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 21세기 신학선언에 대하여: 의의, 비판, 비교, 및 제안
2001. 2. 13 황홍렬
이 글은 지난 11월 20일 NCC 총회에서 채택된 “21세기 한국기독교 신학선언” (이하 신학선언)에 대해 검토해 보고, 카톨릭에서 12월 3일 발표한 “쇄신과 화해” 문서와 비교한 (기사연의 요청) 후 필자 자신의 입장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필자는 지난 5년 동안 한국교회의 흐름에 대해 잘 모르는데 기사연으로부터 이런 부탁을 받고 좀 당황했다. 그렇지만 기사모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과 사귀며, NCC 신학선언이나 카톨릭의 문서에 대해 공부할 기회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필자의 개인적 관심사는 민중선교, 특히 민중교회를 통한 민중선교가 앞으로 한국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 평화와 통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 신학선언
1) 구성: 전문, 신앙고백, 생명파괴 현실과 생명신학, 한국교회의 과제, 결어
2) 요지
전문에서는 초대교회의 역사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인도와 그 의의를 되돌아보고 교회가 민주화 운동, 민중선교, 평화선교에 참여함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신사참배, 반공기독교, 유신에 협조, 교파분열, 보수와 진보로의 양분 등의 잘못을 고백했다. 20세기 한국교회의 역사적 잘못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성장제일주의, 권위주의, 예산 집행의 불투명성, 돈선거, 물량주의, 근본주의, 기복주의, 내세주의, 지역주의, “자본주의화한” 제도교회들,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 등 현재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들을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생명과 해방의 하나님으로 신앙고백을 했다. 이 토대 위에 생명신학을 제시하고 생명파괴 현실을 분석했다. 인간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인 기독교전통이 자연을 파괴하고 가난한 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청지기임을 깨닫고, 기독교 전통, 민족의 사상과 삶, 아시아 문화, 원주민의 영성에서 생명중심적이고 관계중심적인 요소를 발굴해서 성서의 생명중심적 복음을 새롭게 해석하고 풍부하게 해야한다. 생명을 억압하는 현실은 우선 경제의 지구화와 가난의 확산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데 이는 국가에 의해 조직되어야 한다. 성, 인종, 계급, 연령, 지역 차별이 있는데 한국교회는 여성차별과 외국인 인권문제 해결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군사주의와 폭력과 분단에 대해서 교회는 희년정신 위에 남북교류와 협력사업, 평화협정 체결, 동북아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교파중심적인 교회재건 사업을 버리고 대안적인 대북선교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환경파괴와 생명조작에 대해서 교회는 창조질서 보전에 앞장서며 생명공학을 우상으로 보고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과제는 대내적으로는 권위주의 타파, 여성참여 확대, 예산 집행의 투명성 확보, 교회 정책결정과정의 민주화 등이며, 대외적으로는 지구화한 맘몬을 선한 세력과 연대해서 제어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소중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영적, 도덕적 교만에 빠지기도 했다. 이제 한국교회는 맘몬과 죽음의 세력 앞에서 하나님과 생명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3) 의의
일제 식민지 35년과 분단 50년의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들어가면서 한국교회의 과거를 반성하고 우리 사회와 세계의 현실을 분석하며 한국교회의 신학적 방향과 교회의 과제를 제시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또 앞으로의 신학적 방향으로서 생명신학을 제시한 것은 세계교회의 흐름 (WCC는 93년부터 생명신학 연구) 과도 맞고 한반도에도 절실한 신학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억압 현실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이 되었고 또 그에 대응하는 교회의 과제가 설정되었다고 생각한다.
2. 신학선언 비판
1) 신학선언 자체에 대한 비판
우선 표현에 있어서 중복되거나 불균형을 이루거나 설교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중복된다는 것은 생명파괴 현실을 다루면서 교회의 과제를 함께 다루고 곧 이어서 교회의 과제를 따로 다루기 때문이다. 불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차별” (생명파괴현실의 두 번째 항목)을 다루면서 성차별은 다섯 가지 항목으로 세분해서 다루고 인종차별은 한 항목으로 다뤘는데 계층차별, 지역차별, 연령차별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로 느껴지는 것은 생명신학을 논하면서 생명신학에 대한 국내외적 논의들을 깊이 있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용어의 통일이 이뤄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지구화, 세계화 현상에 대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p4), “경제의 지구화” (p6), "지구적 자본주의“ (p9), "신자유주의적 지구화한 맘몬세력” (p10)이다. (경제문제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토론제안서인 통일시대의 지속가능한 균형성장 경제에서는 “시장의 지구화” (pp.123-133)라고 했다.) 용어가 이처럼 다양하게 사용될 때에는 그 각각의 용어에 대한 보조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9쪽에서는 탈자가 나왔다 (환경파괴와 생명조작 항목 7째줄, “물려줄 가능성이 높.”). 신학선언의 첫 문장은 “선언한다”로 끝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신학선언 요지에서 제시한대로 전문, 신앙고백과 생명신학 제시, 현실분석, 교회과제 제시, 결어 전부가 선언의 내용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표현의 문제의 일부는 신학선언의 구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전문에 이어 생명신학의 성서적,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전문에 포함되었던 교회현실을 성서적, 신학적 근거에서 비판하고 선언에서 빠졌던 NCC 평화통일 운동과 교회일치, 연합운동에 대해 비판하고, 우리 사회와 세계 현실을 분석한 후 교회 과제를 제시하는 대신에 몇 가지를 중심으로 신학선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9쪽 “군사주의와 폭력과 분단현실” 항목에서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추구해온 기독교 희년 정신에 입각하여” 라고 했는데 희년 정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의 기독교 통일, 희년 운동에 대한 평가가 없다. 또 지난 7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대표적 신학이라고 자부해온 민중신학의 유산이나 그 공과에 대한 비판이 없다. 지난 세기에 대해 신학적으로 회고해 볼 때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 자산이 없다는 말처럼 들려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또 1997년 말에 도래한 소위 IMF 체제에 대해서, 세간의 큰 관심이 되었던 베트남 참전에 대해서, 노근리로 대표되는 한국전쟁 전후의 양민학살과 각종 전쟁 범죄, 그리고 정신대 문제 등에 대해서도 신학적 반성이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본다. 또 미군정기, 이승만 정권기, 김영삼, 김대중 정권 등 소위 ‘친기독교 정권’에 대한 비판도 필요했다. 그러나 가장 아쉬운 것은 새로운 천년대, 21세기를 맞으면서 교회의 과제에만 초점을 맞췄지 희망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부분이 너무 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필자는 희년이나 하나님 나라, 생명 등 기쁜 소식은 우리가 과제로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이고 희망으로서 주어진 선물이라고 믿는다. 필자는 이런 부분이 다음의 신학선언에서 보완되기를 바란다.
2) <새천년을 향한 한국기독교 신학선언>을 위한 대토론회로부터의 비판 (이하 대토론회)
NCC 신학연구위원회는 신학선언을 위해 1999년 9월 10일 대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희년, 생명, 여성, 복음과 문화, 세계화, 정보화, 윤리, 교파주의, 한국적 기독교, 평화 통일, 세계 선교 등 11 주제에 대해 11명이 발제하고 11명이 논찬하고 세 번에 걸친 중간 토론과 한 번의 종합 토론을 가졌다. 신학선언을 위해 대토론회를 가진 것은 신학선언이 보다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비전을 함께 나눈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시도였다고 본다. 그러나 대토론회의 주된 논의가 얼마나 반영되었는가 하는 것과 거기서 마땅히 검토되어야 할 주제들이 제대로 다뤄졌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최영실 교수의 희년신학은 그 성서신학적 근거 제시와 함께 한국교회에서 희년신학과 희년운동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유토피아, 설교, 은총의 사건, 믿음, 성령, 부활 등에 대한 오해) 희년 정신으로 이뤄야할 새로운 가치관과 대안적 공동체를 제시하는 상당히 돋보이는 발제를 했다. 최 교수는 억압받는 자를 풀어줘야 한다면서 민중신학의 재기와 발전의 필요성을 언급한 유일한 발제자였다. 그는 “민중신학 운동을 전개하던 사람들 자신이 고난의 현장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면서, 억압받는 민중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최영실, “희년” in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연구위원회, <새천년을 향한 한국기독교 신학선언>을 위한 대토론회. 1999. 미간행 자료집. p.8.
고 비판했다. 평화통일에 대해 발제한 노정선 교수는 평화신학이 피해당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출발해야 하며, 역사적으로, 사회전기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하며, 경제민주체제를 세계에 건설하는 세계경제개혁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했다 노정선, 평화통일 in 대토론회 자료집. p.77.
.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방법론 제시는 대토론회에서 제시된 중요한 신학방법론이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김윤옥 회장의 평화통일 부문 논평에서 지난 20년 동안의 NCC 통일운동을 개관하며 “상대방의 나와 다른 점을 존중하며 상대방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화해에 근거한 화해신학을 제시하는데 이를 남북간에 적용하면 “북한을 남의 척도, 기독교의 척도로 규정하며 비난 적대하지 않는 일” 김윤옥, 평화통일 논평 in 대토론회 자료집, p.81.
이라고 했다. 그런데 신학선언에서는 희년신학이나 희년운동에 대한 적절한 묘사나 평가가 없었고 민중신학이나 평화신학이나 화해신학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런 신학의 내용이 무엇이고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현재 한국신학의 주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교파주의에 대한 발제에서 임희모 교수는 교파는 선교사들에 의해 수입되었지만 교파 수를 확장시킨 자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라고 했다 (자료집, p.54-5). 이에 대해 논찬자 양권석 교수는 “지금 있는 그대로 교파 교회들을 교회로 인정하고, 그들 사이에 이뤄지는... 교회운동으로서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론적 기본전제와 배치된다고 본다.” “교파주의가 식민주의, 분단 이데올로기와 그리고 지구화 시대의 상업자본의 논리와 결탁하고 공모해왔던 점을 ...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리라고 본다.” (p.62) 교파주의의 문제는 “실용적인 목표가 사실은 교회론적 기본전제를 압도하거나 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p.59) 즉 교파주의의 문제는 “한국교회의 선교적, 교회론적 위기를 내포한 문제” (p.63)라는 것이다. 이러한 양 교수의 문제의식이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에도 적용되어져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신학선언에는 이런 문제의식이 빠져있다.
한국적 기독교에 대해 발제한 김흥수 교수는 “사회 정치적 기능에서 볼 때, 기독교는 한국종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독교는 한국의 문화전통에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으며 그 결과 기독교는 한국문화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p.64)는 중요한 지적을 했다. 그러나 복음과 문화에 대한 최인식 교수의 발제는 복음과 문화의 신학적 모델을 본성과 은총 (자연과 은총)에서 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이지만, "문화는 복음과 독립적인 자율성을 갖지만, 인간의 본성과 마찬가지로 모호성을 지니므로 복음의 빛에 의해 조명될 때 문화는 온전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p.29) 이런 입장은 복음을 그레코 로만적인 문화로 표현한 것에 대한 비판을 간과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받아들인 복음/신앙과 문화의 관계는 상황화, 문화화이다.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제안 부분에서 다루도록 한다. 신앙과 문화에 대한 고민도 신학선언이 빠뜨린 중요한 부분이다.
세계화, 정보화에 대한 논의가 갖는 신학적 함의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은 21세기 한국신학의 주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현 단계에서 그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발제문에서 부족하다고 본다. 그런데 대토론회에서 이은선 교수는 “생명의 통합성과 하나됨의 인식,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생명의 부분들에 대한 재발견, 지속적인 교육의 활동을 통한 생명 키우기”(p.16)를 제시했다. 그러나 모든 부문의 발제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주제 발제로서 생명신학이 연구되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논찬자 박동현 교수는 이분법을 극복하고 생명의 통합성이나 유기적 연관성을 성서 안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생명신학은 구속신학과 창조신학을 한데 묶는 신학이 되어야 하며, 생활신학, 삶의 신학도 함께 포함해야 하며, 이런 점에서 생명신학의 전개방식이 통합성을 띠어야 한다고 했다 (p.18-19). 아쉽게도 박 교수의 중요한 제안은 신학선언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제 이 대토론회에서 빠진 것을 중심으로 논하려고 한다. 우선 민중신학, 희년신학, 평화/통일신학, 여성신학 등에 대해 신학부문에서 세분해서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접근방식이 역사적이었으면 신학선언이 훨씬 더 구체성을 띠고 역사적 평가와 전망 제시가 이뤄졌을 것이다. 교회일치와 연합 운동, 에큐메니칼 운동, NCC 76년 역사에 대한 평가와 의의를 정리하는 작업도 이뤄져야 했다 이상윤,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과 과제” in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연구위원회 편, 에큐메니칼 신학과 운동 -한국교회를 중심으로- (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99) 이 글이 역사적인 방식으로 서술되지 않아서 각 시기별로 의의와 한계를 잘 정리하지 못 한 것으로 본다.
. 또 복음과 문화와 관련해서 60년대 토착화 신학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타종교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교 부문에서는 인권선교, 민중선교 등을 세계선교와 함께 평가했어야 한다. 세계화와 아울러 지자제, 시민운동과 시민사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바른 자세를 다뤘어야 했다.
3. 신학선언과 “쇄신과 화해” 비교
1) “쇄신과 화해” 요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천주교 200년 역사 가운데 잘못한 것들을 참회하고 한국인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자신을 정화하는 것은 새 천년 대희년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도록 도와주는 정직하고 용기있는 행동” 이라는 교황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쇄신을 통해 민족과 화해하고 새 역사를 만드는 이들의 대열에 함께 하려고 한다.
하나, 교회는 박해시대에 외세에 힘입어 신앙의 자유를 얻고 교회를 지키고자 했다.
둘, 교회는 일제시대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 제재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셋, 교회는 해방 후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
넷, 교회는 지역, 계층, 세대 갈등을 해소하고,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과 복지 증진을 위한 노력이 부족함을 반성한다.
다섯, 교회는 집단 이기주의,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 등이 팽배한 사회에서 바르게 살지 못하고 청소년을 바르게 이끌지 못했다.
여섯, 성직자들이 도덕적 윤리적 귀감이 되지 못하고 권위주의에 빠지거나 외적 성장에 지나친 관심을 두는 등 세상풍조를 따를 때가 많았음을 고백한다.
일곱, 교회는 다종교 사회인 우리 나라에서 타종교가 지닌 정신 문화적 가치와 사회 윤리적 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 한 잘못도 고백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교회로서 우리의 무관심, 방관, 잘못으로 상처받은 분들에게 용서를 청한다. 우리는 참회를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하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서 선의의 모든 사람과 함께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2) 특징
첫째로 교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함으로써 자신을 정화하고 쇄신을 통해 민족과 화해하고 새 천년의 새 역사에 동참하고자 한 것이다. 민족 앞에 교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자신을 쇄신하는 것이 민족과 화해하는 지름길이다. 이 길만이 새 역사 창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다.
둘째로 교회의 대내적 잘못으로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외세에 의존하거나 성직자의 권위주의, 외적 성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다. 대외적으로는 일제시대 무력항쟁이나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대한 제재, 분단 상황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적극적이지 못했던 점, 지역, 계층, 세대 갈등 해소 노력이 부족하고,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에 소홀한 점, 집단 이기주의,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가 만연 한 사회에서 바르게 살지 못 한 것, 타종교의 가치와 선을 잘 인식하지 못 한 것 등이다. 이를 일곱 개의 항목에서 한 두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했다.
셋째로 이 문서가 예전용으로도 작성되어 지교회가 사용하도록 했다.
넷째로 “쇄신과 화해”는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의 “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 (1999.12)이라는 문서에 신학적 근거를 두고 있다. 200년 대희년 칙서인 “강생의 신비”(1998.11)에 의하면 희년의 은총을 받는데 도움이 되는 표지의 하나는 기억의 정화다. “기억의 정화는 과거의 잘못을 역사적, 신학적으로 새롭게 평가함으로써, 그 유산으로 남아 있는 온갖 형태의 증오와 폭력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양심을 자유롭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기억의 정화는-올바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그에 상응하여 죄를 인정하게 되고, 화해의 길에 이바지하게 된다.”
3) 한계
첫째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참회하면서 구체적인 사건을,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둘째로 200년의 역사를 반성하다보니 선택적 일 수밖에 없지만 한국전쟁이나 1997년 IMF 등 중요한 사건을 간과했다.
셋째로 기억의 정화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현재 전세계적인 과제인 생태계 위기나 지구 자본주의의 문제를 간과했다.
넷째로 성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4) 두 문서의 비교
새 천년, 21세기를 맞으면서 지난 100년, 200년 교회의 대내외적 잘못을 반성했다. 그런데 “쇄신과 화해”는 초점이 과거에 놓여 있어 기억의 정화를 통해 현재 자신을 쇄신함으로써 민족과 화해하고 대희년을 새롭게 맞으며 영성적 측면을 강조한데 반해, 신학선언은 과거의 반성보다는 현재의 생태계와 가난한 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지구 자본주의의 문제에 직면해서 생명신학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전지구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측면이 부각되어 있다. 그런데 기억의 정화를 통한 영적 쇄신이야말로 교회가 현재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고, 현재 직면한 생태계의 위기와 여러 문제들이 쇄신된 영의 삶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두 문서는 상호보완 될 수 있고 보완되어야 한다.
4. 몇 가지 제안들
1) 화해의 신학
한국전쟁과 크고 작은 군사적 긴장과 갈등, 천만 이산가족의 한 등 냉전의 상처가 지구상에 우리보다 더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런 아픔의 크기에 비하면 화해와 통일로 나아갈 준비가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신학적으로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통일의 신학, 화해의 신학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로버트 슈라이터의 화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Robert J. Schreiter, Reconciliation: Mission & Ministry in a Changing Social Order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2)
. 그의 화해론의 전제는 군부독재나 폭력적 상황이 종식되고 사회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화해가 이뤄지려는 상황이다. 물론 분단 50년과 같은 고통은 현재 지구상에 우리에게만 유일한 것이기에 그의 화해론은 단지 참고사항이다. 그는 화해가 아닌 것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피해자의 기억이 무시되는 성급한 평화, 해방 대신에 화해, 조종된 과정은 화해가 아니다고 했다. 피해자의 치유는 시간이 걸린다. 해방과 화해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해방은 화해의 전제다. 화해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화해는 전략이라기 보다는 영성이다. 그는 기독교적 화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화해를 주도하고 가져오는 이는 하나님이다. 화해는 전략이기보다는 영성이다. 화해는 가해자, 피해자 모두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과정이다. 폭력이 강요하는 거짓 이야기 (인간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이야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부활의 이야기다. 화해는 다차원적인 현실이다.
화해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사회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영성적 측면이다 R. J. Schreiter,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Spirituality & Strategies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8) p.4.
. 사회적 측면은 분열된 사회를 정의롭고 진실한 사회로 재건하기 위해 구조와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기억의 치유를 법제화 할 수 없고 용서를 보증할 수 도 없다. 사회적 화해를 이루도록 여건을 조성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속에서 화해를 이루려 할 때, 기억을 치유하고 용서를 실현할 때 필요한 것이 영성적 측면이다. 교회는 화해의 영성적 측면을 위해 특히 기여할 바가 있다. 백인정권을 무너뜨리고 난 후 만델라 정부가 한 첫 번째 일 가운데 하나는 칠레의 전례를 따라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해서 과거 흑인 차별정권 하에서 일어났던 인권탄압 사례를 밝히는 것이었다. 한 여인은 증언대에 나와서 어떻게 자기 아들이 납치되어 고문 받고 살해되어 시체로 돌아왔는가를 증언했다. 새 정부가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아들을 위해 비석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아들에 대한 복수나 정의를 세울 것을 바라지 않고 단지 새 정부가 그 아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1991년 발칸 전쟁으로 세르비아 군대가 크로아티아를 침략해서 점령한 후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여인들을 성폭행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크로아티아 군대가 자신의 땅을 되찾자 크로아티아 여인들이 세르비아 마을에 군인들 보다 먼저 들어가 손과 손을 맞잡고 “평화의 벽”을 만들어 자기네 군대가 세르비아 여인들을 성폭행 하지 못하도록 복수하지 못 하도록 막았다. 저 여인들은 자신이 당한 한을 승화시킨 것이다. 나는 여기서 화해의 영성적 측면을 위해서는 여성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영성이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있다고 본다. (나는 1987년 성서와 실천 II에서 민가협과 마리아의 영성을 관련시켰었다.) 또 조화순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여성 민중 목회자, 민중선교사들에게서 본다 (참조: 입을 떼니 마음이 열리고).
개인적 화해와 사회적 화해 역시 다르다. 개인적 화해는 폭력의 희생자의 손상된 인간성이 회복될 때 가능하다. 그런데 화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용서다. 하나님의 용서는 무한한 사랑에 기인한다. 그러나 인간의 용서는 폭력적 상황이라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와지고 과거의 폭력과는 다른 미래를 택하는 자유의 행동에 기인한다. 그가 자신의 과거로부터 자유로와지고, 그의 손상된 인간성이 치유되어야 용서를, 그가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선택할 것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R. J. Schreiter,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Spirituality & Strategies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8) pp. 57-8.
. 사회적 화해는 화해를 경험한 개인들이 화해 과정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적 화해의 의미를 이해하는 중간 지도자층을 필요로 한다. 칠레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회장이었던 호세 짤라케트는 용서와 화해를 “형벌보다 훨씬 건강한 도덕적 질서를 재건설하는 과정” Ibid., p.111.
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적 화해는 전 국민이 참여해서 도덕적 질서를 수립함으로써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화해를 경험한 화해 공동체를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사회적 화해는 각 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화해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해야 한다며 쉬라이터는 다양한 성서 본문을 통해 접근한다. 그는 화해의 사역의 4단계를 제시한다 Ibid., p.88ff.
. 첫째 “동반”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과 동행하신 주님처럼 그들의 기대와 좌절의 아픔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함께 동반함이 필요하다. 둘째 “환대”는 디베랴 호숫가에서 고기잡는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직접 준비하신 것처럼 환대해야 한다. 환대는 폭력의 희생자들에게 신뢰, 친절, 안전의 분위기를 제공한다. 셋째 “연결짓기”는 폭력의 희생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고 공동체로부터 고립되기 때문에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에 연결짓는 것이 필요하다. 디베랴 호숫가에서 조반 후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시고 베드로의 답변을 통해 그의 제자됨을 회복하고 제자 공동체에 복귀시킨다. 넷째 “위임”은 주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하심으로써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는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과거 (예수 부인)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처음 두 단계는 인간의 적극적 역할을 필요로 하지만 마지막 두 단계는 하나님의 역사가 더 강하다.
슈라이터의 화해론의 특징은 화해는 가해자가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서한 후 화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의 과거로부터 치유되고 자유함을 얻은 후 가해자를 먼저 용서함으로써 가해자의 회개와 거듭남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런 화해론은 지난 반세기 동안 반공 이데올로기에 앞장섰던 한국교회로 하여금 남북한 화해와 통일 사역에 나서기에 앞서서 어떻게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되어 자유롭게 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도전하게 한다. 또 교회분열의 아픔에 대해서도 새로운 화해의 길을 열어 줄 뿐 아니라 교회가 통일을 위해, 화해를 위해 나서기 전에 자신의 분열을 치유해야함을, 먼저 화해된 공동체로 서야함을 일깨워준다.
2) 에큐메니칼 운동 반성: 교회론 vs. 윤리학, 신앙과 직제 운동 vs. 생활과 봉사 운동의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90년대 들어와서 위기를 맞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왔다. 과거의 패러다임이라 할 ‘보수와 진보’는 더 이상 오늘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논하는데 적합성을 지니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진단하고 신학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현 단계 신학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는 한국교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WCC의 신앙과 직제 운동 그룹과 생활과 봉사 운동 그룹(JPIC)이 공동으로 1993년, 94년, 96년 세 차례에 걸쳐 공동연구과정으로 교회론과 윤리학의 괴리라는 문제를 다뤘다. 그 결과 나온 문서가 “값비싼 일치”(1993), “값비싼 헌신”(1994), “값비싼 복종“(1996)이다. 이제 이들 문서를 통해 우리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점과 대안들에 대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값비싼 일치”에서는 ‘값싼 일치’와 ‘값비싼 일치’를 구분한다. “값싼 일치는 교회의 일치를 방해하는 도덕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많은 이슈들을 회피한다. 값비싼 일치는 정의와 평화를 추구할 때 얻는 선물로서 교회들의 일치를 발견한다.” "Costly Unity" para. 7.6. in Thomas F. Best and Martin Robra, eds. Ecclesiology and Ethics: Ecumenical Ethical Engagement, Moral Formation and the Nature of the Church, (Geneva: WCC Publications, 1997) p.6.
현재 N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체성 위기의 원인의 하나는 과거의 예언자적 행동을 유보하고 교회들간의 값싼 일치를 추구하는데 있다고 본다. 교회의 교회됨 (신앙과 직제 운동)과 교회의 행동 (생활과 봉사 운동) 사이의 괴리는 양 운동 그룹이 WCC라는 단일 조직 안에 들어온 뒤에도 거의 반 세기동안 극복되지 못했음을 본다. 이런 괴리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우리는 예배의 체험과 영성의 심화 속에서 교회론과 윤리학 사이의 다리를 발견한다.” (para. 9) 교회운동의 양 진영의 만남은 예전의 갱신과 영성의 심화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체험하는 예배나 영성은 교회론과 윤리학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보다는 넓히는 예전주의, 영성주의의 유혹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
“값비싼 일치를 향한 길은 반드시 교회들 서로를 향한 값비싼 헌신을 통해서 도달된다.” “Costly Commitment", para. 10. in Ecclesiology and Ethics, p.27.
"값비싼 헌신은 한편으로는 교회의 윤리적 특징을 확증하고 강조할 필요성에 대한 점증하는 의견일치 속에서 표현된다.“ (para. 11) "이런 헌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에 윤리적 프락시스에 보다 깊이 참여했던 자들 가운데에서 교회 갱신에 대한 관심에 의해 동일하게 표현된다.” (para. 12) 과거에 교회론적 이슈에 관심가진 ‘보수적인’ 교회들이 현재 에큐메니칼 운동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이들은 윤리적 활동에 깊이 관여하는 반면에, 과거에 윤리적 활동에 참여했던 ‘진보적인’ 교회들이 교회갱신에 깊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적 코이노니아는 항상 윤리적 선언을 간직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런 코이노니아는 배반당하고 영성주의로 전락한다. 윤리적 코이노니아는 항상 예배 생활 (대부분의 경우 성만찬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런 코이노니아는 불완전하고 행동주의와 도덕주의로 전락한다.” (para. 50)
‘값비싼 일치’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교회들 서로간의 ‘값비싼 헌신’은 교회의 프로그램이나 에큐메니칼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하나가 되도록, 그리고 인류와 피조물을 섬기도록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에 대한 ‘값비싼 복종’을 요구한다 Ecclesiology and Ethics, Introduction ix.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사례에서 보듯이 민족의 화해를 위한 청문회는 “예전적” 성격을 갖는다. 즉 청문회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이야기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억압자를 용서할 수 있는 자원을 발견하게 한다.” “이런 예전적 경험(청문회)은 항상 고통스럽고 때로는 충격적이지만, 이것은 또한 은혜, 정의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Costly Obedience", para. 47. in Ecclesiology and Ethics, p.65.
한국전쟁과 분단 55년 동안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서 화해와 통일로 나아가려면 한국교회는 “치유의 예전”과 “도덕적 재건”에 초점을 둔 ‘진실과 화해위원회’ 설치를 제안해야 한다. 물론 이런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야말로 ‘값싼 복종’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화해와 통일로 가는 길이 도덕적 차원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차원”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para. 56).
3) 복음/신앙과 문화, 상황화, 문화화
기존의 복음과 문화에 대한 논의는 상당부분 복음을 상수로 보고 문화를 변수로 보아서 복음을 그 지역 문화에 맞게 ‘토착화’시키거나 ‘적용’시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스테판 비반스는 복음과 문화 이외에 전통과 문화변화를 추가해서 네 요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통해 상황화 신학의 모델로 번역, 인류학, 프락시스, 종합, 초월 등 네 가지로 분류했다 Stephen B. Bevans, Models of Contextual Theology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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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황화, 문화화의 가장 좋은 모델은 필리핀의 평신도 신학자인 드 메사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는 문화화를 “특정 문화 상황 안에서 복음을 의미 있게 만들고 문화에 도전하도록 만드는 과정과 관심” Jose M. de Mesa, "Doing Theology as Inculturation in the Asian Context" in James A. Scherer & Stephen B. Bevans eds. New Directions in Mission & Evangelization 3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9) p. 117.
이라고 했다. 그는 문화와 기독교 상호간에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새로운 의미를 찾게 했고, 동시에 서로를 비판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필리핀 문화 차원에서 복음을 재해석했고, 필리핀 문화 (인간 이해)에서 복음의 그레코 로만적 표현을 비판했다. 또 복음의 차원에서 필리핀 문화를 재해석했고 (복음을 그 문화용어로 표현하고 생각하고 살며, 그 문화의 지혜, 민중의 지혜를 재발견 하게 한다), 복음의 차원에서 문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함으로써 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것을 교정시킨다 Ibid., pp. 128-31.
. 그의 문화화는 로마 카톨릭에서 보여지는 한계- 복음이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을 강조하지만 문화가 복음에 새로운 빛을 비추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는데-를 극복했다. 이는 문화 안에 이미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화가 복음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조전하기 때문에 이것을 행동신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문화화는 60년대 토착화 신학의 한계를 넘어가게 하면서 동시에 민중신학의 이데올로기로의 편향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4) 민중신학
민중신학은 70년대 산업선교, 빈민선교 등 민중선교에 대한 신학적 정당화 과정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80년대 들어와서 민중신학과 민중선교 현장 사이에 괴리가 일어났다. 일부 민중신학은 기독교학생운동을 현장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민중선교 현장을 떠난 민중신학은 과거를 되풀이하거나 현재의 문제에(광주항쟁, 반미) 침묵하거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 일부에서는 현대의 다양한 학문 조류와 씨름하기도 하고 생명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민중선교 현장의 문제를 고민하는 속에서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 필자는 민중교회의 선교 (1983-1997)라는 논문 속에서 그 역사를 되돌아보고 민중선교에 대해 재해석했다. 여기서는 민중선교론에 대해 소개한다.
A) 민중 선교론
보쉬는 그의 책 (Transforming Mission)에서 선교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교는 우리 자신의 예측이라는 협소한 공간에 갇혀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가 최대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선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사치를 형성하는 것이다” David J. Bosch,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New York: Orbis, 1991) p. 9.
.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민중 선교론에 대해 논의하려 하기 때문에 선교에 대한 정의가 불가피하다. 선교는 선교사들/신앙공동체들이 인간의 특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통치, 구원)을 이루는데 참여하는 것이다 참조: David J. Bosch, Witness to the World: The Christian mission in theological perspective. (London: Marshall, Morgan & Scott, 1980), W. Saayman, "Missiology in the Theological Faculty," in Mission Studies, vol. XV-1, 29, 1998. pp. 66-78. J. N. J. (Kippies) Kritzinger, "Studying Religious Communities as Agents of Change: An agenda for missiology," in Missionalia 23:3 (November, 1995). pp. 366-96.
. 선교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상황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사이에 긴장은 피할 수 없다. 선교는 선교사들 혹은 신앙 공동체의 하나님 뜻과 인간 상황에 대한 이해에 의존한다. 또한 선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인간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을 전제한다. 이 경우 문제는 누가 인간 상황을 변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민중 선교는 민중 상황에서 민중 해방을 이루는데 민중교회가 참여하는 것이다. 민중 해방은 민중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 것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고, 민주화, 교회갱신, 통일을 지향하는 민중교회의 설립이 이에 기여할 것으로 보았다.
가) 몇 가지 미리 다뤄야 할 문제들
민중교회 선교 실무자 한 사람이 민중교회 선교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 그 동안의 선교사업이 과연 정말 선교적 사업이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저 하나의 지역 프로그램일 뿐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신앙적 고백을 가지고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평신도 좌담회: "민중교회 10년의 반성과 과제", in 한국기독교장로회 민중교회운동연합 편, 바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민중선교의 현장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p. 40.
. 오랜 경험을 지닌 한 실무자는 실무자의 정체성을 평신도 선교사로 할 것을 제안했다 김경희, “한민연 선교일꾼 수련회를 다녀와서” in 민중교회 제 14호, (3-4월, 1994) p.11.
. 이러한 주장은 이 문제와 관련한 민중교회 목회자의 입장과 일치했다. 이원돈 목사는 민중선교가 민중 교회론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할 것을 제안하며, 신앙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민중선교가 수행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또 민중선교는 전도, 사회선교, 공동체 건설로서의 통합적 민중선교를 제안했다 이원돈, “민중교회의 선교론” in 말씀과 일터, 제 2호 (2월, 1993) pp.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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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민중교회 목회자와 실무자들이 평신도 선교사로서의 실무자의 정체성과 신앙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이 민중선교의 필수적인 조건이라는데 동의한다. 이런 입장은 민중교회운동이 제 2기에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을 강조하던 것과 일치된다. 이 때에 민중교회는 왜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했는가 하는 물음을 묻게 된다.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이해와 관련되어 있다. 2세대 민중신학자 박재순은 하나님의 선교가 올바른 이론이지만 한국교회에의 적용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한국교회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선교의 주체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공허하고 추상적으로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박재순, “변화된 상황에서의 교회와 민중선교” in 민중의 교회, 민족의 희망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 민중교회 자료집 편집위원회 편, 1996) p.259.
. 대부분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이런 입장에 동조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앙의 우위성에 대한 확증 없이 노동운동을 지원함으로써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했는데 그 결과 민중교회운동 제 2기에서 본대로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제 3기에 가면 이런 입장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충분하지 않다. 민중교회와 관련해서 두 가지가 추가되어야 한다. 대부분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흩어지는 교회”를 민중교회에 적용시키려 했으나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민중교회가 먼저 모이는 교회가 아니면 흩어지는 교회일 수 없다는 것이다. 테오 준더마이어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호켄다이크의 이해와 구속사적 이해를 구별했다. 전자는 세상의 샬롬화를, 하나님의 통치를, 그리스도의 생명을 강조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각주”로 환원되었다. 후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역사 개입이 전자에 의해서는 해방적으로, 후자에 의해서는 구속사적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그는 이 두 관점 모두 서구의 헤게모니적 정신으로, 지배적 사고로 비판했다 Theo Sundermeier, "Missiology Yesterday and Tomorrow" in Missionalia no. 18/1 pp.260-2.
. 자유주의적이거나 급진적 기독교인 그룹과 보수적인 그룹 사이의 갈등이 제3세계교회 일반에서, 특히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그 원인이 서구 기독교 지배에 연유한 것을 보는 것은 비극이다. 그런 갈등은 서구 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제3세계교회로 심어지고 서구교회에 의해 조종된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그 갈등이 서구보다 제3세계에서 보다 심화된다는 것이다. 민중교회운동은 이런 문제를 깨닫고 여기에 도전하려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산업선교, 빈민선교의 유산과 관련이 있다. 민중선교는 민중선교 프로그램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러나 민중교회 목회자들의 민중선교 경험은 대부분 민중선교 프로그램에 제한되어 있다. 선교 프로그램은 실무자나 선교 위원회가 신앙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면 교인 수 증가에 기여할 수 있었다 민중교회 목회자 사회전기 no. 18.
. 80년대 말까지 민중교회 목회자와 실무자들은 선교 프로그램을 전도와 연결시키는데 주저했다. 그들은 민중교회의 기독교적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민중교회 목회자의 사회전기 no. 3.
. 이런 태도의 이면에는 산업선교, 빈민선교의 유산이 있었다. 노동자로서 의식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은 선교적 활동으로 여겼다. 그러나 예수를 주로 받아들이는 일은 선교로 여겨지지 않았다 민중교회 목회자의 사회전기 no. 10.
. 대부분의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선교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는 민중들에 대해 목회적으로 접근하지 못 했다. 이와 같이 민중교회 정체성 위기의 주요 원인은 하나님의 선교, 흩어지는 교회, 산업선교와 빈민선교의 부정적 유산들이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민중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민중해방으로 이해했기에 민중구원은 거의 사회적 차원으로 환원되었다. 바꿔 말하면 민중구원의 개인적인 차원과 종말론적 차원이 무시되었다. 이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정체성-참여 딜레마” J. Moltmann, The Experiment Hope, John Parratt, A Guide to Doing Theology (London: SPCK, 1996) p.100에서 재인용. 신학이 사회 위기에 참여하면 할수록 자신의 기독교적 정체성의 위기가 심화된다. 이러한 양면적 위기를 몰트만은 ‘정체성-참여의 딜레마’라고 불렀다. 그는 이것이 딜레마가 아니라 처음부터 신학이 세계와 관련을 늘 새롭게 갖기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갖기 위한 기독교 신학의 본질이라고 했다.
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민중교회운동의 제 1기에 민중교회의 주요 역할은 노동운동의 외곽이었다. 제 2기에 민중교회운동은 정체성 위기에 시달려왔다. 이 문제는 다음 절 (1.24)에서 다룰 것이다.
나) 민중선교론
민중교회운동의 선교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제 1기에 민중교회운동은 자신의 위상을 노동/민중운동의 외곽으로 여겼다. 1987년 6월 항쟁이후 민중교회운동은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신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냉전’ 이후 ‘문민정부’ 이후 민중선교는 다양화되었다. 새로운 관심사는 “영성”과 “생명”이었다. 민중교회운동은 민중, 민중교회, 민중교회운동에 대한 민중교회 목회자들의 자기이해 또는 자기규정으로 시작되었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15년간의 민중교회운동을 통해서 만난 민중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서 도리어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변화되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민중 선교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a) 선교와 영성
콤블린 (J. Comblin)은 “예수는 비무장이었기에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인간 존재들에 바로 접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연약함을 “참된 선교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참된 선교는 “선교사들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가 겪었던 메시아 주의라는 동일한 유혹” Joseph Comblin, The Meaning of Mission: Jesus, Christians, and the Wayfaring Church (New York: Orbis, 1977) pp.80-6.
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시아로 왔던 선교사들에게도 적용된다. 고수케 고야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지난 400년 동안 아시아의 기독교가 민중들에게 진정으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의 선교사들은 “교사 콤플렉스”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 고야마는 “교사 콤플렉스” Kosuke Koyama, "Christianity suffers from 'Teacher Complex'" in Mission Trends No. 2: Evangelization (New York: W.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 p.72.
를 “십자군 콤플렉스”와 연결시켰다. “십자군 콤플렉스”는 대위임명령에 대한 오해에 기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처럼 행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다. 고야마는 “십자가에 달린 정신”과 “십자군 정신”을 구별했다. 전자는 “‘핸들 없는’ 십자가의 무게 아래서 단련된 정신”이요 후자는 “필수적인 자원들이 풍부한 가운데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핸들이 있는’ 가운데 단련된 정신”이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에 대한 명상이 기독교 영성과 선교론의 주제” K. Koyama, No Handle on the Cross: An Asian Meditation on the Crucified Mind (London: SCM, 1976) p.3.
라고 했다. 보쉬는 “영성적 존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 David J. Bosch, A Spirituality of the Road (Pennsylvania: Herald Press, 1979) p.13.
라고 했다. 선교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선교론은 영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보쉬는 바울의 영성을 “도상의 영성”이라고 했다. 도상의 영성은 영구적인 속성이나 소유물이나 성취물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늘 다시 새롭게 갱신되는 것이다. 도상의 영성은 수도원의 영성이 아니라 고정되지 아니하고 완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은 이 단계로부터 저 단계로 여행하는 것이다 Ibid., p.20.
. 위험한 선교 방법이나 영성은 승리주의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용어들에게서 발견된다. 보쉬에게 있어서 참된 선교 또는 영성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연약한, 그리고 가장 감동적이지 못한 인간 행동을, 영광의 신학의 정반대 명제” David J. Bosch, A Spirituality of the Road, p.76.
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연약성”을 선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의 한 가지로 추천했다. 이 점은 프라이탁의 선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해에 의해 지지되었다. “그는 (프라이탁) 지상의 민족들 사이에서 그 결과에 관계없이, 그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조차도 주되신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이 참된 선교를 뜻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Ibid., p.36. 발터 프라이탁이 이집트에 있는 루터교 선교부를 방문했을 때 선교부의 상황은 52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해오면서 이슬람교로부터의 개종자가 한 명 밖에 없었고 그마저 다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은 성실하게 선교활동을 계속 하고 있었다.
. 이는 선교 또는 영성의 가장 중요한 의미의 하나는 그 결과에 관계없이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순종임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계속 남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선교사나 영성적인 인간이 “약함”이나 “연약성” 이라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b) 선교사의 약함/연약성의 이유와 정체성의 문제
선교사가 그 자신의 영역 안에 머무는 한 약함이나 연약성은 결코 인식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타자’를 만났을 때 비로소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났을 때 일어났다. (행 10장) 베드로의 약함이나 연약성은 그가 이방인을 만났을 때만이 아니라 성령의 예기치 못한 역사를 만났을 때 그 자신에게 드러났다. 하나님은 역사를 다스리신다. 그러나 그는 역사를 통제하지는 않으신다 K. Koyama, No Handle on the Cross, p.21.
. 만약 하나님이 역사와 인류를 통제한다면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그의 로봇일 것이다. “우상은 우리가 길들일 수 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길들일 수 없다” Ibid., p.71.
. 지구자본주의, 문화산업, 언론매체, 그리고 다른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들과 같은 우상들은 살아있는 민중을 길들이려하고, 그들을 통제의 대상이나 그들의 의식을 물화 시키려 하고, 사물로 전락시키려 한다 (논문 9장). 그러나 진실한 하나님이 되는 것과 살아있는 백성이 된다는 것은 그 둘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도록 이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 보다는 그 백성들과 관계 맺는데 관심을 가지신다.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 의사소통적인한 백성은 하나님을 타자로 (Other), 하나님은 백성을 타자로 만나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 백성을 타자로 만나고 거기서 당신의 약함이나 연약성을 느낌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서였다. 그의 성육신은 그의 사명/선교를 위해 충분치 않았다. 그의 십자가 처형은 그의 선교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했다. 이런 방식으로 승리하는 메시야에 대한 유대인들에 의해 기대된 (옛) 메시야 정체성이 부인되었다. 대신에 그는 고난당하는 메시야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 모세 역시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 모세가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대답하셨다. “그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살아있는 유기체(생명)로서 숨쉬어야 한다 (살아야 한다)” Ibid., p.72.
. 선교사나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은 타자와 하나님과의 만남의 긴 여정 속에서 변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교사나 신앙공동체는 하나님의 뜻과 인간 상황에 대해 선교를 시작할 때와는 다른 이해를 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도상의 영성”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도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K. Koyama, No Handle on the Cross, p.73.
만들어져 간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상처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의 정체성에 대한 증거” David J. Bosch, A Spirituality of the Road, p.82.
임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 영성, 정체성, 선교의 중심은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기독교 선교는 선교사가 그의 선교 활동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수행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선교의 첫 걸음은 “전도 (선교)와 선전 (하나님의 뜻과 인간 상황에 대한 선교사/신앙공동체의 첫 이해에 대한 반복)을 혼동했던 우리 자신 (선교사/신앙공동체)의 회개” Walter J. Hollenweger, Evangelism Today: Good News or Bone of Contention?, (Belfast: Christian Journals, 1976) p.41.
이다.
c) 선교와 “타자”와의 만남
ㄱ) “타자”와의 만남의 사례
민중선교운동의 선교는 민중과 민중교회에 대한 민중교회 목회자들의 자기이해 (선전)로부터 출발했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그들의 선전에 귀기울이지 않고 의식화되기를 원치 않는 “고집 센” 민중을 만났을 때, 이에 대해 뒤늦게 깨달았을 때, 그들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신앙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서, 그들 자신이 “영성”이라고 부른 것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민중을 변화시키려했지만 오히려 그 민중들이 민중교회 목회자들을 변화시켰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전적 타자’ (민중)와의 만남이 하나님과 타자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도록 도왔음을 민중 선교로부터 배웠다.
아프리카의 경우 루돌프 말레와 시몬 킴방구의 사례들은 이들의 예상치 못한 결과가 서구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이해와 체험을 심화시키는데 기여했다 Werner Ustorf, Christianized Africa- De-Christianized Europe?: Missionary Inquiries into the Polycentric Epoch of Christian History (Hamburg: Lottbek, 1993) 제 3장을 참조하시요.
. 에밀 부르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 처음에는 그의 교구에 사는 농민, 노동자들과, 다음에는 같은 대학의 경제학, 법학, 과학 교수들과, 그리고는 무신론자들과 대화했다 W. Hollenweger, Evangelism Today, pp.85-6.
.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었다.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오명걸 (George Ogle)은 60년대 초부터 우리의 도시산업선교에 참여했는데 당시 체험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는 (산업선교사들) 하나님께서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우리가 예수에 대해 알 지 못 했던 어떤 중요한 것을 드러내시기를 바랬다... 우리는 우리가 구하는 것이 무엇 인지를 알지 못 했다. (하나님의) 계시들이 드러났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으며,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던 명령이 우리에게 주어졌 다 G. Ogle, "A Missionary's Reflection on Minjung Theology" in Jung Young Lee (ed.) An Emerging Theology in World Perspective: Commentary on Korean Minjung Theology, (Connecticut: Twenty-Third Publications, 1988) p.62.
.
70년대에 수도권 빈민선교에 직접 참여했던 현영학은 자신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꼬방동네 사람들을 ‘의식화’시키고 도와주러 갔다가 도리어 의식화 당하고 도움을 받고 돌아온 꼴이 되었기 때문이며 거기서 예수의 십자가에 달린 모습과 부활의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영학, “민중. 고난의 종. 희망” in 한국신학연구소 편, 1980년대 한국민중신학의 전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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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타자와의 만남의 다양한 방식
1. 철학자들의 접근방식
플라톤의 상기설은 타자를 자기이해나 자기 발전, 신분 상승 등을 위한 대상의 지위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극복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타자를 자기실현의 기회로 여기는 불트만 학파와 타자를 개종의 대상으로 여기는 복음주의적 선교 접근 방식에서도 공유된다 Theo Sundermeier, "Missiology Yesterday and Tomorrow" p.265.
.
헤겔이 타자를 만나는 방식은 플라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플라톤은 타자를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헤겔은 타자와의 만남을 세 단계로 이해한다. 첫 단계에서 타자와 죽을 때까지 싸움으로써 타자를 노예로 만든다. “타자의 자의식은 죽도록 싸우는 과정을 통해 두려워 떨다 나중에는 해소되어 버린다. 나는 주인이 되고 타자는 노예가 된다” Werner Ustorf, Christianized Africa - De-Christianized Europe? p.148.
. 그러나 주인의 자의식은 노예에 의해 주인이라고 확증되는 이미지에 의존하게 된다. 둘째 단계에서 주인은 주인 됨을 자신의 노예에게로부터 획득하기에 그들에게 의존하는 노예적 의식이 “지배하는 주인”을 지배한다. 셋째 단계에서 노예는 자신의 새로운 의식을 만드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한다. 우스토르프는 헤겔의 타자 접근 방식을 유럽의 정체성 확립의 초석으로 이해하고 그 두 가지 특징을 지적했다. 첫째, 헤겔은 지배적인 민족, 주인들이 자신의 진실에 이르는 과정을 자기 이미지의 공격적 팽창으로 기술했다. 둘째, 이런 과정은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자의식을 지닌 타자의 도전을 받기 전까지 지속된다.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의 타자와의 만남에 대한 출발점은 전체주의 또는 체제에 대한 서구의 과다한 집착으로부터의 탈피이다. 타자를 자신과의 다름 (타자성) 에서 만나는 것이 타자와의 만남의 본질이다. 레비나스의 요지는 “내”가 본래 그리고 반드시 “타자”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타자, 외부인의 타율적인 부름이나 “타자의 침입 (irruption of the other)”에 자신을 여는 자가 자율적인 인간이라고 했다. 우스토르프는 레비나스의 입장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가 타자를 타자성에서 만난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아무리 가까이 가더라도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 그대로 남아 있음을 뜻한다. 이런 자세는 낯설은 것을 우리
에게로 통합시키려거나 식민화시키려는 것 또는 다양성 그 자체를 말살하려는 유혹에
대해 저항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구별과 차별은 철폐되어서는 안 된다 Ibid., p.150.
.
타자에 대한 플라톤이나 헤겔의 접근법은 서구 정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런 접근법은 비유럽인들을 유럽인의 연구나 착취의 대상이 되게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육체적이거나 정신적 노예가 되게 했다. 서구 선교조차도 이런 비난으로부터 면제받을 수 없다. 그러나 레비나스의 접근방식은 선교와 선교론을 위해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몇몇 선교신학자들이 이미 이런 작업을 했다.
2. 신학자들의 타자 접근 방식들
몰트만은 엠페도클레스로부터 지각 (perception)이 고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배웠다. 사람들이 자신과 다르거나 낯선 것 또는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 그들의 첫 느낌은 고통이다. 이 “고통은 우리가 타자, 외부인이나 새로운 사람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열어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J. Moltmann, God For a Secular Society: The Public Relevance of Theology, (London: SCM, 1999) p.144.
. 그러나 이런 고통을 통해 우리는 자의식에 이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체험하는 것은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다... 처음에는 타자와 거리를 두고서, 타자와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타자와의 모순 속에서 우리는 타자를 만나고 타자와의 다름에 대한 가치를 배우게 된다” Ibid., pp.144-5.
. 이런 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자기 자신의 변화를 통한 상호변화다. 사람들이 타자의 정신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면 먼저 자신을 변화시키는 고통과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은 상호 변형의 과정에 진입한다. 몰트만은 이와 같은 변증법적 인식론의 원칙을 자연에 적용한다. 자연은 더 이상 지배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인류와 자연은 상호의사소통의 관계를 맺는다. 분석적 사고는 체계적이고도 의사소통적인 사고에 의해 대치된다. 현실 참여에 개입하는 이성은 사물의 현 조건 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인식한다. 그래서 그는 자연을 미래에 대해 열린 체계로 이해한다. “만약 모든 존재가 열린 체계라면 ... 자연 속에는 진정한 의미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복잡성의 정도가 다양한 주체들만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류와 자연의 관계는) 주체와 주체간 인식 과정이 된다” Ibid., p.147.
. 몰트만은 이런 접근 방식을 하나님에게로 적용한다. 자신의 총체적인 변화 체험을 통해서만 인간은 하나님 존재의 전적 타자성을 깨닫는다. 이것은 십자가의 신학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경이 (wonder)를 인식의 근원으로 제안한다. 몰트만이 아직도 의사소통적 사고와 체계적 사고 사이의 연속성을 고집하는 것은 이상하다. 또 그는 자연을 미래를 향해 열린 체계로 여기는데 이는 체계에 대한 서구의 집착의 한 예를 보여 준다. 타자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의 장점은 이원적 신학이 아니라 관계 지향적 신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타자와의 만남의 근거로서의 고통과 인식의 근거로서의 경이 사이에는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그의 이러한 혼동은 수정이 필요하다.
준더마이어는 레비나스의 타자 접근 방식을 중요한 자원의 하나로 사용함으로써 해석학적 선교론 (만남의 선교론)을 제안했다. “선교론은 교회와 교회의 이방인 사이의 만남을 다루는 학문 분야인데 이 만남이야말로 선교론의 필수적인 근본 원리다” Theo Sundermeier, "Missiology Yesterday and Tomorrow" p.266.
. 그에게 교회는 타자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 항상 함께 하는 존재다. 타자와의 만남에 기초한 그의 선교론의 다섯 가지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교론은 선교사와 피선교지 사람간의 의사소통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해석학적이고, 문화와 문화 사이의 교류를 다루는 학문이다. 둘째 성서 읽기에서 전제해야 할 것은 상호 들음과 성령을 위한 자리 마련이다. 셋째 그는 현재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기능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일치를 서로를 용납하고 타자와 공존하고 더불어 살게 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교회가 이것을 받아들일 때 교회는 배우는 공동체, 돕는 공동체, 경축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넷째 선교론은 이방인 (타자)에 대한 연구를 그 중요한 의제로 포함시켜야 한다. 다섯째 해석학적 선교론은 타자, 이방인, 억눌린 자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 주된 관심사는 구체적 상황 속에 사는 인간들이다. 우리가 구속 (해방/에큐메니칼 그룹)을 선택할지 화해 (복음주의 그룹)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상황이다. 해방과 화해는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분리된 개념도 아니다. 대신에 그 둘은 ‘혼동하거나 분리되지 않고’ 함께 속한다” Theo Sundermeier, op. cit., p.269.
. 그는 서구 선교론의 유럽 중심적이고 기능주의적인 경향을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타자에 대한 레비나스의 접근법뿐 아니라 “우리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도 존재한다.” 라는 아프리카 사유 방식도 그의 선교론에 적용한다. 또 그는 상황을 식별함으로써, 사회참여와 증거를 영성을 통해 매개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사이의 균열을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를 모두 동일한 지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이것은 위에서 지적한대로 한 (恨)의 관점에서 부단히 비판하는 바이다.
3. 타자로서의 유럽에 대한 파농의 비판
싸르뜨르의 타자에 대한 성찰에 대해 파농은 “백인은 타자일 뿐만 아니라 실재로든 공상으로든 (흑인의) 주인이다” Franz Fanon, Black Skin, White Masks, (London: Pluto, 1986) p.138. 각주 24번을 참조하시오.
라고 비판했다. 흑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열등감이 아니라 자신을 비존재 (non-existence)로 느끼는 것이다. 파농은 유럽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유럽의 풍요는 문자 그대로 스캔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예제에 근거하고, 노 예들의 피로 살찌웠으며, 저개발 국가들의 땅과 땅 속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 다. 유럽의 복지와 진보는 흑인, 아랍인, 인디언, 그리고 황인종들의 땀과 죽은 시신 위 에 세워져왔다 F. Fanon, The Wretched of the Earth, (London: Penguin Books, 1990) p.76.
.
그러므로 유럽의 부는 저개발 국가 민족들로부터 훔쳐온 것이다. “수 세기동안 자본가들은 저개발 국가에서 전쟁 범죄자와 같이 행동했다” Ibid., p.80.
. 싸르뜨르는 유럽의 휴머니즘을 벌거벗기면 거짓의 이데올로기, 약탈에 대한 완벽한 정당화라고 함으로써 이를 지지했다. 파농은 유럽인은 실상 인류의 적이고, 그 엘리트는 갱에 불과하다면서 서구의 모든 가치는 피에 물들어 있다고 했다. 파농은 비서구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했다.
유럽인들이 하는 말을 무작정 따라 하거나 그 행동을 지겹게 모방하는데 더 이상 시 간을 낭비하지 말자.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면서 사람을 발견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지 학살을 일삼는 이 유럽을 떠나라... 우리가 유럽을 모방하지 않는 한, 유럽을 따라잡 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 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Ibid., pp.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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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이 그의 결론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의 자유는 당신 (타자)이라는 세계를
세우기 위해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닌가?” F. Fanon, Black Skin, White Masks, p.232.
인간의 새로운 역사, 새 사람의 출발은 우리의 자유를 타자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달려있다. 그는 이미 알제리 해방전쟁 참여 중 “혈통이나 인종의 편견의 장벽이 양편에서 모두 무너져 내렸다” F. Fanon, The Wretched of the Earth, p.116.
고 함으로써 이 점을 지적했었다. 인간의 혈통이나 인종은 그들의 자유를 타자의 세계 건설을 위해 사용하도록 보증하지 못한다. 그들의 인종, 계급, 성, 종교와 관계없이 타자의 세계 건설과정에 참여하는 자들만이 새 사람이 될 수 있다.
4. 타자에 대한 한 (恨)의 관점
불의한 현실은 올바른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변화될 수 없다. 그러나 올바른 관점을 갖는 것은 실천을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 서구의 일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타자에 대한 관점은 급진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과 노예라는 현대 사회의 논리를 무시하는 것 같다. 파농은 이런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타자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사용해야 한다는 파농의 결론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Ibid., p.28.
는 식민주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아직 덜 구체적이다. 파농의 관점은 위에서 언급한대로의 (원 논문의 5.1332) 한의 관점을 통해 보완될 수 있다. 민중은 한에 맺힌 사람들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해방운동의 전면에 나설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한이나 상처를 해결해야 한다. 앤드류 박은 상호 관련적인 치유 과정을 제안했지만 누군가 치유 과정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 상호 관련적인 치유 과정에 참여하는 자들이 모두 동등한 지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인과 노예로 구성된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노예를, 억눌린 자 (민중)를 선택하셨음을 보여준다. 노예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은 그들에게만 구원이 제한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세상, 주인/지배자, 타자의 구원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노예를 택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심으로써 나중 된 자가 먼저 되었다. 이제 노예들이 지배자, 억압자의 구원에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이와 같은 구원 과정을 통해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가 모두 치유될 수 있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 관련적인 치유는 민중에게 단 (斷)을, 복수하려는 욕망과 절망에 빠지는 것을 부인함을 요구한다. 민중은 억압자를 주인이라는 자의식으로부터, 노예로부터 끊임없이 주인 됨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에게 의존적인 그런 자의식으로부터 해방되도록 그들을 대면해야 한다. 민중으로부터 상호치유 과정이 시작되지만 민중과 억압자 양쪽 모두의 잠재력이 현실화되어야 상호치유가 이뤄질 수 있다. 우주의 생명은 전체가 상호 연결되고 상호 침투하기 때문이다. 상호치유가 이뤄지면 거기에는 더 이상 주인도 노예도 없다. 구원받은, 해방된, 자기를 실현한 존재들 (인간과 자연)로 구성된 하나님의 공동체가 있게 될 것이다. 생명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의미는 (논문의) 다음 절에서 언급할 것이다.
5. 타자에 관한 성서적 관점
우스토르프는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 1서 3,2)를 “우리가 무엇이 될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타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W. Ustorf, op. cit., p.133.
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그는 타자를 타종교, 민족, 민중으로 제안했다. 또 그는 다원주의를 자본주의적 세계 헤게모니의 프로젝트로 비판했다. 이러한 타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선교신학은 자신을 기독교 변형의 매개자가 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타자는 마굴 (Margull) 이 지적한 것처럼 Ibid., p.131.
선교의 대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
홀렌비거는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 12)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궁극적 지식은 불가변적인 것은 아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아는 것은 미래의 일이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뿐이다. “이것은 바울의 십자가 신학을 인식의 영역에 적용시킨 것이다” W. Hollenweger, op. cit., p.94.
. 그리스도인의 복음 이해는 이미 완결된 기성품 같은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전도 (선교에도 적용 가능)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 자신의 이해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평생 지켜 가는 것이다” Ibid.,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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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 대한 이러한 성서적 해석과 기존 선교사들의 타자에 대한 이해 사이에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의 타자에 대한 이해를 연구한 폴 히버트의 결론과 일치한다. “선교에 있어서 우리 (선교사들)가 타자를 보는 태도는 말씀보다는 세상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아왔다” Paul G. Hiebert, "Critical Issues in the Social Sciences and Their Implications for Mission Studies" in Missiology, vol. XXIV, no. 1 (January, 1996) p.77.
. 호켄다이크는 참된 교회의 네 가지 표지를 제시했다. 그 중에 하나는 “이단 하나나 둘을 낳는 것이다. 복음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시키면서 참 교회는 ‘복음을 오해할’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 Wilbert R. Shenk, "Mission, Renewal, and the Future of the Church" i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vol. 21. no. 4 (October, 1997) p.158에서 재인용.
.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타자와의 만남을 위해, 상호치유와 양자 (억압자와 피억압자) 모두의 잠재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이단이 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d) 민중 선교론
이제까지 우리는 민중교회운동의 선교 (민중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통해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민중을 변화시키려 했지만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민중을 만남으로써 자신이 변하게 되었다)에 대해 해석하고자 했다. 민중 선교론의 요점은 선교의 전제조건으로서의 약함이나 연약성 그리고 선교와 영성의 밀접한 관계다. 이 두 가지는 선교사 (민중교회 목회자)의 타자와, 하나님 (the Other)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민중교회 운동, 민중 상황,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자기 이해를 갖고 민중선교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들의 예상에 어긋났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민중선교의 결과를 숙고함에 따라 그들은 민중선교에 관한 중요한 생각들을 바꿨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민중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바꿨다. 그들의 민중에 대한 이해의 폭이 확장되고 심화되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앙의 우위성을 확립했다. 민중선교는 제 3 시기에 다양화되었다. 민중 교회론도 바뀌었다. 또 민중 목회를 위한 새로운 지향도 갖게 되었다. 그들의 구원에 대한 이해도 개인적, 종말론적, 우주적 차원을 포함하게 되었다. 그들은 민중교회의 선교와 목회를 위해 영성을 새롭고도 중요한 정체성으로, 생명을 새로운 지향점으로 받아 들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자신을 변화시켰다. 한 민중교회 목회자가 자신이 개척했던 민중교회로부터 사임하고 집 없는 10대 청소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속했던 민중교회 교인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선교론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타자를 만나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난 것에 대한 선교사/신앙 공동체의 성찰이다. 민중 선교론은 민중 목회자들/민중교회가 민중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과정에서 민중 (타자)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 것에 대한 성찰이다. 선교는 선교사/신앙 공동체의 하나님의 뜻과 인간 상황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그래서 선교는 인간 상황에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려는 시도를 통해 시작된다. 그러나 선교사/신앙 공동체는 타자와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해, 타자와 하나님으로부터의 “뜻밖의” 반응에 대해 마음을 여는 개방적 존재여야 한다. 바꿔 말하면 그들의 하나님의 뜻과 인간 상황에 대한 처음의 이해는 그들이 타자와 하나님을 만나가면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선교사/신앙 공동체는 선교에 참여하면서 그들이 지녔던 정체성을 변화시켜 새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선교의 전제 조건은 약함이나 연약성이다. 영성의 중심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민중교회 목회자들의 성육신적 삶,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가난하게 그들과 함께 사는 것만으로는 민중선교가 제대로 될 수 없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십자가에 달림 (자기부인) 없이는 민중선교가 수행될 수 없다. 민중 선교론의 요점의 하나는 민중교회 목회자들의 뜻과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민중 선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교사/신앙 공동체의 변화/변형의 관점으로부터 민중 선교론의 중요한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1) 처음에는 변화의 주체가 선교사 (민중교회 목회자)였다. 민중은 그들의 민중선교의 대상이었다. 민중선교의 목표는 민중해방 (민중교회 목회자의 하나님의 뜻과 민중 상황에 대한 자기 이해)이었고 방법은 민중 의식화와 조직화였다. 2) 선교사 (민중교회 목회자)가 타자 (민중)와의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 민중으로부터의 “예상치 못한” 도전 (민중의 민중교회로의 참여 거부)을 받고 하나님의 “뜻밖의” 역사 (민중교회의 정체, 국내외 정세의 급격한 변화, 예상치 못한 때와 장소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에 직면해서 선교사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민중선교는 발전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선교사가 타자를 선교의 대상이 아니라 선교의 파트너로 만나지 않는 한 상호변형은 일어날 수 없다. 3) 이런 과정 속에서 선교사의 옛 정체성은 부인되고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다. 몰트만의 “정체성-참여 딜레마 (긴장관계)”는 다음과 같이 보완되어야 한다.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 상황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 (옛 정체성)를 갖고 선교지에 파송된다. 그들이 타자와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바꾼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변화되고 새 정체성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교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이해 (신학)에 신뢰를 두지 않으면서도 평생 하나님께 대한 신뢰 (신앙)를 실천하는 것” (홀렌비거)이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정체성 위기는 그가 선교에 참여하는 한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체성-참여” 문제는 끝없이 계속되는 과정이다. 계속되는 과정으로서의 선교는 선교사 (그리스도인)의 영성인 도상의 영성과 일치한다. 4) 선교사가 자신의 변화에 도전해야 하는 것처럼 선교론은 자기 비판으로서 또는 부메랑처럼 J. N. J. Klippies Kritzinger, "Studying Religious Communities As Agents of Change: An agenda for missiology" pp.391-2.
신앙 공동체를 변화시키거나 (Kritzinger) 기독교를 변화시키거나 (Ustorf) 신학을 변화시키는데 도전해야 한다.
5) 생명신학
WCC는 1993/4년부터 생명신학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생명신학은 진보와 평등성이라는 지구적 가치에다 ‘삶의 질’ 또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를 하나 더 첨부하게 된 것이다. 즉 사회정의와 평화와 창조의 보전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선순화 신학문집 출판위원회 편, 공명하는 생명신학 (서울: 다산 글방, 1999) p.160.
그는 피터 바이어의 분류를 따라 생명신학 유형을 생태학적 영성 중심의 생명신학, 사회 정의 중심의 생명신학, 기독교 정통 보전 중심의 생명신학으로 나눴다. 몰트만은 우주적 영성, 생명중심적인 또는 지구중심적인 사고를 제안하고 안식일법을 하나님의 생태학적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J. Moltmann, God for a Secular Society: The Public Relevance of Theology (London: SCM, 1999) pp.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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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라스무센은 신학을 아다 마리아 이사시-디아즈에 제안에 따라 서로 다른 신학들 사이에 서로의 이해를 심화시키도록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할 수 있도록 만나는 공간을 제공하는 한에서 오직 교육적인 장치로 신학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Larry Rasmussen, "Theology of Life and Ecumenical Ethics" in David G. Hallman ed. Ecotheology: Voices from South and North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5) p.112.
. 마틴 로브라는 생명신학을 협의회적 공간으로서, “서로 서로에게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상호 행동하며 서로간에 수렴의 영역과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한 상징을 식별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며, “그들의 다음성적인 생명에 대해 절규하는” 공간이며, “사람들의 이야기, 탄식, 찬양” Martin Robra, "Theology of Life-Justice, Peace, Creation: an Ecumenical Study" in The Ecumenical Review No. 48. (January, 1996) pp.29-30.
이라고 했다. 생명신학은 정의, 평화, 창조보전의 신학일 뿐만 아니라 “타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 타자는 누구인가? 김지하는 생명에 대해 강조하고 반생명적인 뿌리로서 인식론적 이원론과 소유욕을 제시한 후 생명을 되살리는데 앞장설 자가 민중과 여성이라고 했다 김지하, 밥: 김지하 이야기 모음 (서울: 분도 1984) p.141ff.
. 그러나 여기에는 제3세계 민중, 장애인, 청소년, 원주민들, 인디언들, 실업자, 노숙자, 이주 노동자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이 갖는 신학적 함의는 무엇인가?
“북미 인디언에 관한 것 중에 가장 놀라운 사실은- 최근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지만- 그들이 신정을 받으며 산 옛 이스라엘인들의 종교에 버금갈 정도로 종교 안에, 그리고 종교에 의해 관습적으로 살아왔다는 점이다.” 시튼, 인디언의 복음 (서울: 두레, 2000) p.28.
"아프리카의 경우만 보더라도 최근 20년 사이에 천오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독립’ 교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서는 친근감을 느끼지만 서구의 전통적 교회제도는 아주 낯설게 느끼고 있다. 이들은 성경의 배경을 이루는 문화와는 일체감을 느끼지만 자신들의 관점에서 볼 때 너무나 많은 면에서 ‘성경적인 삶과 믿음’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