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구
진정한 동북아시대를 열려면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7-18 22:07
조회
1384
진정한 동북아시대를 열려면
본원 기획위원, 한민족평화선교연구소 소장 이근복
지난 6월 26일-30일,본인이 소장으로 있는 연구소 이사, 후원자들과 중국연변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경인여대 학생들의 농촌봉사 격려, 마을도서실개관식 참석, 자활프로그램을 견학하고, 그리고 백두산과 몇몇 민족운동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한국대학생들이 처음 한 일이라는 농촌봉사는 조선족 농민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열었다는 훈춘의 한 벽지마을의 도서실에 대한 호평도 대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조선족들을 위한 가축, 농사지원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습니다.
연변은 민족혼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일제시대 국내에서는 지식인들이 거의 다 변절한 상황에서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이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이어져 민족의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용정의 대성학교와 명동교회, 윤동주 생가에 가면 문익환 목사님의 사진과 글을 볼 수 있어서 여기보다도 그 분들의 체취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몇 년 만에 연길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곳곳에 큰 건물도 서 있고 거리도 넓어지고 깨끗해졌습니다. 동시에 노래방 등 향락시설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보기에는 연길이 좀 발전하였다고는 하지만 연변자치주는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낙후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조선족들이 한국이나 다른 중국의 대도시로 빠져나가 자치주임에도 조선족이 전체인구비율의 40%도 못 미치고 있으며, 아이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시골의 소학교들이 하나둘씩 폐쇄되는 형편입니다. 중국의 WTO 가입으로 더 값싼 외국 농산물이 들어와 농사가 날로 힘들고 농촌 조선족총각들은 결혼도 못하고 있으니 조선족농촌의 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두만강변에 사는 조선족 자활농촌을 둘러보다가, 바로 건너편 척박한 북한땅에서 일하는 북한동포들을 보고 착잡하였습니다. 개울같은 두만강 지류를 사이에 둔 지역인지라 기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탈북 북한여성들이 조선족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중국공안에게 잡혀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무능한 조선족 아버지와 아이들만 남습니다. 두만강변에만 120여명의 이런 어린이들이 있다는데, 두 집에 가보았는데 아이들은 꾀죄죄하고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는 서로 품팔이하며 사이좋게 지내던 두만강이 지금은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고, 북한동포를 도우면 처벌되고 탈북민들은 자녀들을 남기고 강제송환되는 죽음의 강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여기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착착 진행되는 곳입니다. 중국은 거대한 재정을 투여하여 이 지역을 영구적인 자기 땅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또 유사시 북한에 진입하기 위해 많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은 중국상품으로 도배되었고, 중국자본이 빠르게 경제를 잠식하고 있답니다. 백두산(중국이름 장백산)의 관할도 연변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바뀌었고, 인근에 비행장을 건설하려는 계획도 있다고 하니 연변자치주는 민족혼이 어린 백두산 관광사업에서도 밀려난 셈입니다.
장래 남북한이 통일되면 우리 민족이 뻗어갈 길은 바로 여기입니다. 그러나 지금 조선족을 세우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이런 바람은 환상일 뿐입니다. 참여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동북아시대를 연다고 하였지만 실제적으로 한 일은 거의 없고 정권치장을 위한 구호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런 구호는 조선족동포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배신감만 쌓고 있을 뿐입니다. 2년 전 다행히 중국동포의 집(김해성 목사)과 조선족복지선교센터(임광빈 목사)가 중심이 되어, 재외동포법 개정운동을 벌여 조선족과 고려인들이 미주 동포들과 같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조선족들이 곧 정식으로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연변은 민족통일의 가교역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두만강변의 조선족들은 북한출신이 많아서 지금도 북한에 사는 친척을 방문하여 생필품과 식량을 공급하고 있고, 남한에 대한 호감여부는 북한동포들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조선족이 중국사회주의 정권에서 경험한 것들이 북한의 개방이 연착륙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 수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신앙생활하는 조선족들의 경험이 북한동포들이 기독교를 무리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탈북민들을 도운 것도 두만강변의 조선족들입니다. 지금은 돕는데 한계가 있고 인신매매 등으로 탈북민들의 관계가 이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쉽게 도울 수 있는 조건입니다. 연변 조선족들의 경제가 나아지면 자연스럽게 가난한 북한동포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한국교회가 연변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공급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한민족의 발전을 긴 안목으로 구체적으로 모색할 때입니다. 동북3성에 교회를 개척하여 선교하는 방식을 벗어나, 나눔과 섬김의 복지선교로서 조선족과 북한동포들의 마음을 얻을 때입니다. 민족분단의 아픔은 이념을 떠나서 최선을 다하여 나누고 섬길 때 좋은 길이 열릴 것이고, 통일이후 조선족, 북한동포, 한국교회가 깊은 신뢰감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희망은 연변의 조선족동포들이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때 가능합니다. 여기서 조선족의 한글교육은 모든 것의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연변에서 ‘소학교살리기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조선족소학교들이 폐쇄되어 아이들이 한족학교에 다니면 한글을 쓸 수 없게 되고 금방 다 동화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변에서 활동하는 단체들 간에 나눔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한민족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조선족소학교살리기운동’에서 함께 한다면 한국교회가 우리 민족을 위한 귀한 헌신이 되고 이것이 민족통일과 통일이후를 준비하는 귀한 일이 될 것입니다.
본원 기획위원, 한민족평화선교연구소 소장 이근복
지난 6월 26일-30일,본인이 소장으로 있는 연구소 이사, 후원자들과 중국연변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경인여대 학생들의 농촌봉사 격려, 마을도서실개관식 참석, 자활프로그램을 견학하고, 그리고 백두산과 몇몇 민족운동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한국대학생들이 처음 한 일이라는 농촌봉사는 조선족 농민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열었다는 훈춘의 한 벽지마을의 도서실에 대한 호평도 대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조선족들을 위한 가축, 농사지원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습니다.
연변은 민족혼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일제시대 국내에서는 지식인들이 거의 다 변절한 상황에서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이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이어져 민족의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용정의 대성학교와 명동교회, 윤동주 생가에 가면 문익환 목사님의 사진과 글을 볼 수 있어서 여기보다도 그 분들의 체취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몇 년 만에 연길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곳곳에 큰 건물도 서 있고 거리도 넓어지고 깨끗해졌습니다. 동시에 노래방 등 향락시설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보기에는 연길이 좀 발전하였다고는 하지만 연변자치주는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낙후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조선족들이 한국이나 다른 중국의 대도시로 빠져나가 자치주임에도 조선족이 전체인구비율의 40%도 못 미치고 있으며, 아이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시골의 소학교들이 하나둘씩 폐쇄되는 형편입니다. 중국의 WTO 가입으로 더 값싼 외국 농산물이 들어와 농사가 날로 힘들고 농촌 조선족총각들은 결혼도 못하고 있으니 조선족농촌의 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두만강변에 사는 조선족 자활농촌을 둘러보다가, 바로 건너편 척박한 북한땅에서 일하는 북한동포들을 보고 착잡하였습니다. 개울같은 두만강 지류를 사이에 둔 지역인지라 기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탈북 북한여성들이 조선족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중국공안에게 잡혀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무능한 조선족 아버지와 아이들만 남습니다. 두만강변에만 120여명의 이런 어린이들이 있다는데, 두 집에 가보았는데 아이들은 꾀죄죄하고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는 서로 품팔이하며 사이좋게 지내던 두만강이 지금은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고, 북한동포를 도우면 처벌되고 탈북민들은 자녀들을 남기고 강제송환되는 죽음의 강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여기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착착 진행되는 곳입니다. 중국은 거대한 재정을 투여하여 이 지역을 영구적인 자기 땅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또 유사시 북한에 진입하기 위해 많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은 중국상품으로 도배되었고, 중국자본이 빠르게 경제를 잠식하고 있답니다. 백두산(중국이름 장백산)의 관할도 연변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바뀌었고, 인근에 비행장을 건설하려는 계획도 있다고 하니 연변자치주는 민족혼이 어린 백두산 관광사업에서도 밀려난 셈입니다.
장래 남북한이 통일되면 우리 민족이 뻗어갈 길은 바로 여기입니다. 그러나 지금 조선족을 세우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이런 바람은 환상일 뿐입니다. 참여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동북아시대를 연다고 하였지만 실제적으로 한 일은 거의 없고 정권치장을 위한 구호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런 구호는 조선족동포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배신감만 쌓고 있을 뿐입니다. 2년 전 다행히 중국동포의 집(김해성 목사)과 조선족복지선교센터(임광빈 목사)가 중심이 되어, 재외동포법 개정운동을 벌여 조선족과 고려인들이 미주 동포들과 같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조선족들이 곧 정식으로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연변은 민족통일의 가교역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두만강변의 조선족들은 북한출신이 많아서 지금도 북한에 사는 친척을 방문하여 생필품과 식량을 공급하고 있고, 남한에 대한 호감여부는 북한동포들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조선족이 중국사회주의 정권에서 경험한 것들이 북한의 개방이 연착륙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 수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신앙생활하는 조선족들의 경험이 북한동포들이 기독교를 무리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탈북민들을 도운 것도 두만강변의 조선족들입니다. 지금은 돕는데 한계가 있고 인신매매 등으로 탈북민들의 관계가 이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쉽게 도울 수 있는 조건입니다. 연변 조선족들의 경제가 나아지면 자연스럽게 가난한 북한동포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한국교회가 연변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공급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한민족의 발전을 긴 안목으로 구체적으로 모색할 때입니다. 동북3성에 교회를 개척하여 선교하는 방식을 벗어나, 나눔과 섬김의 복지선교로서 조선족과 북한동포들의 마음을 얻을 때입니다. 민족분단의 아픔은 이념을 떠나서 최선을 다하여 나누고 섬길 때 좋은 길이 열릴 것이고, 통일이후 조선족, 북한동포, 한국교회가 깊은 신뢰감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희망은 연변의 조선족동포들이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때 가능합니다. 여기서 조선족의 한글교육은 모든 것의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연변에서 ‘소학교살리기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조선족소학교들이 폐쇄되어 아이들이 한족학교에 다니면 한글을 쓸 수 없게 되고 금방 다 동화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변에서 활동하는 단체들 간에 나눔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한민족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조선족소학교살리기운동’에서 함께 한다면 한국교회가 우리 민족을 위한 귀한 헌신이 되고 이것이 민족통일과 통일이후를 준비하는 귀한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