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쿨만의 기독론

에세이
단행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16-08-30 21:56
조회
5753
저자 김관석
자료유형 논문
제목 오스카 쿨만의 기독론
간행물명 횃불이 꺼질 무렵 - 오스카 쿨만의 기독론
발행처 유림사
발행일 1974-11-30
간행물유형 단행본
범주(형식) ?에세이
페이지 172 - 178 ( pages)
주제어 오스카 쿨만 유대교 기독교
첨부파일: 오스카쿨만의기독론.pdf

오스카 쿨만의 기독론

현대 신학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면 누구든지 이 신학이라는 영역 가운데서도 어떤 특수한 문제를 둘러 싸고 신학자 사이에 견해의 차이가 드러나 있음을 눈치 차리 게,될 것이다. 이런 치열한 논생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 되는 것은 언제나〈기독론〉이었다. 이〈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제에 대 하여 인간학적인 어프로치를 하는 신학자나 심리학적 흑은 형이상 학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신학자들이 있는데 저들의 신학 사상 은 역시 그 사고 방식과 또한 자료로 사용하는 텍스트에 많이 좌우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대 신학에 있어서는 이 기독론에 대 해서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혼란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것은〈역사적 예 수〉를 케 류그마적 인〈신 앙의 그리 스도〉와 대 차적 인 것 으로 제 시 하는 데서 그러한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 자들은 다 한결 같이 예수의 일생을 사실대로의 역사로 씀으로 말미 암아 케류그마적인 껍데기를 없이할 수는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현대의 신약 신학자들은 복음서가 구전과 전통을 중심으로 하여 계승되어진 것임을 공통된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역사적인 사건을 계통있게 순서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이야기나 비유 같은 것을 그대로 엮어 놓은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는 말이다. 루돌프‘불트만은 양식학적인 성서 비판을 철저하게 주장한 신학 자여서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워낙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신앙이지,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역사적 예수〉의 탐구 ^ 아무런 가치가 없는 부질없는 노력이라고 하였다. 그가 한 말 가&데 유명한 한 귀절을 인용하면 "도시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그 리스도교적인 케류그마, 즉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 스도를 선포한다는 케류그마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선포는 초대 교회의 케류그마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결코 역사적 예수의'메시지 가운데 선포된 것은 아니寸”라고 하였다(불트만 지 음;신약신학). 이 말의 뜻은 결국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의 부활 이후의 케류그마에서 시작된다는것이요,부활 이전의 예수에 대한 메시지와부활이후의 케류그마 사이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극 단의 양식 비판주의자들은 예수 자신의 말씀과 부활 이후의 케류그 마와의 연결마저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스카 클만이 지적한 바 대로 양식 비판의 결과 자체가 역사적 예수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문제가 양식 비판 때문에 매몰된 것이 아니라 역사성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하는기회를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만은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0) 바로 복음의 전통을 만든 모체라고 하는 일이 반드시 역사성에 대한 완 전한 회의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물만이 여기서 재삼 강조한 것은 부활 이후의 케류그마와 예수 자신이 하신 말씀과의 연결성의 구조를 모색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복음 전통을 복음을 잘 검토함으로써 성서 저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부분과 예수 자신이 하신 말씀의 부분을 잘 갈라 놓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하 였다. 이제 이 방법이 자연히〈예수의 자기 의식〉의 문제까지 유도 되는 것이며 이 자기 의식이라는 것이 역사적 예수와 초대 교회 신 앙과의 연속성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가장중요한자리를차지하게 되 는것이다. 이〈예수의 자기의식〉문제의 근거가 되는성서의 귀절온 마가 10장 45절과 마가8장 31절인데 여기서 예수는 자기를〈인4〉 (뇨!!!했!네흑은 〈하나님의 고난의 종〉(^닌 ^311방6비이라고 불렀다. 〈인자〉라는 말의 근원을 따진다면 유대교의 묵시 문학에까지 소 급하여야한다. 그런데 후기 유대교에 이르러서는〈인자〉가 숨은 메시야로서 나타나 이 세상을 심판하고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으로 소개되어졌다. 이 묵시 사상은 그 당시의 밀교적인 유대교에 강한 지지자를 가졌으나 람비 문학에 나타난 유대 국가주희적인 메시야 관념에는 별로 큰 영향을 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즉 밀교적인 후기 유대교는 이러한 국가적 유대교의 현세주의에 따르는 메시야 사상 을〈인자〉라고 부르는 초월적인 존재로 전환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원인간〉이란 유대교 사상의 창조물이 아니다. 그 당시 중동 근방 의 여러 나라에 이러한 원인간 사상이 떠돌았다. 그러나 유대교의 위대한 예언자들은 이러한 다른 종교와의 관련된 점을용서 없이 힐 난하였다. 그러나 이 원인간 사상이 다니엘서나 다른 묵시 문학에 나타날 무렵에는 하나의 종말론적인 인자 사상으로 변질되어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교의 종말론적인 인자 사상에는 수육 (뇨대대낸에)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하늘에 존재하는 인간(!는때태뇨 ?3!!)은 반드시 인간 세계에 뒤섞이는 인간이 아니더 라도 무관한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종말론에 의하면 인자가 장차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 재림할 때에도 결코 인간 세계에 완전 히 자기를 나타내실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가 과연 자신을 인자라는 말로 표현하였는가 하는 문 제는 신학이라는 학문에' 있어서는 가장 격렬한 논쟁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양식학파에 속하는 신학자들은 으례 이 인자라는 기독론 적인 칭호가 예수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야)3318103 V하?)이 아니 라, 복음을 전하는 사도나 제자들이 처음 사용한 ^호라고 주장하 여 왔다.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이 예수로 하여금 자신에게 견해에 말씀하게끔 할 때 저희가 이 칭 호를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만일 이러 한 복음 전파자들이 사용한 칭호가 정당한 것이었다면 자연히 그 말의 근원은 예수 자신 의 말씀에서 찾아낼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이 학자들은 주장한다. 예수께서 인자와 고난의 종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마가8장 31 절과 10장 45절에서 사용하였지만 후기 유대교에서는 메시야와 하 나님의 고난과 죽음의 종이라는두가지 개념을 결부시킨 것을 찾아 낼 수가 없다. 유대교 학자들은 유대 나라의 국가적 종교인 유대교 가운데는 메시야가 인류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는다는 관념이 전혀 없으며 어떠한 묵시 문학을 찾아 보아도 인자가 인간의 죄를 속죄 하기 위하여 죽는다는 귀절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후기 유대교에 있어서 메시야 기대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메 시야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정치적,국가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주로 묵시주의자들의 그룹에서 일어난 것이며, 인자 사상 도 여기에서 비로소 찾아볼 수가 있다. 옛날 조상때 유대 사람들이 품고 있던 국가적인 메시야는 이 후자에 있어서 인자라는 개념하고 가끔 결부되어져 있음을 본다. 그러면서도 우주적 초월적인 인자 가 장차 이 세상에 오셔서 새 시대와 심판의 날을 제정할 것이라 는 점을 늘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인자의 개념은 에녹서, 에즈라 서,그리고 그 밖에 묵시 문학 가운데 자주 나오는데 이 문학은 당 시 묵시적이며,종말론적인 경향이 농후하였던 갈릴리 지방에서 널 리 읽혀졌던 것이다.

예수께서 자기를 인자라고 불렀을 때 그 당시의 유대。민족들이 지니고 있었던 국가적, 정치적인 메시야 사상을 거절하는 의미에서 하셨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그의 이러한 태도는 유대인들의 인자 사상과 메시야사상과는 전혀 다른 동떨어진 것이었다. 최근에 중동의 원시 종교들을 연구한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그에 의하면 인 자 사상은 첫째로 그 당시의 동양적인 원인간 사상과 둘째로는 종 말론적인 구주 사상의 결합으로써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개념 이 유대교에 침입하여서 유대교의 독특한 메시야 사상하고 융합이 되었다. 그리하여 인자와메시야를 동일시하게 됨에 따.라메시야 의 종말론적인 성격을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교에 있어서는 인자사상은 순수한 종말론적인 것이되고 말았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현대 신약 신학에 있어서는 과연 예수가 자 기를 인자라고 불렀을까 하는 문제가 가장 중대한 신학적인 논쟁거 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예수는 인자라는 칭호를 대단히 애매하게 사용하셨고 메시 야적인 칭호를 사용하시는 일을 회피하셨던 것이다. 왜 냐 하면 유대인의 메시 야는 결국 국가적이며 정치적 인 인물이어 야 하며,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던 때는 로마제국이 혁명을 일으키 려고 하는 눈치를 차리고 재빠르게 탄압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클만은 인자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말한 것이 결코 사도들이 아니 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즉제자들이나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 은 예수에게 대한 저희들의 대화 가운데서는 절대로 인자라는 칭 호를 쓰지 않았고 다만 예수 자신의 입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전할 때에,인자라는 칭호를 예수께서 사용하신 것으로 전하였다는 기이 한 사실을 클만은 지적하면서,다만예수께서 먼저 인자라는 칭호를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했던 사실을 저들이 기억하여 두었다 가, 뒷날에 이를 전달하였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 서는〈인자〉와〈수난의 종〉이라는 두 가지 대립되는 개념을 자신의 의식 가운데서 결합시켜버렸고 그의 교훈과 생애를 통해서 그 결합 을 표현하셨다고 하였다.

그런고로 석의학이나 신학적인 태도에도 여러 가지 견해의 차이 가 있지만 총괄적으로 따져 말한다면 이 기독론적인 칭호(뇨11133113와 6156(1 ?!소!배!!)에 대한 해석과 나아가서은 부활 이전의 역사적 예수 와 부활 이후의 케류그마의 단절을 주장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연속 성을 주장하느냐 하는 두 가지 갈래로 크게 나뉘어진다. 오스카 클만의 저서〈신약 성서의 기독론〉은 이러한 기독론적인 칭호를 다룬 책으로서 가장 좋은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말하기 를〈기독론적 칭호〉문제가 신약 성서에 있어서는 예수의 인격과,생 애에 관한 여러 가지 착잡한 의문을 풀어주며 교리사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어져 있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클만의 방법론은 양식학적 방법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그는 현상학적 인 입장에서 시작하여 신약 성서에 나오는 칭호들을 하나하나 따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 칭호가 결국 예수의 인격의 유익한 점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물론 신약 성서에 나오는 칭호를 유대교나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저서가 이렇게. 현대 신학에 있어서 널리 알려진 이유는 아름답게 조화된 그의 신 학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신약 신학에 대한 저서를 쓴 신학자들 이 많지만, 대개가 심오한 방법론적인 관찰을 가지고 신약 성서적 인 사고 방식으로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물만은 이러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는 설명하기 를 초대 교회의 크리스천이나 현대의 크리스천은 다 같이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을 다만 예수의 지상 생활과 죽음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기가 대단히 곤란하다고 하였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요한 복음 5 장에서부터 8장까지에 나타난 기독론적인 개념 밖에는 다른 방법론 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물만의 말에 의하면 예수의 제일 처음 칭호는〈예언자〉라는 것이 었다고 힘:다. 그러나 이 칭호는 얼마 가지 않아서 없어지고 말았 다. 예언자라는 칭호는 예수를 다만 설교자로서만 나타내지만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로서의 성격을 나타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에비온 파와 더불어 소멸되고 말았다. 다음에 물만은〈수난의 종〉과〈인 자〉라는 칭호에 대해서 대단히 세밀한 연구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에〈주?冗10피〉의 칭호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이 문 제에 관해서도 그는 불트만하고 입장을 달리한다. 불트만은 팔레스 티나 교회와 헬레니즘의 그리스도교 사이에는넘을 수 없는틈바구니 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클만은 아람어의 마리 例3비 라는 말과희 랍어의주 (뜨;신에 사이에는 어떤 언어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근거를 믿고 있다. 그런데 이 선03?]닌31?의 칭호는 이미 팔레스티나 교회 에 있었던 마라나다(보3대1폐11이 기도문에 나타나 있었다. 클만은 그의 기독론을 요약하여 신약 신학에는다만 기능적 기독론 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단언하였다. 그는 결론 에서 모든 기독론이 구속사요, 모든 구속사는 기독론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