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드라마 바티칸 공의회

에세이
단행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16-08-30 21:33
조회
4504
저자 김관석
자료유형 논문
제목 20세기의 드라마 바티칸 공의회
간행물명 횃불이 꺼질 무렵 - 20세기의 드라마 바티칸 공의회
발행처 유림사
발행일 1974-11-30
간행물유형 단행본
범주(형식) 에세이
페이지 67 - 76 ( pages)
주제어 현대의 정세 가톨릭 교회의 불안 바티칸 공의회 공의회를 위한 준비
첨부파일:? 20세기의드라마바티칸공의회.pdf

20세기의 드라마. 바티칸 공의회

⑴ 헌대의 정세와 카틀릭 교회의 불안
바티칸에서는 세계적인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바티칸 공의회〉라는 모임에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이 공의회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비크리스천 사회에서도그렇게 중대시 되고 있을까? 반공산주의 운 동의 선두에 선 사람들은 언제나 그리스도교(특히 카톨릭 교회)를 공산주의에 재한 투쟁에 있어서 가장 믿을 만한 동지라 생각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하이어래키에 대항하는 데는 카톨릭과 같은 하이 어래키가 가장 효과적인 조직이며 어느 사상이나 정치 운동보다도 강력한 결속력을 지닌 단체로 보고 있7? 때문이다. 지난 1958년에 요한 23세는 교황으로 선출된 몇 달 뒤에 고 타르디니 추기경과의 대화 가운데서 앞으로의 카톨릭 교회가 대단히 불안스러운 사태와 마주서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때 만 하더라도 격렬한 반종교 운동을 펴는 공산주의의 통치와 영향을 받은 나라가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는 예로부터 카톨릭 국가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빈곤과 문맹 그리고 신부의 부족 때문에 공산주의의 좋은 목표가 되어 버렸다. 아프리카에 있어서도 교회는 아프리카 토착민들의 신홍 민족주의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교와 식민주의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서구 에 있어서 세례 교인의 30화만이 성찬식에 참석하는 정도요 규칙 적으로 교회에 참석하는 신자의 수효는 그것보다 훨씬 적온 것이 었다. 신자가 가장 많다는 미국에 있어서도 미국인의 출생율을 따 라 갈 만큼 많은 신부들을 보충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모 든 세계적인 교회의 위기에 접하여 더 한충 불안을 돋구어 주는 것 은 교회 자체의 분열과 추문들이었다. ‘ 여기서 새로 취임한 교황 요한 23세는 세계 카톨릭 공의회를 열 기로 결심한 것이다.

바티칸 공의회란 무엇인가? 그리스도 교회가 시작된 이후로부터 이러한 공의회가 모인 것은 이번이 스물한번째이다. 니케아, 칼세돈, 트리엔트 따위의 공의 회를 거쳐 주로 신앙의 정의, 이단의 책벌, 그리고 엄격한 신앙 훈 련을 권장하는 일을 결정하여 왔다. 1054년에 동서 교희로 갈라 진 뒤엔 로마의 라테란에서 공의회가 모인 일이 있었을 뿐 1869년 이후에 바티칸에서 모이게 된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첫번 공의 회 때에는 1870년에 발생한 이탈리아 독립군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이 모임이 중단되고 말았었다. 그때에 미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제 의 가운데는 감독의 권위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이 첫번 공의회에 서 저 유명한〈교황 무오설〉이 선포되었던 것이다. 처음 일곱 공의회까지는 동방 정교회에서도 이를 진정한 공회로 인정하고 있었다. 이 공의회에는 정식으로 투표권을 가진 대표 삼 천명이 참석한다. 대표가 되는 감독들은 각기 자기 개인의 신학 고문과 함께 참석한다. 그러니까 이 공의회는 개신교의〈세계 교회 협의회 (짜.(:?.나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셈이다. 첫번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의 절대 무오가 확정된 뒤부터 이런 공의회를 소집하여 논의하며 결정을 내릴 필요가 절로 없어지게 되 었다. 모든 것을 교황의 재량으로 결단을 내려 선포하면 그만이었 다. 그러나 이러한 공회가 반드시 한번은 모여야겠다는 필요성이 날이 갈수록 절실히 느껴지게 되었다. 비오 12세도 이 점을 ‘느꼈 으나 때마침 우익과 좌익으로 뻗어 나가는 전체주의 사상과 이차 세계 대전 때문에 이러한 공회를 소집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 다. 이렇게 교황이 감독들을 소집하지 않아도 저들과 상의하여 결 정읍 내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회를 소집한 것은 면 밀한 준비를 하고 토론과 논쟁을 거쳐 결정하는 일이 더 나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곧 이렇게 공회를 소집하여 토론하는 가운데 이른바 감독들의 동료다운 책임감(에化닝 !⑶?皿3;삐며)을 중진시키 는 한편 각 대표들의 의견과 토론을 듣는 가운데 서로의 문제를 이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번 회의 년) 때의 세계 정세와 오늘의 정세와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다. 그 당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세계를 다 스린 것은 유럽이었다. 교회에 도전하는 힘이란 비조직적인 것이었 으며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지금은 그때와는 정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각 대륙의 신홍 국가들은 제각기의 주장을 가지고 있으 며 그 리 스 도 교 회 는 이 러 한 주 장 을 묵 살 할 수 없게 되 었 다 . 정치, 그리 고 군사적 인 뒷 받침 을 가진 공산주의 가 그리 스도 교회 에 이 념 적으로 도전하여 오고 있다. 만일 오늘에라도 카톨릭 교회가 내부 적으로 결속을 하여서 그 힘을 다한다면 현대의 사회적인 문제에 강력한 영향을 줄 수가 있을 것이다- 1960년 여름에 이르기까지 일년 반 동안 세계 각국에 있는 카톨 릭 교회 감독들은 고문,평신도, 신학교들에서 이번 공의회에 제출 된 여러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하여 몇 천 페이지나 되는 문 서들을 수집하였다. 이 문서들은 비밀에 붙여 두었다가 이번 공의 회 의제를 준비할 때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1960년 6월에 요한 23세는 이 문서들을 검토하고침삭하여 중앙 실행 위원회에 제출하는 일을 맡을 분과 위원과 사무국 담당자들을 임명하였다. 열개의 분과 위원회는 ① 신학 ② 감독 제도 ③ 권징 ④ 직제 ⑤ 성찬 ⑥ 예배 ⑦ 연구와 신학교 ⑧ 동방 교회 ⑨ 선교 ⑩ 평신도의 사도 직분 들로 나뉘어져서 각 부문의 주제들을 다루 게 되었다. 그리고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추기경이 담당하고 있지 만, 마지막 분과 위원희인〈평신도의 사도 직분 분과 위원희〉에는 주교회가 없기 때문에 교황청은 주로 아홉성격회로구성된 셈이다. 이렇게 준비를 위한 사무국과 주교회에서 제출된 준비 자료를 가 지고중앙실행 위원회에서 교황의 사회 아래에 여러 가지 구체적인 결정을 내렸다. 예를 들면 회의 날짜, 곳, 용어, 그리고 비 카톨릭 업‘저버 초청 문제들이었다. 그리고 사무국과 분과위원희에서 제 출된 안건을 개정하고 평가하며 모두 이천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내용을 119로 분책하여서 기록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세마타^:“ 1떼!此!) 는 모두 일흔이나 된다는 것이다.

요한 23세가 이번에 두번째 바터칸 공의회를 소집한 것은세계의 모든 크리스천들의 화해와 재결합율 촉진시킨다는 이념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 교황은〈합 동 촉진 사무국〉이라는 사무 담당을 새로이 마련하면서 두 가지 목 적을 천명하였다. 곧 이 사무국은 주로〈비카톨릭 신자들을 상,대로 저들이 이번 공의회의 방침에 따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간곡 히 기도하고 계신 성도의 결합에도 이를 수,있는 첩경을 찾기 위해 힘쓴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실제로 이 사무국에서는 그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질문, 도전, 항의 그리고 공식적인 정보를 직접으로 혹은 서신으로 받아 들여서 참고 자료로 삼는다. 지난 1960년에 캔터베리의 대주교 피셔 박사 가 요한 23세를 방문한 것도 바로 이 사무국의 알선과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이 사무국과 개신교의 ^ ? 씨 와의 관계도 매우 긴밀한 것이다. 사무장 베아 추기경은 추기경'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밖에 없는 예수회 신자다. 1962년 여름에 그는 어떤 미국 예수회 신자와 의 회견에서 그리스도 신자들의 단결을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장애물이란서로상대방에 대한 무지, 오해,그릇된 해석,그리고 쑥스러운 지나간 기억과 개신교에는 상 대로 협의할 지도자나 권위있는 기관을 찾기 어렵다는 점들을 열 거하였다고한다. (개신교 짜??.는 이러한교리적인 토론이나협의 체가'될 수 없다. ? 그러나 이러한 교리 문제를 떠나 세계 평화 문 제,군축 문제', 후진국의 발전,약소 국가의 권익 문제 같은 "것들 은 개신교 신학자나 카틀릭 신학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이번 공의회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사실은 비카톨릭 교회의 대표들을 초청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표 업저버라는 말은 혼히 우리가 사용하는 뜻에서 대표나 업저버가 아니다. 곧 외부에서 참 관하는 업저버로서만이 아니라 대표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전체 희 의에 참석하며 사무국의 특별한 배려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 대표 업저'버를 위해 회의 진행 중에 통역이 배치되어 있다. 이 대표 업, 저버로 초청을 받는 데도 미리 공의회 사무국과 초청 받는 사람 사 이에 비공식적인 접촉이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한 뒤라야만 초청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이 공의회에 대표 업저버를 파견한 교파들은 영국 국교회,연합 그리스도 교회,조합 교회, 독일 복음 교회,루 터 교회,감리 교회,장로 교회, 꿰이커 등이다. 이 사무국에서 지명한 대표 업저버 가운데의 6명은 미국 대표들이다. 침례교 세계 연맹에서는 이번에 대표 업저버 초청을 받았으나 파 견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희랍 정교회에서도 이번 공의회에 대표 업저버 파견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것은 동, 서 두 교회의 분열 에는 서방 카톨릭 교회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온전한 회원 자격 을 갖지 않고서는 어떠한 에큐메니칼 회의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방 침을 세운 때문이다. 대표 업저버는 내빈으로서외 특전과 아울러 의 무를 가지고 있다. 곧 이 공의회가 폐회하기 전에는 저들이 각자의 견해나 비판을 공적으로 발표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이번 공의회를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사작 한교회의 전통을 강화하여 그 동안에 지켜 오던 규례나 관습을 더 공고하게 하려는 의미에서 복고적인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 안의 일부 지도자들은 이번 기회에 복고뿐만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종래의 폐단을 지양하여 혁신이라도 감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카톨릭 신학 계에서 주목을 끄는 주장들이 대두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현 재 튜빙겐 대학의 신학 교수로 있는 스위철란드 출신 카톨릭 신학 자 한스 큉그(표3애 & 네 신 부 의 주장이다. 그는〈개혁과 재결합〉이 라는 책자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 안의 개혁과 혁신을 주장하였다. 그의 혁신론의 요점은 주로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 ⑴ 교황의 권위을 규정하는 일을 보충하기 위해서 감독과 공의 회의 권리 의무를 좀 더 분명히 천명하여야 한다. (외 교회의 관료적이고 율법적인 요소를 감소시키며 목회와 인자 한 구실을 더 앙양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리 교회의 신학이나 교훈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성서며, 예배의 중 심 은 성 만 찬 과 초 대 교 회 로 부 터 내 려 오 는 전 통 이 어 야 한 다 . 야) 성모 마리아 숭배는 지나치게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큉그씨의 제안은 다소 낙관주의적인 것이라는 평을 받았 지만 아뭏든 이번 공의회 준비 위원희에서는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 번 두 번 째 공 의 회 를 소 집 하 는 데 는 여 러 가 지 어려운문제가 많았으나 이 회의를 위하여 준비하는 가운데 벌써 많은 성과를 거 두게 되었다. 그리하여 단순한 복고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카톨릭 교회 자체 안의 혁신을 단행하려는 경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요한 23세가 애당초 천명한 바와 같이 카톨릭 교회를정 화하고(?대^있!애) 혁신하고(!에6봐배 생기를 다시 돋구어 주는 일 (!^!!선팬예!배) 그리고 현대적으로 재편성하는 일 (?했^페혜없。)들 을 통하여 좀 나은 항태를 가져 보려고 하는 것이 이번 공의회의 목적이다. 앞으로 크리스천 통일 촉진 사무국은 교황청의 일부로,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독립된 기구로 존속하게 될 것이 거의 확실 한 모양이다. 이 기구만 그대로 존속하면 이번 공의회의 성과는 한 충 더 빛나게 될 것이며, 앞으로 개신교의 지도자나 신학자들과의 대화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모?임에 개신교 신학자 가운데서도 대표 업저버로 여러、신학 자들이 참석하였는데 지난 12월 8일에 제 1기 회의를 끝낸 직후에 오스카 클만 교수(바젤 대학신학교수)는 처음으로 기자회견을갖고 자기가 느낀 바와 소신을 밝혔다고 어 통신이 전하고 있다. 그는 네 가지 항목에 걸쳐 이번 회의에 대한견해를 밝혔다. 그가운데서 그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합동이나 재결합의 방법과이념은개신교의 방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점을 강력하게 지적하고 난 다 음 신 조와,교리가 다른 교 파 가 협 의 체 로 구 성 한 ( : . 二의 성격과업적을 충분히 인식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개신교와카톨릭이 합칠 수 있으리라는 환영적인 낙관론에 대하여 경고를 하는 한편 이번’공의 회가 교회의 일치와 통합을 위해서 준비하고 연구한 그 성과는 충 분히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최근에 나온 〈크리스천 센추리〉지의 논설에서는 앞으로 개신교보다도 카톨릭 교회가 내부적 혁신을 하는 데에 더 빠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가' 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왜냐 하면 카톨릭은 아무래도 그 세계 적인 히에라르키 내부의 혁신을 조직적으로 하는 데에 그다지 오랜 시일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확실히 개신교 편에 약 점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혁신은 반드시 예배 의식 의 근대화나교리나신조, 그리고 히에타르키의 재편성보다도 한 개인개인을납득시킬 수 있는합리적인근거를 가지며 양심의자 유를 존중하는 데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현대의 사회 문화와 격리되어성 배타적인 경향으로, 카톨릭의 교리만을 주 장하여 울타리를 쌓아 올리는 한 이러한 혁신은 말할 수 없는 난관 에 부딪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바티칸의 둘레를 둘러 싸고 있 는 담 벽 의 큰 문 이 이 번 에 활 짝 열 렸 다 고 는 하 겠 지 만 그 담 벽 자 체 를 무너뜨리는 때에 비로소 참된 혁신을 기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