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구
헌법의 총강과 기본권 체계에서 자유권, 사회권, 자연권, 참정권의 배치와 그 실현 과제 - 강원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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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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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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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총강과 기본권 체계에서 자유권, 사회권, 자연권, 참정권의 배치와 그 실현 과제
- 대한민국 헌법 개정 논의에 관련된 한 민중신학자의 제언
강원돈 (한신대 교수/민중신학과 사회윤리)
I. 머리말
헌법 개정은 2016-2017년 촛불항쟁 과정과 그 이후의 정세에서 하나의 이슈로 떠올랐다. 촛불항쟁에서 군중은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벌어진 국정농단“에 분노하여 ”이게 나라냐?”하고 절규했고, 87년 헌정질서의 기득권 체제에 안주하여 국정을 농단하던 세력을 물러나게 했다. 이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은 촛불항쟁 이후에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과제가 되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이 국정농단의 핵심 고리가 되어 국정을 파행시키고, 정경유착을 고질화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을 위시하여 교육과 노동에 관련된 기본적인 권리들마저 철저하게 짓밟았으니, 권력을 새롭게 구성하고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인간과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제대로 보장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가 되었다. 헌법 개정이 우리 시대의 최대 과제가 된 것이다.
이미 국회는 촛불항쟁이 한창이던 2016년 12월 29일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2월 2일부터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헌법개정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국회 차원의 헌법 개정 논의는 크게 보아 국민주권주의 강화, 중앙집권화된 권력 분산, 기본권 신장 등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성과를 담은 자문위원회 보고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편,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대한민국 국회, 2018년 1월).
를 발표하고 12월 31일 활동을 종료하였다. 그러나 개헌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할 주권자는 개헌 논의에서 비켜나 있고, 촛불항쟁에서 뿜어져 나왔던 현상 변경의 힘은 개헌의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지 않다.
이제까지 아홉 차례 실시된 개헌은 주로 집권자에 의해 추진되었거나, 4·19 민주항쟁과 6월 민주항쟁 이후에 개헌의 기회가 민중에 의해 마련되었어도 민중을 완전히 도외시한 정치 엘리트들 중심으로 개헌안이 마련되고 성사되었다. 제10차 개헌을 준비하기 위하여 국회에서 조직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의 면모를 보더라도 53인의 자문위원들 가운데 민중적 관점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자문위원들 가운데 민중적 관점을 대변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인사는 한 사람 정도이다. 그 인사는 오랫동안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변호사 활동을 해 온 사람이다. 노동자, 농민, 빈민 단체들과 산하 연구소들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예는 없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은 여섯 사람이 참여했다. 참여연대, 환경연합, 헌법개정여성연대에서 한 사람씩, 그리고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들에서 세 사람이 참여했다.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들 가운데 학계 출신이 32명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였고, 그 나머지는 여섯 사람의 법조계 인사들과 경제계 인사들, 의회와 관료 출신 인사들이다.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여성들은 모두 일곱 사람이어서 13%의 비율이고, 그나마 두 사람은 중도에 사퇴하였다. 헌법 개정에 관한 자문이 상당한 수준의 전문 지식과 식견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민중의 참여가 거의 완벽하게 차단된 것은 스캔들이다. 자문위원회의 구성이 성 평등 원칙을 도외시하였다는 비난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민중을 철저하게 배제하다시피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 10차 개헌 과정에서 민중은 개헌 논의에 광범위하게 참여하여 개헌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국가에 의해 침해되지 않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들의 체계와 배치를 결정하고, 이로부터 국가 구성과 운영의 원칙을 규정하여야 한다.
만일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을 편드는 유기적 지식인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민중신학자들은 헌법 개정 논의에 책임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현행 헌법의 조항문들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가를 놓고서는 방대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므로 민중신학자들은 이에 관련된 체계적인 연구를 기획하고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글의 과제는 개헌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헌법 전문과 총강, 그리고 기본권 체계에 대한 민중신학적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한정된다. 국가의 가치체계와 목표를 바르게 설정하고, 기본권의 체계에 속하는 자유권, 사회권, 문화권, 자연권 등의 성격과 관계를 규명하고, 참정권의 위상을 명확히 한다면, 헌법의 거의 대부분의 조항문들을 차지하는 국가와 사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헌법적 규범들을 세우는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나는 현행 헌법 전문과 총강을 검토하면서 국가의 구성과 운영의 원리,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정의를 최대한 구현하는 사회구성 원리, 문화 형성과 진흥의 원리에 대하여 강령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그 다음에 이러한 원리들의 근거가 되는 기본권의 체계와 그 체계에 속하는 권리들의 성격과 내용을 밝힐 것이다. 참정권은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주권에서 직접 도출되는 권리이기 때문에 나는 참정권을 기본권 체계에 넣기 보다는 국가 구성과 운영의 원리를 다루는 헌법 총강에 배치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에 기본권 체계에 속하는 자유권, 사회권, 문화권, 자연권의 내용과 상호관계를 전면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고, 오직 권리 주체의 설정, 재산권의 위상, 재산권과 노동권의 관계, 사회권의 새로운 구성, 자연의 권리와 그 대리인의 구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주제들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민주공화국을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장 치열하게 논해야 할 이슈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문화적 권리들에 대한 논의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고, 다른 기회에 본격적으로 논하고 싶다.
II. 헌법의 전문과 총강에 관하여
1. 헌법의 전문과 총강은 대한민국의 기원, 기본가치와 이념, 국가의 목표, 헌법의 정통성, 국가와 사회의 구성과 운영의 원리를 밝히는 부분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문제들과 과제들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표현하고 이에 대응하고자 하는 국민적 의지를 헌법의 틀에 담는 장치이다. 제9차 개헌에 의해 마련된 1987년 헌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그 헌법이 국민의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생태학적 욕망과 지향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정 헌법의 전문과 총강은 변화된 상황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것과 국가가 해야 할 것의 대강을 분명하게 밝혀서 헌법의 각론을 구성하는 기본권의 체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의 구성과 운영 등에 관한 헌법 조항문들을 규율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헌법 전문과 총강의 검토는 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다.
2. 헌법 개정이 절박한 이유는, 이미 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87년 헌정질서의 틀에서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대통령 권력을 분산해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 권력만이 아니라 모든 권력의 분산과 통제는 제10차 개헌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개헌이 절박한 까닭은 1987년 헌법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1987년 헌법은 민주항쟁의 성과로 개헌의 기회를 제공한 민중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국민적 열망이었던 대통령 직선제를 방패로 삼은 기득권 정치세력들의 타협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하여 제도권 정치에 민중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효과를 빚어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중심으로 구축된 대의기구는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기득권 정치세력을 안정시켰고, 선거 참여를 제외한 국민의 정치 참여 기회는 극도로 제한되었다. 이로 인하여 제도권 정치와 그것이 담아내지 못하는 시민과 민중의 다양한 욕망을 실현하려는 운동은 분리되고, 제도권 정치를 뿌리째 뒤흔드는 시민과 민중의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1987년 헌정질서의 태생적 한계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졸고 “‘87년 체제’의 청산과 민중정치 -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얻는 한 귀결,” 『신학과사회』 30/4(2016), 159-165와 각주 23의 논자들의 주장을 참고하라.
민중은 고사하고 시민이 대변되는 곳에 시민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대의제의 실패를 극복하고, 국민주권의 원칙에 입각하여 국민의 참정권(선거권, 공무담임권, 발의권, 소환권, 국민투표권 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1987년 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87년 헌정질서에서 자유권이 신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자유권마저도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 정권의 핵심세력에 의해 추진된 문화계, 학계, 언론계의 블랙리스트 작성과 노골적인 불이익 처분, 역사교과서 국정화, 민중총궐기 대회의 폭력적 진압과 시위 참여자 살상, 대테러방지법, 통합진보당 해산, 종교의 자율성 침해 등등은 양심과 신앙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국가가 침해하거나 제한할 수 없고 오직 보장의 의무만이 있는 최고의 자유권을 형해화했다. 모든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고, 차별받지 않는다는 평등권이 자유권의 바탕이 된다는 점도 우리 헌법에서 충분하게 천명되어 있지 않다. 성평등에 대한 규정이 없고,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금지가 명시되지 않은 것은 대표적인 본보기일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급속히 전환되어 노동합리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가 엄청나게 일어나고, 비정규직 노동이 확산하고, 사회적 양극화가 고착되었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은 자본친화적이고 노동배제적인 법령에 의해 실효성 있게 실현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어져 책임 있는 사회적 파트너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기업의 공동결정권과 산별교섭권 등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다. 심지어 불법파업 단정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가압류 조치와 같은 재산권 행사로 노동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집단행동권이 무력화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한 분석으로는 졸고 “노동권과 소유권,” 『지구화 시대의 사회윤리』(서울: 한울아카데미, 2005), 239-241.
또한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은 용산참사 등의 야만적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개발이익을 독점하려는 재산권 행사자들에 맞서서 임대자들의 권리와 이익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이러한 사태 발전에 더하여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권리들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강화된 업적지상주의로 인하여 무시되거나 매우 기형적인 방식으로 보장되고 있다. 노동연계복지 개념에 근거한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민중을 낙인효과 아래 놓이게 하고 가난의 함정에 빠뜨렸다. 소득 분배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재분배에 관한 논의조차 우리 사회에서는 업적지상주의에 의해 발목이 잡혀 있다. 그러니 국가가 모든 시민들에게 존엄하고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구상은 극심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은 총강 제9조에서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국가 과제로 천명하고, 사회권의 틀 안에서 문화적 권리의 한 종류인 교육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화의 진척으로 문화간 접촉과 혼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다. 문화국가의 과제로 설정된 교육에 대해서 현행 헌법은 국가주의적 교육의 틀을 강조할 뿐, 교육의 공공성과 교육 자치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다. 이러한 헌법 규정 아래서는 국가가 나서서 대학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상황을 막을 수 없고, 사립학교의 비민주주의적인 지배구조와 비리를 방지할 수 없고, 각급 학교의 교육 과정과 평가를 국가가 주도적으로 규정하는 일도 막을 수 없다.
아마도 현행 헌법에서 환경보호 규정은 기본권 부분에서 가장 취약할 것이다. 헌법 제35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②항에서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환경권 규정은 극도로 인간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 그것도 공리주의적으로 정식화되어 있고, ①항의 이 선행규정은 뒤에 나오는 ‘환경보전’의 의미를 한정하고 있다. 게다가 환경권에 관한 모든 사항은 법률에 위임되어 있어 생태계의 건강성과 안정성을 보호하는 국가의 의무는 실제로는 헌법의 규율을 받지 않고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최소 강령마저도 담아내지 못하는 헌정질서에서 국가가 나서서 새만금 사업을 벌이고, 4대강 사업을 벌이는 등 생태계 재앙을 가속화하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프로그램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제10차 개헌을 통하여 마련되는 헌법은 전문과 총강에서 국민주권주의 강화와 참정권 확대, 중앙집권화된 권력의 분산과 대의제의 혁신을 전제하면서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사회국가와 문화국가, 그리고 자연국가의 형성을 국가 구성과 운영의 기본 원리로 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3.1. 많은 나라들에서 헌법 전문은 헌법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천명하고, 국가의 가치체계와 목표를 명확하게 밝히는 구실을 한다. 우리나라의 현행 헌법도 그렇게 되어 있다. 현행 헌법의 전문은 크게 보아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분은 1) 대한민국의 역사적 근원과 존재 이유, 2) 대한민국이 지향할 가치체계, 3) 대한민국의 미래지향적 목표, 4) 헌법의 연원과 개정 헌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다루고 있다. 새 헌법의 전문도 이 구조를 유지하되, 그 안에 담을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새 헌법의 전문에 담을 모든 내용을 일일이 검토할 겨를은 없지만, 몇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첫째, 대한민국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주공화국으로 구성되는 과정이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국민국가를 형성하고자 하는 민중 투쟁과 더 많은 자유와 평등, 더 많은 정의와 복지를 실현하려는 민중 항쟁과 저항의 성과였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행 헌법의 전문에는 이와 관련해서 단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민주이념의 계승만이 언급되어 있으나, 1980년 광주 민주항쟁,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2016-2017년 촛불항쟁이 명문화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이러한 열거가 이벤트 중심적 서술 방식이므로 국민국가 형성과 자유, 평등, 정의, 민주주의, 평화, 통일을 위해 면면히 이어진 민중 운동의 성과를 담아내는 포괄적 서술이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현행 헌법은 민주공화국의 가치체계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좁은 틀에 제한적으로 담고 있으나, 새 헌법에서는 이 틀을 해체하여 시민의 참여와 동의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사회적 연대와 정의를 실현하고,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생태계 보전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기본적인 가치체계로 삼고, 여기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운영 원리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셋째, 이러한 기본적 가치체계에 근거하여 국가의 대내외적인 목표를 상황에 맞게 설정하여, 대외적으로는 인류공영,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의 실현, 지구 생태계의 보존에 이바지하고, 대내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면서 자유국가, 사회국가, 문화국가, 자연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선언하면 좋을 것이다.
3.2. 새 헌법의 총강은 헌법 전문이 밝힌 국가의 기본적인 가치체계로부터 국가와 사회의 구성과 운영 원리를 도출하여 이를 일관성 있게 제시하는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현행 헌법과 크게 다른 점이다. 현행 헌법의 총강은 9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내용은 제1조(국가 정체성과 국민주권 원리), 제2조(국적), 제3조(영토), 제4조(평화적 통일 정책), 제5조(국제평화, 국군), 제6조(조약, 국제법규 등), 제7조(공무원), 제8조(정당), 제9조(전통문화, 민족문화)로 되어 있다. 이 조항들은 얼핏 보아도 중구난방인데다가 국가의 운영 원리에 대해서는 오직 제9조에서, 그것도 전통문화의 육성과 민족문화의 창달이라는 단 한 가지 과제에 한정해서 밝히고 있을 뿐이다.
새 헌법의 총강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과 국민주권 원리를 출발점으로 하여 국민 세계화의 효과로 인해 우리나라가 급속히 다민족국가로 변화되고 있기에 국적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나 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기에 이에 관한 논의를 하지 않는다.
과 주권의 영역을 분명히 하고 국민적 주권국가의 국제평화 형성 의무와 한반도 평화통일의 사명을 천명하고 난 뒤에 국가 운영과 정치의 원리, 사회경제적 원리, 교육과 문화의 육성 원리, 생태계 보전의 원리 등을 일관성 있게 강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직 이러한 국가 강령이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기본적 권리들의 성격과 내용을 위시하여 헌법의 나머지 조항문들을 체계적으로 배치하고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다수 의견에 따라 현행 헌법의 총강 체계를 그대로 따르기로 하고, “총강의 체계를 대폭 개정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주권 원리(1조), 국민(2조), 영역(3조), 국제평화와 호혜적 국제관계(4조), 통일 지향성(5조), 국가 운영과 정치의 기본 원리(6조), 시민사회의 기본 원리와 지향(7조), 경제의 기본 원리와 지향(8조), 환경·자연·생태계·생명 등과 관련한 기본 원리(9조), 교육과 문화와 관련한 기본 원리(10조)’로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방안”이 소수안으로 제시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대한민국 국회, 2018년 1월). 47.
여기서 총강에 관련된 모든 사항들을 전부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다. 국민, 주권의 영역, 국제평화 형성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사명, 국가 운영과 정치의 원리 가운데 국군, 공무원 등에 관한 논의는 생략하고, 국가 운영과 정치의 원리에 관해서도 참정권과 관련된 부분만을 다루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총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사회경제적 운영원리, 문화국가적 운영원리, 자연국가적 운영원리 등에 대해서는 강령적 수준의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1) 헌법 제1조는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 천명하는 조항이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의 동등한 참여와 합의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는 국가일 것이니 그 주권의 소재가 국민에게 있는 것이 당연하다. 현행 헌법 제1조 ①항은 이 점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②항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만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의 제1문은 명확하지만, 제2문은 조금 더 또렷하고 분명하게 정식화될 필요가 있다. 첫째,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맞는데, 그 권력은 국민에 의해 직접 행사될 수도 있고 위임에 의해 행사될 수도 있다. 권력 행사 방식은 국민의 의사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둘째, 권력의 행사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 모든 권력은 자의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법률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보완 사항이 명문화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참정권을 무력화시켜 대의제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대통령을 위시한 권력자가 위임받은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아랑곳하지 않고 국정농단을 벌여도 이를 제어할 헌법 규범이 없는 셈이 된다. 따라서 나는 헌법 제1조 ②항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민을 위하여 법률에 의해 행사된다.”로 정식화하거나 제2문의 내용을 서로 구분하여 독립된 항으로 열거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열거방식을 취한다면, 헌법 제1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것이다. 헌법 제1조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의 의사에 따라 행사된다. ③ 모든 권력은 국민을 위하여 행사된다. ④ 모든 권력은 법률에 의해 행사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헌법 제1조에 중앙집중화된 권력을 지방정부로 분산하는 원칙을 담자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는다.
2) 국가 운영과 정치의 원리에 관련해서는 국민의 정치 참여의 원칙, 정당 구성과 활동의 원칙, 삼권분립의 원칙 등을 명시하고, 국군의 구성과 운영, 공무원제도 운영의 원칙 등을 명시하면 될 것이지만, 여기서는 참정권에 관련된 몇 가지 사항만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 참정권은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정체성과 국민주권의 원칙에서 직접 도출되는 권리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참정권은 국가를 창설·운영하고 정치를 형성하는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에 국가의 창설과 존립과 운영으로 인하여 발생하고, 또 그것을 위하여 성립되는 권리이다. 이러한 성격과 본질을 갖고 있는 참정권은 국가에 의해 확인되는 자유권이나 국가에 의해 인정되고 창설되는 사회권과 문화권, 그리고 자연의 권리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따라서 참정권과 그에 관한 규정은 헌법의 기본권 항목에 넣어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구성과 운영 원리를 규정하는 헌법 총강에 명문화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둘째, 참정권은 선거권, 공무담임권, 소환권, 법률발의권, 국민투표 발의권 등으로 발현되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국민이 선출하는 대의기구는 전국적 정당지지율에 정확하게 비례해서 구성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헌법 규범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규범이 법적 구속력을 발생시키게 된다면, 정당의 이념적 분화가 촉진되고, 정당들을 중심으로 한 책임정치의 가능성이 커져서 대의제가 좀 더 실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계급, 성, 연령 등의 차이에 따른 다양하고 다원적인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생태학적 욕망들은, 더 이상 지역주의에 매몰된 후진적인 대의제로 인해 그 실현이 끝없이 유예되는 일 없이, 그 충족을 위한 더 많은 정치적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셋째, 시민과 민중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정당 설립의 문턱을 낮추고, 지역정치와 중앙정치 차원의 정당 결성을 촉진시키고, 진성 당원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권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을 명확히 천명한다. 이에 관련해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을 폐지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투표권을 갖는 모든 국민의 탄핵소추발의권, 소환권, 법안발의권, 국민투표 발의권 등을 헌법 총강에 명시하고, 그 권리의 실현에 필요한 발의정족수 요건과 의결정족수 요건을 가급적 완화하여 직접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도록 참정권의 종류별로 헌법의 적절한 곳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투표권 연령을 낮추어 국민의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히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3) 사회경제적 운영 원리는 사적 자치의 원칙을 출발점으로 하고, 사회세력들이 힘의 균형에 바탕을 두고 서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파트너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삼는다. 오직 이러한 조건이 확립될 경우에만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효율성이 서로 결합되고 사회적 평화를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세력들의 힘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고, 헌법은 반드시 이러한 원칙을 국가 강령으로 규정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헌법은 국가가 주권 영역에서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자유로운 삶을 형성할 기회를 연대적으로 보장한다는 원칙을 밝혀서 대한민국이 사회국가의 규범 아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4) 문화국가의 운영 원리에 관련해서는 현행 헌법의 민족주의적 문화 이해에서 벗어나 세계화의 전개에 따른 문화간 접촉과 혼융, 다민족·다문화 사회의 형성 등에 부합할 수 있도록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관용하는 원칙을 헌법 총강에 부각시키고, 학문과 예술과 기술을 육성하는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교육이 만인을 위한 공공재이고 자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5) 끝으로, 헌법 총강에 생태계 보전을 국가 운영의 원리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가 나서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 비일비재로 벌어지고, 재산권 행사에 따라 무분별한 개발이 이루어져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최소한의 강령마저도 무색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생태계의 온전성을 보존할 국가의 책무를 헌법 규범으로 선언하고, 건강하고 안정된 생태계를 향유할 만인의 권리를 창설할 필요가 있다.
III. 기본권 체계에 대한 검토
1. 현행 헌법의 기본권 체계는 ‘국민’을 권리의 주체로 규정한 뒤에 헌법 제10조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보장과 행복추구권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제11조에서는 모든 국민의 법 앞에서의 평등과 차별금지를 규정하여 제10조의 정신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 다음 제13조부터 제39조까지 이어지는 기본권 조항들은 대체로 자유권, 참정권과 청원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교육권, 사회권, 환경권, 기본권 제한 등을 규정하고 있으나, 기본권 조항들의 배치는 일관성과 체계성을 결여하고 있다.
권리 주체의 문제를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고, 새 헌법을 마련할 때 기본권 조항들을 일관성 있게 체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들은 인간이 존엄한 생명체로서 존재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형성한다는 사실, 인간이 노동을 하며 사회적으로 삶을 형성한다는 사실, 인간이 문화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사실, 인류가 생태계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생태계에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들이다. 이러한 권리들을 어떤 순서에 따라 배치할 것인가는 인간의 현존 방식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생태계 보전과 향유의 권리를 맨 앞에 놓고, 생명권 보장을 그 다음에 놓고, 그 뒤에 자유권, 사회권, 문화권 등을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헌법이 국가의 간섭과 침해로부터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창설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본적 권리들의 배치에서 생명권 규정과 자유권 규정을 맨 앞에 놓는 것도 별로 이상할 것 같지 않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기본권 체계의 정점에 모든 인간이 생명과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놓고, 생명을 가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보장을 그 뒤에 설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종교, 인종, 언어, 연령, 성, 성적 지향, 장애, 지역, 사회적 신분, 고용형태 등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헌법적 규범을 그 다음 순서에 명시해야 할 것이다. 차별의 금지는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의 원칙에 의해 보강되어야 한다. 나는 기본권 체계의 정점에 놓아야 할 이 권리들을 기본권 규정의 기본강령이라고 지칭하고 싶다.
이 기본강령들 아래 자유권적 권리들, 사회적 권리들, 문화적 권리들, 생태계 보전과 향유의 권리들, 청원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들이 일관성 있게 배열되고, 기본권 제한 규정이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자유권적 권리들을 맨 앞에 놓는 것은 인간의 권리가 확인되고 인정되고 창설되어온 역사적 순서를 의식한 측면도 있지만, 국가의 간섭과 침해로부터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인간의 자주적인 삶의 형성과 사회적 연대 형성, 그리고 창조적인 문화 형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각 권리 범주의 본질과 성격을 놓고 볼 때에도 자유권을 앞세우는 것이 적절하다.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성하는 본질이며, 국가는 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창설되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근대에 들어와 민주주의를 최초로 옹호한 철학자 스피노자는 “진실로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finis revera reipublicae libertas est.)라고 명료하게 선언한 바 있다.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정치학 논고』, 최형익 옮김, 초판2쇄(서울: Virtu, 2017), 373.(번역 일부 수정)
따라서 자유의 권리들은 그 본질상 불가침의 권리들이고, 국가에 의해 제한될 수 없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에 반하여 사회적 권리들과 문화적 권리들, 그리고 생태학적 권리들은 국민적 역량과 의지에 근거하여 국가에 의해 인정되거나 창설된 권리들이고 국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육성될 권리들이다. 이러한 기본적 권리들이 논리적 순서에 따라 배치된 뒤에 국가 폭력으로부터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간의 권리들을 구현하는 것과 관련된 절차법적 권리들, 곧 청원권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명문화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2. 헌법에서 권리의 주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매우 까다로운 검토를 필요로 한다. 현행 헌법은 권리의 주체를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가의 책무는 논리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한정되고 있다. 그럴 경우, ‘국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는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현행 헌법의 권리 주체 규정은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는 민족체가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어 왔고, 국가주의가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전개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다양한 구성을 이루게 되었고, 주권의 영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국민뿐만 아니라 영주권자들, 체류허가를 받은 사람들, 여행자들, 불법체류자들도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권리들이 얼마만큼 인정되어야 하는가?
나는 기본권 체계에 속하는 권리들의 종류에 따라 권리의 주체를 설정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기본권 규정의 기본강령을 이루는 권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보장되는 권리들이다. 인간이 존엄한 생명체로서 존재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형성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자유권적 권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신체의 자유, 양심과 신앙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익을 구현하기 위해 단체를 구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캔들이 될 것이다. 그들이 결성한 단체는 임의단체가 될 것이다. 따라서 결사의 자유는 만인의 권리이다.
직업의 자유, 통신의 자유, 주택 불가침권, 현행 헌법에서 주택 불가침권은 거주의 자유로 표현되어 있지만, 거주의 자유는 그 뜻이 모호하므로 주택불가침권으로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거주 이전의 자유도 자유권의 핵심이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 인정되는 권리라기보다는 주권 영역에서 체류 허가를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되는 권리이다.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등은 만인의 권리이다. 전통적으로 자유권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재산권의 주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주권 영역을 넘나들며 모든 사람들이 수익 증권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상황에서 재산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만이 아니라 사회권의 실현과 생태계 보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에 따라 엄격한 법률적 규율 아래 놓여야 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 의해 권리능력과 의무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 재산권의 주체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인간이 노동을 하며 삶을 사회적으로 형성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권리들의 주체는 노동 허가를 받고 체류하는 사람들까지 확대된다. 그들은 사회보장 수급조건을 충족시키는 한에서 국가가 최종적 책임을 지는 사회보장을 향유할 권리도 인정받는다.
인간이 문화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들, 특히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 관용, 교육받을 권리는 주권 영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권리의 보편성 때문에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체류 허가를 신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즉시 체류 허가가 발급되도록 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일 것이다.
생태계 보전과 향유의 권리 역시 만인에게 보장되는 권리이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신속하고 공정한 행정집행을 청구할 권리, 보상을 청구할 권리 등과 같은 절차법적 권리들도 만인에게 보장되는 권리들이다.
따라서 기본권의 체계 밖으로 옮겨 놓은 참정권을 제외하고 ‘국민’을 권리 주체로 설정할 수 있는 권리들은 없다. 재산권의 주체는 국가에 의해 권리능력과 의무능력을 인정받은 모든 사람들이기에 ‘국민’으로 한정될 수 없다. 만일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의 권리가 기본권으로서 창설된다면,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개념 구성에서 급부 주체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같은 정치공동체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그 권리의 주체는 완전시민인 국민과 제한적 시민권자인 영주권자로 한정될 것이다.
3. 새 헌법의 기본권 체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과제는 재산권의 성격과 위상을 규정하고, 재산권 행사를 규율하는 규범을 명문화하는 것이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기본적 권리들에 대해서 의미 있는 제안을 했지만, 유독 재산권 조항에 대해서는 현행 헌법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법률로써”라는 문구를 “법률에 의해”로 가다듬자는 의견을 내는 데 그쳤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편,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 81f.
재산권에 관한 헌법적 규범의 변경이나 수정은 엄청난 사회변화를 초래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저항이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그러한 변경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정치적으로 관철될 수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충분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어왔다. 우리 국민은 그린벨트 설치와 운영을 위시하여 토지공개념을 제한적으로 운용하여 공공복리를 실현하는 역량을 발휘하였고, 현행 헌법 제23조 ②항(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성 요구)과 ③항(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규정), 제122조(토지공개념 규정) 대한민국 헌법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를 명문화하여 이를 규범적으로 뒷받침하여 왔다. 따라서 재산권 행사가 절대적 성격의 자유권이 아니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1. 그러나 현행 헌법의 재산권 규정은 여전히 미흡하며 여러 가지 점에서 보완되어야 한다. 우선, 재산권 개념의 본질과 실체에 대한 이해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현행 헌법의 재산권 개념은 물권과 채권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로마법 전통과 이를 계수한 독일 판덱텐(Pandekten) 법학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로마법 전통에서 물권은 물건에 대한 권리로 한정되기에 사람의 행위에 관한 권리인 채권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처럼 소유권이 물건에 대한 권리로 한정되었기에 물건에 대한 처분권은 절대화되고, 소유권의 제한은 한 물건에 대한 소유권의 행사가 다른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나 그 행사를 침해하는 경우로 한정되었다. 로마 물권법의 성격과 그 제한에 대해서는 윤철홍, 『소유권의 역사』(서울: 법원사, 1985), 26f.30을 보라.
이러한 로마법의 물권 개념을 정교하게 발전시킨 판덱텐 법학 이론은 대륙법의 민법 체계에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였고, 여기서 확립된 재산권 개념이 일본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계수되었다.
이 개념은 두 가지 문제를 갖는다. 첫째, 재산권을 물건에 대한 권리로 일면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재산권이 사람의 물건에 대한 관계를 매개로 해서 성립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측면을 사상하고 있다. 만일 재산권이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자신에게 귀속된 물건에 대한 관계를 규정하는 권한이라면, 재산권은 논리적으로 물건의 사람에 대한 귀속을 그 본질로 하고, 제3자가 그 물건에 대한 간섭이나 침해 금지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소유자가 귀속 물건에 대한 배타적 지배를 규범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그 실체로 한다. 따라서 재산권은 귀속 물건에 대한 사용·수익·처분(uti, fruti, abuti)의 권능을 통일하는 추상적 개념인 소유권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한 마디로, 재산권은 사회적 동의에 근거하여 규범적으로 인정되는 권능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법률에 의해 규율되는 권능이다. 재산권의 본질인 물건의 사람에 대한 귀속 관계와 재산권의 실체인 재산권의 행사 권능은 서로 구별되고,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는 모두 법률의 규율 아래 놓인다는 것이 재산권의 법리이다.
둘째, 현대 사회에서 재산권은 택시면허처럼 수익에 대한 기대나 사람에게 특정한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채권을 그 대상으로 포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택시면허는 물건이 아니지만 마치 물건처럼 거래되고 있기에 재산권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지식과 정보 등도 물건이 아니지만 재산권의 대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것의 귀속관계를 정할 수 있는데다가 그것이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고 임의로 양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빚을 진 사람에게 빚을 변제하는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는 권능으로서의 채권도 물권과는 구별되지만, 재산권의 효력 범위 안에 놓이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재산권의 실체가 대물적 권한이 아니라 대인적 권한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물권과 채권의 경계는 영미법 체계에서 그런 것처럼 본시 뚜렷한 것이 아니다.
물론 모든 채권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생존권 보장과 관련된 채권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예컨대, 분할연금수급권은 공법상 채권의 분할과 양도를 전제한 것이고, 그러한 분할과 양도는 엄연히 기대수익의 처분권을 전제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일방적인 급부에 의존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에 공법상의 채권에 대한 권리 주장이 긴요해 지고 있어서 이에 관한 헌법적 규범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서기, “재산권 개념의 변화: 맥퍼슨의 이해를 중심으로,” 법조 61/6(2012), 205ff.
3.2. 그 다음, 재산권의 위상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재산권은 자유권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재산권이 자유권의 하나로 규정된다면, 국가는 재산권을 보호하고 보장할 뿐 이에 간섭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재산권의 자유권적 성격은 프랑스 혁명 이후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1791년) 제17조에서 명료하게 표현되었다. 거기서 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 제17조: “소유권은 불가침적이고 신성한 권리이므로, 법률적으로 확정된 공공의 필요가 이를 명백히 요구하고, 소유자가 사전에 동등한 보상을 받은 조건 아래서가 아니라면, 소유권은 그 누구에게서도 침탈될 수 없다.”
이 선언의 정신은 프랑스 헌법에 명시된 뒤에 나폴레옹 법전(1804)을 통해 유럽 각국의 헌법에 뿌리를 내렸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일반 선언"과 나폴레옹 법전에 명시된 소유권의 의미에 대해서는 甲斐道太郞 외, 소유권 사상의 역사, 강금실 역(서울: 돌베개, 1984), 96ff. 109ff.를 보라.
프랑스 혁명 이후에 선포된 소유의 신성불가침성은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침탈당하지 않은 채 자주적인 삶을 형성하기 위한 물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을 의도한 것이었고, 그러한 한에서 재산권은 자유권적 성격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만일 국가가 개인의 생명과 자유롭고 자주적인 삶의 형성에 꼭 필요한 재산과 재산권 행사를 침탈한다면, 그러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국가에 예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재산권은 응당 자유권적 권리로 천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와 같은 재산권의 자유권적 성격은 현대 국가에서도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권리의 주체는 자연인으로 한정되어야 하고, 그 규모는 사회규범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그런데 프랑스 인권 선언의 소유권 조항은 곧바로 로마 물권법의 소유권 개념과 결합되었고, 소유자의 귀속 재산에 대한 절대적 처분권을 뜻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소유권 개념은 사람의 물건에 대한 관계만을 추상적으로 포함할 뿐 사람의 물건에 대한 관계를 매개로 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배제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문제를 안게 된다. 그러한 소유권 개념은 대토지소유자의 권력을 강화시켰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소유자의 사회적 권력을 절대화했다. 이렇게 해서 확립된 소유계급의 지배는 소유자 중심의 정치적 지배체제의 구축으로 공고화되고, 헌법 규범의 정식화와 해석을 소유자친화적으로 고착시켰다. 이것은 소유권의 자유권적 성격을 명시한 헌법이 자리를 잡은 모든 사회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위해서는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 규정으로부터 재산권이 사회적 인정과 규율 아래 놓인다는 원칙이 확인되고, 재산권 행사는 책임을 지며 그 책임은 법률에 의해 부과된다는 규범이 확립되어야 한다. 예컨대, 토지에 대한 재산권이 귀속토지에 대한 사용·수익·처분의 권능으로 구현된다고 하더라도 그 재산권의 행사는 단순히 제3자의 간섭과 침해를 배척하는 것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산권 행사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까지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소유자의 귀속 토지에 대한 지배권은 사회적으로 승인되어야 할 권리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토지 지배를 매개로 한 봉건적 지배관계가 철폐된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뒤에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토지 수용과 배분이 이루어진 것도 같은 이치이다. 부동산 투기와 지대 수취로 인해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사회적 약자의 생활권과 주거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부동산 소유자가 재산권 행사에 따르는 의무와 부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사회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의 여파로 상가구역이 소멸됨으로써 수익기회를 상실한 데 대한 정당한 배상이 재산권 행사라는 이름으로 무시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일로 생각되고 있다. 더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생산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기업에서 생산수단의 소유도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은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자본소유자 및 그 대리인과 노동자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운영되고, 기업이 자리 잡고 있는 사회의 인프라에 의존하고 그 인프라의 일부를 구성한다. 바로 이와 같은 기업의 구성과 현존방식은 사업 구상과 전개의 물적 표현인 생산설비의 확장과 축소, 이전과 폐쇄, 매각과 매입 등 기업의 재산권 행사가 엄격한 사회적 통제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산이 자본의 형태를 취하여 사회적 권력으로 기능하고 있는 한, 그 자본이 자연인에 귀속되든, 법인에 귀속되든, 공법상의 단체에 귀속되든 상관없이, 그 권력 자원의 운용과 처분은 응당 그 권력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용인될 수 있어야 한다.
재산권 행사에 따르는 책임은 사회관계들에서만이 아니라 생태계와의 관련에서도 엄격하게 요구된다. 국가가 나서서 국유재산인 4대강 개발 사업을 벌인 것은 국가에 의한 재산권 행사가 어떤 파국적 결과를 불러일으키는가를 잘 보여준다. 개발의 가능조건인 재산권 행사가 하천, 호수, 습지, 산림, 지표면, 지하, 해안, 해양, 대기권 등 생태계와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에 미치는 가공할 만한 영향을 감안한다면, 재산권 행사가 생태학적 관점에서 엄격하게 규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국가와 같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공법상의 단체가 생태계의 공간적 구성 부분에 대한 소유 주체가 되는 경우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3.3. 위에서 말한 바에 근거하여 나는 헌법 개정을 할 때 현행 헌법 제23조와 제122조를 병합하고 재산권 규정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것을 제안한다.
① 재산권은 인정된다. 그 본질과 실체 만일 현행 헌법 제23조 ①항 규정에 나오는 재산권의 ‘내용’이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를 의미한다면 그렇게 써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과 민법이 대륙법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재산권의 ‘내용’을 그 ‘본질과 실체’로 보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와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여야 하고, 사회적 책임과 생태학적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재산권 행사에 대해서는 법률에 의해 특별한 제한과 부담과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
③ 공공의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 정하되, 재산권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
4. 사회권은 현행 헌법에서도 여러 가지로 명문화되어 있지만, 많은 점에서 미흡하기에 상당한 보완이 필요하다. 본시 사회권은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서 최초로 명문화된 뒤에 여러 나라의 헌법에 자리를 잡아갔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의 예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은 제157조로부터 제165조에 이르기까지 사회권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제157조(국가의 노동 보호 의무와 노동법 제정 의무), 제158조(정신노동의 보호), 제159조(단결권의 불가침성), 제160조(노동자의 시민권 실현과 명예직 공무 담임에 필요한 시간 보장), 제161조(사회보장), 제162조(노동자의 법적 지위의 국제적 보장), 제163조(공동체 보존에 기여하기 위한 노동의무, 실업급여), 제164조(자영업자 보호), 제165조(기업 차원과 국민경제적 차원의 단체교섭권, 기업, 지역, 국가 수준의 대등한 공동결정권, 기업, 지역, 국가 차원의 노동자평의회 조직,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에 관한 노동조합의 법률발의권 등). 그런데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권은 인간이 노동을 하며 사회적으로 삶을 꾸려간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사회철학자와 사회정책가로 활동한 에두아르트 하이만의 고전적인 노동권 규정은 참고할 만하다. 그는 노동권을 “노동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노동 안에서 그리고 노동에 접할 때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로 정의했다. E. Heimann, Soziale Theorie des Kapitalismus: Theorie der Sozialpolitik(1929)(Frankfurt am Main: Suhrkamp, 1980), 180. 각주 1.
이다. 그 때문에 사회권은 두 갈래로 개념화된다. 하나는 인간이 노동을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 곧 노동권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삶을 사회적으로 보장받을 권리이다. 이 두 가지 권리들은 오직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전제할 때 비로소 실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사회세력들의 권력 균형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책무가 있으며, 나는 이 점을 이미 헌법 총강에 관련된 부분에서 충분히 강조해 두었다.
4.1. 노동권은 인간이 노동을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들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을 하지 않을 때에도 자유로운 행위 주체이고, 노동을 할 때에도 자유로운 행위 주체여야 하지만, 노동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생계를 위하여 노동하는 사람들은 자본의 노동 포섭 아래서 노동을 한다. 이처럼 자본의 권력에 예속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투쟁하였고, 단결권을 위시한 노동자들의 권리들을 국가가 인정하고 보장할 것을 요구하였다.
노동권은 대체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집합으로 여겨지지만, 노동3권은 각기 다른 성격과 위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3권에 대한 헌법 규정은 병렬적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옳다. 노동3권 가운데 가장 본원적인 권리는 단결권이고, 그것은 결사의 자유라는 자유권적 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단결권은 국가나 기업에 의해 침해될 수 없고 제한될 수 없다. 단결권을 제한하는 법률이나 법률 해석, 기업 정관 등은 모두 무효이다. 단결권은 노동자들이 자본의 권력에 대항하고 사회권력들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노동의 권력을 자주적으로 형성할 권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단결권이 여전히 전면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국가와 기업에 의해 온갖 구실로 침해되고 있는 있기에 단결권의 자유권적 성격을 헌법 규범에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런 점에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단결권 규정을 “노동자는 자주적으로 단결할 자유를 가진다.”고 정식화할 것을 제안한 것은 의미가 있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보고서, 89.
단체교섭은 사회세력들의 자치 영역이고 책임 있는 사회적 파트너관계를 전제한다. 따라서 국가가 사회적 자치에 개입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배제된다. 국가가 할 일은 단체교섭의 제도적인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고려할 사항은 두 가지이다. 첫째, 단체교섭의 전제인 사회적 파트너관계는 오직 사회세력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어야 제대로 구축된다는 것이다. 둘째, 단체교섭은 주로 노동조건과 임금을 둘러싼 합의를 목표로 하고, 그 합의는 개별 사업장의 경영 여건만이 아니라 국민경제적 발전에 적합하여야 한다. 바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단체교섭은 산업별로 경영자단체와 노동자단체 사이에서 체결되는 것이 원칙이고, 기업 차원에서는 경영자와 노동자의 공동결정을 제도화하여 기업의 인사정책, 사회정책,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것이 원칙이다. 기업 차원의 노사 공동결정은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정하는 기업의 사회정책 차원에서는 지금도 이미 제도적으로 실현되어 있다. 인사정책 역시 경영자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일방적으로 수립하고 관철시킬 수 없다. 해고방지법이 작동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는 기업조직의 효과적인 작동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운용에 관련된 경제정책은 자본의 사회적 성격이 뚜렷한 만큼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이나 최소한 노동자 측의 용인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따라서 기업은 사회정책, 인사정책, 경제정책 등 기업 경영의 모든 영역에서 노사 공동결정에 입각하여 운영하는 것이 사리에 부합한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 제도에 대한 독일 사회적 개신교의 논의,” 『지구화 시대의 사회윤리』, 152f.를 보라.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단체교섭에 관한 헌법 규정에 산별 단체교섭 제도와 노사 공동결정제도의 도입을 포함시키는 데 머뭇거릴 까닭이 없다.
단체행동권은 단체교섭이 성사되지 않고 사용자의 성실 의무를 강제할 다른 방도가 없을 때 노동자들이 노동 소득을 포기할 것을 전제하고 사용자에 대해 취하는 최후의 압력 수단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노동자들의 합법적인 투쟁권이다. 단체행동권의 행사는 노동자 자신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민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성과 평화적 행위의 계명을 지키도록 법적으로 규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단체행동권의 본질을 훼손하는 입법이나 법률 해석은 무효이다. 바로 이 점을 단체행동권에 대한 헌법 규범은 반드시 확인하여야 한다. 예컨대, 사용자가 불법으로 판정된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 민사소송에 호소하는 일은 민사법원에 의해 대물권으로 좁게 해석되어 온 재산권 행사로 사회적 권리인 단체행동권에 대응하고 이를 억압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단체행동권이 목표로 삼고 있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신실 관계의 회복은 재산권 행사에 호소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4.2. 사회권의 또 한 측면은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연대적으로 형성하고 향유할 권리이며, 국가는 그 권리를 보장하고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할 책무를 진다. 사회권에 관한 헌법 규정은 사회경제적 여건과 발전 추이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위시하여 기술 능력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완전 고용이나 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 육성을 기대하기는 이미 어렵게 되었다. 노동기회와 생활소득을 연계하는 노동사회 모델의 시효가 다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은 노동 업적과 무관하게 인간의 존엄한 삶을 연대적으로 보장하는 국가의 책무를 사회권 규정의 맨 처음에 올려놓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헌법은 노동사회 이후의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을 전제로 하고서 노동 의무를 폐지하여, 노동연계복지 개념의 헌법적 근거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하다.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고 사회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데 충분한 물질적 보상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노동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어떻게 문명사회의 규범일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본 원칙을 분명히 한 뒤에 비로소 노동 능력이 있고 노동 의사가 있는 사람이 노동기회를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고, 노동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비용의 지급을 요구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 문명사회의 원칙일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일자리는 생계 소득의 한 주요원천이기에 노동할 권리와 노동의 기회비용을 청구할 권리는 생존권 주장의 성격을 띠며, 이 권리는 원칙적으로 제한될 수 없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해 대량 실업과 미취업이 일상적인 의제로 자리를 잡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헌법이 이 두 가지 권리를 사회 규범으로 명문화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헌법 규범 아래서 돈벌이 노동은 반드시 정규직 노동일 필요가 없다. 다만, 정규직 노동과 비정규직 노동이 동일노동일 경우에는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이 허용될 수 없다. 모든 노동은 노동하는 사람과 그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이 원칙이고, 정규직 노동자의 법정 노동 시간보다 더 적은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생계를 꾸려가는 데 필요한 소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로부터 급부를 받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 연대의 원칙에 부합한다. 노동하는 사람이 노동하는 시간과 생활하고 휴식하는 시간을 자주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시간 주권이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는다면 노동 형태는 매우 다양하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새 헌법에 이러한 사회적 권리들을 명문화한다면, 그 규범들은 우리 사회가 노동사회를 넘어가는 데 필요한 법제들을 만드는 일을 촉진시킬 것이다.
사회보장에 대한 국가의 최종적 책임과 그 책무를 명문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그친다. 다만,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도입에 대해 한 두 마디 덧붙이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는 전면적이고 보편적인 최대한의 복지 제도의 도입조차 시대착오적인 과도한 업적 지상주의로 인해 금기시되고 있으니,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제도화하자는 주장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사회 이후의 복지 개념을 구상할 것을 요청하는 사회권 규범들이 헌법에 자리를 잡는다면, 그 규범들은 우리나라에서 완전시민이나 제한적 시민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인간다운 삶의 기회를 연대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도록 자극할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결국에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제도화가 진행될 것이다.
5. 현행 헌법에서 환경권 규정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며, 생태계 위기의 심각성과 그로 인한 생존 기회의 위협을 고려할 때 대폭 강화되어야 마땅하다. 우선 헌법 차원에서 ‘환경보전’이라는 인간중심적 개념을 떨쳐내고, 인간이 그 구성부분으로 참여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전이라는 개념을 쓸 것을 제안하고 싶다. 헌법 개정에 자문역을 맡은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헌법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생태계 보전은 생태계의 온전성을 보존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므로, ‘지속가능한 개발’보다 훨씬 더 심원하고 철저한 개념이다. 만일 헌법이 생태계 보전과 향유의 권리를 만인의 권리로 명문화한다면, 우리나라는 자유국가와 사회국가의 문턱을 넘어서서 자연국가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생태계의 온전성을 보존하겠다는 헌법적 의지는 생태계 안에서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이 맺고 있는 상호 의존과 상호 연관의 네트워크를 유지할 책무를 국가에 부여하고, 그 당연한 전제로서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이 생태계의 복잡한 네트워크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유지할 권리를 인정할 것을 국가에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5.1. 따라서 생태계의 보전은 인간의 권리만이 아니라 자연의 권리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생태계 안에서 살 권리를 인정받을 때, 그 권리는 생태계 향유의 권리로 발현한다. 그런데 그 권리는 논리적으로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이 생태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제 자리를 지킬 권리를 인정받는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니, 바로 이 권리가 생태계 보전의 핵심인 자연의 권리이다. 자연의 권리는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유지할 권리,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천, 호수, 강, 지하수, 습지, 산, 산림, 해안, 해양, 대기권 등 생태계의 공간적 배치의 유지를 요구할 권리, 그 공간적 배치 안에서 생명체의 종 다양성의 보존을 요구할 권리, 재산권 행사와 개발에 대항하여 생태계의 미학적 배치와 구성을 보존하고 생태계의 복원력 유지를 요구할 권리 등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권리들이 자연에 부여된다고 하더라도, 자연은 말을 통하여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의 권리는 결국 자연의 대리인을 통하여 실현되는 권리일 수밖에 없다. 자연의 권리를 창설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대리인을 법률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하는 작업이다.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행위 주체는 헌법에 근거한 공법상의 법인이 바람직하고, 그 공법상 법인은 국가인권위원회처럼 행정권력, 입법권력, 사법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위상을 갖는 것이 사리에 맞다. 자연의 권리와 그 대리인의 권능은 사람들의 욕망을 가장 강력한 권력의 형태로 표현하는 국가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권리대리인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연의 권리들을 실현하는 법제화 방안을 제시하고, 그 권리들이 침해되지 않도록 예찰 활동을 하고, 자연의 권리들이 침해될 경우에는 이를 조사하여 검찰에 고발하고, 침해된 권리들의 회복과 이에 따르는 보상 혹은 배상을 요구하는 등의 책무를 수행한다.
위에서 말한 자연의 권리와 그 대리인의 구성 및 책무는 헌법에 규정될 사항이다. 자연의 권리와 그 대리인 구성의 근거는 헌법의 기본권 부분에 명기하고,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기구의 구성과 책무에 대한 규정은 별도의 장을 마련하여 그곳에 새겨 넣으면 될 것이다.
5.2.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에 관련해서 헌법에 반드시 명기할 규범들이 몇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천, 호수, 강, 지하수, 습지, 산, 산림, 해안, 해양, 대기권 등에 대한 소유 주체와 관리 주체의 교체에 관련된 규범이다. 생태계의 공간을 구성하는 주요 대상물들은 주거, 영농, 목축, 임업, 기업 활동과 산업 활동, 도로 등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국가소유와 사적 소유로부터 공적 소유로 전환시키고, 그 공적 소유권을 행사하는 주체를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공법상의 단체로 구성하여 자연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재산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그 단체가 중앙과 지역자치 단위에서 활동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소유권 전환은 재산권에 과한 헌법 규범 ③항의 규정에 의해 촉진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규범은 경제활동을 생태학적으로 규율하는 일에 관련된다. 경제활동은 생태계로부터 에너지와 물질을 끌어들여 이를 소비하기 용이한 형태로 변화시켜 이를 사용한 뒤에 폐기 에너지와 폐기 물질을 생태계에 배출하는 과정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서로 맞물리면서 경제활동은 생태계에 전면적이고 치명적인 위기를 가져온 장본인이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이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규율되어야 한다. 생태학적 규율 방식은 다양하게 고려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생태계의 에너지-물질 결산을 중심으로 생태학적 효율성을 높이도록 경제주체들을 경쟁시키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 수도 있고, 경제활동이 생태계에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시켰을 경우에 그 경제활동의 주체가 외부효과를 제거하는 비용을 반드시 지불하도록 하여 외부효과를 내부화할 수도 있다. 헌법에는 “경제활동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는 정도로 명문화해서 국가와 경제 주체들이 생태학적 관점에서 경제활동을 제도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마련하도록 자유로운 활동여지를 남겨두면 좋을 것이다.
생태학적 소유권 개혁에 관한 헌법적 규범은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는 대목에 명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활동의 생태학적 규율에 관한 규범은 경제활동의 자유, 경제권력 형성의 억제, 경제 민주주의 등 경제활동을 규율하는 헌법적 원칙을 천명하는 조항(현행 헌법 제119조)에 병기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IV. 맺음말
이 글에서 나는 헌법의 전문과 총강, 그리고 기본권의 체계를 검토하면서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지향을 갖는 민주공화국을 형성하기 위해 명료하게 재규정되어야 할 인간의 시민의 권리들을 검토하고, 자연의 권리를 창설하는 방안을 논했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첫째 주권재민의 원칙에서 직접 도출되는 참정권을 기본권의 체계로부터 독립시켜 그 위상을 기본권의 체계 바깥에 두었고, 대의제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험할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둘째, 부르주아 국가들에서 고착된 재산권의 자유권적 성격에 대해서 나는 국가의 간섭과 침해로부터 벗어나 자연인의 자유를 지키고 자주적인 삶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물적 기반의 확보라는 한정된 의미에서 이를 인정하였을 뿐이고,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재산권의 행사가 사회규범과 법률의 규율을 받아야 하고, 공공복리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과 생태학적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고, 이러한 내용을 새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나는 사회세력들의 제도적인 권력 균형을 보장하는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고, 새 헌법이 노동3권 가운데 단결권의 자유권적 성격을 분명히 명문화하고, 단체교섭이 산별 수준의 단체교섭과 기업 차원의 노사 공동결정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제도화하도록 규정하고, 단체행동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법률의 제정이나 법률의 해석을 무효로 선언하고, 사회권의 행사를 억압하고 무력화시키는 재산권 행사를 금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존엄하고 자유로운 삶을 연대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노동 업적과 복지급부의 연계를 해체하여 노동사회 이후의 사회에 대비하는 헌법 규범을 마련하고, 정규직 노동과 비정규직 노동의 차별을 금지하고, 노동소득이 생계비를 충당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가로부터 소득보전급부를 청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존중하는 헌법 규범을 마련할 것을 강조하였다. 끝으로 나는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보전하고 향유하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생태계의 공간적 배치를 유지하고 그 안에서 복합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이 자신의 존속을 요구할 권리를 핵심으로 하는 자연의 권리들을 창설하고 그 권리를 실현하는 방법을 새 헌법에 명문화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제10차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에 민중이 참여하고 민중이 동의하는 개헌안이 절차에 따라 국민투표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는 6월에 실시되는 지방선거 때 헌법 개정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은 민중을 배제한 채 기득권 정치세력 중심으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니, 그러한 개헌 과정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나는 계급· 계층, 성, 연령, 정체성 등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욕망들과 의견들이 표현되고 수렴되는 숙의공동체가 조직되어 새 헌법에 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헌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검토와 재규정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권리들이 창설되고, 국가의 가치체계와 목표가 설정되고, 국가와 사회의 운영 원리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서 나라다운 나라가 제대로 세워지기를 바란다.
헌법의 기본권 체계에서 자유권, 사회권, 자연권, 참정권의 관계 (강원돈)
- 대한민국 헌법 개정 논의에 관련된 한 민중신학자의 제언
강원돈 (한신대 교수/민중신학과 사회윤리)
I. 머리말
헌법 개정은 2016-2017년 촛불항쟁 과정과 그 이후의 정세에서 하나의 이슈로 떠올랐다. 촛불항쟁에서 군중은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벌어진 국정농단“에 분노하여 ”이게 나라냐?”하고 절규했고, 87년 헌정질서의 기득권 체제에 안주하여 국정을 농단하던 세력을 물러나게 했다. 이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은 촛불항쟁 이후에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과제가 되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이 국정농단의 핵심 고리가 되어 국정을 파행시키고, 정경유착을 고질화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을 위시하여 교육과 노동에 관련된 기본적인 권리들마저 철저하게 짓밟았으니, 권력을 새롭게 구성하고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인간과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제대로 보장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가 되었다. 헌법 개정이 우리 시대의 최대 과제가 된 것이다.
이미 국회는 촛불항쟁이 한창이던 2016년 12월 29일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2월 2일부터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헌법개정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국회 차원의 헌법 개정 논의는 크게 보아 국민주권주의 강화, 중앙집권화된 권력 분산, 기본권 신장 등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성과를 담은 자문위원회 보고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편,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대한민국 국회, 2018년 1월).
를 발표하고 12월 31일 활동을 종료하였다. 그러나 개헌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할 주권자는 개헌 논의에서 비켜나 있고, 촛불항쟁에서 뿜어져 나왔던 현상 변경의 힘은 개헌의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지 않다.
이제까지 아홉 차례 실시된 개헌은 주로 집권자에 의해 추진되었거나, 4·19 민주항쟁과 6월 민주항쟁 이후에 개헌의 기회가 민중에 의해 마련되었어도 민중을 완전히 도외시한 정치 엘리트들 중심으로 개헌안이 마련되고 성사되었다. 제10차 개헌을 준비하기 위하여 국회에서 조직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의 면모를 보더라도 53인의 자문위원들 가운데 민중적 관점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자문위원들 가운데 민중적 관점을 대변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인사는 한 사람 정도이다. 그 인사는 오랫동안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변호사 활동을 해 온 사람이다. 노동자, 농민, 빈민 단체들과 산하 연구소들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예는 없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은 여섯 사람이 참여했다. 참여연대, 환경연합, 헌법개정여성연대에서 한 사람씩, 그리고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들에서 세 사람이 참여했다.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들 가운데 학계 출신이 32명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였고, 그 나머지는 여섯 사람의 법조계 인사들과 경제계 인사들, 의회와 관료 출신 인사들이다.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여성들은 모두 일곱 사람이어서 13%의 비율이고, 그나마 두 사람은 중도에 사퇴하였다. 헌법 개정에 관한 자문이 상당한 수준의 전문 지식과 식견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민중의 참여가 거의 완벽하게 차단된 것은 스캔들이다. 자문위원회의 구성이 성 평등 원칙을 도외시하였다는 비난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민중을 철저하게 배제하다시피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 10차 개헌 과정에서 민중은 개헌 논의에 광범위하게 참여하여 개헌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국가에 의해 침해되지 않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들의 체계와 배치를 결정하고, 이로부터 국가 구성과 운영의 원칙을 규정하여야 한다.
만일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을 편드는 유기적 지식인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민중신학자들은 헌법 개정 논의에 책임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현행 헌법의 조항문들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가를 놓고서는 방대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므로 민중신학자들은 이에 관련된 체계적인 연구를 기획하고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글의 과제는 개헌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헌법 전문과 총강, 그리고 기본권 체계에 대한 민중신학적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한정된다. 국가의 가치체계와 목표를 바르게 설정하고, 기본권의 체계에 속하는 자유권, 사회권, 문화권, 자연권 등의 성격과 관계를 규명하고, 참정권의 위상을 명확히 한다면, 헌법의 거의 대부분의 조항문들을 차지하는 국가와 사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헌법적 규범들을 세우는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나는 현행 헌법 전문과 총강을 검토하면서 국가의 구성과 운영의 원리,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정의를 최대한 구현하는 사회구성 원리, 문화 형성과 진흥의 원리에 대하여 강령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그 다음에 이러한 원리들의 근거가 되는 기본권의 체계와 그 체계에 속하는 권리들의 성격과 내용을 밝힐 것이다. 참정권은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주권에서 직접 도출되는 권리이기 때문에 나는 참정권을 기본권 체계에 넣기 보다는 국가 구성과 운영의 원리를 다루는 헌법 총강에 배치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에 기본권 체계에 속하는 자유권, 사회권, 문화권, 자연권의 내용과 상호관계를 전면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고, 오직 권리 주체의 설정, 재산권의 위상, 재산권과 노동권의 관계, 사회권의 새로운 구성, 자연의 권리와 그 대리인의 구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주제들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민주공화국을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장 치열하게 논해야 할 이슈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문화적 권리들에 대한 논의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고, 다른 기회에 본격적으로 논하고 싶다.
II. 헌법의 전문과 총강에 관하여
1. 헌법의 전문과 총강은 대한민국의 기원, 기본가치와 이념, 국가의 목표, 헌법의 정통성, 국가와 사회의 구성과 운영의 원리를 밝히는 부분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문제들과 과제들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표현하고 이에 대응하고자 하는 국민적 의지를 헌법의 틀에 담는 장치이다. 제9차 개헌에 의해 마련된 1987년 헌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그 헌법이 국민의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생태학적 욕망과 지향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정 헌법의 전문과 총강은 변화된 상황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것과 국가가 해야 할 것의 대강을 분명하게 밝혀서 헌법의 각론을 구성하는 기본권의 체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의 구성과 운영 등에 관한 헌법 조항문들을 규율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헌법 전문과 총강의 검토는 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다.
2. 헌법 개정이 절박한 이유는, 이미 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87년 헌정질서의 틀에서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대통령 권력을 분산해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 권력만이 아니라 모든 권력의 분산과 통제는 제10차 개헌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개헌이 절박한 까닭은 1987년 헌법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1987년 헌법은 민주항쟁의 성과로 개헌의 기회를 제공한 민중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국민적 열망이었던 대통령 직선제를 방패로 삼은 기득권 정치세력들의 타협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하여 제도권 정치에 민중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효과를 빚어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중심으로 구축된 대의기구는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기득권 정치세력을 안정시켰고, 선거 참여를 제외한 국민의 정치 참여 기회는 극도로 제한되었다. 이로 인하여 제도권 정치와 그것이 담아내지 못하는 시민과 민중의 다양한 욕망을 실현하려는 운동은 분리되고, 제도권 정치를 뿌리째 뒤흔드는 시민과 민중의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1987년 헌정질서의 태생적 한계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졸고 “‘87년 체제’의 청산과 민중정치 -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얻는 한 귀결,” 『신학과사회』 30/4(2016), 159-165와 각주 23의 논자들의 주장을 참고하라.
민중은 고사하고 시민이 대변되는 곳에 시민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대의제의 실패를 극복하고, 국민주권의 원칙에 입각하여 국민의 참정권(선거권, 공무담임권, 발의권, 소환권, 국민투표권 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1987년 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87년 헌정질서에서 자유권이 신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자유권마저도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 정권의 핵심세력에 의해 추진된 문화계, 학계, 언론계의 블랙리스트 작성과 노골적인 불이익 처분, 역사교과서 국정화, 민중총궐기 대회의 폭력적 진압과 시위 참여자 살상, 대테러방지법, 통합진보당 해산, 종교의 자율성 침해 등등은 양심과 신앙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국가가 침해하거나 제한할 수 없고 오직 보장의 의무만이 있는 최고의 자유권을 형해화했다. 모든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고, 차별받지 않는다는 평등권이 자유권의 바탕이 된다는 점도 우리 헌법에서 충분하게 천명되어 있지 않다. 성평등에 대한 규정이 없고,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금지가 명시되지 않은 것은 대표적인 본보기일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급속히 전환되어 노동합리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가 엄청나게 일어나고, 비정규직 노동이 확산하고, 사회적 양극화가 고착되었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은 자본친화적이고 노동배제적인 법령에 의해 실효성 있게 실현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어져 책임 있는 사회적 파트너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기업의 공동결정권과 산별교섭권 등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다. 심지어 불법파업 단정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가압류 조치와 같은 재산권 행사로 노동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집단행동권이 무력화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한 분석으로는 졸고 “노동권과 소유권,” 『지구화 시대의 사회윤리』(서울: 한울아카데미, 2005), 239-241.
또한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은 용산참사 등의 야만적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개발이익을 독점하려는 재산권 행사자들에 맞서서 임대자들의 권리와 이익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이러한 사태 발전에 더하여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권리들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강화된 업적지상주의로 인하여 무시되거나 매우 기형적인 방식으로 보장되고 있다. 노동연계복지 개념에 근거한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민중을 낙인효과 아래 놓이게 하고 가난의 함정에 빠뜨렸다. 소득 분배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재분배에 관한 논의조차 우리 사회에서는 업적지상주의에 의해 발목이 잡혀 있다. 그러니 국가가 모든 시민들에게 존엄하고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구상은 극심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은 총강 제9조에서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국가 과제로 천명하고, 사회권의 틀 안에서 문화적 권리의 한 종류인 교육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화의 진척으로 문화간 접촉과 혼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다. 문화국가의 과제로 설정된 교육에 대해서 현행 헌법은 국가주의적 교육의 틀을 강조할 뿐, 교육의 공공성과 교육 자치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다. 이러한 헌법 규정 아래서는 국가가 나서서 대학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상황을 막을 수 없고, 사립학교의 비민주주의적인 지배구조와 비리를 방지할 수 없고, 각급 학교의 교육 과정과 평가를 국가가 주도적으로 규정하는 일도 막을 수 없다.
아마도 현행 헌법에서 환경보호 규정은 기본권 부분에서 가장 취약할 것이다. 헌법 제35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②항에서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환경권 규정은 극도로 인간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 그것도 공리주의적으로 정식화되어 있고, ①항의 이 선행규정은 뒤에 나오는 ‘환경보전’의 의미를 한정하고 있다. 게다가 환경권에 관한 모든 사항은 법률에 위임되어 있어 생태계의 건강성과 안정성을 보호하는 국가의 의무는 실제로는 헌법의 규율을 받지 않고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최소 강령마저도 담아내지 못하는 헌정질서에서 국가가 나서서 새만금 사업을 벌이고, 4대강 사업을 벌이는 등 생태계 재앙을 가속화하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프로그램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제10차 개헌을 통하여 마련되는 헌법은 전문과 총강에서 국민주권주의 강화와 참정권 확대, 중앙집권화된 권력의 분산과 대의제의 혁신을 전제하면서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사회국가와 문화국가, 그리고 자연국가의 형성을 국가 구성과 운영의 기본 원리로 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3.1. 많은 나라들에서 헌법 전문은 헌법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천명하고, 국가의 가치체계와 목표를 명확하게 밝히는 구실을 한다. 우리나라의 현행 헌법도 그렇게 되어 있다. 현행 헌법의 전문은 크게 보아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분은 1) 대한민국의 역사적 근원과 존재 이유, 2) 대한민국이 지향할 가치체계, 3) 대한민국의 미래지향적 목표, 4) 헌법의 연원과 개정 헌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다루고 있다. 새 헌법의 전문도 이 구조를 유지하되, 그 안에 담을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새 헌법의 전문에 담을 모든 내용을 일일이 검토할 겨를은 없지만, 몇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첫째, 대한민국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주공화국으로 구성되는 과정이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국민국가를 형성하고자 하는 민중 투쟁과 더 많은 자유와 평등, 더 많은 정의와 복지를 실현하려는 민중 항쟁과 저항의 성과였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행 헌법의 전문에는 이와 관련해서 단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민주이념의 계승만이 언급되어 있으나, 1980년 광주 민주항쟁,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2016-2017년 촛불항쟁이 명문화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이러한 열거가 이벤트 중심적 서술 방식이므로 국민국가 형성과 자유, 평등, 정의, 민주주의, 평화, 통일을 위해 면면히 이어진 민중 운동의 성과를 담아내는 포괄적 서술이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현행 헌법은 민주공화국의 가치체계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좁은 틀에 제한적으로 담고 있으나, 새 헌법에서는 이 틀을 해체하여 시민의 참여와 동의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사회적 연대와 정의를 실현하고,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생태계 보전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기본적인 가치체계로 삼고, 여기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운영 원리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셋째, 이러한 기본적 가치체계에 근거하여 국가의 대내외적인 목표를 상황에 맞게 설정하여, 대외적으로는 인류공영,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의 실현, 지구 생태계의 보존에 이바지하고, 대내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면서 자유국가, 사회국가, 문화국가, 자연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선언하면 좋을 것이다.
3.2. 새 헌법의 총강은 헌법 전문이 밝힌 국가의 기본적인 가치체계로부터 국가와 사회의 구성과 운영 원리를 도출하여 이를 일관성 있게 제시하는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현행 헌법과 크게 다른 점이다. 현행 헌법의 총강은 9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내용은 제1조(국가 정체성과 국민주권 원리), 제2조(국적), 제3조(영토), 제4조(평화적 통일 정책), 제5조(국제평화, 국군), 제6조(조약, 국제법규 등), 제7조(공무원), 제8조(정당), 제9조(전통문화, 민족문화)로 되어 있다. 이 조항들은 얼핏 보아도 중구난방인데다가 국가의 운영 원리에 대해서는 오직 제9조에서, 그것도 전통문화의 육성과 민족문화의 창달이라는 단 한 가지 과제에 한정해서 밝히고 있을 뿐이다.
새 헌법의 총강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과 국민주권 원리를 출발점으로 하여 국민 세계화의 효과로 인해 우리나라가 급속히 다민족국가로 변화되고 있기에 국적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나 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기에 이에 관한 논의를 하지 않는다.
과 주권의 영역을 분명히 하고 국민적 주권국가의 국제평화 형성 의무와 한반도 평화통일의 사명을 천명하고 난 뒤에 국가 운영과 정치의 원리, 사회경제적 원리, 교육과 문화의 육성 원리, 생태계 보전의 원리 등을 일관성 있게 강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직 이러한 국가 강령이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기본적 권리들의 성격과 내용을 위시하여 헌법의 나머지 조항문들을 체계적으로 배치하고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다수 의견에 따라 현행 헌법의 총강 체계를 그대로 따르기로 하고, “총강의 체계를 대폭 개정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주권 원리(1조), 국민(2조), 영역(3조), 국제평화와 호혜적 국제관계(4조), 통일 지향성(5조), 국가 운영과 정치의 기본 원리(6조), 시민사회의 기본 원리와 지향(7조), 경제의 기본 원리와 지향(8조), 환경·자연·생태계·생명 등과 관련한 기본 원리(9조), 교육과 문화와 관련한 기본 원리(10조)’로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방안”이 소수안으로 제시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대한민국 국회, 2018년 1월). 47.
여기서 총강에 관련된 모든 사항들을 전부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다. 국민, 주권의 영역, 국제평화 형성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사명, 국가 운영과 정치의 원리 가운데 국군, 공무원 등에 관한 논의는 생략하고, 국가 운영과 정치의 원리에 관해서도 참정권과 관련된 부분만을 다루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총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사회경제적 운영원리, 문화국가적 운영원리, 자연국가적 운영원리 등에 대해서는 강령적 수준의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1) 헌법 제1조는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 천명하는 조항이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의 동등한 참여와 합의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는 국가일 것이니 그 주권의 소재가 국민에게 있는 것이 당연하다. 현행 헌법 제1조 ①항은 이 점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②항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만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의 제1문은 명확하지만, 제2문은 조금 더 또렷하고 분명하게 정식화될 필요가 있다. 첫째,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맞는데, 그 권력은 국민에 의해 직접 행사될 수도 있고 위임에 의해 행사될 수도 있다. 권력 행사 방식은 국민의 의사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둘째, 권력의 행사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 모든 권력은 자의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법률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보완 사항이 명문화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참정권을 무력화시켜 대의제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대통령을 위시한 권력자가 위임받은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아랑곳하지 않고 국정농단을 벌여도 이를 제어할 헌법 규범이 없는 셈이 된다. 따라서 나는 헌법 제1조 ②항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민을 위하여 법률에 의해 행사된다.”로 정식화하거나 제2문의 내용을 서로 구분하여 독립된 항으로 열거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열거방식을 취한다면, 헌법 제1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것이다. 헌법 제1조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의 의사에 따라 행사된다. ③ 모든 권력은 국민을 위하여 행사된다. ④ 모든 권력은 법률에 의해 행사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헌법 제1조에 중앙집중화된 권력을 지방정부로 분산하는 원칙을 담자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는다.
2) 국가 운영과 정치의 원리에 관련해서는 국민의 정치 참여의 원칙, 정당 구성과 활동의 원칙, 삼권분립의 원칙 등을 명시하고, 국군의 구성과 운영, 공무원제도 운영의 원칙 등을 명시하면 될 것이지만, 여기서는 참정권에 관련된 몇 가지 사항만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 참정권은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정체성과 국민주권의 원칙에서 직접 도출되는 권리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참정권은 국가를 창설·운영하고 정치를 형성하는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에 국가의 창설과 존립과 운영으로 인하여 발생하고, 또 그것을 위하여 성립되는 권리이다. 이러한 성격과 본질을 갖고 있는 참정권은 국가에 의해 확인되는 자유권이나 국가에 의해 인정되고 창설되는 사회권과 문화권, 그리고 자연의 권리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따라서 참정권과 그에 관한 규정은 헌법의 기본권 항목에 넣어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구성과 운영 원리를 규정하는 헌법 총강에 명문화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둘째, 참정권은 선거권, 공무담임권, 소환권, 법률발의권, 국민투표 발의권 등으로 발현되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국민이 선출하는 대의기구는 전국적 정당지지율에 정확하게 비례해서 구성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헌법 규범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규범이 법적 구속력을 발생시키게 된다면, 정당의 이념적 분화가 촉진되고, 정당들을 중심으로 한 책임정치의 가능성이 커져서 대의제가 좀 더 실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계급, 성, 연령 등의 차이에 따른 다양하고 다원적인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생태학적 욕망들은, 더 이상 지역주의에 매몰된 후진적인 대의제로 인해 그 실현이 끝없이 유예되는 일 없이, 그 충족을 위한 더 많은 정치적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셋째, 시민과 민중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정당 설립의 문턱을 낮추고, 지역정치와 중앙정치 차원의 정당 결성을 촉진시키고, 진성 당원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권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을 명확히 천명한다. 이에 관련해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을 폐지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투표권을 갖는 모든 국민의 탄핵소추발의권, 소환권, 법안발의권, 국민투표 발의권 등을 헌법 총강에 명시하고, 그 권리의 실현에 필요한 발의정족수 요건과 의결정족수 요건을 가급적 완화하여 직접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도록 참정권의 종류별로 헌법의 적절한 곳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투표권 연령을 낮추어 국민의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히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3) 사회경제적 운영 원리는 사적 자치의 원칙을 출발점으로 하고, 사회세력들이 힘의 균형에 바탕을 두고 서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파트너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삼는다. 오직 이러한 조건이 확립될 경우에만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효율성이 서로 결합되고 사회적 평화를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세력들의 힘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고, 헌법은 반드시 이러한 원칙을 국가 강령으로 규정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헌법은 국가가 주권 영역에서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자유로운 삶을 형성할 기회를 연대적으로 보장한다는 원칙을 밝혀서 대한민국이 사회국가의 규범 아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4) 문화국가의 운영 원리에 관련해서는 현행 헌법의 민족주의적 문화 이해에서 벗어나 세계화의 전개에 따른 문화간 접촉과 혼융, 다민족·다문화 사회의 형성 등에 부합할 수 있도록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관용하는 원칙을 헌법 총강에 부각시키고, 학문과 예술과 기술을 육성하는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교육이 만인을 위한 공공재이고 자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5) 끝으로, 헌법 총강에 생태계 보전을 국가 운영의 원리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가 나서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 비일비재로 벌어지고, 재산권 행사에 따라 무분별한 개발이 이루어져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최소한의 강령마저도 무색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생태계의 온전성을 보존할 국가의 책무를 헌법 규범으로 선언하고, 건강하고 안정된 생태계를 향유할 만인의 권리를 창설할 필요가 있다.
III. 기본권 체계에 대한 검토
1. 현행 헌법의 기본권 체계는 ‘국민’을 권리의 주체로 규정한 뒤에 헌법 제10조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보장과 행복추구권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제11조에서는 모든 국민의 법 앞에서의 평등과 차별금지를 규정하여 제10조의 정신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 다음 제13조부터 제39조까지 이어지는 기본권 조항들은 대체로 자유권, 참정권과 청원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교육권, 사회권, 환경권, 기본권 제한 등을 규정하고 있으나, 기본권 조항들의 배치는 일관성과 체계성을 결여하고 있다.
권리 주체의 문제를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고, 새 헌법을 마련할 때 기본권 조항들을 일관성 있게 체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들은 인간이 존엄한 생명체로서 존재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형성한다는 사실, 인간이 노동을 하며 사회적으로 삶을 형성한다는 사실, 인간이 문화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사실, 인류가 생태계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생태계에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들이다. 이러한 권리들을 어떤 순서에 따라 배치할 것인가는 인간의 현존 방식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생태계 보전과 향유의 권리를 맨 앞에 놓고, 생명권 보장을 그 다음에 놓고, 그 뒤에 자유권, 사회권, 문화권 등을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헌법이 국가의 간섭과 침해로부터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창설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본적 권리들의 배치에서 생명권 규정과 자유권 규정을 맨 앞에 놓는 것도 별로 이상할 것 같지 않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기본권 체계의 정점에 모든 인간이 생명과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놓고, 생명을 가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보장을 그 뒤에 설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종교, 인종, 언어, 연령, 성, 성적 지향, 장애, 지역, 사회적 신분, 고용형태 등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헌법적 규범을 그 다음 순서에 명시해야 할 것이다. 차별의 금지는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의 원칙에 의해 보강되어야 한다. 나는 기본권 체계의 정점에 놓아야 할 이 권리들을 기본권 규정의 기본강령이라고 지칭하고 싶다.
이 기본강령들 아래 자유권적 권리들, 사회적 권리들, 문화적 권리들, 생태계 보전과 향유의 권리들, 청원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들이 일관성 있게 배열되고, 기본권 제한 규정이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자유권적 권리들을 맨 앞에 놓는 것은 인간의 권리가 확인되고 인정되고 창설되어온 역사적 순서를 의식한 측면도 있지만, 국가의 간섭과 침해로부터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인간의 자주적인 삶의 형성과 사회적 연대 형성, 그리고 창조적인 문화 형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각 권리 범주의 본질과 성격을 놓고 볼 때에도 자유권을 앞세우는 것이 적절하다.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성하는 본질이며, 국가는 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창설되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근대에 들어와 민주주의를 최초로 옹호한 철학자 스피노자는 “진실로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finis revera reipublicae libertas est.)라고 명료하게 선언한 바 있다.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정치학 논고』, 최형익 옮김, 초판2쇄(서울: Virtu, 2017), 373.(번역 일부 수정)
따라서 자유의 권리들은 그 본질상 불가침의 권리들이고, 국가에 의해 제한될 수 없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에 반하여 사회적 권리들과 문화적 권리들, 그리고 생태학적 권리들은 국민적 역량과 의지에 근거하여 국가에 의해 인정되거나 창설된 권리들이고 국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육성될 권리들이다. 이러한 기본적 권리들이 논리적 순서에 따라 배치된 뒤에 국가 폭력으로부터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간의 권리들을 구현하는 것과 관련된 절차법적 권리들, 곧 청원권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명문화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2. 헌법에서 권리의 주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매우 까다로운 검토를 필요로 한다. 현행 헌법은 권리의 주체를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가의 책무는 논리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한정되고 있다. 그럴 경우, ‘국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는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현행 헌법의 권리 주체 규정은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는 민족체가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어 왔고, 국가주의가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전개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다양한 구성을 이루게 되었고, 주권의 영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국민뿐만 아니라 영주권자들, 체류허가를 받은 사람들, 여행자들, 불법체류자들도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권리들이 얼마만큼 인정되어야 하는가?
나는 기본권 체계에 속하는 권리들의 종류에 따라 권리의 주체를 설정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기본권 규정의 기본강령을 이루는 권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보장되는 권리들이다. 인간이 존엄한 생명체로서 존재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형성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자유권적 권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신체의 자유, 양심과 신앙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익을 구현하기 위해 단체를 구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캔들이 될 것이다. 그들이 결성한 단체는 임의단체가 될 것이다. 따라서 결사의 자유는 만인의 권리이다.
직업의 자유, 통신의 자유, 주택 불가침권, 현행 헌법에서 주택 불가침권은 거주의 자유로 표현되어 있지만, 거주의 자유는 그 뜻이 모호하므로 주택불가침권으로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거주 이전의 자유도 자유권의 핵심이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 인정되는 권리라기보다는 주권 영역에서 체류 허가를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되는 권리이다.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등은 만인의 권리이다. 전통적으로 자유권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재산권의 주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주권 영역을 넘나들며 모든 사람들이 수익 증권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상황에서 재산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만이 아니라 사회권의 실현과 생태계 보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에 따라 엄격한 법률적 규율 아래 놓여야 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 의해 권리능력과 의무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 재산권의 주체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인간이 노동을 하며 삶을 사회적으로 형성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권리들의 주체는 노동 허가를 받고 체류하는 사람들까지 확대된다. 그들은 사회보장 수급조건을 충족시키는 한에서 국가가 최종적 책임을 지는 사회보장을 향유할 권리도 인정받는다.
인간이 문화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들, 특히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 관용, 교육받을 권리는 주권 영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권리의 보편성 때문에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체류 허가를 신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즉시 체류 허가가 발급되도록 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일 것이다.
생태계 보전과 향유의 권리 역시 만인에게 보장되는 권리이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신속하고 공정한 행정집행을 청구할 권리, 보상을 청구할 권리 등과 같은 절차법적 권리들도 만인에게 보장되는 권리들이다.
따라서 기본권의 체계 밖으로 옮겨 놓은 참정권을 제외하고 ‘국민’을 권리 주체로 설정할 수 있는 권리들은 없다. 재산권의 주체는 국가에 의해 권리능력과 의무능력을 인정받은 모든 사람들이기에 ‘국민’으로 한정될 수 없다. 만일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의 권리가 기본권으로서 창설된다면,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개념 구성에서 급부 주체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같은 정치공동체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그 권리의 주체는 완전시민인 국민과 제한적 시민권자인 영주권자로 한정될 것이다.
3. 새 헌법의 기본권 체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과제는 재산권의 성격과 위상을 규정하고, 재산권 행사를 규율하는 규범을 명문화하는 것이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기본적 권리들에 대해서 의미 있는 제안을 했지만, 유독 재산권 조항에 대해서는 현행 헌법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법률로써”라는 문구를 “법률에 의해”로 가다듬자는 의견을 내는 데 그쳤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편,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 81f.
재산권에 관한 헌법적 규범의 변경이나 수정은 엄청난 사회변화를 초래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저항이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그러한 변경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정치적으로 관철될 수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충분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어왔다. 우리 국민은 그린벨트 설치와 운영을 위시하여 토지공개념을 제한적으로 운용하여 공공복리를 실현하는 역량을 발휘하였고, 현행 헌법 제23조 ②항(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성 요구)과 ③항(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규정), 제122조(토지공개념 규정) 대한민국 헌법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를 명문화하여 이를 규범적으로 뒷받침하여 왔다. 따라서 재산권 행사가 절대적 성격의 자유권이 아니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1. 그러나 현행 헌법의 재산권 규정은 여전히 미흡하며 여러 가지 점에서 보완되어야 한다. 우선, 재산권 개념의 본질과 실체에 대한 이해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현행 헌법의 재산권 개념은 물권과 채권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로마법 전통과 이를 계수한 독일 판덱텐(Pandekten) 법학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로마법 전통에서 물권은 물건에 대한 권리로 한정되기에 사람의 행위에 관한 권리인 채권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처럼 소유권이 물건에 대한 권리로 한정되었기에 물건에 대한 처분권은 절대화되고, 소유권의 제한은 한 물건에 대한 소유권의 행사가 다른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나 그 행사를 침해하는 경우로 한정되었다. 로마 물권법의 성격과 그 제한에 대해서는 윤철홍, 『소유권의 역사』(서울: 법원사, 1985), 26f.30을 보라.
이러한 로마법의 물권 개념을 정교하게 발전시킨 판덱텐 법학 이론은 대륙법의 민법 체계에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였고, 여기서 확립된 재산권 개념이 일본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계수되었다.
이 개념은 두 가지 문제를 갖는다. 첫째, 재산권을 물건에 대한 권리로 일면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재산권이 사람의 물건에 대한 관계를 매개로 해서 성립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측면을 사상하고 있다. 만일 재산권이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자신에게 귀속된 물건에 대한 관계를 규정하는 권한이라면, 재산권은 논리적으로 물건의 사람에 대한 귀속을 그 본질로 하고, 제3자가 그 물건에 대한 간섭이나 침해 금지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소유자가 귀속 물건에 대한 배타적 지배를 규범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그 실체로 한다. 따라서 재산권은 귀속 물건에 대한 사용·수익·처분(uti, fruti, abuti)의 권능을 통일하는 추상적 개념인 소유권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한 마디로, 재산권은 사회적 동의에 근거하여 규범적으로 인정되는 권능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법률에 의해 규율되는 권능이다. 재산권의 본질인 물건의 사람에 대한 귀속 관계와 재산권의 실체인 재산권의 행사 권능은 서로 구별되고,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는 모두 법률의 규율 아래 놓인다는 것이 재산권의 법리이다.
둘째, 현대 사회에서 재산권은 택시면허처럼 수익에 대한 기대나 사람에게 특정한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채권을 그 대상으로 포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택시면허는 물건이 아니지만 마치 물건처럼 거래되고 있기에 재산권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지식과 정보 등도 물건이 아니지만 재산권의 대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것의 귀속관계를 정할 수 있는데다가 그것이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고 임의로 양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빚을 진 사람에게 빚을 변제하는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는 권능으로서의 채권도 물권과는 구별되지만, 재산권의 효력 범위 안에 놓이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재산권의 실체가 대물적 권한이 아니라 대인적 권한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물권과 채권의 경계는 영미법 체계에서 그런 것처럼 본시 뚜렷한 것이 아니다.
물론 모든 채권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생존권 보장과 관련된 채권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예컨대, 분할연금수급권은 공법상 채권의 분할과 양도를 전제한 것이고, 그러한 분할과 양도는 엄연히 기대수익의 처분권을 전제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일방적인 급부에 의존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에 공법상의 채권에 대한 권리 주장이 긴요해 지고 있어서 이에 관한 헌법적 규범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서기, “재산권 개념의 변화: 맥퍼슨의 이해를 중심으로,” 법조 61/6(2012), 205ff.
3.2. 그 다음, 재산권의 위상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재산권은 자유권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재산권이 자유권의 하나로 규정된다면, 국가는 재산권을 보호하고 보장할 뿐 이에 간섭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재산권의 자유권적 성격은 프랑스 혁명 이후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1791년) 제17조에서 명료하게 표현되었다. 거기서 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 제17조: “소유권은 불가침적이고 신성한 권리이므로, 법률적으로 확정된 공공의 필요가 이를 명백히 요구하고, 소유자가 사전에 동등한 보상을 받은 조건 아래서가 아니라면, 소유권은 그 누구에게서도 침탈될 수 없다.”
이 선언의 정신은 프랑스 헌법에 명시된 뒤에 나폴레옹 법전(1804)을 통해 유럽 각국의 헌법에 뿌리를 내렸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일반 선언"과 나폴레옹 법전에 명시된 소유권의 의미에 대해서는 甲斐道太郞 외, 소유권 사상의 역사, 강금실 역(서울: 돌베개, 1984), 96ff. 109ff.를 보라.
프랑스 혁명 이후에 선포된 소유의 신성불가침성은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침탈당하지 않은 채 자주적인 삶을 형성하기 위한 물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을 의도한 것이었고, 그러한 한에서 재산권은 자유권적 성격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만일 국가가 개인의 생명과 자유롭고 자주적인 삶의 형성에 꼭 필요한 재산과 재산권 행사를 침탈한다면, 그러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국가에 예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재산권은 응당 자유권적 권리로 천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와 같은 재산권의 자유권적 성격은 현대 국가에서도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권리의 주체는 자연인으로 한정되어야 하고, 그 규모는 사회규범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그런데 프랑스 인권 선언의 소유권 조항은 곧바로 로마 물권법의 소유권 개념과 결합되었고, 소유자의 귀속 재산에 대한 절대적 처분권을 뜻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소유권 개념은 사람의 물건에 대한 관계만을 추상적으로 포함할 뿐 사람의 물건에 대한 관계를 매개로 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배제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문제를 안게 된다. 그러한 소유권 개념은 대토지소유자의 권력을 강화시켰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소유자의 사회적 권력을 절대화했다. 이렇게 해서 확립된 소유계급의 지배는 소유자 중심의 정치적 지배체제의 구축으로 공고화되고, 헌법 규범의 정식화와 해석을 소유자친화적으로 고착시켰다. 이것은 소유권의 자유권적 성격을 명시한 헌법이 자리를 잡은 모든 사회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위해서는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 규정으로부터 재산권이 사회적 인정과 규율 아래 놓인다는 원칙이 확인되고, 재산권 행사는 책임을 지며 그 책임은 법률에 의해 부과된다는 규범이 확립되어야 한다. 예컨대, 토지에 대한 재산권이 귀속토지에 대한 사용·수익·처분의 권능으로 구현된다고 하더라도 그 재산권의 행사는 단순히 제3자의 간섭과 침해를 배척하는 것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산권 행사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까지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소유자의 귀속 토지에 대한 지배권은 사회적으로 승인되어야 할 권리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토지 지배를 매개로 한 봉건적 지배관계가 철폐된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뒤에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토지 수용과 배분이 이루어진 것도 같은 이치이다. 부동산 투기와 지대 수취로 인해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사회적 약자의 생활권과 주거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부동산 소유자가 재산권 행사에 따르는 의무와 부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사회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의 여파로 상가구역이 소멸됨으로써 수익기회를 상실한 데 대한 정당한 배상이 재산권 행사라는 이름으로 무시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일로 생각되고 있다. 더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생산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기업에서 생산수단의 소유도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은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자본소유자 및 그 대리인과 노동자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운영되고, 기업이 자리 잡고 있는 사회의 인프라에 의존하고 그 인프라의 일부를 구성한다. 바로 이와 같은 기업의 구성과 현존방식은 사업 구상과 전개의 물적 표현인 생산설비의 확장과 축소, 이전과 폐쇄, 매각과 매입 등 기업의 재산권 행사가 엄격한 사회적 통제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산이 자본의 형태를 취하여 사회적 권력으로 기능하고 있는 한, 그 자본이 자연인에 귀속되든, 법인에 귀속되든, 공법상의 단체에 귀속되든 상관없이, 그 권력 자원의 운용과 처분은 응당 그 권력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용인될 수 있어야 한다.
재산권 행사에 따르는 책임은 사회관계들에서만이 아니라 생태계와의 관련에서도 엄격하게 요구된다. 국가가 나서서 국유재산인 4대강 개발 사업을 벌인 것은 국가에 의한 재산권 행사가 어떤 파국적 결과를 불러일으키는가를 잘 보여준다. 개발의 가능조건인 재산권 행사가 하천, 호수, 습지, 산림, 지표면, 지하, 해안, 해양, 대기권 등 생태계와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에 미치는 가공할 만한 영향을 감안한다면, 재산권 행사가 생태학적 관점에서 엄격하게 규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국가와 같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공법상의 단체가 생태계의 공간적 구성 부분에 대한 소유 주체가 되는 경우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3.3. 위에서 말한 바에 근거하여 나는 헌법 개정을 할 때 현행 헌법 제23조와 제122조를 병합하고 재산권 규정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것을 제안한다.
① 재산권은 인정된다. 그 본질과 실체 만일 현행 헌법 제23조 ①항 규정에 나오는 재산권의 ‘내용’이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를 의미한다면 그렇게 써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과 민법이 대륙법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재산권의 ‘내용’을 그 ‘본질과 실체’로 보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와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여야 하고, 사회적 책임과 생태학적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재산권 행사에 대해서는 법률에 의해 특별한 제한과 부담과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
③ 공공의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 정하되, 재산권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
4. 사회권은 현행 헌법에서도 여러 가지로 명문화되어 있지만, 많은 점에서 미흡하기에 상당한 보완이 필요하다. 본시 사회권은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서 최초로 명문화된 뒤에 여러 나라의 헌법에 자리를 잡아갔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의 예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은 제157조로부터 제165조에 이르기까지 사회권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제157조(국가의 노동 보호 의무와 노동법 제정 의무), 제158조(정신노동의 보호), 제159조(단결권의 불가침성), 제160조(노동자의 시민권 실현과 명예직 공무 담임에 필요한 시간 보장), 제161조(사회보장), 제162조(노동자의 법적 지위의 국제적 보장), 제163조(공동체 보존에 기여하기 위한 노동의무, 실업급여), 제164조(자영업자 보호), 제165조(기업 차원과 국민경제적 차원의 단체교섭권, 기업, 지역, 국가 수준의 대등한 공동결정권, 기업, 지역, 국가 차원의 노동자평의회 조직,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에 관한 노동조합의 법률발의권 등). 그런데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권은 인간이 노동을 하며 사회적으로 삶을 꾸려간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사회철학자와 사회정책가로 활동한 에두아르트 하이만의 고전적인 노동권 규정은 참고할 만하다. 그는 노동권을 “노동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노동 안에서 그리고 노동에 접할 때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로 정의했다. E. Heimann, Soziale Theorie des Kapitalismus: Theorie der Sozialpolitik(1929)(Frankfurt am Main: Suhrkamp, 1980), 180. 각주 1.
이다. 그 때문에 사회권은 두 갈래로 개념화된다. 하나는 인간이 노동을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 곧 노동권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삶을 사회적으로 보장받을 권리이다. 이 두 가지 권리들은 오직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전제할 때 비로소 실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사회세력들의 권력 균형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책무가 있으며, 나는 이 점을 이미 헌법 총강에 관련된 부분에서 충분히 강조해 두었다.
4.1. 노동권은 인간이 노동을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들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을 하지 않을 때에도 자유로운 행위 주체이고, 노동을 할 때에도 자유로운 행위 주체여야 하지만, 노동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생계를 위하여 노동하는 사람들은 자본의 노동 포섭 아래서 노동을 한다. 이처럼 자본의 권력에 예속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투쟁하였고, 단결권을 위시한 노동자들의 권리들을 국가가 인정하고 보장할 것을 요구하였다.
노동권은 대체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집합으로 여겨지지만, 노동3권은 각기 다른 성격과 위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3권에 대한 헌법 규정은 병렬적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옳다. 노동3권 가운데 가장 본원적인 권리는 단결권이고, 그것은 결사의 자유라는 자유권적 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단결권은 국가나 기업에 의해 침해될 수 없고 제한될 수 없다. 단결권을 제한하는 법률이나 법률 해석, 기업 정관 등은 모두 무효이다. 단결권은 노동자들이 자본의 권력에 대항하고 사회권력들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노동의 권력을 자주적으로 형성할 권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단결권이 여전히 전면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국가와 기업에 의해 온갖 구실로 침해되고 있는 있기에 단결권의 자유권적 성격을 헌법 규범에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런 점에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단결권 규정을 “노동자는 자주적으로 단결할 자유를 가진다.”고 정식화할 것을 제안한 것은 의미가 있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보고서, 89.
단체교섭은 사회세력들의 자치 영역이고 책임 있는 사회적 파트너관계를 전제한다. 따라서 국가가 사회적 자치에 개입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배제된다. 국가가 할 일은 단체교섭의 제도적인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고려할 사항은 두 가지이다. 첫째, 단체교섭의 전제인 사회적 파트너관계는 오직 사회세력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어야 제대로 구축된다는 것이다. 둘째, 단체교섭은 주로 노동조건과 임금을 둘러싼 합의를 목표로 하고, 그 합의는 개별 사업장의 경영 여건만이 아니라 국민경제적 발전에 적합하여야 한다. 바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단체교섭은 산업별로 경영자단체와 노동자단체 사이에서 체결되는 것이 원칙이고, 기업 차원에서는 경영자와 노동자의 공동결정을 제도화하여 기업의 인사정책, 사회정책,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것이 원칙이다. 기업 차원의 노사 공동결정은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정하는 기업의 사회정책 차원에서는 지금도 이미 제도적으로 실현되어 있다. 인사정책 역시 경영자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일방적으로 수립하고 관철시킬 수 없다. 해고방지법이 작동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는 기업조직의 효과적인 작동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운용에 관련된 경제정책은 자본의 사회적 성격이 뚜렷한 만큼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이나 최소한 노동자 측의 용인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따라서 기업은 사회정책, 인사정책, 경제정책 등 기업 경영의 모든 영역에서 노사 공동결정에 입각하여 운영하는 것이 사리에 부합한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 제도에 대한 독일 사회적 개신교의 논의,” 『지구화 시대의 사회윤리』, 152f.를 보라.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단체교섭에 관한 헌법 규정에 산별 단체교섭 제도와 노사 공동결정제도의 도입을 포함시키는 데 머뭇거릴 까닭이 없다.
단체행동권은 단체교섭이 성사되지 않고 사용자의 성실 의무를 강제할 다른 방도가 없을 때 노동자들이 노동 소득을 포기할 것을 전제하고 사용자에 대해 취하는 최후의 압력 수단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노동자들의 합법적인 투쟁권이다. 단체행동권의 행사는 노동자 자신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민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성과 평화적 행위의 계명을 지키도록 법적으로 규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단체행동권의 본질을 훼손하는 입법이나 법률 해석은 무효이다. 바로 이 점을 단체행동권에 대한 헌법 규범은 반드시 확인하여야 한다. 예컨대, 사용자가 불법으로 판정된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 민사소송에 호소하는 일은 민사법원에 의해 대물권으로 좁게 해석되어 온 재산권 행사로 사회적 권리인 단체행동권에 대응하고 이를 억압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단체행동권이 목표로 삼고 있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신실 관계의 회복은 재산권 행사에 호소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4.2. 사회권의 또 한 측면은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연대적으로 형성하고 향유할 권리이며, 국가는 그 권리를 보장하고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할 책무를 진다. 사회권에 관한 헌법 규정은 사회경제적 여건과 발전 추이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위시하여 기술 능력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완전 고용이나 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 육성을 기대하기는 이미 어렵게 되었다. 노동기회와 생활소득을 연계하는 노동사회 모델의 시효가 다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은 노동 업적과 무관하게 인간의 존엄한 삶을 연대적으로 보장하는 국가의 책무를 사회권 규정의 맨 처음에 올려놓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헌법은 노동사회 이후의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을 전제로 하고서 노동 의무를 폐지하여, 노동연계복지 개념의 헌법적 근거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하다.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고 사회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데 충분한 물질적 보상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노동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어떻게 문명사회의 규범일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본 원칙을 분명히 한 뒤에 비로소 노동 능력이 있고 노동 의사가 있는 사람이 노동기회를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고, 노동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비용의 지급을 요구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 문명사회의 원칙일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일자리는 생계 소득의 한 주요원천이기에 노동할 권리와 노동의 기회비용을 청구할 권리는 생존권 주장의 성격을 띠며, 이 권리는 원칙적으로 제한될 수 없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해 대량 실업과 미취업이 일상적인 의제로 자리를 잡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헌법이 이 두 가지 권리를 사회 규범으로 명문화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헌법 규범 아래서 돈벌이 노동은 반드시 정규직 노동일 필요가 없다. 다만, 정규직 노동과 비정규직 노동이 동일노동일 경우에는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이 허용될 수 없다. 모든 노동은 노동하는 사람과 그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이 원칙이고, 정규직 노동자의 법정 노동 시간보다 더 적은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생계를 꾸려가는 데 필요한 소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로부터 급부를 받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 연대의 원칙에 부합한다. 노동하는 사람이 노동하는 시간과 생활하고 휴식하는 시간을 자주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시간 주권이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는다면 노동 형태는 매우 다양하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새 헌법에 이러한 사회적 권리들을 명문화한다면, 그 규범들은 우리 사회가 노동사회를 넘어가는 데 필요한 법제들을 만드는 일을 촉진시킬 것이다.
사회보장에 대한 국가의 최종적 책임과 그 책무를 명문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그친다. 다만,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도입에 대해 한 두 마디 덧붙이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는 전면적이고 보편적인 최대한의 복지 제도의 도입조차 시대착오적인 과도한 업적 지상주의로 인해 금기시되고 있으니,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제도화하자는 주장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사회 이후의 복지 개념을 구상할 것을 요청하는 사회권 규범들이 헌법에 자리를 잡는다면, 그 규범들은 우리나라에서 완전시민이나 제한적 시민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인간다운 삶의 기회를 연대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도록 자극할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결국에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제도화가 진행될 것이다.
5. 현행 헌법에서 환경권 규정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며, 생태계 위기의 심각성과 그로 인한 생존 기회의 위협을 고려할 때 대폭 강화되어야 마땅하다. 우선 헌법 차원에서 ‘환경보전’이라는 인간중심적 개념을 떨쳐내고, 인간이 그 구성부분으로 참여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전이라는 개념을 쓸 것을 제안하고 싶다. 헌법 개정에 자문역을 맡은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헌법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생태계 보전은 생태계의 온전성을 보존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므로, ‘지속가능한 개발’보다 훨씬 더 심원하고 철저한 개념이다. 만일 헌법이 생태계 보전과 향유의 권리를 만인의 권리로 명문화한다면, 우리나라는 자유국가와 사회국가의 문턱을 넘어서서 자연국가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생태계의 온전성을 보존하겠다는 헌법적 의지는 생태계 안에서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이 맺고 있는 상호 의존과 상호 연관의 네트워크를 유지할 책무를 국가에 부여하고, 그 당연한 전제로서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이 생태계의 복잡한 네트워크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유지할 권리를 인정할 것을 국가에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5.1. 따라서 생태계의 보전은 인간의 권리만이 아니라 자연의 권리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생태계 안에서 살 권리를 인정받을 때, 그 권리는 생태계 향유의 권리로 발현한다. 그런데 그 권리는 논리적으로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이 생태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제 자리를 지킬 권리를 인정받는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니, 바로 이 권리가 생태계 보전의 핵심인 자연의 권리이다. 자연의 권리는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유지할 권리,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천, 호수, 강, 지하수, 습지, 산, 산림, 해안, 해양, 대기권 등 생태계의 공간적 배치의 유지를 요구할 권리, 그 공간적 배치 안에서 생명체의 종 다양성의 보존을 요구할 권리, 재산권 행사와 개발에 대항하여 생태계의 미학적 배치와 구성을 보존하고 생태계의 복원력 유지를 요구할 권리 등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권리들이 자연에 부여된다고 하더라도, 자연은 말을 통하여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의 권리는 결국 자연의 대리인을 통하여 실현되는 권리일 수밖에 없다. 자연의 권리를 창설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대리인을 법률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하는 작업이다.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행위 주체는 헌법에 근거한 공법상의 법인이 바람직하고, 그 공법상 법인은 국가인권위원회처럼 행정권력, 입법권력, 사법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위상을 갖는 것이 사리에 맞다. 자연의 권리와 그 대리인의 권능은 사람들의 욕망을 가장 강력한 권력의 형태로 표현하는 국가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권리대리인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연의 권리들을 실현하는 법제화 방안을 제시하고, 그 권리들이 침해되지 않도록 예찰 활동을 하고, 자연의 권리들이 침해될 경우에는 이를 조사하여 검찰에 고발하고, 침해된 권리들의 회복과 이에 따르는 보상 혹은 배상을 요구하는 등의 책무를 수행한다.
위에서 말한 자연의 권리와 그 대리인의 구성 및 책무는 헌법에 규정될 사항이다. 자연의 권리와 그 대리인 구성의 근거는 헌법의 기본권 부분에 명기하고,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기구의 구성과 책무에 대한 규정은 별도의 장을 마련하여 그곳에 새겨 넣으면 될 것이다.
5.2.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에 관련해서 헌법에 반드시 명기할 규범들이 몇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천, 호수, 강, 지하수, 습지, 산, 산림, 해안, 해양, 대기권 등에 대한 소유 주체와 관리 주체의 교체에 관련된 규범이다. 생태계의 공간을 구성하는 주요 대상물들은 주거, 영농, 목축, 임업, 기업 활동과 산업 활동, 도로 등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국가소유와 사적 소유로부터 공적 소유로 전환시키고, 그 공적 소유권을 행사하는 주체를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공법상의 단체로 구성하여 자연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재산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그 단체가 중앙과 지역자치 단위에서 활동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소유권 전환은 재산권에 과한 헌법 규범 ③항의 규정에 의해 촉진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규범은 경제활동을 생태학적으로 규율하는 일에 관련된다. 경제활동은 생태계로부터 에너지와 물질을 끌어들여 이를 소비하기 용이한 형태로 변화시켜 이를 사용한 뒤에 폐기 에너지와 폐기 물질을 생태계에 배출하는 과정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서로 맞물리면서 경제활동은 생태계에 전면적이고 치명적인 위기를 가져온 장본인이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이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규율되어야 한다. 생태학적 규율 방식은 다양하게 고려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생태계의 에너지-물질 결산을 중심으로 생태학적 효율성을 높이도록 경제주체들을 경쟁시키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 수도 있고, 경제활동이 생태계에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시켰을 경우에 그 경제활동의 주체가 외부효과를 제거하는 비용을 반드시 지불하도록 하여 외부효과를 내부화할 수도 있다. 헌법에는 “경제활동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는 정도로 명문화해서 국가와 경제 주체들이 생태학적 관점에서 경제활동을 제도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마련하도록 자유로운 활동여지를 남겨두면 좋을 것이다.
생태학적 소유권 개혁에 관한 헌법적 규범은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는 대목에 명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활동의 생태학적 규율에 관한 규범은 경제활동의 자유, 경제권력 형성의 억제, 경제 민주주의 등 경제활동을 규율하는 헌법적 원칙을 천명하는 조항(현행 헌법 제119조)에 병기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IV. 맺음말
이 글에서 나는 헌법의 전문과 총강, 그리고 기본권의 체계를 검토하면서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지향을 갖는 민주공화국을 형성하기 위해 명료하게 재규정되어야 할 인간의 시민의 권리들을 검토하고, 자연의 권리를 창설하는 방안을 논했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첫째 주권재민의 원칙에서 직접 도출되는 참정권을 기본권의 체계로부터 독립시켜 그 위상을 기본권의 체계 바깥에 두었고, 대의제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험할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둘째, 부르주아 국가들에서 고착된 재산권의 자유권적 성격에 대해서 나는 국가의 간섭과 침해로부터 벗어나 자연인의 자유를 지키고 자주적인 삶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물적 기반의 확보라는 한정된 의미에서 이를 인정하였을 뿐이고,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재산권의 행사가 사회규범과 법률의 규율을 받아야 하고, 공공복리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과 생태학적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고, 이러한 내용을 새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나는 사회세력들의 제도적인 권력 균형을 보장하는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고, 새 헌법이 노동3권 가운데 단결권의 자유권적 성격을 분명히 명문화하고, 단체교섭이 산별 수준의 단체교섭과 기업 차원의 노사 공동결정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제도화하도록 규정하고, 단체행동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법률의 제정이나 법률의 해석을 무효로 선언하고, 사회권의 행사를 억압하고 무력화시키는 재산권 행사를 금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존엄하고 자유로운 삶을 연대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노동 업적과 복지급부의 연계를 해체하여 노동사회 이후의 사회에 대비하는 헌법 규범을 마련하고, 정규직 노동과 비정규직 노동의 차별을 금지하고, 노동소득이 생계비를 충당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가로부터 소득보전급부를 청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존중하는 헌법 규범을 마련할 것을 강조하였다. 끝으로 나는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보전하고 향유하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생태계의 공간적 배치를 유지하고 그 안에서 복합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 생명체들과 무생명체들이 자신의 존속을 요구할 권리를 핵심으로 하는 자연의 권리들을 창설하고 그 권리를 실현하는 방법을 새 헌법에 명문화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제10차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에 민중이 참여하고 민중이 동의하는 개헌안이 절차에 따라 국민투표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는 6월에 실시되는 지방선거 때 헌법 개정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은 민중을 배제한 채 기득권 정치세력 중심으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니, 그러한 개헌 과정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나는 계급· 계층, 성, 연령, 정체성 등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욕망들과 의견들이 표현되고 수렴되는 숙의공동체가 조직되어 새 헌법에 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헌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검토와 재규정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권리들이 창설되고, 국가의 가치체계와 목표가 설정되고, 국가와 사회의 운영 원리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서 나라다운 나라가 제대로 세워지기를 바란다.
헌법의 기본권 체계에서 자유권, 사회권, 자연권, 참정권의 관계 (강원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