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자주성

에세이
단행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16-08-31 20:52
조회
9454
저자 김관석
자료유형 논문
제목 신문의 자주성
간행물명 횃불이 꺼질 무렵 -?신문의 자주성
발행처 유림사
발행일 1974-11-30
간행물유형 단행본
범주(형식) 에세이
페이지 466 - 468 ( pages)
주제어 신문의 자주성 현대 산업의 특징 미디어 신문의 책임 언론의 자주성

첨부파일: 신문의자주성.pdf

신문의 자주성

신문의 날에 즈음하여

한국의 신홍 사업 중에 신문 기업만큼이나 거창한 자이안트 비지 니스도 드물 것이다. 사회 여론에 끼치는 영향으로 보나 그 명분, 기업으로서의 크기로 보나 어떤 산업체 못지 않게 비대하여지고 있 다. 해마다 신문의 날이 되면 이 자이안트들이 한결 같이 새로운 표 어를 내걸고 자아 반성과 사명을 다짐하면서 행사를 치루곤 한다. 열세돌을 맞이하는 금년의 신문의 날에는〈신문의 자주성〉이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도 진부하고 당연한 표어를 새삼 내걸지 않을 수 없는 신문인들의 고충과 현실적인 압력이 존 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촉할 수가 있는 것이다.

현대 산업의 특징을 그 협동성에서 찾을 수 있다면 신문이라는 기업은특별히그복잡한기업 구조와 언론 창달이라는 입장에서 치밀하고도 지혜로운 협동 기업 정신이 요청된다. 그러나 과거의 한국 신문 역사를 살펴보면 신문은 언제나 항거와 저항, 비판의 정 신을 터전으로 하며 협동보다도 투쟁?을 앞세워 왔던 것이다. 일제 시대부터의 한국의 민족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이 사실도 수긍할만 하다. 그러나 성년에 접어든 한국신문은 이제 정부미디어 자체 그 리고 대중이라는 세 요소의 삼각 관계를 두루 살펴 가면서 어느 선 까지의 항거와 비판에 머물러서 미디어 자체의 문제, 독자의 문제 를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다. 언론을 통제하려는 경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언론의 자유, 독립,자주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언론기관 자 체의 질적 향상과 또 대중의 권익을 존중하며 개인의 사생활을 침 해하지 않고 사회에 봉사한다는 면까지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여기서 혼히 우리는 한국신문들이 항 거와 비판의 정신이 왕성하면서도 때로는 신문의 횡포라는 현상으 로 독자의 빈축을 사는 경향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문의 자주성보다 앞서는 신문의 책임성이라는 윤리 문제가 다루 어져야 할 것이다. 월버 ‘ 슈람은 신문 보도의 적관성이나 공정성의 밑바닥에는 보도의 책임적인 해석이 있어야 한다고주장하면서 사회 책임설을 말한 바도 있거니와 신문의 책임은 정부와 신문, 그리고 독자가 공동으로 젊어져야 할 책임이라고 갈파하였다.

언론의 자유나 신문의 자주성에는 이상 세 가지 요소가 관련되어 있음을 살려야 할 것이다. 어떤 역사가는 말하기를 서구의 신문은 자유를 쟁취하는데 2백 년이라는 세월責 보냈지마는 책임적인 신문 이 되어 본 것은 불과 1?20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따르는 세 가지의 문제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 첫째로 정부는 신문을 규제하려 함에 있어서〈명확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어디에다가선을 긋는가 하는 문제이다. 일차 대 전 중 미 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전 선동으로 체포된 센크 사건을 중심으로 한 홈즈판사의 이론은 지난 세기부터 세계 언론 문제에 파문을던져 오 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과 같은 세계 반공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나라에서 국가 보안법으로 이적 행위를 규제하는 나라에서 과연 어 느 선에서 이〈명확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라04을 제정하는가 하늘 것이 신문과 정부 관계에 있어서 가장 긴요하고도 근본적인 문제이 다. 때로는 이것 때문에 정부 당국의 자의가 그대로 통하는 위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위험〉은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있다고할수 도 있고,없다고도 할수있는주관적인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신문 자체의 규제 문제일 것이다. 신문 윤리 위원회가 있 어서 신문 보도의 정확성과 명예 훼손의 방지에 힘을 기울이고 있 으나 아직도 우리 나라에서는 공적인 일과사적인 일의 구분이 명확 하지 않아서 공적인 보도를 하는 때에,그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 는 사례가 따르기 쉽다. 이것은 신문 자체가 언제나 경계해야 할 문제인 동시에 보도 담당자의 철저한 직업화를 통해서 질적인 향상 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대중을 위한 봉사에는 엄격한 훈련과 직업적인 교육이 있어야만 무엇을공식적으로 말해도 좋고 무엇을 말하면 안된다는 분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문화, 종교의 특수 교육이나 교양을 갖추지 않고서 어떻게 책임적인 보도나 논설을 다룰 수가 있겠는가? 끝으로 신문의 독자의 문제이다. 독자들의 투고난을 설치해서 독 자의 소리를 신문에 반영시키는 기회가 열려져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코뮤니케이션에서 흔히 말하는 피드빽의 과정이요, 이 과정 이 있어야만 진정한 쌍방 전달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신문의 자극성은 신문산업을 담당한 사람들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 신문, 독자 이 삼자의 정상적인 삼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함께 나누어져야 할 책임인 것이다. 이 책임 윤 리가 확립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언론의 자주성을 스스로 확보할 수 있게 월 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