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네팔 국왕 버티기속 시위 격화 (한겨레, 4/20)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46
조회
1233
**8네팔 국왕 버티기속 시위 격화 (한겨레, 4/20)

“갸넨드라(국왕)를 이 불길 위에 매달자!”
민주화 요구 총파업 12일째인 17일 저녁,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시위현장에선 폐타이어를 태우는 연기와 최루탄 가스가 가득한 가운데 국왕 처단을 촉구하는 극렬구호가 쏟아져 나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절대왕권 강화에 맞선 민주화 요구 시위는 통행금지 연장과 발포, 구타 등 무자비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런 극렬구호는 국왕을 ‘힌두의 신’과 동일시하는 네팔에선 이례적이다.

18일 2만여명이 운집한 서부 도시 네팔군지의 시위에서도 수천명이 “왕정 타도”를 부르짖었다. 국왕의 이름이 붙은 건설현장은 시위대의 습격을 받았다.

반왕정 시위는 지난 6일 7개 야당이 공산반군의 묵시적 지원 아래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촉구한 이래,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교수, 변호사, 의사, 언론인 등 지식인들과 공무원들까지 동참하고, 17일에는 일부 대법관도 가세했다. 대법관의 시위 동참은 1990년 당시 비렌드라 국왕이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양보해야 했던 민주화요구 시위 이래 처음이다.

17일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200㎞ 떨어진 니자가드에서 경찰의 실탄사격으로 다섯번째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부상자와 연행자도 크게 늘고 있다. 적어도 3천명 이상이 군기지나 임시수용소에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풀려난 이들은 고문과 구타,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았다고 증언했고, 실종자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라고 <가디언>은 현지취재를 통해 보도했다.

지난해 2월 정치인들의 부패 일소와 반군토벌을 내세워 내각을 전격 해산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한 갸넨드라(58) 국왕의 철권통치는 국내외적으로 고립되면서 14개월만에 파국을 맞고 있다. 16일 갸넨드라 국왕을 면담한 미국과 중국, 인도의 네팔주재 대사들은 야당과의 즉각적인 대화와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갸넨드라 국왕은 마지못해 17일 전직 총리 2명을 면담했으나 협조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국왕은 내년 4월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종전의 약속을 되풀이했고, 야당들은 즉각 거국내각에 권력을 넘기라고 맞서고 있다. 야당들은 민주정부 구성 전까지 모든 납세 거부와 국외노동자들의 국내송금 중단 등 계속적인 불복종운동을 촉구하는 한편, 오는 20일 50만명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시위와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시위가 계속되면서 수송중단과 사재기 등으로 식량 등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고 석유 공급이 배급제로 바뀌는 등 경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세력의 구심점으로 신망을 받는 정치지도자가 없다는 점이 이번 시위의 치명적 한계로 지적된다. 제1야당인 네팔국민회의당 당수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84) 전 총리는 연로하고 병약해, 시위에 나서지 못하고 집에 머무는 형편이다. 따라서 군이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한 갸넨드라 국왕의 버티기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고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카트만두 주재 한 외교관은 <로이터통신>과 회견에서 “사태의 대단원은 군이 반기를 드는 순간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지난 15년간 부패와 무능으로 실망을 준 야당들도 (대안세력으로)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