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국화와 녹 쓴 칼

에세이
단행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16-08-27 00:10
조회
4385
저자 김관석
자료유형 논문
제목 시든 국화와 녹 쓴 칼
간행물명 횃불이 꺼질 무렵 - 시든 국화와 녹 쓴 칼
발행처 유림사
발행일 1974-11-30
간행물유형 단행본
범주(형식) 에세이
페이지 25 - 35 ( pages)
주제어 국화와 칼 한국관 일본인의 기질 윤리 죄악감
첨부파일: 시든국화와녹쓴칼.pdf

시들은 국화와 녹쓴 칼

⑴ 국화와 칼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인류학 교수인 룻 베 네 딕 트 여사는 이차대전 중, 미군점령 지구의 정보국을 위해 활약하던 중 에, 일본 문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1946년에〈국화와 칼〉이라 는 제목을 붙여 출판하였다. 인본인의 일상 생활과 풍습을 미국 사 탐으로서 관찰하여 서구적인 가치관과 견주어 가면서 묘사한 것으 로 우리에게는 심상한 이4기지만 흥미있는 해석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베네딕트 여사는 이 책의 서두에서 일본인의 모순 된 성격을 국화와 칼로 나타냈던 것이다. 일본인은 침략적이면서도 평화를 사랑하며 무례하면서도 친절한 국민이다. 용감하면서도 비 겁하고, 충실하면서도 배신을 잘하는 국민이다. 남들이 자기를 어 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몹시 신경을 쓰는 국민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성격이 때로는 표리부동이라는 인상을 남에게 주며, 믿을 수 없는 국민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1 태평양 전쟁 중에, 그러니까 1944 년 2월에는 남태평양 전선에서 미국은 거의 결정적인 반격 태세로 들어가게 됨을 계기로 하여 일 본국내에서도〈비상선언;)을 선포하게 되어 정국은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했다. 도오죠 전시 내각은 거의 파탄에 직면하게 되 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열세를얼버무려 버리기에 분주했다.〈수 에는 훈련으로,강철에는 육탄으로 대결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 었던 것이다. 물질에 대해 징신으로써,양에 대해서는 질로써 이긴다고 우겨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태평양 전역에서 차육차욱 패전 을 거듭할 때마다,모든 일은 이미 예기하였으며 그러한사태에 "만 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버티곤 하였다. 사이 판 섬을 빼앗길 때에도 일본 방송은 거듭 강조하기를 “미국이 키 스카 섬을 점령함으로써 일본 본토가 미국 공군의 폭격권내에 들어 가게 되었지만 우리는 사태를 미리 알고 만반의 대비를 강구하여 놓았다”고 억지를 부렸다. 이것은 전쟁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심 산에서 하는 말이었지만,일본인의 독특한 억지라고 하겠다. 이 억 지의 뒤에는 지들의 낙관주의가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 동안 에 저들이 가지고 있었던 소극적인 낙관주의가 오늘에 와서는 적극 적인 낙관주의로 변모하였다. 이율배반적인 국민성에다가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원론적인 사변에서 가지게 되었던 바 그릇된 전쟁관 을 정리도 못한 채 일본인은 지금 정반대의 극으로 줄달음을 치고 있다. 전쟁 중에는 맹목적으로 정신 위주를 부르짖다가 지금에 와 ~ 서는 속물주의자의 원숭이 흉내를 내는 격이 되고 말았다. 〈레저〉 니〈바캉스〉니 하며 외래어의 무차별 남용,육체 문학, 추리 문학 이 잇달아 범람하여 국화를 무색케 하는 백화난만을 이루고 있디-. 이 러 한 속물주의 적 인 문화 생 활을 즐기 면 서 저 들은 과거 를 망각하 려고 하고 있으며〈시대에의 부채〉를 얼버무려 버리려고 애쓴다. 그러므로 저들은〈과거에의 집착〉을 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태도로 나온다. 저들은 과거의 망각 뿐만 아니라 과거를 온전히 상실하여 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복고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마저 겉 치레의 복고조이다. 베네딕트 여사도 지적하였듯이 전쟁 등안 일본인들은 승리만 있지,패배란 있을 수 없고, 항복온 곧 죽음율 의미한다고 곧잘 강 조하였지만,전쟁이 끝난 순간 저들의 태도가 상상외로 쉽게 누그 러지고 연합군을 환영하는 모양을 보고 은세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승리 아니면 죽음〉이라는 구호 밑에서 핏대를 올리던 일 본 군부의 우격다짐을 연합군은 액면대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도 시 일본인들의 침략과 항복에 대한 생각은 서구 여러 나라에서 생 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저들의 침략은 열강국과 동등한 자리와 영 예를 획득하려는데 명분을 세운다. 그러한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면 또 다른 방안을 연구하여 내려고 할 뿐이다. 그러기에 저들은 미국 에 항복을 하면서도 미국을 자손 만대의 원수로 생각하지는 않았 다. 오히려 항복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잃었던 명분을 다시 찾는가 를 모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 사팔뜨기의 한국관
지난 2월호〈중앙 공론〉에는 가지하라(梶原季之)라는 일본 작가 가 1963년에 한국을 방문하고견문한 감상문이 실려 있었다. 그는 한국은 1 할의 부유층과 9할의 빈민으로 되어 있으며, 위와 아래 가 있지만 중간이 없는 나라라고 하였다. 한국에는 밤마다 반도 호 텔의 스카이 라운지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소수층이 있는가하면,종 르 뒷골목을 누비면서 싸구려 막걸리 몇 잔에 만족하는 서민충이 태반이다. 소수의 워커 힐 족속이 있는 반면에 사창굴에 넘나드는 충올 비교하면, 한국에는 중간충이란 없다는 것이다. 김장을 담그 지 못하는 가정 주부들의 불평, 학생층의 걸망적인 기분을 반영시 키는 신학생 살인 사건, 대학을 졸업한청소부 이야기, 한국 기생들 에큐메니컬 아카이브 www.jpic.org 28’ 시들은 국화와 녹 쓴 칼 은 백만원 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는 일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 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이다. 그가 인용한 한국의 어떤 문화 민(?)의 이야기 "우리는 말하자면 턱걸이 세대에 속하고 있오. 겨 우 철봉 위에 턱을 걸쳐 놓고 저 푸른 하늘을 쳐다 보고 있지만 이 이상 기력아 모자라 더 오를 수가 없오 ! ” 梶原와 함께 한국에 왔던 大宅壯一이라는 평론가는 그동안 일본 〈?經〉신문에다〈淡밥 流机즈〉라는 제목으로 연재 역사 비화를 쓰 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관리들의 착취를 모면하기 위해 부자들도 가난한 척하고 산다. 한국에서 보고 듣는 일은 만사가 구역질 감 이라는 ?湘 軍之佐의 글이 인용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오줌으 로 얼굴을 씻는다? 이런 기사는 일본이 한국을 합병하던 시대의 비화를 묘사한 것들 이다. ?宅이나 梶原는 다 같이 1963년에 한국을 방문했던 사람들 이다. 저들이 한일회담이 피치를 올리고 있는 이 시기를 택하여서 이러한 글올 발표하는 타이밍에는 다소 야속한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 적어도 梶原는 한국 사회를 1할과 9할이란 두 계충으로 나누어 서 중간충이 없다고 단언하였지만, 과연 그의 시찰이 어느정도 맞 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빈부의 차이는 어느 나라에도 있는 것이며, 또한 그 나라의 인구와 국민 소득에 따라 그 나라 독특한 중간 계 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면, 한국에는 중간이 없다고 말한 梶原는 분명히 사팔뜨기 관찰을 한 것이다. 말하자면 양쪽 눈으로써 중간 을 보지 못하고 양극에다 시선을 던져 중심을 잡지 못하는 사팔뜨 기 환자라는 말이다.한국은 일본보다 가난한 나라임에 틀람없지만, 에큐메니컬 아카이브 www.jpic.org 시들은 국화와 녹 쓴 칼 29 그렇다고 한국에는 중간이 없다고 단언할 것은 못된다. 지난 2월,나는 도오교 긴자 동급 호텔 라운지에서 일본의 평화 운동을 하는 청년을 만났다. 그는 분명히 알본 사회당을 지지하는 듯이 보였다. 이 청년은 진정으로 한국이 일본 재벌들에 의하여 희 롱 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걱정을하는것이었다. 자본가들의 독점욕 이 군벌의 침략에 못지 않게 무섭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는 한 국문제에 대하여 북한과의 관계에 주밀한신경을 쓰면서 말하는 것 이었다. 여기서 나는 또 사팔뜨기 이상주의자와 마주선 느낌을 가 졌다, 이 청년은 양심적인 크리스천이었지만, 남한의 문제의 핵심 을 파악하지 못하고 남쪽과 북쪽에 동시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청년이나 梶原같은 사람은 양쪽을 동시에 보려고 하지 만, 사실은 양쪽을 다 보지 못하는 결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 가지금 3.8선 바로 턱 밑에서 몸에 스며드는 리얼한 긴박감,불안 둥을 경험하고 있는데 비해서 저들은 너무나 맥 빠지고 안이한 어리 광을 부리고 있다. 바로 일본인들의 이러한 사팔뜨기 관찰이나 정 책은〈일본다운 것〉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에 미국 의분명을〈코카 콜라〉문명이라고 비웃던 일본인 자신들이,이제는 〈코카 콜라〉아닌〈다꾸앙〉문명을 가지고 안일 일변도의 물질 문명 에 탐닉한다면,이것은 역사의 파라독스라고 웃어 넘기기에는 너무 나도 리얼한 교훈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일본에 머무는 동안에 한국에서 느끼는 것과는 성질이 다른불안을 느끼게 된다. 일본에서 느끼는 불안은 과연 앞으로 이 꾀바른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불안이다.

여) 일본인의 기질 베네딕트 여사는〈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의 의무감과 은혜를 입 는데 대한 저들의 독특한 사고를 분석하였다. 워낙 일본인은〈은 혜〉를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지 동등하거나 자기 보다 하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받아서는 아니되는 것 으로 생각한다. 그런 경우에는〈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것을 하나 의 빚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은혜〉를 언제나 기억하는 사람 을〈충직〉이란 말로 표현한다. 일본인들이 충직의 표본으로, 어린 아이들에게〈忠犬 八千公〉의 이야기를 가르쳐 준다. 자기를 길러준 주인을 후에 10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전차 정류장에 마중나가 서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린다는 줄거리의 이야기이다. 저들 의〈은혜〉’와〈충직〉에 대한 이미지에는 언제나 이러한 듬직한 개 의 이야기가 뒤 따른다. 종전 후 일본이 항복한 뒤에도 남태평양 외딴섬에서 천황에의 충성 때문에 연합군에 항복을 거부하던 패 잔병들의 심리에는 이런〈忠犬 八千公〉의 교훈이 깊이 아로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를 일관하여 내려온 장군과 무사 정치, 그리고 황실을 중심으로 하는 화족 정치 등이 예로부터 국민들에 게 이러한〈은혜〉와〈충직〉에 대한 도의관념을 전통적으로 주입시 켰고, 또한 이러한 히에라르키가 지속되는 한 이 전통에 충성을 다 하는 일을 미덕이라고 간주하여 왔던 것이다. 메이지 문학의 거장 나쯔메 소오세끼의 작품〈보짱〉을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동경에서 태어나서 시골 학교 교사로 취임한다.같 은 동료 교사를 멸시하며 상종을 하지 않다가 그 중 한 교 사 가 냉수 함 컵을 1전 5리를 주고 사준 겼이 인연이 되어 서로 친근하게 직 에큐메니컬 아카이브 www.jpic.org 시들은 국화와 녹 쓴 칼 31 내게 된다.〈보쨩〉은 이 친구룔 〈가시 다람쥐〉라는 애칭을 붙여 사귀다가 하루는 딴 동료 교사가 이〈가시 다람쥐〉를 중상하는 말 을 듣게 된다. 이 중상의 말을 그대로 들은 그는 대개 다음과 같이 혼자서 생각한다. "냉수 한 컵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그런 친 구한테서〈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나의 명예를 해치는 일이다. 1전 5리의〈은혜〉를 받고 이대로 평안히 죽을 수가 없어. 어떤 친구 의〈은혜〉를 아무 말 없이 받았다는 것 은 그 친 구 를 점잖게대접하 기 위해서 한 것이고, 그 1전 5리를 내가 묻지 않고 그친구의〈은 헤〉를 입었다는 것은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 해서였다. 내게는명예나 지위 같은 것은 없으되,한 독립적인 인간 임에 틀림없고,이 독립적인 인간인 내가 그 친구의〈은혜〉를입는 다는 일은 몇백만원보다 더 값어치가 있는 일이야,그러니 내가 고 망다고하는 인사한 마디도 그만큼 비싼 것이라는 말이야’’ 냉수 한 컵의 대접에 대한 집착을 둘러싼 이런 이야기는 비단 이 소설의 줄거리일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이 결벽성에 대해서 품고 있는 노이 로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결벽에의 과민과 집착에서 유래되 는 부자연스러운 저들의 친절에서 우리는 언제나 저들을 대한 때에 일종의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이 긴장감은 일본인 특유의 의리,은 헤를 바탕으로 하는 결산 감각 때문일 것이다. 옛날 일본의 무사도 에서 원수를 갚는〈仇討〉를 도의적인 것으로 정당화 했었다.이〈仇 討〉는일종의 정의감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며, 마치 수학의 을바른 해답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新渡部稻造는 그의〈일본의 생활과 사상〉에서 지적하였다. 이 결산 감각 때문에 일본인들은 곧잘〈할 복〉이나〈자살〉로써 불명예를 씻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까지는 일본인들의 사고 방식을 전형적으로 표현해 주는 #으로서 신 화적인 전통으로 여기는〈쥬수싱구라〉의 이야기에서 이런 점을 찾 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쇼) 윤리 죄악감 일본인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저들의 죄 의식에 대한 문제이다. 일본인들의 삶의 이해에 있어서 인간의 근본 악을 인정치 않는다. 죠지 산솜이 지적한대로 일반적으로〈악의 문제와 대결〉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에게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거나 부도덕을 묵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저들은 인간이 나면서부터 보검과 같이 날카롭고 빛나는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그 것을 늘 닦아서 빛내치 않으면 녹이 쓸게 된다는 직이다.〈녹쓴 영 혼〉은〈녹쓴 칼〉못지 않게 나쁘다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의 품격을 보검을 닦듯이 연마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 사상 가운데 이러한 근본 악이나 죄 의식이 없다는 것은 물론 서구 사상, 특히 그리스도교의 히브리적인 죄 사상과 비교하면서 하는말 이다. 일본의 에도 시대로부터 전통 사상와 바탕을 이루고 있던 유교는 역사적 상대주의의 도전을 받게 되었으며 막부제의 붕괴와 아울러 19세기 '후반의 자연 과학적인 진화론에 해소당하는 특수한 역사적인 상황 속에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영원한 신적인 존 재에 비추어서 사유하는 터전이 약하였기 때문에 역사적인 진화 사 상에 대한 저항이 무력하여서 평면적인 이행은 있으나 가치관이 역 사적으로 쌓여진다는 일이 드물다는 점은 丸山眞男이?〈일본의 사 상〉에서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서구문화의 변중범적인 종합이나 지양을 꾀하였지만 거기에는 사회적인 문맥이 없이 다만 도식화된 역사적인 진화 사상이 정치적인 반동 세력과 결합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만일 일본이 서구 선진 국가의 기술 문명 을 받아 들이는 만큼 적극적으로 서구의 정신 문화의 근본 문제를 주체적으로 받아 들였다면 앞에 쓴 바와 같은죄 의식의 박약이라는 말은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정신적인 상황에 대하여 전적으로 부정적인 면 에서만 단언을 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베네딕트 여사는 앞의 저서에서 지적하였듯이〈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상황 현실주의 (하1- 1181101131 묘6&1131비 는 이러한 평면적이며 무단층적인 사유 방식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밝은 면이다. 이러한 실예로 일본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長州薩摩 사건을 들 수가 있다. 1862년에 영국인로 버트슨이 사쯔마에서 일본인들에게 피살당하자 영국 해군아가고시 마를 폭격하였다. 일본군은 포르투갈의 화기를 모방한 무기를 가지 고 있어서 영국 해군에 끝까지 대항하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항복한 일본군은 영국 해군에 원한을 품고 복수하- 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전보다 두터운 친선 관계를 그 사건을 계기 로 하여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사건 뿐만 아니 라 일본인들의 일체 생활에서도 지나치게 자기 노출적이며 뻔뻔스 러울 정도로〈단도직입〉적인 윤리관을 엿볼 수가 있다. 일본인의 〈상황 현실주의〉를 얼핏 생각하면 저들의 윤리적인〈의리도〉와는 서로 상반되는 것 같으나’ 사실은 그 의리도라는 것도 현실주의 의 테두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은 위에 말한 薩摩 長州 사 건을 보아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급격한 근대화와 서구 문명의 추종온 이러한 저들의 현실주의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근대화에 따라서 전통적인 가치 도착이 젊은 인텔리 충에서 조금씩 이루어져 가고.있다. 즉 옛날부터외 계보적인 히에타르키를 뒷받침하는 일원적인 사유를 부수고 다원적인 이미지를 합성하는 경향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착의 중추를 이루는 정신 적인의지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 저들의 큰 과제일 것이다. 이 과제를 풀지 못하면 저들의 문명은 결국에는 물질적인 허기중만을 충족시키고 그대로 와해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丸山씨 는 일본의 지성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레디칼한 정신적 귀족 주의와 레디칼한 민주주의가 내면적으로 결합되는 일〉이라고 하였 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일본에게만 국한하여 한 말은 아니다.급속 도로 근대화를 향해서 변천하고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가 마주치는 공동 과제라고도 할 것이다. 맺는 말 지금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일본인을 바르게,정확하게 이 해하지 않으면 아니 될 처지에 있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상호 이해라는 점에서 따져 본다면,일방 통행 같은 코뮤니케이션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일본인들도 한국을 이해하기가 현재로서는 대단히 어렵지만 우리는 일본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다. 말하자면 언어의 장벽이라는 문제는 우리에게는 저들처럼 절 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일본인 의 심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동남 아시아의 국제적인 회합에서 만나게 되는 일본인은 대개가 어떤 심리적인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올 느끼게 된다. 저 들은 자존심, 패배 의식, 그리고 피해자 의식이 두루뭉수리가 되어 서 이러한 콤플렉스를 어떻게 해서든지 극복하여 일본의 유머를 되 찾으려고 무척 애쓰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항상 아시아 사 탐들의 저들에 대한 불신이라는 끈덕진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저 들은 총과 칼로 더럽힌 명성을 고도로 발달한 산업 자본으로 다시 찾아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