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즘과 인간소외

에세이
단행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16-08-30 21:51
조회
5127
저자 김관석
자료유형 단행본
제목 에큐메니즘과 인간소외
간행물명 횃불이 꺼질 무렵 - 에큐메니즘과 인간소외
발행처 유림사
발행일 1974-11-30
간행물유형 단행본
범주(형식) 에세이
페이지 157 - 164 ( pages)
주제어
첨부파일: 에큐메니즘과인간소외.pdf

에큐메니즘과 인간 소외

에큐메니칼 운동과 인간 소외라는두가지 문제 사이에는 얼핏 보 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에큐메니즘〉이라고도 하는 에큐메니칼운동은일차대전을 전후해서유럽을중심으로 일어난 교회의 협동, 협의 운동이었으며,지난 반 세기 동안 에큐메니즘"! 순전히 교회 협동이나교파 상호간의 친교면에서만다루어 왔던 것 이다. 그러나〈에큐메니칼〉이란 용어가,〈복음(어?나 이라는 말이 겪어온역사와도비슷하게,역사의 진전과함께그의미하는바내 용이 달라져 왔다. 아니 그의미의 내용이 달라졌다기 보다 그 촛 점이 점점 또렷해졌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적어 도 지 난 반 세 기 동안의 세계 교회 운동(에큐메니칼)은교회의 협동 을 지향하고, 다음 답계로 일류와 협동을 큰 목적으로 삼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상하게 그 역사적 과정을 모두 서술할 수는 없 지만 개략의 줄거리를 적어 본다. 1948년 8월 22일 짜?工. 1차 총회가암스테르담에서 열렸울적 엔〈인간의 혼란과 하나님의 섭리〉라는 표어를 내 걸었다. 그 뒤 2 차 총회는 미국 에반스턴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그때의 주제는〈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와 세계의 소망〉이라고 했다. 3 차 총회가 인 도의 뉴델리^!?서 열렸었고 4차 총회가 지난해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렸다. 이 웁살라 대회의 주제는〈만물을 새롭게〉라고 되어있었 다. 에큐메니즘은 그 차원이 우주적이며 세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 다. 그러나 그것은결코과거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아니다. 서구 문명을 위주로 하는 획일적인 문화 제국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성격 이 다른 우주적인 신앙 운동이다. 그것은 또한 결코 백인 중심으로 발전한 기독교의 범 교회 운동도 아니다. 다양성을 내포한 통합을 지향하면서 어디까지나 개체의 독자성을 전제로 한 전체의 통합을 꾀하는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개체의 성격을 발전 시키면서 전체의 통합을 지향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그 속 에 잠겨 있다. 개체와 전체 사이에서 빚어지는 긴장을 어떻게 해결 하는가 하는 문제는 오늘도 세계 교회의 큰 과제로 남아 있다. 최 근 에큐메니즘에서〈양극화〉라는 용어가 새로 둥장했다. 전체 속에 있는 양극화는 먼저 진보와 보수가 한 테두리 안에서 양극화를 이 ?투고 있고, 또 지교회와 본교회 사이에도 빚어지는 현상이다. 이러 한 양극화에서 에큐메니즘이 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곧〈새 로운 인간성〉이라는 문제인 것이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 어떤 공통된 생활 스타일을 전제로 한다. 크리스천다운 크리스천이란무엇인가? ‘그러나 어떤 획일적인 생활 규범으로 기독교적이라 말하기엔 크리스천의 생활 양식이 너무나 다 양하다. 각기 다른 문화전통과정치, 경제적 기구 속에서 사는 크 리스천의 생활도 제각기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이란 관형사가 붙은 이상, 어떠한 점에서 공통적 인 생활 양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반문할 수 밖에 없다. 지 난번 웁살라 총회 제 6분과위원회에서는바로이 문제를다루었다. 그리하여 참된 크리스천의 생활 양상은 문화, 정치,전통의 차별을 넘어서 요약될 수 있다면,그것은〈남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 고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크리스천이 말하는〈새로운 인간성〉의 문제를 다 룰 수 있는 단서가 생겨진 것아다.

새로운 양상
이웃에 대해 깊은 관심으로 배려를 한다는 데서 모든 시민 의식 이나 국가 공동체에 대한 윤리 문제가 생겨지게 되는 것이다. 과거 의 문학, 철학,심지어는 신학에서 우세했던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 발전과 함께 이러한 개인 위주의 윤리는 추 상적인 것이며 참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 되게 되었다. 인간은어디까지나 인간 관계의 양상에서 파악해야만 하는 것이다.〈관계〉를 떠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그대 의 관계 안에서만 나라는 존재가 구체화되고 인격화되기 때문이다. 그대가 없는 나, 또는 나 없는 그대란 구체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 다는 말이다.

⑵ 인간 소외
인간의 소외 문제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것이며, 이 것이사회학적으로나심리학적으로다루어지는 것 임 을 다 알 고 있 다. 산업 사회의 발달과 아울러 기계 문명의 영향 때문에 비인간화 라는 문제가 서구 사회에서는 인간학의 근본 과제로 되어 왔던 것이 다. 그러나 이 인간 소외는 다만 기독교적인 전통과 기계 문명과의 상충에서 이루어진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서구 산업주의로 근대화를 지향하는 신생 국가의 사회 문제로도 나타날 징후가 보인다. 특히 기독교적 전통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의 역사를 가진 아시아 국가에 있어서 인간 소외 문제가 어떠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서구의 사회 심리학이 나 문학 또는 철학에서 다룬 인간 소외의 양상을 그대로 우리의 현 실에 적용시킨다는 일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낳게 될 것이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인 에릭 프럼은 그의 저서??XI또 3(1加 3001- 하7〉가운데서,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회 성격과 인간의 개 성, 특히 소외 문제를 자세히 다루었다. 서구사회에서 17세기부 터 대두된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이에 따르는 인간성의 변화를 사회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1년3 1!1이" 11X018610 라는 저서에서는 휴머니스틱한 윤리관에서 인간 소외 문제를 다루었다. 인간은 먼저 자신에 대한 관계와 그가 살고 있는 사회 공동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소외의 경험을 가지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을 통한 이윤 추구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간성마저도 쓸모 있는 상품 가치로 환산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이용 가치에 따라 이용 하는 데서 인간 소외의 현상이 나타난다. 소외란 인간이 자아를 잃 어버리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소외를 흔히〈남의 것이 됨〉이라고 한다. 자신을 어떤 사물이나 자아 아닌 어떤 힘에 굴종 시키는 생활이 바로 인간 소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외된 인 간에게는 자아 충실이 없고 언제나 자기를 빼앗아 간 사물이나 힘 의 노예가 되어서 질질 끌려 가기만 한다. 불안, 절망, 좌절, 고독 들은 인간 소외의 징조인 것이다. 에릭 프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상업주의, 금전 만능, 매스콤, 소비의 생활 속에서 소외를 경험한다고 한다. 특별히 인간 이 가진 존엄성과 평둥마저 상품 가치로 교환된다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인격 형성을 위해야 할 교육마저 소외되어서,인간을 위 한 교육이 아니라, 취직과 출세의 자본으로 변하여 학생은 교육의 노예가 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현상은 서구 사회의 공통된 징조로 나타나 있고, 스튜던트 파워나 히피의 항거는 이렇게 거창한 인간 소외를 낳는 메카니즘에 대한 항거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복지를 위 해서 세워진 정치 제도(민주주의)나 교육 시설 또는 경제 구조가 결국 인간성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성을 구속하며 때에 따라서는 마력적이며 비인간적인 결과를 불러 오고 있다는 데에 대 하여 서구의 젊은 세대가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인간성을 찾는 일이 단순히 에큐메니즘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외침임을 알아 야 할 것이다. 인간의 소외됨을 극복하고 참으로 충족스러운 인간 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인간 구원의 진상이다. 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외치는 소리가 오늘의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동요의 근원인 것이다. 구원의 희구는 소외의 극복을 희구하는 것 으로 해석되어야한다. 그러나 참된 구원의’성취는 이 인간 소외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몇확하게 제시하는 데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가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는 인간 소외 문제를 너무나 서구 사회의 배경에만 비추어 다루어 왔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물질 기계 문명에서 생겨지는 소외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인간 소외의 근원을 따진 다면, 폴 틸리히의 말과 같이, 구약의 예언자 시대까지 거슬러 올 라가야 한다. 구약의 예언자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한결같이 경 고하고 권면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제외한 다른 우상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틸리히의 말대로 한다난 예언자가 우상 숭배를 금한 것이 바로 인간 소외의 극복이라는 것이다. 우상은 돌이나 나 무를 깎아서 만든 물건들 뿐만은 아나다. 현대인의 우상은 에릭프 럼의 말대로 한다면 현대인의 인간성을 박탈하는 모든 사물, 제도 권력, 이념들이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이러한 점을 고찰한다면 인간 소의를 어떻게 이 해할 것인가 ? 우리에게는 전통적인 사회 규범이 있다. 그것은 유 교적인 규범이며 이 규범이 때로는 권위주의 또는 형식주의 같은 면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유교적인 규범을 어떤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게 지배할 때 인간성을 박탈하는 소외의 현상을 빚어낸다. 예를 든다면 권위주의가 사회,가정, 국가들의 질서를 세우고 유 지하는 데는필요한것이지만, 그권위주의가너무지나칠 때에 는 인간을 한갖 굴종만을 하는 종으로 여기는 폐단을 가져 오게 된 다. 인간 생활의 전반을 질서있게 하기 위해서 세운 전통적 유교의 규범이 오히려 인간을 속박하고 노예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 왔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말할 수 있는 인간 소외의 특징인 것이다. 우 리는아직도서구사회처럼 기독교적인 전통이나자본주의, 상업, 공업주의들의 발달을 보지 못했으나 우리 나름대로의 사회 구조와 문화 전통 속에서 인간 소외를 경험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 근대화에 따르는'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생활 태도 와 서구적인 인간 소외의 상충 또는 융화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되 는 것이다. 그러나 에큐메니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한국적인 인간 소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대한 문 제로 나타난다. 종래의 우리 신앙,태도 속에서 양극화의 양상이 어떻게 발생했으며 그것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분열, 즉 비생산 적인 분열로 끝마치고 말았는가를 좀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한 개인으로서의 크리스천이나 교파가 그 인격적인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분열을 겪어 나아가는 심리적 사회적인 여건이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인 여건에 태도와 응 답을 표시한 우리의 모습을 자세히 분석하고 해석을 내려 볼 필요 가 있다고 본다. 혼히 우리는〈통합&소비〉이라는 말을〈공서적 인 것 (와!&!〉으로 해석하는 실수를 저질러 왔다. 통합이란 다양 성,차이성들을 내포하는 유니티이며, 그런 반면에 공서적인 존재란 나와 그대의 차별을 말살해 버리고 하나가 되는 형태를 말한다. 한 인격이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인격적인 통합을 형성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가족, 직장,그밖에 어떠한 집단 안에 서든 먼저 공서적인〈하나〉를 요청하게 되고, 여기서는 인격적인 독 자성이 용납되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소외의 경험을 절망적인 상 황 속에서 겪게 된다. 이 현상은 한 개인의 생활 속에서만 볼 수 있 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 전반에 걸쳐서 늘 목작할 수 있놓 것 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에큐메니즘에서 말하는〈새로운 인간성 (반V 애:!바)〉이라는 말은 오늘의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필연적으로 대 두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표시하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구 조나 정신 자체가 다양성을내포^!:전체적 통합성을 지향하고 있다. 어느 소수자의 의견도 다수의 것에, 못지 않은 비중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큐메니칼 운동에서는 최근〈오늘의 구원〉이라는 주제를 내 걸고 새 인간상의 모습, 곧 오늘의 현실 속에서 구원을 희구하는새 인간의 모습을찾아내려고애쓰고있다. 〈오늘의 구 원〉은 어디까지나 현실 속에 사는 크리스천과 온 인류의 구원을 말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그 본래 적인 인간상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크리스천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계기는 바로 전 인간의 회복이 때, 아니 그회복 을위해서 안간힘을기울이는 모습에서만 찾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에큐메니즘과 현대인의 소외의 관계를 찾아 낼 수 있으며 또 한국에서 앞으로 다가올 인간 소외와 교회의 선교와의 관계점을 모색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