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연 리포트 21호) 여성과 안전한 삶 _ 권두언

권 두 언

여성과 안전한 삶

김 상 덕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실장

최근 신당역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여전히 혐오와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구조적인 대응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 전체 비율 중 82%가 남성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가해자의 80% 이상이 한 성별에 편중되어있는 현상 너머에는 숫자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피해 여성의 고통과 잠재적 피해자의 두려움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젠더에 기반한 폭력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복잡한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합니다. 6년 전 강남역으로부터 ‘n번방’ 사건에 이어, 이번 신당역 사건까지 반복되고 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이후 나 또한 제2, 제3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가족은 물론, 많은 시민들이 그리고 여성들이 이번 사건을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고 또 분노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이는 ‘안전한 삶’이라는 누구나 바라고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긴 자들의 목소리입니다. ‘과연 여성은 안전하고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를 향해 외치는 절규입니다.

그때마다 문제 제기와 다양한 해법들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현실 바뀌지 않은 듯 보입니다. 우리 사회 이면에 (혹은 내 주변에)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의 문화들, 여성을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태도, 쉽게 힘으로 통제하려는 강압적 방식, 그리고 여성을 성적으로 희화화하거나 대상화하는 저속한 문화 등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상대적으로 안전한 삶을 누려왔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귀 기울였는지 돌이켜 봅니다.

이번 호를 기획하면서 한 여성 신학자와 통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여성 신학자로서의 입장을 부탁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분의 대답은 거절이었습니다. 젠더 폭력의 문제와 안전에 대해 허구한 날 외쳤지만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리고 그때마다 ‘여성’들만 소리쳐야 하는가 하는 묵직한 비판이었습니다. 도대체 한국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할 것이며, 또 실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보여줄 때라고 말입니다. 이런 호는 그동안 안전했고 그래서 침묵했던 ‘우리’의 반성문과도 같습니다.

첫 번째 성신형 교수님의 글은 기독교 윤리학자로서의 반성과 성찰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꼭 필요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부탁에도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 글은 기독교반성폭력센터에서 사역하시는 이은재 활동가님이 써주셨습니다. 기독교와 성폭력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사례들을 직접 경험하며 느낀 사유와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 이번 ‘신당역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수경 대표님은 ‘여성과 안전한 삶’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핵심적인 논의들을 중심으로 문제와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 대표님은 기획 단계부터 몇 가지 조언을 주셨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논의가 폭력, 피해, 갈등의 부정적 서사를 극복하고, 여성과 모두의 안전한 삶에 대한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위험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바라는 것은 성별에 상관없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소망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