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나가사키의 종-10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11-03 21:42
조회
3219
10.원자병 치료법

숙취에는 비타민 B와 포도당 주사가 잘 듣는다.
열상에 대해서는 광천요법이 탁월하다. 우리들은 환자를 2군으로 나눠 제1군은 광천 요법, 제2군은 이와 대조적으로 보통의 약물요법을 실시하고 경과를 보았다. 치료될 때까지의 평균일수가 전자는 24일, 후자는 38일이었다. 즉 로크마이이타 (六枚板) 광촌욕을 한 자는 하지 않는 쪽보다 평균 2주간 빨리 치료되었다. 이 광천욕은 외상에도 유효하여, 나 자신도 주로 이 샘에 은혜를 입었다. 정말 광천이야말로 자연적으로 주어진 약국인 것이다.
원자병 환자에 대해 우리들이 처음으로 시술했던 요법에는, 자가혈액자격요법(自家血液刺激療法)이 있다. 이것은 빠르게 널리 전달되어, 각 의가(醫家)에서 추시(追施)를 해주었다. 우리들은 특별히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추시 의가 제현(諸賢)의 경험비판은 가지각색이었다. 특히 효과가 있을까 그렇지 않을지는 결정될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자각적으로는 확실히 좋다고 하였다. 물론 이 치료법은 다른 질환에 대해서 이미 경험을 마친 방법이지만, 원자병에 대해서는 9월 10일에 시 선생이 최초로 시험한 것이다. 9월 초두에 피하일혈반(皮下溢血斑), 고열, 치근괴사, 인두궤양(咽頭潰瘍) 등의 제 증상을 지닌 중도(重篤)한 환자가 다수 돌발했으므로, 우리들은 패혈증이지 않을까, 무언가 새로운 급성전염병이지 않을까 등을 의심하여, 대증요법을 시술하면서 상세히 관찰하고 있는 중에, 혈액질환중의 과립세포결핍증과 혹사(酷似)한 것이 생각 나, 처음으로 골수가 방사선에 쏘인 때문에 백혈구 감소를 가져온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 두 사람, 환자가 죽어 갔다. 시 선생을 필두로 불면불휴(不眠不休)로 간호함과 동시에 두뇌를 짜내 요법의 발견에 노력을 다했다. 그렇게 하여, 이론적으로는 자자혈액자격요법이 유효하다는 결론에 도달해, 바로 실시하였다. 환자의 혈액을 2입방 센티를 뽑아, 그것을 그대로 환자의 신근육(腎筋肉)에 주사하는 것이다. 결과는 양호했다. 빈사의 환자가 모두 도움을 받았다. 이것을 시작으로 하여, 한 사람도 죽지 않게 했다.
영양식으로는 간장야채식요법을 실시했다. 어떤 동물이라도 좋으니까 간장을 떼어내어 가능하면 생것으로 아니면 조금 구워 주고, 또한 신선한 생야채를 듬뿍 먹인다. 이것은 극히 유효했다.
술은 좋은 약이었다. 위독에 빠지면,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술을 충분히 마시면 좋아지는 예가 있다.
자택정양은 결과로 볼 때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런 혼란한 때에 구호소에 처박히어 나날을 보내는 것보다 속편한 자기 집에서 친절한 많은 육친들로부터 간호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환자의 안정에 좋을지 모르겠다. 다만, 우리들 구호반으로서는 매일 순회 하는 것이 아주부담이 되었다. 어디에서도 일전도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최소한 나막신만은 간호 부들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11,원폭지의 상자집을 찾는 손님들

대학은 다시 일어서기로 결정되고, 신교젠[新興善] 초등학교에서 진료와 연구를 시작했다. 얼마 안 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들도 미츠야마 산의 계곡을 내려 와 대학으로 돌아갔다. 11월 2일에는 대학의 위령제가 열려, 8백 7명의 친구들의 명목을 빌었다.
나에게는 폭심지에 가까운 우에노 초에 한 평 정도의 함석지붕의 오두막을 지어 주어,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뒤쪽은 석축 그대로이어서 종이판을 눌러 넣에 편리했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대 소동이 벌어졌다. 내 교실의 동료들은 찾아 올 때 마다 집이라고 하지 않고 상자라고 했다. 상자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신부님이 오시는 영광을 맞이하는 날도 있었고, 거지가 몰래 들어다 보는 날도 있었다. 미국 종군 사제가 오셔서, “이것이 당신의 궁전입네까? ”하고 물으셨다. 멀리 대학의 교수님의 방문을 받고 있는 바로 그 때에, 전쟁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군에서 주는 선물입니다, 하며 낡은 구두가 전달되기도 했다.
야마모토 군과 하마사토 군이 복원되어 왔다. 두 사람은 내 앞에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한 마디라도 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 분합니다.”
“수고 많으셨소.”
“저희들은 분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10년을 참아, 반드시 이겨 보이겠습니다.”
“여러분은 분합니까?”
“그렇습니다. 분합니다.”
“분하다든가, 유감이라든가 하는 것은 이길 것이 분명한 할 싸움에서 패한 때에, 그리하여 아직 여기에 전력이 남아 있을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렇습니다. 일본은 아직 질 만큼 약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충분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건 이상하군요.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는가요? 모든 전력을 상실하였다고 인정하고 적의 군문에 항복하지 않았는가요?”
“아닙니다. 나 자신 아직 충분히 싸울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욱 우스운 말이라기보다는 괴이한 말이군요. 일본이 패하기 전에 왜 전력을 다 쏟지 않았는가요? 국가가 전력을 잃었는데도 개인은 아직 가지고 있다. 마치 파산하여 집행관이 와서 봉인을 하였는데, 셋째 아들이 자신의 저금통장을 감추어 두고 있는 것과 같지요.”
“.................”
“나는 전쟁 한 가운데에서 국가의 최고 명령에 따라 모든 힘을 다하여 싸웠습니다. 우리 대학도 최후까지 정정당당하게 싸웠습니다. 아무리 지독한 공습 중에도 적십자정신에 따라 용감하게 나아 가 부상자들의 구호를 하였습니다. 원자폭탄이 머리 위에서 폭렬한 순간에도, 부상당한 불쌍한 사람들의 구호를 위해 언제 어디에라도 달려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대학 본래의 임무인 의학연구와 수업에 전념했던 것입니다. 폭격에 의해 대학이 궤멸한 후에도, 정정당당하게 최후까지 대학을 사수하고, 마침내 사람의 할 일을 다 마친 후, 대학을 이탈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들 젊은 학도들이 시종일관 비겁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진정으로 구호에 매진하였다는 것은, 아무리 일본이 패하여, 일본의 전쟁 목적이 정의롭지 못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정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학도들이 최후까지 정정당당하게 자기의 본분을 다해, 구호라는 인류애에 기반을 둔 본무에 목숨을 바친 사실은 국가의 운명과는 관계없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은 모든 힘을 상실하였습니다. 물적인 것을 말한다면 건물은 저렇게 문자 그대로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적으로 말하면, 대다수가 죽고, 살아남은 우리들도 이와 같은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힘을 다 썼지만, 패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 그 어떤 유감이 있습니까? 우리들의 현재의 심경은 오히려 비 온 뒤의 달과도 같습니다. 졌지만 후회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우리들은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 만약 나에게 집도 재산도 아내도 그대로 남겨져 있는 채, 항복을 하였다면, 나는 지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것이야 말로 국가에 대해, 전화를 입은 동포들에 대해, 커다란 부담이 되지 않겠습니까? 국가가 망함과 동시에, 우리의 집도 없어지고, 나라가 파산함과 동시에 나도 무일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슬픈 가운데에서도 오히려 당당하다는 생각이 끓어오릅니다.”
“그러나 세간에는 반대로 전쟁성금으로 아침저녁 좋아 날뛰는 계급이 많이 있습니다.”
“아아, 그것 말입니까?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계급입니다. 전쟁은 득이 되는 장사다. 십년에 한 번 정도 전쟁이 일어나면 천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는 자들이 이 자들입니다. 이 자들이야말로 장래 호전적인 선전을 하는 근원이 되겠지요. 이런 자들이 순수한 젊은 청년들을 꼬드겨 복수 등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 정말로 국가를 먹이 감으로 삼는 자들이야.”
“ 전쟁은 국가에 있어서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업일까요?”
“ 이긴다면 이익이 되지 않겠어요?”
“ 자국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여 시작한 전쟁이 정의로운 싸움일까요?”
“ 글쎄요. 신 앞에서 정의롭지 않은 싸움에 승리가 있을 수가 없겠지요.”
“ 그래도 이 전쟁 중에 우리들은 끊임없이 신께 기도했습니다. 특히 전쟁의 신께 말입니다.”
“전쟁의 신이라는 분은, 햐쿠니치세키[百日咳]의 신이라는 분과 동일한, 사람을 만드신 신이신가요?”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계셨던 신이십니다.“
“여러분보다도 신학, 철학을 알지 못하는 선조들이 만들어 낸 신이지요. 자신이 자신의 형편에 맞는 신을 만들어 두고, 거기에 자기 멋대로의 소원을 빌기 때문에, 마치 테루테루보슈[照る照る坊主;날이 개기를 빌어 처마 끝에 매다는 종이 인형-역주] 같은 것이지요. 그렇게 하여, 신국불명(神國不滅)이라든가 가미가제[神風]라든가를 믿었던 것이기 때문에 말이지요, 허상을 상대로 홀로 박수재배(拍手再拜)하였던 것이었지요.”
“우리들의 성의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아닙니다. 아무리 성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상대가 허상이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던 것이지요. 사람을 만드신 신이 아니라, 참 신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군세에는 희망대로 되지 않지요.”
“일본인에게는 야마토[大和; 일본국의 다른 이름-역주] 정신이 있는 것처럼 일본에도 일본의 신들이 있어도 좋았을 테지요.”
“ 그것이 무력으로 위협하지 않고도 만민에게 추앙을 받을 신들이었다면 말입니다. 그 사상은 벌써 2천년도 전에 로마에서 비판받아 온 원시민족국가신도(原始民族國家神道)입니다.”
“자, 신론은 그만두고, 여하튼 전쟁은 문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과학적인 대 진보를 성취하는 이익은 있지 안겠습니까?. 예를 들어 이 원자폭탄처럼.”
“이 정도 인명, 이 정도 물자, 이 정도의 시간을 들이고, 이 정도의 인류를 총동원하여, 평화적 발명을 하였다면, 더욱 더욱 큰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됐든 전쟁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업은 아닙니다. 지금 막 전쟁터에서 돌아 왔을 때 장교일당들은 무어라 말합디까?”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일시적으로는 꾹 참고 미군이 말하는 대로 따라 두자. 그러나 언젠가는 독일이 일어섰던 것처럼 우리도 검을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 돼. 그 때를 준비해 둬, 라고 했습니다.”
“생병법(生兵法)은 대상(大傷)의 근본.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잊어버리십시오. 그리고 도대체 그 장교들을 실전의 경험이 있었답니까?”
“아닙니다. 내지근무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럴 것입니다. 실전을 모르는 장교가 자기의 명예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아무 것도 모르는 부하들을 질타하여 전쟁에 내 몰아 세우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요? 실전이라는 것은 잔혹한 것이랍니다. 전쟁문학을 누어서 읽고 있다면 아름답고, 용감하고, 나도 한 번 나가 볼까하는 마음이 들지요. 그렇죠? 그러나 실제는 다릅니다. 때때로 진실을 그대로 그린 작품은 검열에 걸려 발표를 금지당해 왔습니다. 요시노리[義經]의 싸움에는 그림이 있습니다. 다이복쿠[乃木] 장군에게는 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자폭탄의 어디에 아름다움이 있었을까요? 그날 그 때, 이 땅에 널리 퍼졌던 지옥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한 눈으로 는 보셨다면, 틀림없이 전쟁을 다시 한 번 한다든가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전쟁이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구석구석까지 원자폭탄이 파열하겠지요. 그렇게 되어 무수한 인간이 그 어떤 이상도 없이 단지 번쩍하는 것과 동시에 몸의 기능을 손상당합니다. 미담(美談)도 없고, 시가(詩歌)도 없이, 그림으로도 나타나지 않고, 문학에도 나타나지 않고, 연구에도 나타나지 않은 채, 단지 롤러로 개미행렬을 눌러 으깨는 것 같이, 그곳 일대가 정지작업이 된 것처럼 되고 말 뿐입니다. 바보같이 저지를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연전연패입니까?”
“신의 말씀 중에 ‘복수는 나의 것이고, 나는 보복할 뿐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상의 전쟁의 승부와는 달리, 신의 눈으로 볼 때 부정의 쪽을 신이 벌하실 뿐. 복수라고 하는 문제는 우리들의 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지금부터 살아 갈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나는 이렇게 이 참호의 숙사에 앉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처럼 발견할 수 없네요.”
“나도 어디에서 조용히 생각해 볼까나?”
“산 속에 들어 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면, 빙빙 돌뿐 마침내 자기의 길을 찾아내지 못하고, 왁자지껄 소란스러울 뿐인 인간이 되고 맙니다. 청산원부동(靑山元不動), 백운자거래(白雲自去來)-푸른 산은 원래 움직이지 않으나, 흰 구름이 스스로 왔다 갔다 하네.- 나는 항상 저 미츠야마 산을 바라다보며, 묵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은 심기일전하여 돌아갔다. 참호의 숙사는 다시 곧 숲 속처럼 한가해졌다. 다섯 살의 카야나이[茅乃]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귀에 들어온다. 나가 보니, 타버린 자국에 있는 바람받이 돌 위에 병이랑 접시랑 거울 조각 등을 나란히 놓고 인형의 머리를 상대로 하여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친구들은 모두 죽어 없다.
“ 카야 짱의 댁은 커다랗었지요네? 이층이 있었지요네? 어머니가 계셨지요네? 만두를 만드셔서 카야 짱에게 주셨지요네? 이불 속에서 잠을 자었지요네? 전등도 있었지요네?”
나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카야나이는 차례차례 추억을 입 밖에 내고 있다. 눈을 감으면, 우리 가정생활이 용궁과 같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눈을 뜨면, 구슬상자를 여는 것 같이 일순간 황량해지고, 원자들판이 모든 꿈을 부셔버리고 눈 속으로 날아든다. 태풍이 불고 있어서, 기와가 운다.
의기가 꺾인 초라한 모습으로 이치타로[市太郞] 씨가 나타난다. 발목을 묶은 복원복(復員服) 차림. 복원하여 와 보니 고향은 폐허, 우리 집에 달려 가 보니, 단지 잿더미 뿐, 사랑하는 아내와 다섯 아이들의 검은 뼈가 흩어져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살아 갈 낙이 없어.”
“전쟁에 패하고 즐거움을 느낄 자, 그 누가 있겠소?”
“그거야 그렇지만. 누구를 만나도 이런 말 뿐이었지요. 원자폭탄은 천벌. 죽임을 당한 자는 악인이지요. 살아남은 사람은 신령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것이지요, 라고. 그렇다면 나의 아내와 아이들은 악인들이었는가요!”
“아니지요,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원자폭탄이 우리카미에 떨어진 것은 커다란 섭리입니다. 신의 섭리이지요. 우라카미는 신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감사를 말입니까?” “이것은 언젠가 우라카미 천주교의 합동장례에서 신자대표로 읽고 싶다고 생각하여 쓴 것입니다만, 한 번 읽어 보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치타로 씨는 원고를 읽는다. 처음에는 목소리를 높이어 큰 소리로 읽어내려 갔지만, 언제부터인가 목소리를 죽이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읽어 간다. 똑 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원고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원자폭탄 합동장(合同葬) 조사(弔辭)

소와 20년 8월 9일 오전 10시 30분 경 대본영에서 전쟁최고지도회의가 열려, 항복인가 항쟁인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에 새로운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인류를 또다시 비참한 피의 전란으로 밀어 넣을까 운명의 기로에 세계가 서 있는 시각, 즉 오전 11시 2분, 한 발의 원자폭탄은 우리 우라카미에 폭렬하여, 가톨릭 신자 8천의 영혼은 한순간에 천주의 손에 부르심을 받았으며, 맹화(猛火)는 수 시간도 안 돼 동양의 성지를 잿더미의 폐허로 만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한 밤중에 천주당은 돌연 불이 일어 나 타 올랐읍니다만, 이것과 완전히 같은 시각에 대본영에서는 천황폐하가 종전(終戰)의 성단(聖斷)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8월 15일 종전의 큰 명령이 발해져, 세계만방이 평화의 날을 맞이했던 것입니다만, 이날은 성모의 승천 대축일에 해당하였던 것입니다. 무라카미 천주당이 성모님께 받쳐진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의 기이한 일치는 과연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천주님의 묘한 섭리이었지 않을까요?
일본의 전력에 종말을 고 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원자폭탄은 원래 다른 모 도시(고쿠라-역주)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 도시의 상공은 구름에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지접 조준 폭격이 불가능해, 돌연 예정을 변경하여 예비목표였던 나가사키에 떨어뜨리게 된 것인데, 투하 시에 구름과 바람 때문에 군수공장을 노렸지만 조금 북방으로 치우쳐 져 천주당의 정면에 날아와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 미군의 비행사는 우라카미를 노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폭탄이 스스로 이 지점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전과 우라카미의 궤멸과의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요?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죄악에 대한 속죄양으로서, 일본 유일의 성지 우라카미가 희생의 제단에 바쳐져 태워질 수밖에 없는, 순결한 양으로 선택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혜의 나무의 과실을 도둑질한 아담의 죄와, 동생을 살해한 카인의 피를 전해 받은 인류가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우상을 믿어 사랑의 율법에 등을 돌리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 살해하고 즐거워한 그 대 죄악을 종결하고, 평화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단지 후회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죄에 걸 맞는 희생을 받쳐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종전의 기회는 있었고, 전멸당한 도시도 적지 않았지만, 그것은 희생에 걸 맞는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은 아직 이것을 선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으셨지 않은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우라카미가 도륙된 순간 처음으로 하나님은 이것을 받아들이셔서, 인류의 사죄를 들으시고, 곧 천황폐하에게 천계(天啓)를 내리시어, 종전의 성단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가 없었던 일본에서 박해 속에서 4백 년 동안의 순교의 피투성이 신앙을 지키며 전쟁 중에도 영원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조석으로 멈추지 않았던 우리 우리카미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제단에 받쳐질 수밖에 없는 유일의 순결한 양이지 않았을까요? 이 양의 희생에 의해, 앞으로 또다시 전화를 입을 처지에 있던 수천만의 사람들이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전란의 암흑이 완전히 끝나고, 평화의 햇살이 비치는 8월 9일, 저 천주당 앞에 불길을 올린, 아아 커다란 번제여! 지극한 슬픔 속에서도 우리들은 그것을, 아아 아름다움, 아아 순결함, 아아 존귀함으로 우러러 보았던 것입니다. 티 없이 연기와 함께 타서 천국에 올라가주신 주임사제를 위시한 8천의 영혼! 누구를 생각해도 착한 사람 뿐.
패전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사람은 행복하다. 순결한 양으로서 하나님의 가슴에 쉬는 영혼의 행복이여. 거기에 비교하여 살아남은 우리들의 비참함이여. 일본은 패하였습니다. 우리카미는 완전히 폐허입니다. 보이는 것은 잿더미와 기와조각. 집 없고, 옷 없고, 먹을 것 없고, 밭은 황폐해 있다. 망연히 불 탄 자리에 서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의 무리.·그들은 이런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우리들은 죄인이니까 그랬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절실히 내가 죄의 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속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너무도 죄의 더러움이 많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제단에 받쳐질 자격 없는 자들로 선택되어 버려졌던 것입니다.
일본인이 지금부터 걷지 않으면 안 되는 패전국민의 길은 고난과 비참으로 가득 찬 것이며, 포츠담 선언에 의해, 부과된 배상은 정말로 큰 짐입니다. 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이 고난의 길이야말로 죄인인 우리들에게 속죄를 전부 완수할 기회를 주는 희망의 길이지 않은가요? 복 되도다 우는 자들이여,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요. 우리들은 이 배상의 길을 정직하게 속이지 말고 걷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웃음을 당하며, 비난당하고, 채찍을 맞고 땀을 흘리고, 피에 젖고, 굶주리고 목마른 가운데 이 길을 갈 때,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를 지고 오르신 그리스도께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고, 주님이 가져가십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우라카미가 선택되어 번제에 받쳐졌다는 것을 감사합시다. 이 고귀한 희생에 의해 세계에는 평화가 다시 오고 일본에 신앙의 자유가 허가된 것에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 천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받아 편안히 쉬시기를. 아멘

이치타로 씨는 일기의 읽기를 마치고 눈을 감았다.
“ 그렇다면 저의 아내와 아이들은 지옥에 가지 않은 것이 틀림없군요.” 한참 있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선생님, 그렇다면, 우리들 살아남은 자들은 무엇입니까?”
“나도, 당신도, 천국 입학시험의 낙제생들입니다.”
“천국의 낙제생. 그렇군요.”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커다랗게 웃었다. 가슴의 울증(鬱症)이 내려간 것 같았다.
“대단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천국에서 아내와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확실히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신들을 희생하여 일했으니까 말입니다. 우리들도 지지 않도록 더욱 더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그렇고말고요. 그렇고말고. 세계 제일의 원자평야, 이 슬픔, 이 허전함, 이 끔찍함, 이 황폐한 재와 기와 더미 속에 벋디디고 서서, 뼈와 함께 울면서 건설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저는 죄인이니까 고생하며 배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겁습니다. 기도하며 일합시다.” 이치타로 씨는 명랑한 얼굴이 되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