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화해

부시 미국대통령의 방한에 즈음한 2002 한반도 평화선언(안)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2-02-14 00:14
조회
957
부시 미국대통령의 방한에 즈음한
2002 한반도 평화선언(안)

-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없음을 엄숙히 선언한다 -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 평화의 이름으로 "한반도에서는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더 이상의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엄숙히 선언한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겨레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북한에 대해 언제라도 군사적 선제 공격을 할 수 있음을 내비친 부시 미국 대통령과 그 행정부의 오만하고 부당한 태도에 우리는 충격을 넘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이에 한반도에 불어닥칠지도 모를 전쟁의 불길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의 부시 대통령, 남북한의 정치지도자와 7천만 겨레, 나아가 세계평화를 갈망하는 세계인류에게 다음과 같이 간절히 호소한다.

1. 미국은 기어코 한반도에서마저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가?

부시 대통령은 방한을 앞에 두고 행한 2002년 연두 국정연설에서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들이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들로 우리를 위협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은 위험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군사적 선제공격의 가능성마저 시사하는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강경 발언은 북한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미 9·11테러 이후 최첨단무기를 동원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2002년을 '전쟁의 해'로 선포한 부시 미국대통령으로부터 한국정부와 일언반구의 상의조차 없이 행한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을 듣고 보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자존심 훼손으로 인한 당혹감을 넘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북한이 94년 핵동결을 약속한 [북미기본합의서](제네바 협약)를 지켜왔고, 미사일 발사도 중단해왔음을 알고 있다. 또 87년 이후 테러에 가담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으며, 국제 반테러 협약에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토마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마저 최근 "북한이 테러를 지원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시인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공격위협이 '반테러 전쟁'이라는 그들의 기준에 비추어보았을 때도 그 정당성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 외무장관을 포함한 유럽과 중국·러시아 등 대다수 국가와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이 하나같이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에 의한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면서, 전쟁을 통해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테러 문제마저도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경고하고 나서는 현실도 부시 대통령과 미 행정부의 주장이 억지 논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50년 전 한국전쟁의 처절한 비극을 몸소 겪은 바 있고,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화를 목도한 바 있는 우리 겨레는 남이냐 북이냐를 떠나서 그 어느 누구도 겨레 전체의 공멸을 가져올 전쟁을 결코 원치 않는다.
우리는 미국이 대 테러전쟁을 한반도로 확대할 어떠한 명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확인하면서 부시정부가 대한반도정책을 평화 지향의 방향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2. 미국은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고 갈 초강경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북한과의 합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은 1994년 [북미기본합의]와 2000년의 [10·12북미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핵개발 동결과 미사일 발사 중단, 북미관계 개선과 대북 경제제재 완화 등에 합의하고 이를 위해 지속적인 대화를 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현재까지 북한이 이를 어겼다는 증거는 없으며, 미국도 이를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수로 2기 공급 지연, 경제제재 약속 불이행 등 합의사항을 어겼다는 증거만 분명할 뿐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재래식 무기의 후방배치와 미사일 수출금지 등을 사실상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움으로써 북한의 양보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노골적인 압박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북-미간 또는 남북간 상호 군축 방안을 내놓는 대신 북한에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무조건 항복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대화를 통한 북미관계 개선을 약속한 [북미기본합의서]와 [10·12북미공동성명]의 기본정신에도 위배되는 미국의 일방적인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근본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훼손하고 한반도와 한반도에 사는 무고한 사람들을 대량파괴와 살육의 전쟁으로 몰고 가는 위험천만한 정책이며 국제적인 협정과 합의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지구촌 대국의 책무를 방기하는 정책이다.
이에 우리는 부시 대통령과 미국정부가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초강경 대북정책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고, 클린턴 행정부 시대에 체결된 탈냉전-평화 지향의 [북미기본합의서]와 [10·12공동성명] 정신으로 돌아가 북한과의 합의 사항을 철저히 이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3. 미국은 [6·15공동선언] 이행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즉각 중단해야 하며,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과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남과 북의 노력에 지지하고 협력해야 한다!

21세기 한반도는 지난 20세기 강대국에 의해서 강요된 분단의 사슬을 끊고 평화와 통일을 향한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분단 55년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을 계기로 남과 북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칠 것을 온 겨레와 세계만방에 엄숙히 선언한 바 있다.
듣건대, 부시 대통령은 이번 방한 때 F-15K 등 무려 100억 달러에 이르는 자국의 무기 구입을 김대중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할 것이라 한다. 한반도에 군사력 불균형을 초래할 첨단무기 수입을 한국 측에 요구하는 것은 화해와 협력을 위한 남과 북의 노력을 지지하고 협력해야 할 미국이 오히려 긴장과 대결을 부추겨 전쟁의 위험을 불러오는 부당한 행동이다. 연간 군사비가 15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재래식무기 감축을 요구하면서 남한에게는 무려 100억 달러에 가까운 살상무기 구입을 강요하는 것은 어떠한 논리와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위협을 빌미로 미사일방어체제(MD)에 남한을 편입시키려는 시도 또한 [6·15공동선언]의 정신과 성과를 훼손하는 것이며 21세기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정책이다. 한해 국방비로 무려 3천 8백억 달러를 쓰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15억 달러의 군사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들여 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은 삼척동자도 웃지 못할 억지 주장으로 지탄받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과 미국정부는 분단극복을 통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남과 북의 자주적인 역사행보를 지지하고 협력하는 것이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나라로서의 역사적·도덕적 책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방해하고 한반도에 긴장과 대결분위기를 부추기는 살상무기 강매와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남한을 편입시키려는 정책을 즉각 중단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4. 김대중 정부는 전쟁반대에 대한 우리 겨레의 확고한 의지와 행동을 보여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부시대통령과 그 행정부의 대북 강경 발언의 의미와 그 심각성을 얼버무리려 하거나 '미국 정부의 햇볕정책 지지와 대북 대화 의지에 변화가 없다'고 해명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여 현실에 눈멀게 하며 위기에 대처하는 의지와 능력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한반도에서는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도 국제적인 논의의 틀 안에서 어디까지나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라는 확고한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또한 김대중정부는 첫째, 한반도에서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전쟁이 있을 수 없다는 전쟁불가 선언을 해야 한다. 둘째, 민간단체와 함께 긴급히 전쟁방지 특별기구를 구성하여 나라의 총력을 전쟁방지에 쏟도록 해야 한다. 셋째, 남과 북은 긴급 비상회의를 소집해 공동으로 한반도 전쟁반대 선언을 해야 한다.
아울러 남북의 모든 정치지도자들은 이런 때일수록 정파적 이해와 정견을 넘어 온 겨레의 힘과 지혜와 의지를 모아내고,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지키는 데 지도적 역할과 책무를 다할 것을 촉구한다.

5. "전쟁반대, 평화정착!", "6·15공동선언 조속 이행, 평화통일 성취!"

마지막으로,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7천만 겨레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지난 94년 미국의 전쟁 시나리오에 의해 한반도가 전쟁 일보직전까지 다가갔던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충격과 함께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 국민 일부에 아직도 만연하고 있는 '전쟁불감증'은 하루 빨리 치유되어야 한다. '설마, 설마' 하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북한의 민중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온 겨레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부시대통령과 미국정부에게 "우리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을 원치 않으며, 우리 겨레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역사적인 행보에 미국도 협력하라!"는 강력한 의지와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부시와 미국도 우리 겨레의 단결된 모습 앞에서는 어쩌지 못할 것이다.

우리 겨레가 살고 있는 소중한 이 땅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은 있을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냄으로써 세계평화에 적극 기여하고자 하는 우리 겨레의 숭고한 역사행보와 굳건한 의지는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막지 못할 것이다. 이제 부시 대통령과 미국정부는 우리의 이러한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여 평화 지향의 대한반도 정책 수립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전쟁반대, 평화정착!", "6·15공동선언 조속 이행, 평화통일 성취!"의 기치 아래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나아갈 것임을 온 겨레와 세계인류 앞에 엄숙히 선언한다.

2002년 2월 18일
2002 한반도 평화선언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