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구

황새울에 평화는 언제나 오려나(조헌정목사)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19 21:54
조회
1143
황새울에 평화는 언제나 오려나.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운동과 기독인의 사명-

조헌정목사(향린교회)

1. 황새울의 역사적 배경

평택은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곳이다. 현재 450만평의 미군기지가 들어와 있으며 이를 확장하기 위해 국방부가 349만평에 달하는 토지에 강제수용을 강행하고 있다. 이곳에 전쟁기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청일전쟁 때이다. 이후 일본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강제로 주민을 몰아낼 뿐만 아니라 이들을 강제노역으로 몰아 40만평 규모의 기지를 세웠고, 이후 해방이 되자 미군은 이를 이어 받아 150만평 규모로 확장해 기지를 세웠다. 물론 이때도 주민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났다. 두 번이나 생존의 터전을 빼앗긴 주민들은 바닷물을 막아 갯벌을 맨손으로 개간하여 현재의 드넓은 비옥한 농토를 만들어 냈다. 생각해 보라. 도대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이들에게 해준 일이 무엇인가?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외국군에 의해 두 번이나 쫓겨날 때 꿀 먹은 벙어리마냥 손놓고 있었다. 이제 세 번째 그들은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에 국방부는 미군의 앞잡이가 되어 이 땅을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수용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국가는 개인의 땅을 공공의 선한 목적을 위해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군기지 확장이 지금 한반도의 상황에서 과연 절대 필요한 일이며 선한 목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현재 강제토지수용을 거부하고 있는 대추리의 100가구 도두리의 60여 가구 주민들은 단지 보상이 적어서가 아니라 크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작게는 ‘생존을 위해’3년째 목숨을 건 투쟁을 벌리고 있다. 나는 이분들이야 말로 과거 역사에도 그러했거니와 오늘날에도 한반도의 수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한에 가득 찬 사람들이라고 본다. 지금 이곳의 넓은 들녁은 예전 갯벌이었던 당시 황새들이 많이 찾아와 ‘황새울’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지금은 웅장한 소리를 내며 미군의 헬기가 대신 날아다니고 있다.

2. 향린교회와 나의 참여

향린교회는 여기가 바로 오늘의 갈릴래아라는 역사 인식을 갖고 이분들과 뜻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작년 1월의 추운 겨울날 목회자와 교인 몇몇이 처음으로 천막농성장을 찾았고, 4월에는 부활의 소식을 갖고 이곳 주민들과 함께 하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주일대예배를 이곳 대추초등학교에서 자매교회인 강남향린교회(이병일목사)와 들꽃향린교회(김경호목사)와 함께 드렸다. 이 예배에는 윤길수총무님도 함께 하여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평화집회가 계속될 때마다 향린교회는 교회 깃발을 걸고 참여하여 왔고 사회부 선교부가 주축이 되어 기도와 성금으로 천막농성장을 찾곤 하였다. (사실 천주교는 문정현신부께서 이곳 주민이 되어 투쟁에 앞장서 온 반면 교회는 기지확장을 환영하고 가장 먼저 이곳을 떠나게 되어 주민들의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 깊게 내려 있다.)

올해 사순절을 맞아 나는 교우들에게 사순절 영성프로그램의 하나로 3주 연속 이곳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는 평화기도의 시간을 마련하고 초청하였다. 3주 동안 매주 20여명이 참여하여 천막촛불집회에 참석하고 평화심야기도의 시간과 황새울 들녁에서의 새벽성찬을 가진바 있다.

나는 기장 평화공동체가 주관하는 사순절 평화기도순례의 한 일원이 되어 3월 27일 월요일을 이곳에서 보냈고, 29일 수요일에는 서울노회 통일사회부 주최로 몇 분의 목사님들과 함께 다시 촛불집회에 참석했고, 4월 1-2일 토/일요일에는 교우들과 함께 촛불집회와 평화기도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7일 금요일 오전 평택에서 경찰들이 주민들의 농사를 방해하기위해 포크레인을 앞세우고 들어왔다는 속보를 접하고 주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혼자 그곳에 갔다가 다른 평화지킴이 30명과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가 되었고, 광주경찰서에서 이틀간의 구류를 살고 일요일 아침 10시경 석방되는 과정에서 지문날인을 거부하여 강제로 지문날인을 받고 오후 늦게 경찰서를 나왔다. 강제지문날인 과정에서 감정으로 대처한 평택경찰서 형사의 불필요한 폭행을 당했다. 현재 이주가 되어가건만 아직도 오른쪽 네 손가락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고, 통증으로 팔꿈치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나는 경찰서 내에서 일어난 폭력에 시달리고 있지만, 현장에서 농토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던 주민들과 여러 평화지킴이 활동가들은 병원에 수 주간을 입원해야 하는 폭행을 당하였다. 아직도 두 사람은 풀려나오지 못하고 있다.

3.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위원장 유원규목사)가 지난 7일‘국방부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지 농수로 강제진입과 조헌정목사 연행을’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서에서 밝혔듯이 토지소유권이 국방부로 이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농민들의 점유권을 해제하는 최소한의 조치도 없이 불법적이고 일방적으로 농지를 파헤치려 하는 시도는 반인권적 ?반생명적 처사임이 분명하다. 또한 미군기지 확장과 더불어 미군은 전략의 유연화라는 말을 사용하며 동북아 지역에서 일어나는 여러 분쟁들에 주한미군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평택기지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제3국을 침략할 때 전초기지 혹은 병참기지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최악의 경우 우리는 장차 미국과 중국이 이 지역에서 패권 다툼을 하는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쟁에 휘말리게 되어 청일 혹은 노일전쟁과 같은 싸움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평화의 왕으로 고백한다. 이때 말하는 무슨 평화인가? 단지 마음의 평화만을 말하는가? 이것만이라면 예수께서도 굳이 십자가를 지실 필요는 없으셨다. 그냥 들과 산에서 바닷가에서 지혜의 말씀만을 선포하셨으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내 로마가 정치적 게릴라들만 대상으로 하였던 십자가 처형을 받으셨다. 여기에 예수님이 외치신 Pax Christi는 당시 창과 칼로 대변되는 Pax Romana에 대항하는 보다 적극적인 자기 결단이 담겨 있는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왜 우리가 이토록 평화를 갈망하는데 평화가 오지 않는가? 그것은 전쟁을 하는 자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반해 평화를 원하는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의 문제는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민족 전체의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어쩌면 개체 교회의 존속 이전의 문제라고 본다. 하나님은 예언자 에스겔에게 경고하시기를, ‘만약 군대가 처들어오는데 보초가 나팔을 불어 이를 알리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죽음의 책임은 보초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33장) 오늘 이 시대에 한반도의 보초는 과연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4월 23일이면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시작한 촛불집회 600일째이다. 이 평화의 촛불은 이 땅에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계속 타올라야 할 것이다.


-다음의 글은 4월 7일(금) 구속당시에서 9일(일) 석방될 때까지의 과정을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일곱마디에 맞춰 쓴 글로 향린교회 성금요예배 시간에 나눈 하늘 뜻 메시지이다.-

<예수의 십자가상의 일곱 마디와 나의 일곱 단상>

I. 아 내가 목마르다

나는 일요일마다 설교단에서 언어로 하늘 뜻을 펼치는 목사
오늘은 금요일 하늘 뜻을 쓰는 날
그러나 이번 주는 대신 전하는 이가 있어 홀가분한 날
새 소식을 기다리며 컴퓨터를 켜본다
교회 홈페이지에 평택 투쟁 현장이 속보로 떠오른다.
파르르 떨리는 목젖의 파동을 느끼며 마우스를 누른다.
1년 전부터 10여 차례 드나들던 대추리 도두리의 황새울이 들녘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기억 속에 아련히 사라졌던 30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이 대추리 할머니들의 주름진 모습과 겹쳐진다.
잊혀졌던 고향이 나를 부른다.
탱크소리 헬리콥터 소리에 짓눌린 땅의 소리가 나를 부른다.
전투경찰의 힘 앞에서 절규하는 농부들이 나를 부른다.
동강난 한반도의 아픔이 나를 부른다.
저 갈릴래아의 예수가 나를 부른다.
십자가의 예수가 나를 부른다.
‘아 내가 목마르다.’
그래 이 목마름은 육신의 목마름이 아닌 영혼을 찾는 타는 목마름.
그래 오늘은 글이 아닌 몸으로 하늘 뜻을 펴는 날

II.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두 시간을 달려간 대추리 현장
농부들의 애환과 웃음이 촛불과 더불어 타오르는 천막이 저 멀리 보이는데 더 이상 차는 전진할 수 없다.
평화지킴이들의 차와 전경들의 찝차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여긴 또 하나의 삼팔선 길은 있지만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
왼편은 인간의 생명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미군기지
오른편은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쌀을 내는 생명의 땅
그런데 저 생명의 벌판에 검은 까마귀 2천 마리가 먹이를 앞에 두고 떼를 지어 앉아 있다
농사를 방해하기 위해 트랙터와 포크레인을 몰고 온 저 군대귀신들
그들 앞에는 50여명의 맨손 맨몸의 평화지킴이와 농부들이 서성거린다
폭풍이 일 것 같은 긴장감이 돈다.
4월의 태양빛과 들녘의 바람은 이렇게 평화로운데
누가 이 평화를 깬다는 말인가?
갑자기 호각소리 울리며 전경들이 부산하다
하얀 철모와 투명 방패를 든 일당 6만 오천원에 팔려온 수 백명의 용역 또한 부산하다.
일시에 몰려온다
우리는 그저 무방비 상태로 서있을 뿐
한부대의 전경들이 우리 사이를 뚫고 뒤로 가서 배후를 막는다.
대여섯명이 달려들어 한명씩 끌고 간다.
한사람이 끌려가며 몸부림친다.
나도 모르게 그 앞을 가로막는다.
이 사람을 가게 하라! 죄 없는 이를 풀어주라!
그때 뒤에서 몇 개의 손이 나를 붙잡는다.
공무집행방해죄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내 몸 또한 다섯 명의 형사들에 의해 공중에 들리운다.
나의 절규소리는 다른 이들의 절규와 더불어 들녘의 허공을 헤맨다.
더 이상의 몸부림을 멈춘 채 저들의 폭력에 내 몸을 맡긴다.
아니지 하늘의 손에 내 몸을 맡겨야지..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웁니다.’

III.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나를 포함한 평화 지킴이 11명이 호송차에 실리운다.
한사람 한사람 옆에는 형사가 앉는다
고속도로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핸드폰으로 교회에 내가 체포되었음을 알린다.
여기저기에서 전화벨 말소리가 들린다.
이전에는 붙잡혀간 소식을 가족이 듣기까지 하루 이틀은 보통
어디에 붙잡혀 있는지를 알아내기까지 일주일은 보통
그러나 지금은 붙잡혀가면서도 현장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보통

목적지 경기도 광주경찰서 팻말이 보인다.
내리긴 전 나는 일어서며 버스에서 말했다.
‘여러분 나는 향린교회 목사입니다. 당당하십시오, 그러나 감정으로 대처하지는 마십시오.’
조서를 쓰고 자정이 넘어 유치장의 철문을 들어선다.
31년 만에 돌아온 유치장이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안에 들어가 앉으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자유로우니 어찌된 일인가?
10명의 동지들
한사람 한사람이 믿음직스럽다.
나는 단식을 하였지만, 식사 때마다 저들과 함께 식사 기도를 한다.
‘하늘이 내신 몸 땅의 음식으로 채워 하늘의 거룩 이루고 땅의 평화 이루소서.’
‘아멘’의 합창이 하늘에 메아리친다.

내 어찌 성직자로서 저들보다 먼저 나갈 수 있겠는가
예수의 말씀이 떠오른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나의 형제요 어머니이다.’

십자가의 예수께서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저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이제야 말씀이 피부에 닿는다.

IV.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갇힌 지 삼일 째 오늘은 일요일
11시 예배 시간에 맞춰 나도 벽을 향해 돌아서서 주보를 펴고 홀로 예배를 드린다.
세 번의 종 울림을 그리며 내 안에 성령의 울림을 느껴본다.
찬양시간에는 성가대 예향단원들의 한사람한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감사의 미소를 전한다.
하늘 뜻 펴기(설교) 시간에는 차례차례 교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감사의 절을 한다.

목사님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난 내 옆에 있는 이 분 여기서 나갈 때까지 나갈 수 없습니다.
눈을 감고 버틴다.
앉아 있는 나를 철장 밖으로 끌어낸다.
‘목사님 눈 떠보세요. 여기 강제지문날인을 허락하는 판사의 영장이 보이지요.’
‘하시오. 당신은 판사의 명령에 따라 강제지문날인을 하시고 난 하늘의 명령에 따라 이를 거부하오.’

전경들이 내 몸을 누르고 형사들이 나의 오른손을 낚아채 주먹 진 내 손을 지문대에 밀어 넣는다.
몸부림치고 절규하지만 끌려가는 어린 양 같다.
갑작스레 네 마디 관절 차례차례 짜릿한 고통을 느끼며 피가 흐른다.
누군가 피를 닦는다.
190센치미터에 90킬로에 가까운 거구가 내 오른팔굽을 책상 모퉁이에 대고 온몸으로 짓누른다.
‘아얏! 갑작스레 내 입에서 고통소리가 터진다.’
주님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힐 때는 얼마나 아프셨을까? 주님께서 허리에 창에 찔리실 때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실신하시지는 않으셨을까?
그래 이렇게 외치셨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V.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놈들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나는 마지막 한 방울의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버텨본다.
물론 조금 있으면 그들은 목적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지마저 꺽을 수는 없다.
지문기에 대고 손가락을 돌리는 순간 나는 마지막 힘으로 버틴다.
팔꿈치로 내 허리를 짓누른다.
5분이 마치 다섯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목은 잠겨 더 이상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10여 차례 이상 지문기에 대였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팔은 뒤로 꺽이고 내 얼굴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눌리운 채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른다.
‘됐습니다.’
이 한마디에 나를 짓누르던 힘들이 일시에 빠져나간다.
난 바닥에 힘없이 무너진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목사의 양심을 짓눌렀던 그들도 자신들의 양심의 소리를 짓누를 수는 없을 것이다.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란 말인가?
그래 저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자신들 말대로 위에서 시켜서 할 따름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는 일이지.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VI.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탈진상태에 빠져 바닥에 엎드러진 전경들이 내 몸을 붙들어 의자에 앉히운다.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의 태풍 속에 나는 아직도 갇혀 굳게 눈을 감고 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눈 떠보세요.’
어린 전경들은 성직자 칼라에 흰 수염을 기른 내가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눈물과 바닥의 먼지로 얼룩진 내 얼굴을 닦아 내리는 손길이 무척 따스하다.
‘할아버지 눈 뜨시고 이 물 좀 잡수세요.’

예수님 옆에 달려있던 한 죄수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VII. 내가 다 이루었다

그들은 눈감은 나를 떠 앉아 현관 소파에 앉히우고 사라진다.
‘목사님 짐은 옆에 두었습니다.’
난 아직도 굳게 눈과 입술을 감고 분노의 절규에 떨고 있다.
일요일 오후의 따스한 봄바람이 나의 마음을 달래준다.
‘목사님’ 누군가 나를 부른다.
안되지 나의 이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되지.
얼굴을 씻으며 몸과 마음을 추스린다.

40여분이 넘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님들이 오신 것이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난 내 손가락 하나 짓밟힌 일로 이렇게 분노하는데, 대추리 도두리의 농민들은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을 빼앗기며 3년을 싸워오는데 그 얼마나 분노하겠습니까? 오늘에야 비로소 그들의 분노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군요.

우린 모두 경찰서 계단에 서서 예배를 드린다.
‘십자가를 질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우리의 찬송소리 기도소리 경찰서 안 저 유치장까지 울려 퍼지게 하소서.
홀로 남아 있는 평화지킴이의 영혼 속에 울리게 하소서.
멀리 보이는 저 산을 돌아 대추리 천막 안까지 울리게 하소서.
국방부 청와대 펜타곤 백악관 안까지 울리게 하소서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모든 권세자들의 마음속에 울리게 하소서.

평화와 하나 됨의 원을 그려 함께 손잡고 기도하는 우리들 머리 위로 주님의 부활의 십자가가 떠오른다.

‘내가 다 이루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