에 올랐다. 93년 장군 12명으로 구성된 국가평화개발평의회(SPDC)를 만든 뒤 의장으로 취임해 최고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스무 살에 군에 입대한 뒤 16차례 이상 훈장을 받으며 고속승진했다. 92년 권력을 거머쥔 뒤 “군부가 권력을 오래 잡고 있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탄 슈웨는 군부 안에서도 초강경파이자 민족주의자로 알려졌다. 미국·영국 등이 자국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노려 국내 위기를 부추긴다며 비난하고 있다. 거미줄 같은 정보망과 엄격한 정보통제가 권력을 유지하는 주요 수단이다. 그는 미얀마 민주세력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를 극도로 싫어해 일체의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그의 앞에서 수치의 이름을 꺼내는 게 금지돼 있다고 전해진다.

탄 슈웨는 미신에도 사로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를 양곤에서 2005년 11월 뱀과 말라리아가 들끓는 정글 속의 네피도로 옮긴 것은 점성술사의 말을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에는 딸의 초호화판 결혼식이 공개돼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최근에는 탄 슈웨의 권력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고령인데다 건강이 나빠 올해 1월 싱가포르에서 2주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홍콩 <아주시보>는 “탄 슈웨가 현 정권의 위기에 대처할 정신적 능력과 정치적 판단력을 지니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27일 전했다.

2인자는 국가평화개발평의회 부의장인 마웅 에이(69)다. 그 역시 탄 슈웨 못잖게 냉혹하고 비타협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마약조직과 끈끈한 관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탄 슈웨의 최측근은 소 윈(58) 현 총리로, 88년 민주화 시위 탄압을 주도했다. 슈웨 만(60) 장군은 탄 슈웨의 잠재적 후계자로 꼽힌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온건파로 수치와 협상론을 폈던 탄 슈웨의 군부 내 경쟁자인 킨 뉸 장군은 2004년 총리직에서 숙청됐다.




일부에서는 현재 군부 내 갈등이 빚어지고 있고, 최근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다른 군부 지도자가 탄 슈웨를 밀어내고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비비시> 방송은 군부의 투명성 부족이 권력암투가 벌어진다는 소문을 낳고 있다고 전했다. <아주시보>는 “군부 내의 갈등과 반란이 있을 때만 승려와 시민들이 군부 독재를 뒤엎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찌됐든 군부는 수십년 만에 강력한 국내외 압력 속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 군, 시위대에 또 발포…최악 국면 치달아
2007-09-28


?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 중심가에서 27일 무장한 군과 경찰이 시위대를 강제진압하고 있다. 총격을 받은 일본 기자 나가이 겐지가 쓰러진 뒤에도 촬영을 계속하는 모습이 오른쪽에 보인다. 양곤/로이터 연합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진 27일 미얀마 군·경이 또다시 시위대에 발포해 적어도 9명이 추가로 숨지면서 사태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계속되는 유혈 사태=미얀마 정부 대변인은 이날 양곤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군·경이 발포해 일본인 1명과 시위대 8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일본 외무성은 숨진 일본인이 현장을 취재 중이던 비디오뉴스 <에이피에프>(APF) 기자 나가이 겐지(50)라고 확인하고, 미얀마 정부에 엄중한 책임을 묻고 진상조사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도쿄 주재 미얀마대사를 소환했다. 목격자들은 양곤 동부 도로에서 트럭을 타고 나타난 군인들이 시위대 3명을 사살한 뒤 주검을 길가 도랑에 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곤 시민 5만여명은 5명이 숨진 전날의 유혈 사태에도 아랑곳않고 10일째 시위를 이어갔다. 학생들과 승려들은 술레탑 길목을 차단한 무장병력 앞에서 손뼉을 치고 국가를 부르며, 소리 높여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이들은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은 국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외치며 항의했다. 파준다웅강 다리와 술레탑 부근에 운집한 시위대는 총격과 심한 구타를 당하면서 해산당했다. <시엔엔>(CNN)은 군이 기관총까지 사용했다는 목격담도 있다고 전했다.



? 민주화 시위 11일째 맞은 미얀마

미얀마 군은 또 26일 밤과 27일 새벽 양곤 안팎의 사찰 6곳을 습격해 시위에 가담한 승려 수백명을 연행했다. 양곤 동쪽 마을에서는 사원 침탈에 항의하는 주민 1천여명이 군 트럭에 돌멩이를 던졌다.

군사정권의 승려들 단속은 이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전버마승려동맹’은 22일 성명에서 군사정권을 “사악한 군사독재 체제”이자 “모든 시민들의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버마 땅에서 영원히 축출하자”고 촉구했다. 경제적 요구에서 시작한 시위가 정권 퇴진·축출 투쟁으로 발전하는 데 승려들이 주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시위를 승려들의 법의 색깔에 맞춰 ‘사프란 혁명’이라 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 움직임=198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 돼온 아웅산 수치(62)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24일부터 시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민족민주동맹은 시위의 선봉에 선 승려들과 연대해 반정부 투쟁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기름값 인하 등 경제 문제 해결 △시위 전후로 체포된 정치범 석방 △군부와 정치인들 사이의 대화 재개를 요구하는 등 일단 평화적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제민주연대 김경 상임활동가는 “시위대의 요구는 90년 선거 결과를 수용하라는 민주화 세력의 요구와 같은 맥락에 있다”며 “그동안 탄압 속에서도 ‘88세대’등 민주화 세력이 끊임없이 발언하면서 연대해 온 게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 통신 등은 미얀마 군정이 24일 가택연금 중이던 수치를 인세인 교도소로 이감해 시위의 구심점을 제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얀마 경찰은 이를 부인했다. 미얀마 군정이 1989년 계엄 당시 “공공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수치를 가택연금한 이후, 수치는 지난 17년 가운데 11년 동안 삼엄한 경비 아래 집 안에만 머물러 왔다. 22일 자신의 집으로 지지자 2천여명이 몰려들자, 수치가 집 앞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목격됐다.




*미얀마 군부, 시위대에 발포 대규모 유혈사태 우려
2007-09-27

미얀마에서 반정부 시위가 20여년 만에 다시 고조돼, 대규모 유혈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26일 양곤 시내에서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프랑스 대사관의 에마누엘 무리에는 <아에프페>(AFP) 인터뷰에서 “보안군이 처음엔 공중에 경고사격을 하더니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고 말했다.

사상자도 잇따랐다. <시엔엔>(CNN)은 ‘버마의 민주주의 소리’ 관계자의 말을 따 “적어도 5명의 승려가 숨졌다”고 보도했다. 걷기 힘든 몸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80살 승려가 진압봉에 머리를 얻어맞는 등 1백여명이 다쳤다는 목격자들의 증언도 나왔다. 시위대 200여명이 체포·연행됐으며, 이들 가운데 절반 가량이 승려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승려들이 이끄는 반정부 시위대는 9일째 양곤 시내에서 거리행진을 벌였으며, 이날 군경은 이들을 해산하기 위해 처음으로 실탄 사격 및 최루탄 발사, 진압봉 사용 등 무력 진압에 나섰다. 소총으로 무장한 군과 경찰은 시위대의 집결지인 쉐다곤 파고다 등 시내를 통제했다. 파고다는 미얀마 불교 최대의 ‘성지’로, 1988년 3천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 ‘888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날 오전 군·경 진압대는 행진을 시작한 승려 1천여명을 향해 최루탄을 쏴 해산시켰으나, 시위대는 외려 10만여명 규모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새벽 양곤과 만달라이에선 군용트럭에 실린 대형 확성기를 통해 ‘야간통행 금지’ ‘5명 이상 모임 금지’ 등이 발표됐다.



*시위대 10만명 ‘랑군의 봄’ 방불
승려동맹 “군부독재 타도”…전국으로 번져
2007-09-27

오랫동안 고립된 독재국가 미얀마에서 반정부 시위가 20여년 만에 다시 고조되고 있다.
1988년 대규모 민주화시위 유혈사태인 ‘랑군의 봄’ 전야를 방불케 하고 있다. 미얀마 사회에 영향력이 큰 승려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주민들이 가세하고, 군정이 발포하는 등 사태는 대규모 유혈충돌의 길로 치닫고 있다.

민주화 시위로 확산?=이번 시위는 물가 급등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달 15일 연료 가격을 전격 인상했다.

하룻밤 사이 디젤 가격이 두 배, 천연가스 가격이 네 배 오른 이 조처로 물가급등이 초래됐다. 생필품을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 500여명이 시작한 시위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끌고 있는 국내 민주화 세력에 의해 확산됐다. 정부는 무차별적 구타와 체포 등으로 대응하며 ‘과잉진압’에 나섰다. 이달 5일엔 승려들까지 이를 비난하며 거리로 나서 양곤의 시위대 규모가 24일엔 10만명에 이르는 등 위협적인 규모로 확대됐다.

문제는 이 시위가 민주화 운동으로 확대될지다. 정부 당국이 무장 병력을 배치하고 강경 진압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황은 1988년 당시의 민주화시위 사태로 치닫는 형국이다. 21일 시위를 주도한 버마승려동맹은 현 정권을 “인민의 적”으로 묘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미얀마 땅에서 군부독재를 몰아낼 것”이라고 선언하고, 미얀마의 범국민적 참가를 촉구했다. 25일 시위에선 시위대가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외쳤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딜레마에 빠진 군정=승려들의 시위 참가로 시위 양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88년에도 승려들은 시위를 주도했다. 승려 사회의 규모는 수십만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승려들에 대한 폭력이 곧장 전국적 시위로 연결될 것으로 예상한다. 14개 주 가운데 7개 주에서 이미 시위가 보고됐다. 군정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시위 상황은 입에서 입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졌으며, 인터넷, 위성티브이 등을 통해 전세계에 중계되고 있다.

국제사회도 가세하고 있다. 미얀마를 ‘폭정의 전초기지’(2005년 1월) ‘최악의 독재국가’(2007년 6월) 등으로 압박해온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시위가 격화되자 미얀마 지도층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이들에 대한 재정 조달선을 차단하겠다며 더욱 고삐를 죄고 있다.

이제 관심이 초점은 군정의 대응이다. 26일 발포사태가 벌어졌지만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유혈진압 수준은 아니다. ‘8888’ 당시 초기부터 단호한 조처를 취했던 군정은 이번 사태 초기 때 진압보다는 시위대를 보호하며 확산을 막는 데 주력했다. 이는 주변국의 압력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립된 미얀마에 사실상 유일한 교역상대국인 중국이 시위대를 보호한 셈이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이미지 쇄신에 힘쓰고 있다. 탕자쉬엔 국무위원은 “중국은 미얀마가 나름대로 적절한 민주주의적 수단을 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정이 어디까지 시위를 용인할지는 의문이다. 40여년 동안 억눌려 온 주민들의 불만은 결국 군정 타도로 비화될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미얀마 군정에 대한 추가제재의 열쇠를 쥔 중국, 인도 등 주변 교역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의문이다. 중국 정부는 일단 “현 상황이 이른 시일 안에 안정되기를 바란다”면서도 “이번 사태에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수도까지 내륙 깊숙이 옮긴 군정으로서는 정권유지를 위해서 결국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 미얀마사태 배경] 88년때도 유혈진압…수치 11년간 가택연금
미얀마 사태 부른 ‘45년 군정'
2007-09-27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얀마는 62년부터 줄곧 군사정권이 통치해 왔다. 천연가스, 목재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했지만, 지나친 고립·폐쇄 정책으로 경제난을 겪어왔다.
 현 정권은 88년 민주화 시위를 유혈진압하며 성립된 정권이다. 당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으로 누적된 불만은 ‘8888’(88년 8월8일 양곤에서 군부가 시위대에 발포한 사건), ‘랑군의 봄’ 등의 수식어를 동반하는 광범위한 민주화 시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혼란 속에서 결과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은 다시 한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였다. 군부의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무력으로 정권을 접수하고, 89년엔 계엄령을 선포했다.

 90년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의회의 489석 가운데 392석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얻었지만, 군부가 선거를 무효화하고 당선자 상당수를 투옥했다. 군부는 의회가 구성돼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군부가 계속 집권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새 헌법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 했다. 89년 계엄 당시 가택 연금된 아웅산 수치 여사는 지난 17년 가운데 11년 동안 집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현 군부 정권은 안팎의 비난 여론에 처해 있다. 군정을 이끌고 있는 1인자 탄 슈웨(73) 장군은 수치 여사 및 그의 추종세력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 2006년엔 딸의 호화 결혼식으로 낭비벽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인자인 마웅 아예는 90년대 초 군정에 참여하기 전까지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거래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를 잇는 소에 윈 장군 역시 국내 민주화 세력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유명한 인사다.

 미얀마 군부는 62년 쿠데타를 일으키며 집권을 시작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우 네윈 전 대통령이 추구한 것은 ‘미얀마식 사회주의’였다. 군부 지도층은 혁명위원회를 조직하고, 주요 기업들을 모두 국유화시켰다. 사회주의 일당 독재체제 아래서 정당 활동도 통제됐다. 네윈 정권은 미얀마를 외부세계로부터 차단하고 고립화·공업화 정책을 실시했지만 실패했다. 60년대만 해도 필리핀과 더불어 아시아의 ‘경제강국’이었던 미얀마의 경제상황은 1987년에 이르러 ‘최빈국’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얀마는 97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에 가입해 일견 고립정책을 탈출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세안으로서도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묘안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아세안에 미얀마 군정은 골칫거리다. 비민주적 인권 탄압이 서방과의 교역에서 발목을 잡았다. 최근 아세안-유럽연합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미얀마 군정의 ‘비인권적 상황’이 도마에 올랐다. 유럽연합 쪽에서 수치 여사의 불법 연금 상태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




* 미얀마 ‘반정부 시위’ 승려 대규모 참여
양곤 등 전국서 수천명 거리행진·연좌농성
2007-09-19

석유값 폭등으로 촉발된 미얀마(버마)의 반정부 시위가 승려들의 대규모 참여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얀마 승려 몇천명이 18일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을 비롯해 전국에서 반정부 거리행진을 벌였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날 시위의 직접적 계기는 두 주 전 북부도시 파코크에서 정부의 석유값 인상에 항의하는 승려들의 평화 시위를 정부 당국이 폭력적으로 해산시킨 데 대한 반발이었다. 승려들은 당국에 17일까지 사과할 것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

이날 시위는 대체로 평화적으로 진행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양곤에서는 승려 400여명이 시민 몇천명의 환호와 박수 속에 불경을 외며 도심을 행진했다. 당국이 승려들의 목적지인 쉐다곤 불탑을 원천봉쇄하자 승려들은 불탑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서북 해안도시 시트웨에서는 경찰이 최루탄과 공포탄을 쏘며 승려 1천여명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앞서 승려들은 군사정부와 관련있는 인사로부터 공양 시주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62년 이후 군사정권이 강권통치를 휘두르고 있는 미얀마에서는 지난달 15일 정부가 석유값을 최고 5배까지 깜짝 인상한 이후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군사정부는 그동안 150명 이상을 체포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반정부 인사들은 산발적이고 소규모로 발생한 시위가 승려들의 동참으로 한층 거세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 망명한 한 인사는 “반정부 지하조직들이 승려들의 시위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승려들은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어, 이들의 행동이 일반 국민들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승려들은 지난 1988년 민주화 운동 당시에도 시위에 적극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승려들의 참여가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반 국민들이 강권통치를 휘둘러 온 군사정권의 폭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여전히 거리에 나서기를 주저할 것이란 분석이다.



*2000명의 승려들, 바고에서 행진하다
2007. 9. 18(DVB)- 2000여명의 승려들은 오늘 군사정부를 반대하지는 <전 버 마 승려 동맹>의 선언에 찬성을 표하기 위해 시위를 행하였다.

바고의 주민 한사람에 의하면 오늘 시위는 역사적인 스웨 모우도우 피고다 앞에 있는 사사나 만다이 절의 승려 400명에 의해 시작돠었다는 것이다. 보고에 의하면, 정오 쯤 이 승려들은 바고 중심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하였고 그 후 다른 사찰에서 온 1500 이상의 승려들이 이들의 행진에 가담하였다는 것이다.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수천명의 시민들이 이들의 행진을 구경하였다고 한다.

승려들은 스웨 모우도우 거리를 완전 점령하여 오토바이나 자전거도 지나갈 수 없었다....
승려들은 구경꾼들이 시위에 동참하는 것을 거절하였으며, 손뼉을 치지도 말라고 했다. 그들은 구경꾼들이 사진을 찍지도 못하게 했다고 목격자는 말했다.

시위에 참여한 몇몇 승려들은 시위장면을 찍고 있는 정부 관리들로부터 카메라를 빼앗았다고 보고되고 있다.

시위 중에 있었던 정부의 진압에 관하여는 보도가 전혀 되지 않았다.


도피 중인 88세대 지도자들, 군사정권에 대한 중국의 압력을 요구하다.
2007. 9. 17(DVB)-도피 중에 있는 88세대 학생 그룹의 몇몇 활동가들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에 대해 버마 군부에 압력을 가해 주기를 중국에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 성명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들이 군부와 무역을 중단하고 국민 화해와 대화에 위한 유엔, 미국, EU 등의 요구를 지지하라고 주장하였다.

*88학생지도자, 정부의 권력남용을 비난
2007. 9. 10(DVB)-88세대 학생들의 고위 지도자인 코 타이 키웨 씨는 어제 정부의 권력남용과 정치적 쟁점들에 대한 민감한 해결 실패를 비난하였다.

코 타이 키웨 씨는 기습적 유가인상에 항의한 대중들의 시위와 관련하여 군사정부의 고위 활동가들에 대한 지난달의 연이은 체포사건들에서 체포되지 않은 88 세대 학생그룹의 지도자들 중에 마지막 인사이다.

버마의 여당 (국가평화발전위원회)는 는 어제 정부가 운영하는 지에서 88세대 학생들이 새로 마무리된 전국회의를 방해할 기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대부분 88세대 학생그룹의 회원인 15 명의 인사들을 구속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 성명은 또한 테이 퀴웨 씨가 어떤 힘있는 나라의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곳에 숨어있기 때문에 잡히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테이 키웨이 씨는 에 게재된 모든 비난한 내용들을 부인하며, 88세대 학생그룹은 정치적인 문제들을 평화롭게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SPDC의 공개적인 공격에 막혀 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88세대 학생 구릅의 성명은 국민에 대한 폭력사용을 중단하고 대화의 테이블에 나오도록 SPDC에 효과적인 행동을 취하라고 국제사회에 요구하였다.


<한국 NGO 공동성명서>
2007년 10월 2일
민주주의와 생존을 위해 싸우는 버마민중들에 대한 학살을 즉각 중단하라!
버마 군부독재 정권은 즉각 퇴진하라!
버마민중학살 중단과 군부독재 퇴진을 촉구한다.
1962년 이래 지금까지 버마는 군부독재정권의 총칼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 1980년 서울에도 잠깐 봄이 찾아왔던 것처럼, 버마에도 1990년 총선을 통해 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짧은 봄이 있었지만, 군부는 총선에서 82%의 지지를 받았던 버마민족민주동맹(NLD)에게 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오히려 국민 지도자 아웅산 수치여사와 민주화운동가들, 야당 정치인들을 감금하는 등의 탄압을 자행하였다.
1988년 ‘8888항쟁’으로 알려진 버마민중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항의와 압력으로 조성된 유화국면은 군부독재정권의 독단과 전횡으로 끝나게 되었고, 버마는 군부독재정권의 유혈통치 아래 신음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사용하던 나라 이름마저 최소한의 동의절차도 없이 ‘미얀마’로 강제로 바꾸고, 새벽에 정글 지역으로 수도를 옮길 정도로 비상식적인 군부독재정권의 횡포로 아시아의 보석이라 불리며 잘사는 나라의 대열에 있었던 버마는 참혹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버마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으며, 버마민중의 삶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국민경제, 교육, 보건, 주택 등 버마의 모든 부분은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으면서도 버마군부 최고지도자 탄슈웨 등 집권세력은 버마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 국민들은 강제노역과 집단 이주, 추방과 체포, 감금, 일상적인 정치폭력에 시달리고 있고, 심지어 어린이들이 군대에 끌려가 소년병이 되는 참담한 범죄도 만연되어 있다. 버마의 군부독재정권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역사상 가장 나쁜 독재정권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버마민중의 민주화 요구에 대한 그들의 대응도 참으로 잔악무도한 것이다. 외신기자의 가슴을 겨냥해 1미터도 안되는 거리에서 총을 쏘아 죽이는가 하면, 최소한 수백명 이상의 무고한 버마민중을 학살했고, 사체를 유기했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마군부독재정권은 단지 9명만이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늘어 놓고 있다. 국민 다수가 불교도인 국가에서 스님들의 거처를 습격해 스님들을 체포하고, 일부는 사찰에 감금했다는 소식 또한 우리를 경악케 한다. 시내 주요 거리를 차단하고, 5명 이상만 모이면 체포하거나 구타하고 심지어 총을 쏘아대는 무장 세력의 만행은 버마군부독재정권이 그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저 버마민중들을 괴롭히는 범죄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버마군부독재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학살과 만행은 즉각 ? 杉昞퓸杵?한다. 또한 지금까지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인류 양심에 대한 모욕이며, 아시아의 수치이다.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의 실효성 있는 압박이 절실하다. 특히 버마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국과 인도 당국이 버마군부독재정권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철회하고, 버마 민중들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특히 중국정부가 지금까지의 태도처럼 버마사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내년으로 예정된 베이징 올림픽 보이코트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반대 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경고한다. 중국과 인도만큼은 아니라도 버마와의 경제교역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있는 한국정부와 기업도 버마군부독재세력에 대한 지원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제공한 무기가 버마민중을 학살하는데 쓰이고 있다는 버마 현지인들의 절규는 우리를 참담하게 한다. 이런 부끄러운 반인륜적 범죄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 한국의 인권사회단체,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재단들, 학생 및 노조, 종교단체, 정당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은 너무나 정당한 버마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연대하기 위해 뜻을 함께 하고, 공동의 실천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현재 버마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벌어지는 민주화 운동 유혈 탄압 사태가 즉각 중단되고, 국제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진행되기를 촉구한다. 또한 버마 국민들의 바람대로 아웅산 수치 여사를 포함한 정치적 양심수들이 즉각 석방되고, 하루빨리 민주정부가 수립되기를 희망한다.
이에 우리는 버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다음 사항들을 엄중히 천명하고 요구하는 바이다.
하나, 우리는 버마군부독재정권이 스님들을 비롯한 평화적인 비폭력 민주화요구에 대해 행한 살인과 테러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이번 사태에 모든 책임이 버마군부독재정권에 있음을 확인한다.
하나, 버마군부독재정권은 평화적인 버마 민중의 요구를 탄압하는 일체의 반인륜적 폭력행사를 즉각 중단하고, 버마 민중들의 자유를 보장하고, 즉각 퇴진하라!
하나, 버마군부독재정권은 아웅산 수치 여사를 포함한 모든 정치범들을 즉각 석방하고 즉각적인 총선거 실시를 통해 버마 국민이 원하는 정부 구성을 위해 협력하라!
하나, 한국정부는 버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적극적이며 공개적인 지지를 천명하는 것은 물론, 버마군부독재정권의 압박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즉각 강구하여야 한다.
하나, 대우 인터내셔널을 비롯한 버마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버마군부독재정권과의 협력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몇 푼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버마진출 기업의 즉각적인 철수 등 버마민주화를 지원하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
투쟁하는 버마 민중들의 힘으로 버마의 자유, 민주주의, 평화와 인권이 곧 회복될 것이라 믿으며......

한국민주양심세력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