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백낙청-최장집 논쟁’이 던지는 사회적 의미 (한겨레, 5/6)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1:15
조회
582
**‘백낙청-최장집 논쟁’이 던지는 사회적 의미 (한겨레, 5/6)

지난해 가을부터 학계에 소문 하나가 번졌다. 백낙청―최장집 논쟁이 머지 않았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학술행사나 학술지를 빌린 두 학자 사이의 우회적 논전도 더러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새 책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비 펴냄)이 나왔다.(<한겨레> 5월2일치 19면 참조)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비판한 내용이 함께 실려 있다. 이를 계기로 진보담론을 이끌고 있는 두 학자의 생산적 논쟁이 가능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배경과 전망을 짚어본다.

백 교수는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에서 “분단현실의 존재를 망각하거나 외면한” 학계 흐름을 공격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실명을 들어 비판했다.

학계의 실명비판은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어찌됐건 두 학자는 서로에 대해 이를 자제해왔다. 게다가 백 교수의 이번 글은 강도가 높다. “(참여정부에 대한 최 교수의) 진단은 ‘민주화 세력의 집권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이라는 보수세력의 결론과 맞닿는다”고 썼다. 백 교수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논란을 일으켜보려 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응답을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관심은 이제 최 교수에게 쏠린다. 최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한겨레>와 통화했지만 즉답을 피했다. “(백 교수의 글에 대해) 잘 몰라 뭐라 말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만간 나올 최 교수의 책 두 권은 논쟁의 향방과 관련해 주목된다. <한국 민주주의의 프로필>(가제),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것>(후마니타스 근간)이 5월과 6월에 연이어 발행된다. 두 책의 원고는 이미 출판사에 넘어간 상태다. 백 교수의 글에 대한 최 교수의 ‘응답’이 이 책에 덧붙을 지는 분명치 않다.

두 학자는 원래 서로 맞부딪칠 일 없이 각자의 고유한 길을 걸어왔다. 백 교수가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창비 펴냄·1994년)을 펴내면서 세계체제론의 한국적 변형인 분단체제론을 본격 주창하던 시절, 최 교수는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나남 펴냄·1996년)을 내면서 서구 민주주의 이론을 한국 현실에 맞게 변형시키는 작업에 몰입했다. 그동안 두 학자가 서로를 특별히 의식했던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입장과 상충하는 흐름을 반박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런 종류의 ‘긴장’은 모든 학자들 사이에 존재한다.

하필이면 ‘지금’, 그 가운데서도 백낙청―최장집 사이에 긴장이 불거진 데는 이유가 있다. 핵심은 참여정부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다. 그리고 두 학자는 2005년과 2006년을 잇는 시기에 진보담론의 재생을 위해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다.

한결같이 ‘익명보도’를 요구한 두 학자 주변 인사 다수의 말을 종합하면 그 긴장의 전개과정은 이렇다. 논쟁의 출발은 지난해 상반기다. 최 교수는 2005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참여정부를 비판했다. 사회경제 문제를 외면한 참여정부가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후퇴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의 현실진단은 진보진영의 성찰적 모색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내내 열성적인 발언과 집필을 거듭했던 최 교수에게 참여정부 비판은 ‘학자적 사명의식’의 표현이었다.

백 교수는 이를 비판적으로 지켜봤던 것으로 전해진다. “분단체제 전체에 돌려야할 책임을 현 정권에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분단체제를 시야에 두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시기는 역사적 진전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6·15 공동선언실천위원회 남쪽 대표를 맡아 남북화해협력의 일선에 나선 경험도 이런 인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진보학계의 다수가 잘못된 현실인식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백 교수에게 이번 실명비판은 또다른 ‘학자적 사명의식’의 발로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행사로 열린 한·독 학술대회였다. 한국 학계를 대표해 백 교수와 최 교수가 나란히 참석했다. 최 교수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에서는 통일을 말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성장없는 통일 과정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분단체제론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백 교수는 “한반도에서는 통일하자고 너무 나서도 평화가 힘들지만 그 반대도 성립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선평화론’이 분단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이 학술대회에서 벌어진 토론은 참여정부 평가의 문제를 분단문제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토대가 됐다.

백낙청-최장집 논쟁에 대한 세간의 기대가 곧바로 충족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백 교수부터 다음 실명비판의 대상으로 ‘탈민족주의자’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교수 역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입론을 정교화하는데 주력할 전망이다. 최 교수는 사회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논란을 피해왔는데, 백 교수의 이번 비판도 ‘인문학 담론’이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80년대 진보담론의 동학을 형성했던 엔엘(NL)-피디(PD) 논쟁은 세 가지를 갖추고 있었다. 다양한 논자의 참여, 현실운동과의 밀접한 연관, 국가와 세계를 바꾸려는 거시적·실천적 전망 등이다. 2000년대 진보담론의 새로운 동학이 필요하다는 절박감이 두 학자에 대한 세간의 관심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20년전 진보진영 전체가 매달렸던 일을 지금 두 노장학자에게만 떠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산적인 백낙청―최장집 논쟁이 가능할 것인가. 그 답은 진보학계 전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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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교수 “분단극복 없이 민주화 없다”
최교수 “질적 민주화 평화 선결조건”

백낙청 교수와 최장집 교수는 ‘유기적·실천적 지식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최근 한국 지식사회를 비판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만 그 내용에 차이가 있다.

백 교수는 지난 2월 계간 <창작과비평> 창간 40주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진보지식인들조차 분단문제를 배제한 채 이야기한다”고 비판했다. 진보지식인들이 두루 참여한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을 언급하면서도 “통일과 복지를 따로 떼어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지식인들이 분단 체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최 교수는 지난해 3월 발간한 <위기의 노동>(후마니타스 펴냄)에서 “노동문제에 대한 연구는 오늘의 지식인 사회에서 희귀 연구주제로 전락했다”며 “지식인들의 관심이 새 천년의 미래 등에 사로잡혀 있는 현실은 지식사회의 무기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정부에 참여한 ‘민주파’ 인사”들의 무능도 비판했다.

분단에 대한 관심도 공통적이다. 다만 최 교수는 평화체제를 중시한다. 평화 정착의 선결조건으로 남한의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강조한다. 백 교수는 분단체제 극복없이 남한만의 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통일의 구체적 진전을 중시한다.

제도 영역과 운동 영역을 함께 중시하는 것도 닮았다. 정당―노동운동, 남북정부―민간교류 등의 유기적 관계를 각각 고민해왔다. 그러나 무게중심에 차이가 있다. 최 교수는 지난 1월 성공회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절차와 제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백 교수는 <창비> 40주년 간담회에서 “운동성과 현장을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스로 잘 드러내진 않지만, 보수언론에 대한 경계심도 공통적이다. 백 교수의 한 주변인사는 “백 교수가 최 교수의 참여정부 비판을 우려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보수언론에게 민주세력 비판의 구실로 이용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반면 최 교수의 한 주변인사는 “백 교수의 이번 비판이 보수언론에 의해 진보진영 내부의 노선투쟁으로 비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대외적 발언 스타일은 확연히 구분된다. 백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는다. 계간 <창작과비평>을 중심으로 여러 매체에 글도 싣는다. 반면 최 교수는 언론 노출을 꺼린다. ‘학자는 저술로 말한다’는 신념이 강해, 단행본 출간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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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노동문제 함께 고민하자
80년대 NL-PD논쟁 학문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80년대 ‘자주파(NL)-평등파(PD)’ 논쟁의 재해석·재가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두 학자의 인식은 같다. 최 교수가 먼저 물꼬를 텄다. 지난해 10월 참여사회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한국적 해방이념인 NL PD의 문제를 다시 불러들일 필요가 있다”며 “민족과 민중을 상호연관성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이념으로 재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백 교수는 아예 NL-PD-BD의 3자 연합을 주창했다. ‘BD’는 온건개혁세력을 지칭한다. <디지털 창비>에 실은 올해 신년사에서 그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두 학자의 고민은 과거 NL-PD 논쟁의 틀과는 많이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과학자는 “두 교수의 논의를 80년대식 사구체 논쟁의 연장으로 보려는 것은 보수언론이 노리는 것”이라며 “아직도 NL-PD 논쟁 하느냐고 속류화시킬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학자는 “그때는 실천에 이론이 복무하는 헤게모니 투쟁의 논쟁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차분하고 고급스런 학문 논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 문제와 노동 문제를 하나의 시야에 놓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두 학자의 문제의식이다. 그 과정에서 NL-PD가 ‘은유적’으로 불러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이 논쟁의 재확장 가능성에 대한 학계 인사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한국 사회 논쟁을 이런 식으로 전개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말의 잔치’만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부정적으로 볼 것까진 없다. 생산적이고 치열한 논의 자체가 진보진영에 도움이 된다.”

이 문제에 관한한 백 교수는 지난 2일 간담회에서 이미 해답을 말했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너무 토론이 없는 것 같다. 이에 대한 논의가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 다만 이를 진보진영의 노선투쟁이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