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나가사키의 종 - 11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12-18 21:46
조회
4435
<원자평야의 종>

75년간 생식불능설이 폭격직후 전해졌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는 타버린 흔적이 있는 곳으로의 복귀를 위구(危懼)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우리들은 측정기를 분실했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동식물을 관찰하였다. 3주간 후, 폭심지 마츠야마 초에서 개미 떼가 발견되었다. 개미는 건강했다. 1개월 후에는 많은 지렁이가 발견되었다. 또한 시궁쥐가 달려 다니는 것도 발견되었다. 고구마의 잎을 먹는 벌레가 1개월 후에는 많이 번식했다. 소동물들이 이와 같이 생식할 수 있으니까, 인류도 생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들은 생각했다. 식물의 경우에는, 폭풍으로 불리어 날라 간 보리가 그 날라 간 자리에서 싹이 나왔다. (다음해 보통의 보리와 동시에 개화하여 결실을 맺었는데 그 결실은 보통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옥수수도 발아하였다. 이것은 겨울에 들어 가 결실을 했는데, 대부분이 낱알은 들지 않았다. 나팔꽃은 곧 덩굴을 냈으며, 작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잎에는 기형이 보였다. 고구마는 곧 덩굴을 뻗었지만 고구마가 든 것은 거의 없었다. 푸성귀 종류는 모두 잘 자랐다. 나는 원자들판에서의 생식가능성을 고취했다. 다만, 유아는 방사선 대해 민감하므로 아직 데려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사람이 원자평야에 주거지를 세우는 데는 4개의 시기가 있었다. 참호숙사기, 가사기(?舍期), 가건축기(?建築期), 목조건축기가 그것이다. 폭격직후에는 방공호 안에 즉 호를 이용하여 그 입구에 지붕을 올려 지상·지하 양 생활을 하는 참호숙사기로서, 이 생활은 1개월 정도 계속되었다. 피난기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잡거기(雜居期)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집이 없기 때문에 우선 달려 들어간 방공호에서 이웃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동 사무소의 배급 등에 잘 맞았다. 많은 참호숙사는 부상당한 사람들을 떠맡고 있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묘한 인연을 서로 느끼며, 부족한 물건들을 서로 양보하고, 함께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극히 부자유한 생활의 내용은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망연자실기라고도 하였다. 주민들은 날마다의 식사와 시체의 수색에 시간을 허비하고, 회상해보아도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기였다.
제 2개월부터 제 4개월가량 될 때까지가 가사기로서, 신생활준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가까스로 생활의 목표를 발견하고, 친족동포의 안부를 알게 되고, 시체의 처리, 각종 신고, 예금의 정리도 하며, 재건의 제1보를 내딛는 것이다. 타고 남은 기둥과 함석으로 두 평 내외의 임시거처를 지어, 그 안에 형제자매, 혹은 종형제등, 가까운 육친이 모여 상호부조의 생활을 영위했다. 이때에는 생존의 감격이 약해져, 다른 사람들 간의 공동생활에는 이해관계상, 감정생활의 위험이 이미 일어났다. 가까운 친척이라면, 그 감정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임시 숙사는 겨우 비와 이슬을 막아낼 정도로, 한 평 당 수 명의, 콩나물시루와 같은 생활이었다. 그리고 복원자들이 옴을 만연시켰다.
제 5월, 즉 12월에 들어가니 진눈깨비가 내리고, 한풍이 새들어와 임시 숙사에는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품삯 목수도 근교에서 오게 되고, 재료들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형제, 종형제들은 협력했다. 한사람 한 사람이 가건축을 했다. 형의 집을 짓고 형이 들어간다. 다음 아우의 집을 짓고 하여, 친족이 차례로 돌아가며 지었다. 벽은 초벽만 하고, 천정도 없고, 지붕만 덮은 조악한 10평 내외의 시골집 만들기였지만, 다다미를 얹고 비 막이 문도 달고 하여, 상당히 정돈된 주거였다. 가건축물에 들어가자, 결혼식이 행해지고, 새 가정이 일주일 내에 열 쌍 이상 생겨났다. 이 가건축기는 그러니까 부흥기라고 할 수 있다.
본 건축은 앞으로의 일이었다. 그것은 사치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안정되고 나서였다. 사람들은 지금 부자유한 가건축물 속에서 충실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 내용이 풍요한 원자평야의 생활이야 말로 진짜의 문화생활이라고 생각되었다. 나의 은사 스에츠기 [末次] 교수는 나의 작은 집을 칭송하며 ‘무일물처무진장’(無一物處無盡藏;물건 하나 없는 이 곳에 많은 것이 담겨 있도다)이라는 족자 하나를 내려 주셨다.
우라카미 원자평야를 기차의 창가로 내다 본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기와와 잿더미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부흥은 아주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닥또닥 사람들은 정리를 하고 재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 씩 조금 씩 원자평야는 부흥되어 가고 있다. 확고한 신앙에 살고, 괴로운 일, 눈물을 흘리는 것의 행복을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지금, 세기의 죄로 멸망하는 것의 고업(苦業)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신앙 없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원자평야 부흥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신앙뿐이다.
밤에는 등불이 없으므로, 일찍부터 아이들을 껴 앉고 모포를 감고 있다.
“도대체 원자란 크기가 얼마나 될까?” 4학년생인 세이치가 물었다.
“아주 작은 것이다. 공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그 직경은 약 1억분의 1센티이란다.”
“우와, 눈으로 보이지 않겠네요,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겠네요. 그것은 낱알이군요.”
“아니 낱알이 아니야. 태양의 둘레를 지구나 토성 등이 빙빙 돌고 있는 것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들었을 것이야. 그 태양계 전체의 직경으로 태양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원자도 딱딱한 낱알이 아니고, 중심에 원자핵이 있고, 그 둘레를 음전자가 빙빙 돌고 있지. 그 음전자가 도는 길의 직경이 1억분의 1이란다. 그것과 핵과의 사이에는 속이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단다. 핵의 직경은 원자의 직경보다 다시 10만분의 1의 작은 것이란다.”
“핵이란 어떤 것이어요?”
“포도 속, 있지? 그런 것이란다. 원자핵에는 중성자라고 하는 낱알과 양자라는 낱알이 있단다. 양자는 양전기를 띄고 있으나, 중성자는 전기를 띄고 있지 않는단다.”
“원자가 파열되면 어떻게 돼요?”
“이 중성자와 양자의 일부가 없어지고, 그 대신 맹렬한 힘이 생기지. 그리고 그것이 강한 기세로 분출되지. 그것이 인간의 몸에 깊이 파고들어. 여러 가지 원자병을 일으킨단다.
“다다미 상점의 아저씨의 벗겨진 머리도, 그러면 중성자 때문이구나.”
“한 개의 원자가 파열하면 커다란 힘을 낸단다. 1 그람 속에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원자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한 번에 폭발하면 큰일이지.”
“ 원자는 폭탄 말고 달리 사용할 길이 없어요?”
“아니, 있고말고. 이렇게 한 번에 폭발시키지 않고, 조금씩 연속적으로, 조절하면서, 파열시키면 원자력이 기선도 기차도 비행기도 달리게 할 수 있단다. 석탄도 석유도 전기도 필요 없이 되고, 커다란 기계도 필요 없이 되어, 인간이 어느 정도 행복하게 될지 알지 못하지.”
“그렇다면, 지금부터 무엇이든지 원자로 할 수 있겠군요.” “그렇다. 원자 시대란다. 인류는 아주 옛날부터,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석탄시대, 석유시대, 전기시대, 전파시대로 진보해 와, 올해부터 원자시대에 들어갔단다. 세이치도 가야나도 원자시대의 인간이란다.”
원자시대, 원자시대....라고 중얼거리고 있던 아이도 잠들었다. 치리, 치리....하고 벌레가 머리 밑에서 울고 있다. 인류는 원자시대에 들어 가 행복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비참해 질 것인가? 하나님이 우주에 숨겨 놓으셨던 원자력이라는 보검을 탐지해 내고, 찾아내어, 마침내 손에 넣은 인류가, 이 쌍날의 검을 휘두르면서, 춤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선용하면 인류문명의 비약적 진보가 되며, 악용하면 지구를 파멸시키고 말 것이다. 그 어떤 경우든, 극히 쉽고 간단한 일이다. 그리고 우로 갈까, 좌로 갈까, 이것 역시 간단하게 인류의 자유의지에 맡겨져 있다. 인류는 지금이야말로 스스로 획득한 원자력을 소유하는 것에 의해, 스스로의 운명의 존멸의 열쇠를 소지하게 된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정말 두려워 오싹하는 느낌이 들고, 확실히 종교이외에는 이 열쇠를 잘 보관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치리, 치리...하고 벌레가 운다. 양손을 껴안고 자던 가야나가 젖을 더듬어 찾는다. 더듬어 찾다가 아버지인지를 알았는지 소리를 죽여 울기 시작하였다. 울다가 겨우 잠자는 숨소리로 바뀌었다. 너뿐이 아니다. 이 원자평야서 지금 이 저녁에 얼마나 많은 고아들이 울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과부들이 울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밤은 길고 잠은 짧다. 깜빡깜빡하고 얕은 잠 속의 꿈도 언젠가 하얗게 되어가는 덧문의 틈새.
“때-앵, 때-앵, 때-앵,”
종이 울린다. 새벽을 알리는 종이 폐허가 된 천주당에서 원자들판에 울려온다. 이치타로 씨가 이와나가 군 등 혼비[本尾]의 청년들을 지휘하여 벽돌 속에서 파낸 종은 50 미터의 종탑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깨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간신히 끌어 올려, 이와나가 군 등이 아침·낮·저녁, 옛날부터의 귀에 익은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였다.
“주님의 사자의 계시가 있다면......” 세이치도 가야나도 벌떡 일어나 모포의 위에 앉아 기도를 올린다.
“때-앵, 때-앵” 아주 맑은 종소리가 평화를 축복하여 널리 울려 퍼져 간다. 사변 이래 오랜 동안 울리는 것이 금지되었던 종이었지만, 두 번 다시 울리지 않게 되는 일이 없을 것처럼, 세계의 마지막 날의 아침까지 평화의 종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것처럼 “때-앵, 때-앵”하고 다시 울린다. 인류여, 전쟁을 계획하지 말라. 원자폭탄이라는 것이 있는 까닭에, 전쟁은 인류의 자살행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원자평야에서 울고 있는 우라카미 사람들은 세계를 향하여 외친다. 전쟁을 그만두라. 단지 사랑의 법도에 따라 서로 협상을 하라. 우라카미 사람들은 재 가운데 꿇어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한다. 바라옵기는, 이 우라카미를 세계최후의 원자평야가 되게 하소서. 종은 다시 울리고 있다.
“원죄 없으신 성 마리아시여, 당신에게 의지하여 비는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 주소서.”
세이치와 가야나는 기도를 마치고 십자를 그었다.


[저자의 소개]
1908년 2월 3일, 마츠에 시[松江市]의 타노[田野] 병원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대를 아버지가 개업한 시마네[島根] 현 이이시[飯石] 군 이이시 촌에서 보내며, 초등학교를 거기서 마치고, 현립 마츠에 중학교에 입학, 1925년 동교를 졸업. 이어서 마츠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이과를 전공. 1928년 동교를 졸업하고, 나가사키 의대에서 공부. 1932년에 전후 18년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신 의학사가 되어 세상에 나왔으나, 뒤이어 나가사키 의대 물리요법과에서 조수로서 적을 두고 연구를 계속했다. 1933년 단기 군의로서 만주 사변에 종군하였는데, 그 기간 위문대에 들어 있던 공교요리(公敎要理)를 읽었다. 다음 해인 1934년 귀환하여, 우라카미 천주당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고, 8월에 결혼했다. 1937년에 동 의대 강사, 1940년 4월 조교수, 1944년 4월 의학박사의 학위를 받고, 1946년 1월 교수가 되었다. 동 7월 나가사키 역 앞에서 쓰러진 이래 병상에 누었다. 1949년 12월 나가사키 명예시민의 칭호가 주어졌다. 1951년 5월 1일 오후 9시 50분 서거. 5월 3일 교회장. 14일 나가사키 시 공장(公葬 ).
저서에 <성 바울로 서점>(구: 中央出版社) 발행의 “여기당 수필(如己堂隨筆) ”, “을녀고개[乙女峠] ”, “로사리오의 쇠사슬”, “사랑하는 아들아”, “나가사키의 종(鐘)”, “이 아이를 남겨두고”, “꽃피는 언덕”, “생명의 강”, “촌의(村醫)‘, ”평화의 탑“, 편저로 ”우리들은 나가사키에 있었다.“ 편찬으로는 ”원자구름 밑에서 살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