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테러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1-09-30 23:46
조회
1341
테러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조 원 희(정책위원, 국민대 경제학과)




헐리우드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미국의 군사, 경제의 심장부에 대한 테러 공격은 예상대로 일파만파로 전 세계에 충격파를 주고 있다. 진심으로 무고하게 죽은 수천의 사람들에 대한 정중한 추모의 시간을 갖고자 했던 사람들은 미 행정당국의 응징, 보복을 위한 전쟁선언과 이를 비판하는 평화주의자들간의 설왕설래에 기분이 상했다.

아프간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에 협조하느냐 반대하느냐를 결정하라고 윽박지르는 미국정부의 태도 앞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저어기 당황스러울 것이다. 조금이라도 딴지를 걸었다가는 박살을 낼 것 같은 기세 아닌가. 참으로 이성적인 사고와 사태해결의 목소리가 설자리가 있는지 의문이다.

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는 문명사회가 질서를 유지하는 데는 자비심, 신중함 같은 덕성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덕성은 내가 아니라 남의 처지에서 사물을 공평무사하게 볼 때 배양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자기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타인에 대한 원한을 표현하려는 집단이 있다면, 인간이 왜 그런 광기의 상태에 빠졌는지를 그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라는 식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 단계의 국제사회는 결코 이런 덕성이 지배하는 문명적 질서가 아니다. 어차피 힘이 정의인 사회이고 아담 스미스의 표현을 빌자면 아직 야만사회의 단계에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야만사회도 질서는 있는 법인데 이 질서는 정의의 윈칙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야만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로 강자의 지배를 전제로 한 최소한의 형평이다. 강자에 대한 도전은 그 어떤 것이건 악이며 약자끼리라도 강자가 정해놓은 위계적 배치라는 틀 내에서만 공평성의 기준이 적용되고 그 틀을 벗어난 어떠한 자기권리 주장도 악이다. 왜냐하면 그런 태도는 '질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이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 설립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선언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며 이와 상충되는 권리 주장은 악이 된다. 이라크는 이런 식의 권리주장(즉 쿠웨이트에 대한 영토권주장)을 하다가 미국으로부터 걸프전을 통해 흠씬 얻어맞았다. 대공방어방이 마비된 상태에서 공중폭격을 당하여 약 20만명이 사상하고, 그 이후에도 봉쇄조치로 약 60만명의 어린이가 죽었지만 그 누구하나 미국이 악을 행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미국이 당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미국이 뿌려 놓은 씨앗을 거둔 것이고 이슬람국에 대한 편파적이고 오만한 태도, 부당한 간섭을 버리고 보다 공평한 중재자가 되어야 이런 테러리스트가 설 땅이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정부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그 어떤 잘못도 이번과 같은 테러의 원인으로는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미국이 최소한 자기영토 내에서라도 수시로 테러를 당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지 않고자 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안전이라는 이익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매우 적다는 경제논리를 직시한다면 지나치게 일방적인 독선과 독주는 자제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세계의 여러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권을 확보하고 살 수 있다면 비판은 있을지언정 이번과 같은 광기 어린 테러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말하자면 야만사회에서의 강자에게도 일정한 자기억제가 있어야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미국은 자국 중심의 세계화,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무리하게 추진해 왔다. 미국식 기준이 세계의 표준이라고 주장하였고, 준비되지 않은 개방(특히 자본시장 개방) 때문에 발생한 외환위기를 기화로 동아시아 각국에 더욱 개방을 강요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토 기후협약에는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WTO 뉴라운드의 의제는 자국중심으로 상정하려 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화는 미국 자본 특히 미국 금융자본에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세계화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 상생의 지구촌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 경제에 지나치게 의존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은 최근의 미국 발 세계불황으로 증명되고 있다. 미국이 이런 공격적인 세계화를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의 근본적인 기반은 솔직히 말해 미국의 군사력에 있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하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 넣었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의 결과 이번 사태에서도 보듯이 미국이 흔들리면 전 세계 질서, 전세계경제가 불확실성에 빠져드니 미국이 힘을 과시해야 될 처지에 빠진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의 광기에 대한 미국의 '광기'는 단지 행정부의 현 지도자 몇 사람의 경향 때문이라기보다 90년대 이후 미국이 추진한 일방적 세계화의 귀결이다. 세계시민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세계화를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한편 당장의 전쟁위기 상황과 관련해서는 테러를 자행한 자들에 국한된 응징을 넘어선 부당하고 위험한 무력사용을 반대하는 여론을 확산시키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시민의 신문 20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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