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화해
고개를 드는 '2003년 한반도 위기론'의 실체 - 미국의 일방주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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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연
작성일
2002-04-17 00:16
조회
1757
고개를 드는 '2003년 한반도 위기론'의 실체
- 미국의 일방주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포위 -
사회화와 노동 편집팀
아프간전쟁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
1월 29일 부시 대통령이 1단계 '테러와의 전쟁'이 승전을 거두었으며, 이란, 이라크, 북한이야말로 '악의 축'이라고 선언한 이후, 미국 내의 정치 기류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3월 19일 조지 테넷 CIA국장이 상원 군사위원회의 발언에서, 생화학무기와 핵무기 확산에 막대한 책임이 있는 나라로 러시아를 지목한 것이다. 러시아는 아프간전쟁을 비롯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조했다. 그러나 테넷 국장은 러시아가 "대량 살상무기 관련 첨단기술을 연구하고 훈련을 진행하는 첫 번째 국가"이며,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이 러시아의 공식적인 정책이라 미국은 믿고 있다"고 몰아 부친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미국의 정책을 대폭 지지하지 않으면 모종의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며, 아프간전쟁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가 얼마나 위세를 떨치고 있나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지난 2월초 CNN/USA투데이/갤럽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이 북한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이란, 이라크와 동일한 수준의 '악의 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결과에 대해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세력은 미국인의 안보의식 결여를 개탄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즉, '핵-미사일을 포함한 북한의 군사력 수준이 미국에 직접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수준이며, 대량살상무기의 세계적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 대중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실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반북 정치캠페인을 더욱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고개 드는 '2003년 위기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기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례로, 최근 주요일간지는 3월 19일 임동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의 '한반도 안보위기' 발언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는 강연회에서 "1년 이내에 상당한 수준의 미북관계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1994년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위기 때와 같이 한반도에 안보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경수로 건설 지연에 대한 북한의 손해배상 요구, 북한의 과거핵 규명을 위한 사찰문제 등 북미관계 현안이 2003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더욱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지난 2월 21일 동아일보 좌담에서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마커스 놀랜드는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대 테러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시 조명하게 됐다"며,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구 소련에 대해 한 일을 북한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기도하면서 북한의 고립과 붕괴를 위한 공작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식량 지원을 중단하고,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을 거부하는 것을 계기로 제네바합의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미국 클린턴정부의 '접촉정책'(engagement)의 지지자들이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부시의 대북정책이 한반도 전쟁의 파괴력을 간과하고 있으며, 동맹국(한국과 일본)의 지지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중국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북한을 고립, 붕괴시키는 데에는 장시간이 걸릴 것이며, 오히려 그 사이에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확대될 위험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무익한 것으로 간주하는 부시의 정책이 지속된다면, 결국 파국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논지가 클린턴정부 당시 발표된 <페리보고서>의 핵심 전제다.)
북미합의를 백지화하려는 부시 정부의 의도
현재 미국 정부는 북한과 아무런 조건 없이 대화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실상은, 1990년대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 이루어진 주요 합의들을 백지화하면서 대화를 시작하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반도 안보 위기론이 꿈틀대는 것이다.
먼저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문제를 살펴보자. 북한은 1999년 9월 미국과의 베를린합의를 통해, 양국 간의 상호관심사에 대한 협상을 지속한다는 전제 하에서 2003년까지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한다는 결정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국제 규범을 위반한 사건이 아니며, 따라서 시험발사 유예 조치는 미국이 강제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조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의 미사일협상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2003년 이후에도 미국이 동일한 요구를 할 근거는 없다.) 현재 양국 간의 미사일협상은 중단된 상태이지만, 북한은 시험발사를 계속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반해, 부시 정부는 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했을때 채택된 '조미공동코뮤니케'에 대해서 지금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미사일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한 바 없다.
한편 경수로 건설 및 북한 과거 핵규명 문제는 곧 제네바합의 이행 문제를 의미한다. 제네바합의에 따르면 2003년은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북한으로 인도되는 해이자, 동시에 동결된 흑연감속로를 완전히 해체하고 1994년 이전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을 비롯해 '과거핵'을 규명하기 위한 IAEA의 핵사찰 작업이 시작되는 해이다. 그러나 미국이 1994년 후 불성실한 태도로 공사를 지연시켰기 때문에, 2003년까지 핵심부품을 인도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질 가망성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북한은 북미대화가 재개된다면, 그 최우선적인 의제는 바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경수로 건설이 늦어질 경우 보상에 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면서,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게다가 미국은 경수로 건설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2단계 사찰 활동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미국의 입장 때문에, 북한은 대화를 재개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특사 파견의 유효성?
김대중정부는 임동원 특사의 방북에 은근한 기대를 걸고 있다. 즉 미국의 강경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남한 쪽에게 무언가 변화의 메시지를 던지지 않겠냐는 희망을 걸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대중정부의 기대는 그저 막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북미관계가 누구의 잘못 때문에 오히려 악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북한의 경제난 심화를 지렛대로 삼아서, 북한의 핵-미사일 제거를 비롯한 무장해제만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고, 제네바합의 이행이나 관계정상화 등의 북한의 기본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미봉책으로 대응해왔다. 1990년대 미국은 한미일 삼각군사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군사력을 증강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정책을 취할 수 있는 조건을 차곡차곡 마련해왔다. 이러한 미국의 노선에 남한 정부는 한결같이 지지 의사를 밝혔고, 김대중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남한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정책 목표에 순응했고, 김대중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거가 한미일 삼각동맹의 최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에 순응했다. 따라서 남한 정부의 역할은 미국의 정책 목표 실현을 위한 '조연출'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는 임동원 특사 파견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이번 방북을 통해 경의선 연결, 금강산 육로관광, 개성공단 건설, 군사적 신뢰구축,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 남북관계 5대 과제를 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네바합의 이행의 위기와 북한의 전력난이 중첩된 가운데 경의선 연결, 개성공단 건설과 같은 경제협력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재개, 전투기, 이지스 구축함을 비롯한 첨단 군사력 증강과 함께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압력이 가중되는 국면에서, 남북 핫라인 설치와 같은 초보적 군사신뢰조치 합의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결국 이번 특사 파견의 최대 목표는 부시정부의 부정적 대북 인식을 완화한다는 수준일 것이다.
결국 문제는 김대중정부는 (북한의 표현을 따르자면)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극히 무능하다는데 있다. '확고한 한미일 동맹체계'를 주술처럼 달고 다니는 한, 북미간의 합의들을 백지화하고 힘으로 몰아 부치려는 미국의 의도를 막아낼 길은 없다는 것이다.
* 이글은 [사회화와 노동] 127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미국의 일방주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포위 -
사회화와 노동 편집팀
아프간전쟁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
1월 29일 부시 대통령이 1단계 '테러와의 전쟁'이 승전을 거두었으며, 이란, 이라크, 북한이야말로 '악의 축'이라고 선언한 이후, 미국 내의 정치 기류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3월 19일 조지 테넷 CIA국장이 상원 군사위원회의 발언에서, 생화학무기와 핵무기 확산에 막대한 책임이 있는 나라로 러시아를 지목한 것이다. 러시아는 아프간전쟁을 비롯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조했다. 그러나 테넷 국장은 러시아가 "대량 살상무기 관련 첨단기술을 연구하고 훈련을 진행하는 첫 번째 국가"이며,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이 러시아의 공식적인 정책이라 미국은 믿고 있다"고 몰아 부친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미국의 정책을 대폭 지지하지 않으면 모종의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며, 아프간전쟁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가 얼마나 위세를 떨치고 있나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지난 2월초 CNN/USA투데이/갤럽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이 북한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이란, 이라크와 동일한 수준의 '악의 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결과에 대해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세력은 미국인의 안보의식 결여를 개탄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즉, '핵-미사일을 포함한 북한의 군사력 수준이 미국에 직접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수준이며, 대량살상무기의 세계적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 대중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실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반북 정치캠페인을 더욱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고개 드는 '2003년 위기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기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례로, 최근 주요일간지는 3월 19일 임동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의 '한반도 안보위기' 발언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는 강연회에서 "1년 이내에 상당한 수준의 미북관계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1994년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위기 때와 같이 한반도에 안보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경수로 건설 지연에 대한 북한의 손해배상 요구, 북한의 과거핵 규명을 위한 사찰문제 등 북미관계 현안이 2003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더욱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지난 2월 21일 동아일보 좌담에서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마커스 놀랜드는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대 테러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시 조명하게 됐다"며,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구 소련에 대해 한 일을 북한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기도하면서 북한의 고립과 붕괴를 위한 공작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식량 지원을 중단하고,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을 거부하는 것을 계기로 제네바합의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미국 클린턴정부의 '접촉정책'(engagement)의 지지자들이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부시의 대북정책이 한반도 전쟁의 파괴력을 간과하고 있으며, 동맹국(한국과 일본)의 지지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중국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북한을 고립, 붕괴시키는 데에는 장시간이 걸릴 것이며, 오히려 그 사이에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확대될 위험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무익한 것으로 간주하는 부시의 정책이 지속된다면, 결국 파국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논지가 클린턴정부 당시 발표된 <페리보고서>의 핵심 전제다.)
북미합의를 백지화하려는 부시 정부의 의도
현재 미국 정부는 북한과 아무런 조건 없이 대화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실상은, 1990년대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 이루어진 주요 합의들을 백지화하면서 대화를 시작하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반도 안보 위기론이 꿈틀대는 것이다.
먼저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문제를 살펴보자. 북한은 1999년 9월 미국과의 베를린합의를 통해, 양국 간의 상호관심사에 대한 협상을 지속한다는 전제 하에서 2003년까지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한다는 결정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국제 규범을 위반한 사건이 아니며, 따라서 시험발사 유예 조치는 미국이 강제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조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의 미사일협상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2003년 이후에도 미국이 동일한 요구를 할 근거는 없다.) 현재 양국 간의 미사일협상은 중단된 상태이지만, 북한은 시험발사를 계속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반해, 부시 정부는 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했을때 채택된 '조미공동코뮤니케'에 대해서 지금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미사일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한 바 없다.
한편 경수로 건설 및 북한 과거 핵규명 문제는 곧 제네바합의 이행 문제를 의미한다. 제네바합의에 따르면 2003년은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북한으로 인도되는 해이자, 동시에 동결된 흑연감속로를 완전히 해체하고 1994년 이전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을 비롯해 '과거핵'을 규명하기 위한 IAEA의 핵사찰 작업이 시작되는 해이다. 그러나 미국이 1994년 후 불성실한 태도로 공사를 지연시켰기 때문에, 2003년까지 핵심부품을 인도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질 가망성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북한은 북미대화가 재개된다면, 그 최우선적인 의제는 바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경수로 건설이 늦어질 경우 보상에 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면서,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게다가 미국은 경수로 건설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2단계 사찰 활동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미국의 입장 때문에, 북한은 대화를 재개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특사 파견의 유효성?
김대중정부는 임동원 특사의 방북에 은근한 기대를 걸고 있다. 즉 미국의 강경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남한 쪽에게 무언가 변화의 메시지를 던지지 않겠냐는 희망을 걸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대중정부의 기대는 그저 막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북미관계가 누구의 잘못 때문에 오히려 악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북한의 경제난 심화를 지렛대로 삼아서, 북한의 핵-미사일 제거를 비롯한 무장해제만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고, 제네바합의 이행이나 관계정상화 등의 북한의 기본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미봉책으로 대응해왔다. 1990년대 미국은 한미일 삼각군사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군사력을 증강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정책을 취할 수 있는 조건을 차곡차곡 마련해왔다. 이러한 미국의 노선에 남한 정부는 한결같이 지지 의사를 밝혔고, 김대중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남한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정책 목표에 순응했고, 김대중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거가 한미일 삼각동맹의 최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에 순응했다. 따라서 남한 정부의 역할은 미국의 정책 목표 실현을 위한 '조연출'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는 임동원 특사 파견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이번 방북을 통해 경의선 연결, 금강산 육로관광, 개성공단 건설, 군사적 신뢰구축,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 남북관계 5대 과제를 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네바합의 이행의 위기와 북한의 전력난이 중첩된 가운데 경의선 연결, 개성공단 건설과 같은 경제협력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재개, 전투기, 이지스 구축함을 비롯한 첨단 군사력 증강과 함께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압력이 가중되는 국면에서, 남북 핫라인 설치와 같은 초보적 군사신뢰조치 합의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결국 이번 특사 파견의 최대 목표는 부시정부의 부정적 대북 인식을 완화한다는 수준일 것이다.
결국 문제는 김대중정부는 (북한의 표현을 따르자면)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극히 무능하다는데 있다. '확고한 한미일 동맹체계'를 주술처럼 달고 다니는 한, 북미간의 합의들을 백지화하고 힘으로 몰아 부치려는 미국의 의도를 막아낼 길은 없다는 것이다.
* 이글은 [사회화와 노동] 127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