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전도

에세이
단행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16-08-31 20:48
조회
9555
저자 김관석
자료유형 논문
제목 문서전도
간행물명 횃불이 꺼질 무렵 -?문서전도
발행처 유림사
발행일 1974-11-30
간행물유형 단행본
범주(형식) 에세이
페이지 454 - 460 ( pages)
주제어 한성순보 문서전도 문서사업 여론 지도자 신문 매개체

첨부파일: 문서전도.pdf

문서 전도

(1) 역사적 고찰
여기서 문서 전도라고 하는 것은 물론 활자로 인쇄된 책, 신문, 잡지, 그밖에 여러가지형식의 인쇄물로하는전도를의미한다. 활 자로 글을찍어내는 일은 이미 주후105년에 중국에서 먼저 발명되 었고,주후 450년에는 세계 최초의 목각 인쇄가 둥장했었다. 역사 적으로 엄밀한 날짜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되,대개 주후 900년 에서 1450 년 사이에 중국과 한국에서 처음으로 주조 활자가 발달되 었다고 한다. 15세기 중엽에 들어서기 직전에 비로소 구텐베르그가 활자로인쇄하는기술을발달시켜,1456년에 소위 42행 구텐베르그 성서가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서 1450년부터 1550 년까지 백년 동안 유럽에서는 활자 인쇄가 급속도로 번져가게 되었으며, 1476 년에는 캑스턴(어있에)이 영국에서 인쇄 출판을 시 작했고,八?118가 이태리에서 유명한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었다. 서반구에서는 1539년에 처음으로멕시코에서 인쇄 출판이 시작되었 으며 미국에서는 1640년에 최초의 서적 (丁1比 ?⑷미 800^이 간 행되었다. 구텐베르그의 성서 출판이 유럽의 출판 문화의 시발점이 되었다는이 역사적인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로만 생각할 수가 없 다. 종교 개혁을 전후로 한 유럽에서는 복음 전도가 종래의 수기로 나 구전으로는 도저히 충분하고 효과적인 성과를 거둘 수 없었던 것이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이처럼 문자의 발명과。는울러 활자로 찍는 인쇄술의 발달은 문화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성서와 복음 전도 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쓰여져 왔던 것이다. 복음 전도를 위한 성서의 간행을 인쇄하던 출판이란 것이 교회 안에서만 쓰여지는 기 구로 뿐 아니라 사회 발전과 혁명의 도구로도 이용되었던 것이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 신문을 찍어내고,교육을 위해서 교재를 출판 하고, 16세기, 17세기에는 정치를논하기 위한잡지 팜플렛이 등장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영국, 미국, 프랑스의 혁명도 이러한 문자 로 출판된 미디어가 없었던들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인쇄 문화는 유럽 문화 발전에 있어서 결정 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처음으로 신문의 형식으로 인쇄물이 나돌기 시 작한 것은 1873년의(고종 10년)〈한성 순보〉,그리고 일간 신문으로 서는 1898년의〈매일 신문〉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공문 반포를 목 적으로 하는〈전교〉〈전보〉등이 있었다. 한국에 본격적인 출판 문 화가 시작된 것은, 김옥균이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일본에서 처음 으로 인쇄 시설을 도입하였고, 카톨릭의 꼬스트 신부가〈한불자전〉 을 위해 1877 년 중국으로부터 일본으로건너가 이를 인쇄하는데 성 공한 데서 비롯되었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장로교의 언더우드, 감리교의 아렌셀러 등이 한국에서 1885년에 포교를 시작하는 즉시 로 대한 전도지 반포 협회 (됴이"63!! 5001617―현재의 대한 기독 교 서희)를 창설하여서 복음 전도와 아울러 외국 문화의 전달에 큰 공헌을 하기에 이르렀다. 1889년에는(고종 26년) 당시 중국 선교사였던 올링거 박사가 배 잭 학당에서 교내 활판소를 시설하여 한영 활자를만들고,여치서 千 간〈대한 그리스도인 회보〉,격일간〈독립 신문〉,그리고〈협성 일 보〉, 최초의 일간신문〈매일 신문〉을 간행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문서 사업의 발전을 훑어 보아도 알 수 있는 점은 문서 사업이 문명의 발달과 아울러 전도에 가장 효과적이며 영속적 인 무기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 정신을 앙양시킨 술한 초기 신문 잡지가 간행되지 않았던들, 또 문서 사업을 통한 민족 문화의 보존과 계몽이 없었던들 오늘의 한국의 역사적인 양상 도 달라졌으리라는 점을 누구나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⑵ 실제 문제
프로테스탄트에서는 그 신앙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있 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중심 이 되어 있으며, 더우기 주일 예배에 하는 설교가 결정적인 중요성 을 차지하고 있다. 신학 교육에 있어서도 설교학이 실천 신학의 중 심을 이루고 있는 사실은 이러한〈말씀〉의 이해에 비롯되는것이다., 그러나 헨드릭 크레이머가 그의 저서〈丁표6 0011111111111031;1011 0조 1116 01111511311 ?산出〉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프로테스탄티즘은 종교 개 혁이후로 설교에다 그만 지나치게 중점을 두고 성례전이나 예 배 의식은 너무 등한히 하였기 때문에 결국 설교를 우상화 하였다 는 것이다(?.개)? 그래서 설교를 우상화 하는가운데 다른 전달 방법 즉 말로 전하는 전달 방식에만 의존하는 까닭에 복음 전도의 고질화 또는 소극적인 전도만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반 문화는 모 든 전달방법을 거와 무제한으로 사용하는데 교회는 이러한 전달 방식에 여러 가지 제약을 스스로가해서 일반 문화의 전달보다 훨씬 뒤떨어진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 문서 전도를 활발하게 하는데 어 떠한 과제가 가로 놓여 있는 것인지를 고찰하여야 할 것이다. 무룻 문서로 하는.전달에는 반드시 그 전 달 을 받는 대상에 관한 깊은 관 심과 연구가 앞서야만 한다. 문서 전도가 결코 일방적으로 무엇을 인쇄해서. 나뉘 주는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전달(:야!배!!!!!예노:!) 은 문자 그대로 서로 대화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언제 나 쌍방 통행이지, 일방 통행은 아니다. 책이나 잡지 출판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문제는 그러한 출판물을〈누가〉읽는가 하는 것서며, 또 대상이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무엇〉을 말해 줄 것인가 하는 것 이 제일 힘든 문제이다. 만일 어떤 문서 사업이라도 이 문제만 정 확하게 분석하고 파악한다면, 그 문서 사업은 반 이상이나 성공했 다고 하여도 과언아 아닐 것이다. 독자 대상이 청년인가? 부인인 가 ? 또는 이 모든 계층을 합친 종합적인 것인가? 문서 사업에서 제일 골치를 앓는 문제는 독자 대상을 무시하고 논문을 쓰는 집필 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자기의 글을 읽을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조금도 생각지 않고서 혼자 생각 만을 일방적으로 써 보내면 그것은 전달이 라고 하기 보다는 독백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로써 글을 쓰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비 판을 두려워 한다. 대화를 하는 태도라면 자기가 하는 말에 반드시 상대방의 비판이 따르리라는 것을 기대하게 되지만 자기 일만 옳다 고 하는 독백자는 언제나 비판을 두려워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 떤 필자.는 본명을 내지 않고 무슨 펜 네임으로 자기 의견을 발표하 늠 경우가 많은 것을 현대의 한국 교계 신문에서 가끔 보게 된다. 이것은 무책임과 두려움에서 하는 태도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아 무리 좋은 내용의 글을 쓰더라도 필자가 그 내용에 책임을 진다는 태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는다면 그 문장의 효과는 줄어들고 말 것 이다. 지금까지는 문서 사업에 관계되는 실제 문제를 집필자의 편 에서 검토하였다. 그러면 독자는 어떠한가? 어떤 신문이나 잡지, 또는 단행본을 읽는 사람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기 대를 가지고 책을 선택한다. 만일 그기대에 충족감을 주면 좋은 글, 좋은 책이라고 하지만, 기대에 어긋날 때에는 별로 달갑지 않 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책을 선택하고 읽는 독자가 가 끔 너무지나치게 안아한 생각과 태도로써 책을 고르며 읽는다는 폐단을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흥미가 없다기보다도 잘 모르겠다고 하는 독자들은 자기가 읽는 것은 무엇이든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생 각하는 것도 지나친 생각이다. 한 문장에서 반 이상을 이해하고 나 머지를 이해 못할 경우, 계속해서 탐구하는 독서 태도가 아쉽다.

물론 그러한 글을 쓰는 필자에게도 그나름대로의 책임이 있다고 하겠지만, 독자편에서는 모르는 부분을 꾸준히 추구해 나가는 탐구 의 정신서 따라야 할 것이다. 이 태도가 사실 전달에 있어서 중심 적인 중요성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독서가 지식을 축적시키는데 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태도 형성에 본래적인 목 적이 있기 때문이다. (회 인격적 영향과 전달 앞에서 집필자와 독자의 태도에 대한 실제적인 문제에 언급하였 다. 이처럼 태도니,인격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도 문서 사업의 구 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 관한 권위있는 학 자 두 분 캇쯔와. 라자스펠드가 쓴 책〈인격적인 영향???61:501131 ^^1161106〉가운데서 이 단계 가설이 다루어지고 있다. 인격적인 영 향이란 결국 일상 생활에서 서로 접촉하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영 향이라는 말이다. 이 학설을 입증하기 위하여 라자스펠드는 미국민 의 선거 투표를 연구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① 선거 기간 중 사람들은 신문이나 라디오의 보도보다 개인 접 촉에서 그의견과 태도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② 여론 지도자(??이! 뇨닌하)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어떤 계충 이나 직장 안에 있어시 저들의 의견과 태도가 전달에 있어서 결정 적인 영향을 끼친다.
③ 이 여론 지도자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전달 미디어와의 접촉이 잦다.

이 세 가지 사실이 그의 연구결과 발표되었는데 흔히 우리는 신문, 잡지,라디오가 직접 여론형성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 을 뒤집어 엎어 놓았다. 그러면 개인의 여론 지도자의 태도와 의견 이 전달 미디어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이유로,그는 개인이 끼 치는 영향이 무의식적이며,융통성이 있고 신빙성이 있기 때문이라 고 하였다. 이제 이 주장을 문서 사업에다가만 국한하여 생각한다면, 문서 사업 자체는 개인과 개인의 접촉에서 생겨지는 영향력만큼 큰 힘을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개인 접촉에서 생기는 영향을 보장. 한다는 사명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라자스펠 드가 말하는 가족, 친구,직장 동료와 같은 일차집단(?出^대 만。"?) 의 동질성에서 가장 강력한 의건이 조성된다고 하였다. 한국의 문 서 전도가 정말로 복음의 전달에 결정적인 영향과 공헌을 하려고 하면, 먼저 한국 교회 안의 신자들의 성도의 사귐에 어떠한 의견에 나태도 형성을 보강할 만한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집필자와 독자 문제 다음에 생각하여야 할 것은 문서 사업 자체가 전달의 매개체로서 지니는 성격을 말하고자 한다. 최초 캐 나다의 신진 학자 마살 맥그리텐이라는 사람이〈새로운 인간 이해〉 라는 제목으로 저서를 발간하였는데,그는 이 책에서 전달 매개체 가결코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자기 확장이기 때문에 매 개체마저도 일정한 메시지를 가지게 마련이라고 하였다. 그는 특히 현대는 활자문화를지나, 전기 공학에서 생겨지는새 문화의 세기라 고 하면서 전달의 내용과 매개체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텔레 비전 방송을 예로서 들었다. 텔레비전 시청자는 결코 그 안에서 말 하는 사람의 말만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세트가 주는 전 체적인 압력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문서 사업 에 있어서도 잡지나 신문이라는 매개체와 집필 내용을 엄밀히 구별 하였고, 따라서 객관적인 보도라는 금과옥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 해 왔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보도에도 책임적인 해설을 붙여 주관적 인 보도를 하여 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번져 가고 있 다. 여기에서부터 내용과 매개체의 분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새 생명〉하면 벌써 그 내용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어떤 메시지를 그 자체가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잡지 자체가 지니는 성격 편집 방향이 새롭게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계기를 볼 수 있다. 그 터기 때문에 편집 방침,기술, 선택 등도 내용의 글에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