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기독청년 생명`평화 일본기행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7-05-28 00:53
조회
1797
신청서.hwp

기독청년 생명·평화 일본기행

1. 기간: 2007년 8월 19일(일)부터 25일(토)까지...
2. 집합 장소 및 집합 시간 : 8월 19일(주일) 서울역 대합실 오후 3시 30분
3. 참가비: 60만원(일체의 추가 경비 없음), 단 KTX 왕복을 하지 않고 부산에서 만나는 경우에는 52만원...
(전일정 국내외 교통비(KTX 비용 포함), 전일정 숙식비, 전일정 입장료...전체 식사 중 고배 청년학생 센터에서의 만찬교류회, 나가사키에서의 저녁에 회전스시(1500엔 예산), 시마바라에서의 오찬 교류회와 온천욕 등이 포함되며 그 외에는 아침은 500엔+점심은 800엔+저녁은 1200엔 정도의 식사를 할 예정임.)
4. 참가 인원: 45명
5. 주최: (사)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기독청년 아카데미
6. 1차 모집 마감: 7월 15일,
7. 주의사항
1) KTX 및 선편 예약 관계로 예약금을 20만원으로 신청과 동시에 입금요
2) 참가 신청 시 이름(한글, 영문), 여권 번호, 생년월일, 성별, 주소, 전화번호 기입
(양식은 첨부파일 참조, 작성후 이메일로 제출, 첨부파일이 열리지 않을시
로그인을 하시거나 위의 사항을 양식없이 이메일로 발송)
8. 연락처: 312-3317~9 혹은 011-9718-5455, FAX 02) 313~0261 기사연 김숙희 간사
9. 계좌번호 308-03-007141 신한은행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안(카멜리아 이용) -6박 7일이동
8월19(일);서울역 집합(15:30)-서울역 출발(15:45)-일요일 부산 국제 여객 터미널 집합(19:00)카멜리아
20(월);고쿠라 교회 도착(10:00)-고쿠라 교회 목사님으로 부터 일제하 한인 고난사에 대한 소개와
점심 식사 후 고쿠라 지역 일제 징용 조선인 고난의 현장 방문-신모지 항 도착 명문 대양 페리 호 승선(16:50)리무진명문대양 페리특2등,개인양실
21(화);오사카 남항 도착(05:20)-아침 식사 후 하선-교토 동지사 대학 및 윤동주 시비-임진왜란 코 무덤-우토로 방문-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 방문-공생공빈의 저자 스치다 다카시 교수 특강 후 고배 도착(17:00)-야스다 교수 특강 후 저녁 식사 및 고배지역 유기농 운동가 등과 교류회리무진고배청년
학생센터
22(수);고배 생협 카가와 도요히코 목사 기념관 및 고배 조선민족학교 방문-오사카 KCC 및 오사카 교회 등 방문 후 오사카 시내에서 자유 시간 후 오사카 남항 도착(19:30)-승선 후 저녁 식사.. 리무진명문대양 페리특2등개인양실
23(목);신모지 도착(08:00)-시마바라 크리스챤 농민 전쟁 유적지 방문 및 시마바라 지역 농민들과 점심을 겸한 간단한 교류회(11:30~14:15)-운젠 지옥 순교지 순례(15:00~16:00)-일본 최초 26인 순교 기념 공원 방문-오우라 교회당 방문 -우라까미 교회당 방문-나가사키 가톨릭 회관 도착(20:30)-일본 기독교 순교 역사에 대한 특강(~21:30)-기념 예배 후 후 취침 리무진이용,나가사키가톨릭회관 숙박
24(금);원폭 평화 공원에서 경건회(05:30~06:00)-아침 식사 후 출발(08:00)-원폭 투하 중심지 및 원폭 자료관 방문(~10:00)-소토매 200년간 기독교대박해 은거지 및 엔도슈사큐 문학 기념관 방문-회전 스시로 점심 식사 후 나가사키 출발-후쿠오카 도착...저녁 식사 후 자유 시간,리무진 이용, 후쿠오카 밸리호텔 아카사카 숙박
25(토);후쿠오카 시내 자유시간(~10:30)-하카다항 도착(11:00)-출국 수속 후 승선-점심 식사 후 평가회-부산 도착(18:00)-저녁 식사 후 KTX 승차(19:40)-서울 도착(22:40)

참조사항

1. 고쿠라 교회: 재일 인권 운동가이셨던 최창화 목사님이 설립하신 교회로 지금은 주문홍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신다.
2. 영생원: 일제시대 징용으로 끌려고 고생을 하다 그곳에서 사망한 한국인 유골 안치한 곳
3. 오다야마 묘지: 해방 후 일본으로 끌려갔던 한국인들이 귀국을 하다 현해탄에서 조난당하여 사망한 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
4. 야하다 제철 유적지: 일제하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노동을 한 곳
5. 도시샤 대학: 교토에 있는 일본 최초의 기독교계 대학이자 민족 시인 윤동주 선생이 교토에서 체포되어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할 때까지 다닌 곳. 윤동주 시인 시비가 있음
6. 임진왜란 코무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당시 전공의 확인을 위해 코를 베어 오게 했는데, 그 때 희생당한 조선인 병사들의 코를 모아서 무덤을 만든 곳
7. 우토로 지역: 일제 시대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어렵게 집단으로 살던 지역인데, 조선인 빈민 지역으로서 토지 소유자와의 분쟁으로 억울하게 쫒겨날 위기로 인해 인권 운동가들에 의해서 알려진 곳-현재도 완전한 해결은 되지 않고 있다
8.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 교토 지역에서 유기농 직거래 운동 및 대안적 삶과 환경 운동을 하는 생활과 생명의 공동체. 이 단체의 대표인 스치다 다카시 교수는 교토 대학 물리학과 교수였는데 현대 과학의 본질적인 문제를 인식하면서 사임하고 이 단체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우토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함께 일하는 평화-생명 운동가이다.
9. 고베청년학생센터: 고배 지역에서 이주 노동자 인권 운동과 한국인과의 교류와 연대 운동 그리고 남경 대학살 등을 알리는 다양한 인권 운동과 유기농 운동을 하는 중심지. 기독교계 기관이다.
10. 고베 민족학교: 고배 지역에 있는 조총련계 민족학교
11. 고베 생협: 일본의 성자라고 일컬어 지는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설립한 생협으로서 일본 최대의 생협이자 세계 최대의 생협이다.
12.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 일본 빈민 운동, 노동 운동의 아버지이자 평화 운동가, 고배 생협, 북오사카 생협, 동경대학 생협, 메이지대학 생협 등을 설립한 일본 생협 운동의 아버지. 일본 생협의 이념적 지표인 ‘사랑과 협동’, ‘사람과 꿈’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제시한 이념이다. 초대 일본 생협 이사장, 일본 사회당 발기인이자 열정적 복음주의자 그를 갖가지 테마로 기념하는 기념관이 일본에서 6개가 있다. (6개의 테마는 생협 운동, 평화 운동, 농민 운동, 빈민 운동, 교육 운동, 복음 구령 운동 등이다)
13. 야스타 교수: 고배 대학 농업경제학 교수를 역임한 크리스챤으로서 고배지역 유기농 운동의 지도자
14. KCC: 재일 한국인 기독교센타
15. 오사카 교회: 오사카 지역에서 가장 큰 한인 교회. 그 주변은 재일 한국인이 많이 산다.
16. 나가사키 평화 공원: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지 인근에 세워진 공원
17. 우라까미 교회당: 1600년대 기독교 대박해 시절에 박해를 피해 숨어든 기독교인들이 250년간의 철저한 탄압을 피해 비밀 결사체로 신앙 공동체를 유지한 곳이자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후 그들의 후손이 세운 교회당이자, 1945년 원폭이 떨어진 중심지 교회당. 일본에서 가장 미사 참석 규모가 크고 아침 새벽 미사에만 약 100명 이상의 신도들이 참여하는 곳. 원폭 투하로 교회당이 전파되고 지금은 자리를 200미터 정도 옮겨진 언덕에 세워져 있음
18. 원폭 투하지: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에 떨어진 나가사키 원폭 투하 중심지, 일본인 위령탑과 일본 양심세력이 세운 조선인 피해자 위령비가 있음
19. 원폭 자료관: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대한 각종 자료를 모아 놓은 곳
20. 26인 순교비: 1597년 임진왜란이 끝나기 일년 전 서양인 예수회 선교사 6명과 일본인 신자 20명을 당시 일본의 수도 교토에서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인 나가사키까지 약 1,000Km를 걸어서 끌고 와서 십자가 처형을 한 곳에 세워진 순교 기념비 및 기념 공원(뉴스엔조이에 연재한 김재일 글 참조)
21. 오우라 교회당: 일-불 통상수호조약의 결과 서양인에게만 허락된 예배를 위해 세운 대 박해로 다 파괴된 일본의 교회당 이후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예배당으로서 국가 유형 문화제이자 250년간의 잠복 그리스도인이 발견된 곳
22. 소또매: 대박해 시절 나가사키 지역의 가장 외딴 곳으로 숨어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이 살던 곳이자, 엔도 슈샤쿠의 침묵의 배경인 곳
23. 엔도 슈샤쿠 문학 자료관: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크리스챤 소설가로서 순교 소설 침묵의 저자인 엔도 슈샤쿠의 문학 기념관
24. 운젠 지옥: 100도에 가까운 끓는 온천물로 기독교인을 고문한 현장
25. 바라죠: 시마바라 크리스챤 농민 전쟁 최후 전적지로 17세기 초 기독교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농민에 대한 가혹한 수탈에 견디다 못한 시마바라-아마쿠사 지역 농민들이 아마쿠사 시로라는 지도자를 내세워 봉기하여 7개월여를 항쟁하다 35,000여명이 전원 몰살 한 곳. 이 전쟁으로 시마바라 반도 인구의 80%가 몰살 했으며, 특히 시마바라 반도 남부는 전원 몰살했다. 이 전쟁 후 도쿠가와 막부는 다른 곳에 사는 농민들을 시마바라로 강제 이주시켰다. 시마바라의 민요 중엔 한국의 전봉준을 기리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노래와 유사한 ‘아마쿠사 시로는 천부의 아들...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1888~1960) 목사 소개:고배에서 아카시 시장의 서자로 태어났다. 고베신학교를 거쳐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한경직 목사님의 선배이자, 프린스턴 신학교를 빛낸 동문의 사진 현판에 한경직 목사님의 사진이 걸리기 전까지 유일하게 사진이 걸려 있었던 동양인이다) 귀국 후 고베의 빈민굴에서 그리스도교 전도활동을 하면서 노동운동의 제일선에서 활동하였다. 의회주의를 신봉하였기 때문에 노동운동계가 좌경화함에 따라 농민조합운동으로 전환하였으며, 1925년 보통선거법이 성립되자 무산정당 결성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공산당의 진출에 환멸을 느껴 협동조합운동에 주력하였다.
종교운동에도 힘써 '천국운동'을 전개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전(反戰)운동 혐의로 헌병대에 감금되는 등의 탄압을 받았다. 전후 일본사회당 결성에 참여하고 세계연방운동 추진에도 진력하였다. 한국의 자유당정권 때 개인자격으로 내한(來韓)하여, 당시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을 방문하여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사죄의 뜻을 전하였다. 저서로 자전적 소설인 《사선(死線)을 넘어서》(1921)와 《새벽이 오기 전에》(1924) 등 다수가 있다.

우리 민족에게 일본은 참 밉고도 싫은 나라이다. 아마 전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서 가장 싫은 나라를 꼽으라고 하면 틀림없이 일본이 제일 싫다고 대답할 것이다. 36년간이나 우리를 식민지로 삼아 가장 치욕적인 삶을 살게 하였던 나라,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끌어다 남자는 총알받이로 여자는 정신대로 참혹하게 짓밟았던 나라, 그러면서도 끝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아니한 정말 파렴치한 나라.... 아무튼 일본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우리 국민 대다수의 정서이지 싶다. 그런데, 그토록 미운 일본인 중에서도 유독 한 사람에게 만큼은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1920년대에 일본의 전쟁에 반대하다가 감옥에 갇혀 모진 고초를 겪었던 사람이다. 또한 1940년에는 개인 자격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을 중국에 사죄하였다가 또다시 일본 정부로부터 모진 탄압과 고초를 겪었던 사람이다. 그도 모자라 우리나라의 자유당 정권시절,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와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죄를 자청하였던 사람이다. 또한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본 정부의 무서운 탄압 속에서도 인권 운동을 가열 차게 전개하며, 여성 운동에도 최일선에서 앞장섰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 이름은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사람이다.

사실 그는 사회 운동가이기에 앞서 개신교의 목사인 사람이다. 그는 한 일본 정치인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기생이었다. 아버지가 그를 데려다 키우기는 했지만, 늘 배다른 형제들에게 미움과 조롱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버티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신학교에 진학을 했다. 목사가 되려고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하게 기침을 하던 그는 울컥 하고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게 되었다. 새빨간 피였다. 당시로서는 불치병이라고 여겨지던 폐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기침을 할 때면 늘 피를 토하는 폐병환자.... 폐병에 걸리고 나자, 학교에서는 그에게 더 이상 학교에 나와서는 안 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까지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 추방 아닌 추방명령에 홀로 떨어진 가가와 도요히코는 운명을 저주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누군가가 북쪽 가나사와 지방에 가면 ‘나가노’라고 하는 목사가 있는데, 거기를 한번 찾아가 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물어 물어 찾아간 나가노 목사.... 그러나 그는 벌써 5년째 단 한명의 교인도 없는 불모지에서 아내와 아이들만 데리고 홀로 목회하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였다.

가가와가 나가노 목사의 교회를 찾아간 날은 마침 수요일이었다. 허름한 천막뿐인 그 교회의 거적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나가노 목사에게 있어서는 개척 5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온 성도였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나가노 목사는 가가와 도요히코에게 식사를 대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첫 번 식사 자리에서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만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하고 만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모든 사람은 그가 폐병 환자인 것을 아는 순간 그를 외면하고 내쫓았기 때문이었다. 가가와는 그렇게 또 쫓겨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가노는 나가려는 가가와를 붙잡아 앉히고 말없이 그가 토해놓은 피를 닦고 그에게 새롭게 밥상을 채려 나오는 것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가가와 도요히코는 삶의 희망을 회복한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 후 빈민굴에 찾아들어갔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입고 있었던 옷가지마저 그들에게 벗어주며 간절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세기 일본의 성자라고 불리는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몇 개월도 살기 힘들다던 폐병 말기의 환자, 그러나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 뒤로도 수십 년을 더 살아 70을 훌쩍 넘겼고, 그의 삶은 일본을 넘어 중국과 한국의 상처 난 사람들에게까지 촉촉하게 젖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엄청난 저술을 했는데, 그가 저술했거나 번역한 서적은 자그마치 150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늘 자신의 스승 나가노 목사를 기억했다. 사실 나가노 목사는 평생토록 단 한 사람의 교인 외에는 누구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복음을 전한 단 한 사람, 그가 바로 가가와 도요히코, 20세기 일본의 성자였던 것이다.